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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미수★안동경찰서수사 똑바로해라!! 살려주세요 제발

오뚝이 |2012.10.07 18:12
조회 1,195 |추천 9

안녕하세요,

 

저는 

<현장 출동했던 경찰, 그러나 수사는 안해? 대낮 보건소 살인공모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던 비구니 스님입니다. ()

 

제가 한 가문의 몰 락을 예견하면서도, 속세를 떠나 조용히 살아야 할 스님으로서

이렇게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이유는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성. 추. 행과 성. 폭. 행 및 폭. 행으로 인권을 유 .린 당하고, 억.압 당하고 있으며,

억울하게 돌아가신 수많은 저의 집안의 며느리들과 여자들의 개 .죽 .음에 대하여

 

수십년간 쉬쉬하고, 지금도 맞고 사는 며느리로 온 남의 집 소중한 딸들의 억울함을

 

大를 위해 小를 희.생한다는 처절한 심정으로 글을 올리는 바입니다.

 

부디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올리는 글이라 치.부마시고,

진정을 다해 쓰는 글이니, 관심을 가시고 많은 추천을 해주시고, 글들을 남겨서

베스트에 올려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가족도 친척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힘없는 대한민국 여성일 뿐입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恨을 아직도 풀어드리지 못한 죄인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 죽.음의 비밀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며,

직계.가족 및 일가 친척 모두가 '저 하나만 없어지면, 모두가 진실을 은 폐하고 조용히 살 수 있다' 는 일념인지 저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저도 승려이지만, ... 사람답게,안전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번에 쓴 글이 매우 길고, 전후 관계를 모두 적지 못하니앞의 글을 검색하여 꼭 읽어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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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아버지는 70대 노인이지만 180cm에 80kg가 넘고, 젊은 시절 안동 지역에서 팔씨름 등 힘겨루기 대회에서 늘 일등을 하던, 지금도 건장한 딸( 제 나이는 올해 52세입니다)과 같은나이의 젊은 여자와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경상.북도 지역에서 이름을 대면 웬만한 사람은 다 알만한 꽤 높은 고위 공무원직을 지내고 퇴직한 전직 공무원이셨습니다.

 

  하지만, 제 친부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술에 취해서나 안 취해서나 폭 력을 일상으로 삼으며 돌아가신 제 어머니를 생전에 숱한 폭. 행을 했으며, 전국구 바.람.둥.이였습니다. 그로 인해머슴같이 집안의 온갖 일과 농사일만 하시던 분이 염.증에 의한 자 궁 암에 걸렸습니다.

 

치료를 받고 분명히 살 수도 있었던 어머니는 배에 복수가 가득 찬 상태에서 아버지에게 주먹으로 배를 맞아 복수가 터지고 곧 죽. 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 광경을 본  유일한 사람은 저 뿐이었습니다.

 

 저는 일 년 365일 중 360일을 술에 취해 폭 .력과

첫닭이 우는 새벽녘에 눈을 뜨면 자녀들과 한방에서 자고 있음에도 학대했던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성. 행. 위를 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저는 경. 북 대학교에서 육상선수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전도유망했던 육상선수 였습니다.힘들었던 가운데에서도 운동이 저의 유일한 탈출구였는데, '양반 집안에서 무슨 여자가 운동이냐~ 여자가 공부를 해서는 무엇하냐~!' 하면서 대학도 못가게 하고, 고등학교까지 밖에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신지 몇 년 되지 않아 저(제 나이 현재 52세)와 나이가 비슷한

딸같은 여자와 재.혼을 하여 산 후, 그래도 정이 있고 의리가 있었던 오남매의 가정은 파.탄과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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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옥같은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저는 일찍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퇴직한

 

경찰 공무원이었던

전 남편 역시 저를 하루가 멀다 하고 저를 때렸고, 저는 가까웠던 친정으로 도망갔었지만 그럴 때면 친부는 오히려 남편의 편을 들고 '여자가 대든다'면서 저를 나무랐고, 남편의 구타는 더해만 갔습니다.

  잔인한 폭. 행과 구 .타를 견디지 못했던 저는 약 20여년 전에 이혼을 겨우 했지만 그 후에도 남편의 횡 .포는 계속 되었습니다.

  이혼 후 저는 두 딸을 혼자서 키웠으며, 그래도 나름대로 자랑스럽게 4년제 대학을 졸업시켜 성인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늦게 부처님 법을 만나 출가했습니다. 하지만 속세에 두고 온 두 딸이 늘 안쓰러웠습니다. 그러던 중 현직 지방 전문대 복지 행정과 교수로 있는 남동생의 부탁과 권유로, 가지고 있던 60회 이상 부.금하여 L .H(대 -한-주- 택)공사 아파트에 청약을 할 수 있는 통장을 주었고, 그 대신 남은 생에 두 딸을 잘 돌봐주길 구두상 부탁만 했습니다.

 

  저는 당시 큰 절에 들어가 수행할 계획으로 '스님이 무슨 재산이 필요한가' 라는 생각으로 속가에 있는 남동생에게 모든 걸 믿고 아무런 서약서도 쓰지 않은 채 그냥 넘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저는 경 .북 지방의 큰 절에서 수행하던 중 갑자기 하.혈을 했고, 늘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자궁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던 바였지만..2008년 12월

자궁난소적출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큰남동생은 이 사실을 알았지만, 아파트 관련 서류에 제 인감이 필요하다면서 인감도장을 내놓으라고 재촉만 할 뿐,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가의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들어간 터라 집도, 살림살이도 없었고, 그나마 TV, 냉장고 등 살림살이는 모두 절에 드리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말 형제가 있고 부모가 살아있었지만, 갈 곳이 없었습니다.

마침 아는 스님께서 제 사정을 알고 전라도의 한 작은 토굴에서 잠시 몸을 추스릴 수 있게 해주었고, 잠시 요양 뒤 저는 찜질방을 전전하며 다니던 중 2009년 초 겨울 미끄러져

골반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자 .궁 .난 .소 .적 .출 이후 갱년기까지 겹쳐 극심한 골다공증을 앓고 있었던 겁니다.

 

몸도 가누지 못하는 저에게 각종 서류와 인감을 달라고 계속 재촉만 하던 남동생은 위문차 한번 병문안을 와보면 직접 찾아갈 수 있을 것을 전화상으로 빨리 해달라 하였습니다.

정말 너무 한다 싶었습니다.

 

2009년 4월 초 동생이 살고 있었던 지방 전문 대학 교직원 숙소에서 저는 큰남동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목,가슴,등,다리등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상.해진단서를 발부 받아놓긴했지만, 남동생의 알량한 사회적 지위와 체면,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여 겨우 참아 경찰 조사까지 가진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저를 때린 날은 인감을 주지 않는다 하여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권 가압류' 라는 듣도보도 못한 소송을

저에게 몰래 걸어 놓고 법원의 승소 결정이 난 다음날 이었습니다. 

 

  저는 몇 달 동안 사력을 다해 목숨을 걸고 살기 위해 요양을 하느라 방문 앞까지 기어다니는 생활을 했는데, 어떻게 서류를 떼고 시골에서 먼 우체국까지 왔다갔다 합니까? 

사정을 이야기 했음에도 동생은 소송을 걸어놓았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했지만, 제가 가지고 있던 자동차에도 압류가 걸려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되었고, 2010년 10월 3일 도저히 동생과 말이 통하질 않아 제 친부를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친부는 제 둘째 딸을 동행시킨 그 자리에서 "딸을 데리고 왔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저를 폭행, 살인 미수 및 성 추행했습니다.

 

2011년 8월 23일

부친은 " 안 동 지역 역사상 최초로 친딸을 폭 행해 형을 받은 1호 아버지" 가 되었으며

사회 봉사 명령 80시간만 고작 받았습니다. 판결문의 별지, 범죄사실에는 " 손으로 눈을 찌르고, 우측 주먹으로 이마를 때리고, 이마로 코부위를 1회 박고, 농기구인 일명 매기를 휘둘러 제 11번 늑골 골.절 및 요추부 염좌 등의 상.해를 가하였다" 라고 명시되어있었습니다.

 

  저는 위 사실 말고도 코뼈가 부러지고, 치아가 파.절되고, 열 상이 없는 뇌.진.탕 증세가 있음에도 그러한 사실을 누락되었고, 또 그로 인해 지금까지 두통과 어지러움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또한 입에 담기도 힘든.. 제 유 .방을 미친듯이 잡고 흔들며, 음 .부를 쥐어 짜듯이 만져 딸이기 앞서 여성으로써 견디기 힘든 수치심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을 계속 경찰 조사에서 진술하였으나 경찰은 고의 누.락시켰습니다.

 

봉사 명령의 형을 받았음에도 친부는 성 .추 .행과 폭 .행했음에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2012년 2월 8일 즈음

구정 전전날 돌아가신 어머니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부친의 집에 찾아갔더니 수십명의 일가

친척 및 초등학생들 다니는 병아리 같은 조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모는 제게

" 남의 집에 왜 오는거냐?" 라고 하였고, 그같은 언행으로 인해 저는

 

  남동생 둘과 막내 삼촌에게 또 집단 구 .타 당하였고, 수십명의 일가친척들 앞에서 맞았으나 단 한 명도 말리는 이가 없었고, 그렇게 아파트에서 쫓겨나 경찰에 신고를 하였습니다.

제 삼촌은 삼.청.교.육.대까지 다녀온 분이었습니다.

추후 초등학생을 다니는 조카가 "고모를 폭 .행한 사람이 있었다"고 제게 말해주었지만,

 

검찰은 멍 자국이 있었음에도 출동 경찰이 보지 못했고, 증거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큰남동생, 작은 남동생, 삼촌을 "무 .혐 .의"로 결론 지였고 불 .기 .소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친부, 여동생 2명은 현장을 목 격했음에도 본 적 없다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의 모든 시.발은 계모였습니다.

일가 친척은 계모의 계.략과 시기, 질투 모략에 모두 넘어가 있었습니다. 4남매는 남아있는 부친의 유.산을 받기 위해 껌뻑 죽고 있었습니다.

계모는 독 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저의 출가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악 .마와 같은 존재로 일가 친척에게 저를 이야기 하고 다녔습니다.

 

2012년 4월 28일 저는

세 명이 모두 무 혐 의라는 불 .기 .소라는 불 .기 .소 이유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조카가 맞는 것을 보았다는데도, 저는 그러면 귀.신에게 맞았습니까?

그리고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은 "저의 주장이 사실이라도 사회통념상 가정상의 일이기에.."라는 문구였습니다. 경.북 지역 검찰은 이렇습니다.

 

가정사면 폭행도 그냥 묻는 겁니까?

 

집 단 구 .타는 무 .혐 .의가 되었습니다. 계모는 남에 집에 왜 왔냐 했지만, 친부가 살아있고 가족들이있는 곳에 갔는 제가 남입니까? 그리고 그날은 억울하고 비.참하게 돌아가신 제 어머니의

제삿날이었습니다.

 

2012년 중순, 제 딸은 제가 처.절하고 비.참하게 일가 친척과 외할아버지에게 폭 행당하는 것에 대해 분하고, 또 화해도 하고 싶지만 일절 연락이 없는 외할아버지에 대해 어떻게라도 구실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남동생에게  폭.행 당한 상.해진단서, 2010년 10월 외할아버지에게 폭.행당했던

치아 파.절,코뼈손상,  갈비뼈 골.절, 허리 염.좌, 뇌진탕 등의 병원 기록과 진단서 / 그리고 남동생이 몰래 걸어놓고 2010년 9월 , 제가 하도 시달려서 인감을 건네자 마자 바로 몰래 소송을 취하했던 소송.취하서까지 모두 첨부하여 내용증명을 띄웠습니다.

 

제가 인감을 안 줄 이유도 없었고, 단지 아파서

너무 아파서.. 갖다 줄 기력이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사과 한 마디 없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변명의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2012년 9월 30일 추석날

저는 돌아가신지 25년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산소에 풀이 나지 않는 제 어머니의 묘를 찾아뵙고,

조상님들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리고 계모에게 재작년의 사건 이후 계속 연락을 해도 피하고, 교묘하게 친부와 남동생 등 비겁한 가족의 뒤로 숨어서 직접 대화를 할 기회가 없었기에, 올 초 제사에서 "왜 남의 집에 왔냐"고 하는 등과 아버지의 그 당시 숨겨진 여자의 폭.행 등의 문제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당직을 서고 있는

 

안 .동 .시 녹 .전 .면 보건소로 갔습니다.

보건소 입구에서 다른 직원이 있을까봐 조용히 불러내 대화 좀 하자는 말만 했을 뿐이었는데,

대여섯번 물어도 대답이 없다가 제 가슴을 밀치고 때리며 가라고 하더니 안으로 들어가 있다가 한참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들어가보니 거기에는 친부, 남동생2명이서 자동.안.마.기에서 천하태평하게 안마를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심장이 멎을 뻔 했습니다. 

 

그런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안마를 받아도 될 만큼 국민의 혈세로 만든 국가의 재산이 녹록한 것이

아닐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다시 평정을 찾아, 새여자에게

"여자끼리 이야기 좀 하자" 했고, 친부는 "가라, 시끄럽다 이 년 아" 하면서

일어섰고, 막내 남동생은 "미 ㅊ 년이, 정신 또 라 이가 왔다 " 면서 제 팔을 비틀었습니다.

그리고 친부는 저의 유 .방을 또 2년전 그때처럼 잡으려 하였고 제가 막으려 하자 목의 급소를 잡아 현관문 문틀에 밀치더니 저를 손으로 목을 잡아 끌어올렸습니다 .

 

저는 발버둥쳤지만, 180cm 에 80kg이 넘는 거구에 대항하기엔 힘도 모자랐고, 키도 닿지 않았습니다. 정.당.방.위로 저는 살기 위해 아버지를 제지하려 했지만, 이것을 자동 안마를 받으며 인.면.수.심의 쓰 레 기인 교수인 제 남동생은 휴대폰으로 사진만 찍고 있었습니다.

 

하.. 참

 

저는 갑자기 정신을 잃었고, 저를 흔드는 듯한 느낌에 희미하게 정신이 돌아올 때 " 목의

자국이 자 .살하기 위해 목.매.단 상흔과 비슷하니 그렇게 하자"라는 4명의 소리를 들었고 저는 정신을 차려 필사적으로 신고를 하려했습니다.

 

 저를 막내남동생이 저지 했지만, 저는 겨우 데스크의 전화로 112에 신고 했고 바로 옆에 있던 녹전 지구대에서 출동했습니다. 눈을 떴을 때 제가 밀쳐졌었던 벽과는 거리가 떨어진 자리에 큰 대자로 누워있었고, 발 하나가 나무문인 현관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눈을 뜨니 전.신.자.동.안.마.기에 반쯤 걸쳐 앉아 친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만정이 떨어졌고, 소름이 끼쳤고 살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무조건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경찰 출동 당시 살 .인 미.수와 공모의 범죄가 있었음에도, 가정사로 치부하는 듯 했고, 저는 상태가 좋지 않아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바로 이송되었습니다. 제가 신고를 하자 녹 전 면 보건소 고위직 당직자인 은모씨는 다른 방으로 숨어 경찰이 찾아내었었습니다.

 

제 막내 남동생은 " 어떤 여자가 와서 행패를 부린다" 며 이미 저보다 미리 신고를 해 놓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큰 남동생은 지켜보고, 사진을 찍고만 있었습니다. 안.마를 받으면서...

 

이것이 복지 행정과 교수의 실체이며, 법무 법인에 다니는 남동생의 실체며, 전직 공무원인 친부의 모습이며, 현직 보건소 고위직자인 계모 은 모씨의 실체입니다.

 

이들은 안동 지역에 지연, 학연, 혈연으로 인맥이 대단하여, 그동안 두 차례의 사건이 매번 번번히 경찰 조사와 검찰 조사에서 법원에서 송방망이 처벌을 받게 한 이유입니다.

 

눈을 떠 병원에서 보니, 제 목은 단지 손으로 졸린 것이 아닌 듯한 상흔이 발견 되었고, 머리의 상처도 둔.기에 맞은 상흔 이었습니다. 사진 첨부합니다.

계획적 교살 미수과 이를 은.폐하기 위해

자 살로 위장하려던 사회생활에서는 양반인 척 하는 사람들의 이중적 모습입니다.

제 큰남동생은 경북도청과 충청도청이 해당 지역으로 유치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등 국가적인 일에도 앞장을 서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지 국가고위직 공무원 부터 친한 동기들이 있는 법무부부터, 안동 지역의 인맥 등 대단한가봅니다.

 

분명 2010년 10월 2일 쯤 정신이 들어 도산 지구대로 사건 현황을 물었습니다. 9월 30일 당시 미처 못한 말이 있어서 도 .산 지구대로 전화를 거니 경관이

 

"사법 당국이 다 알아서 할테니 치료나 받아라"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법 당국이 한 것이 지금까지 무엇입니까?

사법당국은 얼마나 바쁘시길래,

사건번호도 접수된 사건 피해자에게 5일이 지나도록 전화 한 통

못한 겁니까?

죽을 뻔 했습니다.

정말 자칫 한 발만 늦었으며, 저는 살해당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사법당국이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구대로

전화를 거니, 다른 경관이 사건이 안 동 경찰서 강.력1팀으로 이송되었으며, 사건번호가 전산상으로 확인되니 안동경찰서 강력1팀으로 연락해 보라며 연락처를 알려주었습니다.

 

 분명 10월 2일 사건번호까지 나왔는데, 10월 5일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국민권익위원회의 직원이 확인 전화하니 사건이 이송되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시간 후 담당 이 모 형사

에게 연락이 와서는 하는 말이 "바빠서.."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댔습니다 .

 

바쁘면 넘어온 사건이 넘어오지 않는 게 됩니까?

정말 사람을 병신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분명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4명인데, 친부만 조사하겠다고 하고, 경찰 조사 진술일을 수일내로 하자 하면서 어디 병원에 있냐고 물었습니다. 병원을 알려줄 수 없다 하자, 갑자기 진술 조사일을 2주 뒤로 하자고 제 멋대로입니다.

 

제 목의 상흔과 머리의 상흔은 둔.기로 맞은 게 분명합니다. 경찰은 현장에 출동해 사진과 피해 사진을 찍었으나 현장 조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보건소에서 오래 근무한 은 모씨는 제가 기절했을 당시 링겔줄이나 헬스 기구 등을  친부나 남동생들에게 건넸을 가능성이 있고, 친부가 목을 양손으로 조르고 있었음으로 갑자기 제가 정신을 잃었다면, 3명 중 한 명이 둔기로

제 머리를 내려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랬다면 보건소 내의 헬스 기구나 의료 기구에 제 상피 세포가 묻어있을 가능성이 높고,

범행도구를 확보하는 등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음에도 5일이 지난 10월 5일에나 국민권익위원회의 전화를 받고 제게 연락을 한 것이 처음이었던 경찰. 

 

분명히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짜증투성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가족들에게 왕따는 아니었습니다. 한동안 잘 살 때에는 4형제가 제게 왕래도 했으나, 그 때마다 친부와 계모는 형제들에게 이간질을 해 싸움을 만들었고, 제가 형편이 어려워지고 출가 하자 계모는 저를 '악 .의 .축' 취급을 하며, 왕래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20살 때,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죽어가는 고3학생을 응급실에 데려가  수 혈을 해 주어 그 친구를 살렸습니다. 그 때 부산에서 시민상을 주려 하였는데, 그게 뭐가 중요한 가 싶어 받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병원비가 없는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있는 사람에게 수술 보증비를 대어 주어 그 사람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살면서 비록 떼꺼리가 없어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가사 도우미, 베이비 시터, 폐지줍기 등을 하면서도 생계를 이어나갔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려 하고

다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정만 있을 뿐인 사람입니다.

 

또다시 권력을 남용하는 이들에게 이번에도 당하기는 싫습니다.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있고, 지금도 신 .경 .정.신.과 치료를 몇 년 전부터 계속 받고 있습니다.

 

  결혼 후 계속 아내를 폭 .행하면서도 장인에게는 육하원칙에 맞춰 자신에게 이롭게 이야기 하여 매번 미꾸라지 처럼 빠져나가던 전 남편은 역시 이혼전부터 몰래 여자를 숨겨 놓고,

이혼 후에 저의 큰 딸을 새여자를 이용하여 상 .해 (?)로 전국에 수 .배해 놓고 유.치.장에 가두었습니다.

 

제 딸은 사건 당시 28살이었습니다. 딸을 아는 많은 지인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수백명이

탄.원.서를 써주었고, 판사의 선처로 친딸을 구속시키려던 아버지로부터 그나마 구제해주었습니다.

 

전 여기에 제 인생을 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추후 필요하다면 더욱 밝히겠습니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주변인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어도, 제가 목을 졸.린 상처를 사진으로 보여 주어도

직접 보면서도 

친부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디 많은 추천을 해 주어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기사화 되도록..

전에 부친에게 폭 .행당했을 때 영 .남 .권 신문기자에게 제보했으나 어떠한 반응도 없고, 기사 한 줄 못 써졌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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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5일 후인 2012년 10월 5일에야 찍은 상흔들.

 

 

사진으로 올리기에는 민망한 부위에도 많은 상흔이 있었습니다.  

 

제가 남동생으로부터 잔인하게 폭행 당한 날은 법원의 승소 결정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2010년 9월 저는 동생에게 인감을 건네 주었고, 쥐새끼같이 소송을 했었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은 채 소송 취하서를 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을 2011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사간 집주소로 법원의 통지서들이 날아가게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2010년 10월 3일 친딸 폭 .행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고작 받은 형 .량.

폭.행 사건 판결 선.고에 1년여 가까이 걸림. 2011년 8월 23일

 

 

 

 

 

 

2012년 3월 중순, 제가 어머니 산소 정리를 하며 나무 정리를 한 것을 친부가 "사유 재산 침해"로 고소했고, 이에 제 딸이 분하고, 어떻게는 풀어야 겠다면서 보낸 내용 증명, 내용 증명을 준비하며 그동안 맞은 입퇴원 기록, 진단서/ 그 과정에서 남동생이 몰래 걸어 놓은 소송에 대한 재판기록을 처음 저도 보게 되었고, 큰딸과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용증명의 분량을 봐주십시오...내용 증명이 아닌

소송 자료 같습니다.

 

 

2012년 구정 전 전날, 큰남동생,막내남동생,삼촌으로부터 집단구타 당했으나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무혐의로 풀어준 검찰과 편파 수사한 경찰.

 

 한 통속이 된 여동생들까지...

 

2010년 10월 친부로부터 폭행 당한 후

대인기피증,

폐소공포증 생김.

 

 

손수 그렸습니다. 미비한 점 양해 부탁드리며..()

눈을 떴을 당시 한 발이 끼어 있어서 천신만고 끝에 도망 갈 수 있었음..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대낮에 안동시 녹전면 보건소 내에서 당직자 은 모씨는 교살 공모 및 폭행에 가담했음에도 지금 어떤 조처도 취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국민의 혈세로 월급을 주어야 합니까? 당장 파면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친딸을 여러 차례 살해하려한 전직 공무원,

 

 친누나를 폭행하고, 재산에 눈이 멀어 살해 당하고 있는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만 하고 있는 충남 홍성 00전문대 복지행정과 교수 김모씨에게 배우는 학생들이 불쌍합니다! 제발 실체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뭘 가르치고, 배우는 지???

 

  그리고 친누나를 여러번 폭.행하면서, 자신을 업어 키운 누나에게 "미X년, 정신 또 라이, 씨 팔" 등의 욕을 하는 법무 법인 OOOO에 다니는 김모씨가 법조계에 한 발이라도 들이고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비극입니다.

 

한 통속이 되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여동생들까지..

조카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자랄까요?

 

한 가문을 몰락에 이르게 한 이간질과 간괴함을 갖춘

추석 당직일에 보건소 내에서 살 인을 공모한

녹 전 면 보 건 소

은 모씨는 당장 파 .면 돼야 합니다!!

 

이번에도 사건 수사에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도 제가 단순히 손에 의해 목 졸린 자국 같습니까?

머리에 단 상흔에는 미끄러운 바닥밖에 없었던 곳에서 부딪힌 자국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상흔에 왜 빗금자국이 있겠습니까 그것도 선명히.

 

대낮 관공서 안 추석날, 교 살 미수에 그친 사건 국민 여러분이

아셨으면 합니다. 저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이번에도 저 혼자 모든 것을 대항하기에는 너무 힘듭니다.

 

제가 이렇게 따돌림 당하는 저편에는

안동 0씨 가문에 시집와 억울하게 죽은 며느리 2명과

지금도 죽지 못해 아들들만 바라보며, 무서워서 찍소리도 못하고 맞고 사는 며느리가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양반의 체면과 권위를 위해 검은 장막을 치고 있는

가문의 남자들의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검은 장막에 장단 맞춰주는 사법 당국이 있습니다.

 

저는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그 검은 장막을 걷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누명을 벗겨 드리고자 수십년전부터

발버둥 쳤지만,

너~무 잘나신 남동생들과 친부, 계모와 잘 살고 있는 4명의 형제들의 암묵적 동의에 의해 철저히 강아지보다 못한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취급을 받아도 참고 견디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목숨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

 

계모는 저의 할아버지께서 마지막에 돌아가실 즈음에는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아 굶겨 죽게 만든 거나 마찬가지로.. 노인을 학 .대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무슨 보건 복지를 하겠다는 것인지..

세상에 쓰 레 기 같은 공무원들이 있는 줄 알았지만,

 

제 집안에 있는 쓰.레.기 부터 치우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입니다.

 

저는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지금도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여자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시급합니다. 사투를 벌이는 것입니다.

大를 위해 小를 희생하는 처절한 심정으로..

 

저는 골 속이 흔들리고 울렁거리고, 속이 메쓱거립니다. 온 몸이 아파 옆 환자가 몸 좀 보자 하여 벗어 보니 5일이 지난 다음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의식을 잃었을 때 얼마나 구타한 건지 온 몸이 멍투성이었습니다.

누군가 잠입해 와 그쪽 사람들이 산 사람이 저를 암 살할 것 같습니다.

두렵습니다.

 

그리고 화합을 해도 모자라는 판에 이 모든 일들에

간괴하게 이간질 하고 조종하는 이가 바로

이번 살인 미수 사건의 주동자인

안동시 보건소 계장으로 있는 은 모씨입니다.

올해 7월에 있었던 경북지역 

승진 인사는 정말 공정했던 걸까요?

 

그렇지만, ... 버티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두서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스트로 ... 되어 기사화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사회에 조금 더 공헌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더러운 권력에 찌든 사.법.부만을 믿지 않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좀 도와 주십시오.. 그리고 승려로써 다소 격한 언어가 사용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도 사람이다 보니, 글을 쓰다 보니, 감정이 ... 격해

지게 되었네요 _()_

 

제발...

제발...

제발... 도와 주십시오... 여. 러.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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