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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도 있었습니다..

좋은날 |2012.11.21 21:58
조회 614 |추천 2

15일 밤 12시 15분, 조용하던 휴대폰이 울렸다.

"누나, 아버지 돌아가셨어." 라는 짧은 한마디에 숨이 멎었다.

순간 방문을 닫고 입을 막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죽을 만큼 아픈데 큰 소리로 울 수 없는 상황이 내 심장을 무겁게 짓눌렀다. 저녁까지만 해도 괜찮아서 마음 준비를 하지 않았던 터라 슬픔이 봇물처럼 터졌다.

이틀 전 애기아빠와 함께 아버지를 뵌 것이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날, 우리부부는 아버지 옷을 갈아입히고 손톱 발톱을 단정하게 깎아드렸다. 물수건으로 얼굴과 몸을 닦아 드리며 희미하게나마 눈을 맞추며 서로의 정을 느꼈었다.

맑고 편안한 천사의 얼굴로 주무시다 떠나셨으니 너무 슬퍼말라는 남동생 말이 귓전에서 모기처럼 윙윙거렸다. 한없이 자상하고 똑똑하셨던 여든 셋의 내 아부지는 이렇게 사랑하는 우리와 긴 이별을 고했다.

 

11월 18일, 딸아이 수능날이자 아부지 장례일이다. 딸아이 3년간의 노력을 안전하게 저장해 놓은 압축파일을 열어야 하는 중요한 날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준비하고 서둘러 수능 고사장에 태워다 주었다. 모의고사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오는데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나마 눈물을 맘껏 흘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알리기에 딸아이는 너무 여렸다. 더욱이 수능일에 혼란을 줄까 염려되어 가족 합의하에 딸아이에게는 비밀에 부쳤다. 아부지도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셨으니 충분히 이해할 거라 믿었다.

 

오늘은 아버지가 아주 멀리로 떠나시는 날이다. 그럼에도 난 아부지 마지막 배웅조차 못한 배은망덕한 딸이 돼야 했다. 말 못하는 아픔은 거대한 산처럼 나를 지배했고 참을 수 없는 슬픔에 나는 꺼이꺼이 울었다. 아부지와 이별의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아부지 얼굴을 보며 사랑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다. 딸도 아니라는 자괴감에 수없이 자책했다. 내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들과 남편은 내 몫까지 아버지 가시는 길을 잘 모시겠다며 위로했다. 작은 위안이 되었지만 그것이 죄책감을 씻어주진 못했다. 오전 8시 반의 입관과 10시에 시작된 화장은 참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다. 뼈마디가 목았다. 연실 시계만 바라봤다. 자식노릇 못하는 내 자신이 이날처럼 밉고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엇다. 이렇게 뼈아프게 아부지를 보내고 한편으론 딸을 응원하며 고단한 저녁을 맞았다.

 

수능을 마치고 교문을 나오는 딸아이 얼굴이 환하다. 이미 언론에서는 작년보다 난이도가 높아 가채점 1등급 예상점수가 하락했다며 설레발쳤다. 딸을 믿지만 워낙 어려웠다니 딸아이 얼굴 보기가 살짝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구름처럼 몰려든 학부모들 사이에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고단한 남편과 내가 있었다. 딸을 먼저 발견한 남편이 딸을 꼭 안았다. "수고했다. 우리 딸." 이 말을 하는 남편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 부부는 딸아이를 한번씩 더 꼭 안아 주었다. 수능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딸아이 얼굴에 핀 엷은 미소가 시험을 잘 치렀다는 대답이다.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는 목욕을 하고 세상에서 제일 깊은 단잠에 빠졌다. 그동안 자지 못한 잠에 복수라도 하듯이... 우리는 이날도 할아버지의 슬픈 소식을 말하지 않았다.

다음 날, 수능이 끝난 아이를 픽업하여 돌아오는 차안에서 할아버지가 먼 세상으로 가셨고 어제가 장례식이었다는 걸 말해 주었다. 뒷자리에 앉아 흐느껴 우는 딸아이 손으로 화장지가 겹겹이 쌓여갔다.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뚝뚝 떨구는 딸아이를 묵묵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위로의 말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20일은 아부지 삼우제다. 아침 일찍 딸을 데리고 할아버지를 뵈러 출발했다. 운전을 하는 나도 딸아이도 별 말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둘 사이를 오갔다. 언덕아래 납골당에 들어서자 아부지 얼굴이 오버랩 되어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부지 영정사진을 보니 미치도록 서러웠다. 제사를 모시고 돌아 나오는데 딸아이가 나를 안고 서글피 울었다. 딸아이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한줌의 재가 된 아부지를 외롭게 혼자 두고 돌아서려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사진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그렇게 또 울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생선을 굽다가도 눈물을 쏟는다. 전국 각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찾아자 지혜와 재치를 겨루는 골든벨이란 퀴즈 프로는 아버지가 생전에 제일 좋아하던 프로다. 단 한 주도 거르지 않던 열혈시청이었다. 그 프로를 보자 아버지 생각에 또 눈물이 쏟아졌다. 하여 난 골든벨을 보지 않는다.

잠을 자다가도 울고 어떤 상황에 정지되어 또 울고... 나의 하루는 이렇게 눈물을 자아내기 일쑤다. 아부지 생각만하면 자동분사기처럼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아직도 나에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과 추억을 미소로 희석시키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한은희 저서, 이런 날도 있었습니다 中에서...

 

 

 

친구에게 책한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한은희 작가님의 이런 날도 있었습니다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아버지 생각이나서 가슴이 먹먹해져 작가님처럼 한참을 울었습니다. 우리 나이에 아버지라는 단어는 항상 그런 것 같습니다. 그냥 너무 좋은 글이기에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이렇게 올려봤습니다. 모두들 공감되지 않으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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