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고견을 구합니다.
오늘 3년 반을 사귄 또 서로간에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와 이별을 했습니다.
그녀와는 2009년 7월에 제가 한참 직장을 구할 시기에 만나 사랑을 키워왔었고, 구직활동기간 아무것도 보잘것 없었던 저에게 사랑과 신뢰를 과분하리만큼 많이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과 저는 같은 동향 출신으로 양가 부모님께서도 서로 고향 선후배 사이로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젊었을 시절 저희 집은 그 동네에서 가장 가난하였으며, 이미 작고하신 큰아버지 두 분의 행실은 바른 사람과는 거리가 먼 술과 크고작은 싸움마다 안끼는 곳이 없었던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동네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으셨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그 동네에서 저희 집안은 가난하고 근본없는 그런 취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젊으셨을 때는 술을 많이 하셨었고, 크고 작은 싸움에 휘말리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술과 담배를 전혀 입에 대시지 않으시고요.
반면, 그 사람의 집은 저희 집안과는 다르게 유교사상 아래에서 "문제"에는 휘말리지 않는 행실 바른 집안이었고, 어느정도 재력도 있는 집안입니다.
연애초기 저는 서울에 직장을 얻어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직장을 얻고 그녀에게 제일 먼저 얘기했던 것은 "나, 언제 자기네 집에 인사가?" 였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라는 말만 반복하였고 답답했던 저는 그 이유에 대해서 알고싶어졌으며, 그 이유가 그 사람의 집에서 저희 집을 좋지 않게 보기 때문에 그 사람의 부모님께서 우리의 사이를 반대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부모님께서 저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하실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녀는 그녀의 부모님과 저의 만남에 대해서 주저하였고, 전 답답해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의 집에 어제까지 4번을 찾아갔으며, 어머니는 4번, 아버지는 2번을 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동네결혼 싫다."를 반복하시며 그녀와 저의 만남을 반대 하셨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탐탁해 하시지 않은 표정으로 "내 성질 알잖아. 너희들도 성인이니 너희들이 알아서 판단해라"는 말씀을 하셨고요.
저희 부모님은 저와 제 누나가 어렸을때, 정말 어려운 삶을 사셨습니다. 시골의 할머니 집에 맡겨져서 자랐던 기억도 있고, 네 가족이 아버지가 다니시던 공장 한켠의 쪽방에서 꽤 오랫동안 살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 당시 단 돈 500원이 없어서 누나와 점심을 굶었던 기억도 있고, 어머니께서는 부엌 한켠에서 불어터진 국수로 점심을 해결하는 모습을 봤던 기억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이런 가난을 저희에게 물려주시기 싫으셔서 없는 살림이었지만 읽을 책도 사주시고 형편이 되시는 대로 학원도 가끔 보내주셨고요. 이렇게 어렵게 저와 제 누나를 키우셨기에 정말 당신들 자식들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신 분들이십니다. 이런 사랑의 결과 전 운이 좋게도 나름 인정받는 회사의 해외영업 부서에 입사할 수 있었고, 누나는 외국 사람과 결혼해 현재 미국에서 디자인 관련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 당신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받았던 손가락질을 더 이상 받지 않게 저와 제 누나 정말 잘 컸습니다.
옛날의 저희 집안의 과거가 더 이상 욕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희 집이 그 옛날의 손가락질 받던 그 시절하고는 정말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께서는 지금 저희 집의 모습보다는 과거의 저희 집안 내력에 보다 더 많은 비중을 두셨습니다. 인사를 하러 갈 때면 "동네결혼 싫다" 라는 말씀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그 내면은 "너네 집안이 싫다"
였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시간이 지나갈 수록 그 사람과 저의 "결혼"에 대해 물어오셨고, 전 직접적인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들도 아셨겠지요. 당신들의 과거를 그 사람의 부모님이 아시기에 반대할 수 있다는 것을요. 정말 말할 수 없이 죄송했습니다. 잘 키워 주셨는데, 정말 잘 키워주셨는데...왜 당신들께서 이 못난 아들 때문에 또 그런 수모를 겪으셔야 하는지...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그 사람 부모님에게 물질적인 것으로나마 환심을 사고싶어 처음 여자친구에게 비싼 것은 아니지만 이것 저것 챙겨서 들려 보내기도 했고...찾아 뵐 때마다 조그마한 선물을 사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받으시기는 하셨지만 그 분들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고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그 사람도 부모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저 모르게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집에서 2년 동안 저 때문에 미운털도 많이 박히고, 어머니께 머리채를 잡히기도 했었다는 군요. 미안했습니다. 이 못난 남자 만나서 그런 고생을 했었다는게요.
어제, 제가 사고를 쳤습니다. 그녀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제 속얘기 다 했습니다. 절 왜 싫어하시는지도, 그렇지만 저희 집안이 지금은 그렇지 않고, 저 또한 반듯하게 정말 잘 자랐노라고. 그 사람 부모님이 그토록 무시하시던 우리 집안 어른들, 그리고 저의 부모님 덕에 저 정말 잘 자랐노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부모님께 단도직입적으로 여쭈었습니다. "제가 싫으신가요?" 라고요. 그녀의 아버지 께서는 "싫다고 하면 이제 그만 그녀를 놓아주겠는가?" 라고 물으셨고 전"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싫네"라고 하셨고, 전 그 자리에서 "그 동안 폐가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짧게 대답하고 그 자리를 나왔습니다. 무례 했던거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부모님의 자존심을 이 못난 아들이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지켜드리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녀가 따라 나와서 울면서 사정하더군요...다시 들어가서 싹싹 빌면 안되겠냐고...싫다고 했습니다.
전 옆에 서 있기만 하면 그녀가 무릎꿇고 빌겠다고 하더군요...마음 한구석이 짠했습니다. 이 못난 남자 정말 사랑해 주는 사람인데, 저도 그녀를 사랑하는데...아프게 하기 싫은데...울게 하기 싫은데...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제가 숙이고 자존심 꺾고 무릎꿇으며 빌어볼까도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그 사람의 부모님께서 제 자신을 인정 못하시는 이유가 제 집안때문이라고 하시니, 제가 무릎꿇고 빌면...마치 제 부모님을 욕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의 행동과 판단이 지나친 비약과 편견, 아집에서 비롯된 잘못된 선택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