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적은 게 너였으면 해.
친구 녀석이 얼마 전에 마치 내 이야기 같은 글이 이 곳에 올라왔다며 우스갯소리를 하더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이야기가 적혀있다는 그 글을 찾고 또 찾았어.
그리고 이렇게 찾았다.
혹시 네가 적은 게 아니더라도, 우리와 비슷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도,
난 그냥 이 곳에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을까 해.
아니다. 너도 언젠가는 수많은 글들 속에 파묻혀 있을, 이 글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남긴다.
나는 네가 이런 고민을 하는지 몰랐어.
네가 이런 고민을 하는지 알 겨를도 없었어.
그저 너만, 네가 처해있는 상황이 아니라 그저 너만 좋아했으니까.
난,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부시시 퍼지는 네 머리카락도 좋았고,
내 손바닥보다 작은 얼굴 속에서 환히 퍼지는 네 미소도 좋았고,
한 마디 한 마디 귓가를 스쳐지나가는 네 목소리도 좋았어.
입을 다물어도 입김이 새어나올 정도로 날이 차가워도 너와 길을 걸으면
언제나 마음 한 켠이 따뜻했고, 벤치에 가만히 앉아 너를 기다리는 시간도 마냥 즐거웠어.
그렇게 나는 그저 네가 좋았고, 너와 함께 공유하는 시간들이 좋았어.
그런데 왜 바보같이 내가 네가 아닌, 네 주변을 볼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왜 그로 인해 내가 불행해 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네 어깨에 올려진 짐이 무겁다는 걸 알아.
그래서 그 짐을 내 어깨에도 나눠들고 싶어. 그러면 우리는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서로 힘이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시간만큼 행복해지는 거야.
징그럽다고 말을 남기고 네가 돌아섰을 때, 이제는 너를 정말 놓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네가 써 준 편지와 엽서,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모두 태워버렸다.
네 연락처도, 너와 관련된 모든 연락처도 지워버렸다.
네 예전 번호는 잊고 싶어도, 지금까지 기억이 나는데 새 번호는 모르겠네.
또 상처 받을까봐 이번에는 외우지를 못 했나보다. 외월둘 걸.
혹시 네가 이 글을 본다면, 꼭 연락 해 줘.
내 연락처는 10년 넘게 바뀐 적 없는 거 알지.
제발 네가 보아줬으면 한다.....
안녕하세요. 26살 평범한 여자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생 아이디를 빌려 글을 적습니다. 글이 꽤
길어질 듯 해요. 철 없고, 이기적인 한 사람의 넋두리를 들어주신다 생각해 주세요. 제가 할 이야기는 저로
인해 무수히 상처 받고, 아파할 '그'에 대한 거랍니다.
#1. 그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었어요. 제가 다니던 학교는 남녀 공학이었고, 친목도모를
표방하는 동아리도 꽤 있었습니다. 같은 동아리 회원이었는 그는 3학년.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교외
산으로 떠난 여름 MT에서 였어요. 평소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저는 헉헉 거리며 겨우겨우 산을 오르
로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그는 앞에서 끌어주고, 짐도 들어 주고, 차가운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얼굴도
닦아주며 산에 오르는 내내 챙겨주었답니다.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연인이 되었구요.
#2. 그렇게 인연을 쌓아갔습니다. 그는 대학생이,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도. 반복되는 수험생활
과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예민해졌던 탓이었을까요? 저는 온갖 짜증을 그에게 부려댔습니다. 다 그 사람
때문이라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피웠지요.
그러던 어느 날, 9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들고, 시름에 빠져 있는 저에게 걸려 온 그의 전화. 어김없이
그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한숨을 푹 쉬며 그는, "그럼 오빠가 수능 볼 때까지 연락하지 말까?", 이러더군
요. 참 못났었어요, 그 때 저는. 그 말이 못내 서운해, '아니, 그냥 보지말자, 앞으로.' 이렇게 대답해 버렸
습니다. 그 날 이후로 그에게서 연락이 왔지만, 저는 모질게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저에
게서 잊혀졌지요.
#3. 수능이 끝나고, 눈이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참, 저는 어렸을 적에 부모님께서 사고로 돌아가시고, 남동
생과 할머니댁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랬던지라. 비싼 등록금 걱정에 공부하고 싶었던 학과가 아니라
취직 잘 된다는 학과에 원서를 집어넣고 터벅터벅 집에 돌아오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가 집 앞에 서있었어요. 어깨에 걸쳐 맨 가방과 머리에는 소복하게 눈이 쌓인채로. 저를 보더니
씽긋 웃으며, 이제 오냐고, 어디 들어가 있으면 네가 그 때 집에 올까봐 어디 가지도 못 하고 마냥 기다렸
다고, 연락 없이 와서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더군요.
그 때는 다 싫었습니다. 고아라는 신분도, 가난도, 자꾸만 저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런 초라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꼴이 우습게 느껴져 등을 돌린 채로 집
에 들어가려 했어요. 그는 제 어깨를 잡으며, 왜 그러냐고, 물었어요. 저는 차갑게 한 마디 말을 남기고 집
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당신이 싫어." 라고.
다음날 아침, 대문 앞에는 꽃다발 하나와, 추위에 잔뜩 곱았을 손으로 삐뚤빼뚤 적어내린 '사랑한다'는 포
스트잇 하나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4. 이후로 7년이 흘렀습니다. 얼마 전 제 생일이었는데, 친한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했지요. 친구는 생일
선물이라며 선물을 내밀었습니다. 선물은 재작년, 작년과 똑같이 2개. 우스갯소리로 "너는 돈을 얼마나 많
이 벌어서 선물이 매번 두 개야?"라고 묻자, 친구는 그렇지 않아도 오늘 말하려 했다며 이야기를 시작하더
군요.
그가 친구에게 선물을 전해달라 부탁했다네요. 자기 선물이라고 밝히면 제가 절대 받지 않을 거고, 제가
그를 모두 잊었을텐데 괜히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으니, 친구가 하는 선물이라고 말해달라며 부탁했다네
요. 친구는 저에게, "네가 선택할 문제지. 연락을 하든, 그냥 이렇게 살든." 이렇게 말하며 그의 연락처를
던져줬어요. 저는 그가 어떻게 살아왔을지 궁금한 마음에 연락을 했습니다. 이제 다 괜찮겠지라고 생각하
며.
#5. 다시 만난 그는 하나도 변한 게 없더군요. 180이 넘는 훤칠한 키에, 베시시 짓는 눈웃음. 어색할 줄 알
았던 만남은 재치있는 그의 입담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남자친구 있
어?" 물었어요. 저는, "아니, 아직. 그러는 오빠는?".
그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렇고, 지금까지 없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난스레 "말
도 안 돼. 어떻게 남자가 그래?" 되물었습니다. 그는 주말마다 제 생각이 나면 야구를 했는데, 야구라는
게 주말마다 시합이 있어서 여자 만날 시간이 없다고 대답하더군요. 그리고는 사진을 보여주며 으쓱하더
라구요.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다들 1, 21, 이렇게 작은 숫자인데 그만 감독님들처럼 92번. 제
가, "야구를 못 해서 감독님 번호달고 감독하고 있구나?" 장난을 쳤더니, 그가 제 머리를 쥐어박으며 한 마
디 했습니다. "ㅇㅇ이 바보 다 됐네, 어떻게 자기 생일을 까먹어. 9월 2일. 네 생일이잖아, 녀석아."
하아, 그 때는 가슴이 참 먹먹해 지더라구요. 이 남자, 그 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마음에.
#6. 가끔 연락을 주고 받고, 몇 번 식사도 같이 했습니다. 영화도 보고. 그리고 어제, 산책을 하며 그는 말
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년동안 저를 잊으려 애쓰고, 무덤덤해지려 애썼다고. 그치만 잘 안 되더라고. 가끔 제가 나오는
꿈을 꾸면 식은땀을 흘리며, '아, 또 악몽이구나' 생각했었는데, 다시 저를 보게 된 걸 보니 그건 악몽이 아
니라 데자뷰였나보다고. 다시 만나달라고.
저는 이기적이고 멍청한 여자입니다. 그 순간, 그는 소아과 의사, 넉넉한 집안 살림과 매력적인 외모. 그
에 비해 난 작은 회사의 계약직 직원, 고아, 여전히 고등학생인 어린 동생, 갚지 못한 학자금 빚. 불 보듯
뻔하게 그와 제가 불행해지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가시 돋힌 말을 해벼리고는
도망쳤습니다.
"징그럽다고, 지난 세월동안 오빠가 한 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고, 그만 두라고 이제,"
#7. 긴 넋두리를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여기까지가 그와 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 사람은 또 저로 인해
상처를 받고 말았네요. 너무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가슴이 아픕니다. 오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 잊고, 행복해져야해 부디...
저는 이기적이고, 멍청한 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