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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따이고 왕따였다.-1-

지옥같은내... |2013.01.15 10:11
조회 433 |추천 2

이애기는 거짓하나없이 진실이며 23살 여자지만 아직도 난 과거속에서 빠져나오지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내자신의 일을 애기할까한다. 그냥 누가보든 안보든 상관없다.

 욕을해도 좋고 무슨말을 해도 좋다.

그냥 내애기를 들어만 줬음 좋겠다. 이렇게 끙끙 앓고 있다가 정말 무슨짓이라도 할지 몰라서 미쳐버릴꺼같아서. 이젠 이 지긋지긋한 과거안에서 나오고싶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

 

 

 

초등학교2학년 되기전만 해도 나는 다른 애들과 다를바없이 밝고 활발했던 아이였다.

정말 행복했었다. 애들과 웃고 떠들고 놀고 그냥 마냥 좋았던거 같다. 그때가.

일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터져버렸다. 나는 아빠를 많이 좋아하고 엄마보다 더 많이 따랐었다. 외식을 하러가면 언제나 엄마보다 아빠손을 잡고 헤헤거리면서 갔다. 무뚝뚝한 아빠였지만 나는 좋았다. 그일이 터지기전까지는.

내머리는 무척 많이 길었다. 엄마가 학교가기전 매일 아침마다 머리도 따주고 머리도 이쁘게 묶어주곤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아빠가 미용실에 간다고 했다. 나는 아빠와 가고싶어서 미용실을 따라간다고 했다. 그때일이 아직도 내기억에서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대체 왜 따라간다고했었을까? 따라가지만 않았어도 그런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텐데. 후회하고 후회한다.

아빠손을 잡고 미용실을 갔는데 아빠가 나를 보며 머리가 너무 길다며 머리를 자르자고 부추겼다.

 내딴에는 아빠한테 이쁨받고 싶어서 알았다고 했던거 같았다. 그냥 조금만 자를줄 알았는데. 아빠가 미용실아주머니에게 커트로 잘라달라고 했다.

 난 그말이 무슨말인지도 몰랐다. 갑자기 내머리가 귀까지 싹둑 짤리더니 머리카락이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내머리는 남자애들보다 더 짧은머리가 되어버렸다. 다자르고 난뒤에 나는 울어버렸다.

머리가 이게 뭐냐고. 엉엉 울었다. 아빠와 미용실아주머니는 시원하게 보기좋지않냐고 나를 다독였다.

울면서 집에 갔는데 엄마가 나를 보더니 애 머리를 왜 이딴식으로 잘라놨냐고 아빠에게 화를 냈다.

아빠는 별거아니라는 듯 머리감기도 좋고 얼마나 이게 좋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 다음날 일이 터져버렸다.

학교에 들어가서 교실문은 열었는데 애들표정이 예전에 날보던 표정이 아니였다. 내머리를 보더니 하하하 웃으면서 놀려대기 시작했다.

 

 

 

“야,재머리봐봐 남자야 남자ㅋㅋ”

“완전웃겨” “아 나 재랑 놀기 싫어ㅋㅋㅋㅋ”

 

 

 

 

 

 

내옆에 오더니 다들 웃으면서 한마디씩 놀려댔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펑펑 울었다.

어떻게 해야될지를 몰랐다. 다른반에도 소문이 퍼져서 우리반으로 내머리를 구경하러 왔다.

고작 머리 남자같이 잘랐단 이유하나로. 계속 울었던거같다. 선생님이 오시기전까지.

나는 애들의 손가락질과 비웃음과 듣기 싫은 말들을 다 들어야했다. 선생님이 와서 소란을 진정시키긴 하셨지만 난 그 순간부터 왕따가 되었다.

같이 놀던 친구들에게 다가가갔다.

 그러자 하는말이

“나 너랑 안놀래 놀기싫어”

“꺼져”

“재수없어” “너혼자서 놀아”

“우리한테 오지마 이제부터 너랑은 안놀아”

 

 

 

 

 

충격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밥도 먹고 같이 놀기도 하고 한 친구들이 등을 돌렸다.

결국 난 혼자가 되버렸다. 말을 걸기라도 하면 무슨 드러운 벌레 보듯이 나를 보았다.

용기를 내서 같이 밥먹어도 되? 라고 물어봤다.

친구들은 킥킥 웃으면서 우린 남자애랑 밥먹기싫거든? 저기남자애들이랑 같이먹어 라며 비아냥거렸다.

그걸본 애들도 전부다 날보며 비웃었다. 손발이 덜덜덜 떨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하루가 지나면 달라지겠지 또 하루가 지나면 달라지겠지,

 하지만 달라지는건 없었다. 내가 왕따라는걸 완벽한 왕따가 됐다는걸 알게만 될뿐.

 

 

 

 

그 사건이후로 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밝고 활발했던 내가 소극적이고 말이 없어진 꿀벙어리가 되었다. 아빠가 미워서 다 아빠탓인거 같아서 아빠와 말도 하지않았다. 집에 오면 멍하니 앉아서 티비를 보거나 방에 틀어박혀 있는게 전부가 됐다.

 

학교에 내소문이 퍼져서 아무도 나와는 놀아주지 않았다.

 1년 2년이 지나도 난 벗어나지못했다. 그냥 학교에서 아무말없이 고개를 푹숙이고 앉아있다가 집에 오는게 일상이 되버렸다. 그렇게 4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난 왕따였었고. 이 생활이 지긋지긋하다 못해 토가 나왔다. 더 이상 이렇게 있기가 싫었다.

노력을 해봤지만 달라지는건 없었다. 그무렵에 세이클럽이라는게 유명해지기 시작했었다.

일명 캐릭터 옷을 사는게 유행이었였다.

나는 돈으로 애들과 친해질려고했다. “캐릭터옷선물해줄까?” “꾸미는거선물해줄까?” 그러자 애들이 나한테 관심을 보이며 그럼 선물해달라고 말을 걸어와줬다. 처음이였다.

언제나 나를 볼 때 나에게 애기를 할때는 기분 나쁘듯 똥씹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던 애들이 처음으로 선한 얼굴로 나에게 관심을 보여줬다. 기뻤다.

나한테 선물받기 위해서 가식으로 하는걸 알면서도 나는 바보같이 기뻤다. 결국 난 선물을 해주기 시작했고 매달 전화비는 20만원 가까이 나왔다.

청구서가 날라온걸 본 엄마는 날 미친 듯이 혼내고 때렸다. 대체 어디다가 쓰길래 그러냐고 다시는 이런짓하지말라고 말했다. 나는 맞으면서도 혼나면서도 그일을 멈출수가 없었다.

적어도 선물을 하면 그땐 나에게 말을 걸어주니까.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니까.

그러나 애들은 점점 나에게 선물달라는 횟수가 많아지고 되려 나에게 안주면 화를 내고 협박을 했다.

대체 언제줄꺼냐. 정확히 말해라. 얼른 선물해줘라. 너맞는수가 있다. 지금 당장 선물 보내라. 등등 협박은 심해져갔다. 결국 난 무서워서 알았다고 했고 선물을 줄려고 했지만 한도초과가 되어버려서 더 이상 충전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미안해 애들아 충전이 안될거같아 한달만 기다려줘”

“미친 신발년아.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개같은년. 그럼 다음달에 5만원치 나줘라”

“그럼 난 6만원치 줘ㅋㅋㅋㅋㅋ”

“내가 더 많이 가질거야 나 7만원치 보내라 안보내면 뒤진다 썅년아 알았냐?”

 

 

자기들끼리 액수를 정하면서 킥킥킥거리는 애들.

저런애들이라도 나는 친구가 되고싶어서

용을 쓰며 발악을 하는 나. 내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해야되는걸까. 수십번 수천번 생각해봤지만 결론을 나지않았다.

결국 제자리.

 

 

한달후, 나는 또 선물을 줘야했고 결국 다시 한도초과가 되어서 선물을 못받은 애들한테

두들겨맞았다. 아아,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아마 죽어도 못 잊을거같다.

4교시 컴퓨터시간끝나고 난뒤 나는 컴퓨터실에서 맞았다.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내머리를 힘껏 때리고 발로 내다리를 수십번씩 찼다.

 

 

 

“이 개같은년. 이러니 친구가없지 시발년.”

“아신발, 다음달에 두배로 쳐서 줘 이 미친년아.”

 

 

내 얼굴을 가격하고 때려서 쓰고 있던 안경이 날아갔다.

 난 울기만 했던거같다.

저항도 하지 못했다. 맞으면서 생각했다. 나 대체 왜 이러고 살까. 한심하다. 드럽고 한심하다. 내인생. 드럽다. 참.

그냥 묵묵히 맞았다. 더 이상 이짓도 하기가 싫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렇게 해봤자 소용없다는걸. 다 쓰잘데기 없는 짓이라는걸. 내가 발버둥 쳐봐도 어차피 나는 왕따라는걸.

울면서 묵묵히 맞았다. 아팠다. 맞고있는 내몸보다 내마음이 더 아팠다. 내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희망이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

 

 

 

“이년봐 주둥아리에서 미안하단말도 안하네?”

“아신발,성기같네,”

 

 

 

내 반응이 재미가 없었던건지 애들은 얼마 안가 침을 뱉으면서 가버렸고, 나는 누가 볼세라 화장실안으로 들어가 드러워진 옷을 씻고 울어서 엉망이 된 내얼굴과, 맞아서 헝크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다른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쪽팔리고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꼴에 왕따가 자존심은 있었나보다. 꼴에..

 

 

다리와 팔에 멍이 심하게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런건 중요하지않았다. 엄마한테 들킬까봐 무서웠다. 내가 왕따라는 걸 알까봐 학교에서 맞고 다니는걸 알까봐 충격 받으실까봐 난 꼭꼭 숨겼다. 한동안 긴티 긴바지만 입고 다녔고, 무조건 화장실에 가서 몰래 옷을 갈아입었다.

다행히 엄마한테는 들키지 않았다. 아니, 들키기 싫었다.

내 이런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애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혼자 맴도는걸 보여주기 싫어서. 내가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엄마한테만큼은 이런꼴 보여주기 싫었던거 같았다.

엄마가 내생일인데 친구들이랑 가서 햄버거라도 사먹어 라고 돈을 주시면 나는 알겠다고 하며 집을 나왔다. 나와보니 갈때가 없었다. 생일인데. 그래도 내생일인데.

아무도 날 축복해주고 축하해주는 사람은 나한테 한명도 없었다. 집근처 놀이터에서 멍하니 울면서 앉아있다가 문구점에 가서 엄마한테 받은 돈으로 내 생일선물을 샀다.

친구들한테 선물받은 티를 내야하니까.

아무렇지않게 집에 가서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듯 기쁜 듯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친구들한테 선물받았어~”

 

 

내가 내자신한테 선물한건데. 나한테는 나한테 선물줄 친구따윈없는데.

받은 척 기쁜척. 연기를 했다.

 

 

엄마는 웃으면서 “ 우리딸 선물받으니까 기분이 그렇게 좋아? ㅎㅎ 다음번 생일에도 친구들이랑 맛있는거먹고 재밌게 놀다와 그땐 돈 더 많이 줄게”

 

 

싫었다. 내생일이 있다는게. 차라리 생일 같은거 없어져버렸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년 돌아오는 생일은 나한테는 축복이 아니라 지옥같을 테니까.

 

 

5학년,6학년 하루가 일년같은 시간이 지옥같은 시간이 그래도 흘러가긴 흘러가졌다.

애들이 벌레보듯 드러운거보듯 날 피하고 무시하고 날보며 욕을했지만 무덤덤해졌다.

 5년이라는 왕따생활이 이젠 익숙해져버린거 같았다.

6학년이 끝나가고 졸업할 무렵, 내자신은 더 무너져가고 있었다. 방학때무렵이였을거다.

 

갑자기 막먹기 시작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미친 듯이 쑤셔넣은거 같다.

분명 많이 먹었는대도 허기가 지고 자꾸 손이 갔다. 먹어도 포만감이 안 느껴졌다.

과자, 아이스크림, 치킨, 고기, 햄버거, 등등 그냥 매일 손에 잡히는대로 먹었다.

꾹꾹 눌러참고 참았던 스트레스를 먹는걸로 풀기 시작했다.

한달만에 나는 15킬로가 쪄버렸고 그렇게 찐 상태에서 초등학교 졸업을 했던거같다.

 

난 다짐했다. 중학교 가서는 절대로 왕따가 되지 않을꺼라고. 이 지긋지긋한 생활 다신 안할꺼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중학교입학을 했다.

 

내성적이고 말도 없던 벙어리인 내가 애써 밝은척 활발한척을 하며 새로 만난 애들한테 다다가 먼저 말을 걸었다. 떨렸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려서 터질거같았다.

 

애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받아주었다. 기뻤다. 나도 이제 친구가 생기는 구나. 생기겠구나.

결국 말을 하면서 친해진 난 어느 무리에 들어가서 친구들을 사귈수 있었다.

 

행복했다. 정말행복했다. 친구들이랑 같이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이런 사소한 생활들이

나한테 일어나니까. 꿈을 꾸고 있는거 같았다. 그때만큼은 나도 이제 바뀔수 있겠구나,

나도 사람답게 다른 애들처럼 살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까진.

내행복은 그리 얼마가지 못했다. 나와 같은 초등학교동창생들이 내친구들과 반에 와서

 

 

“야 니들 재가 누군지 알고 놀아? 쟤 초등학교때 유명한 왕따였어”

“니들은 저런애랑 놀고싶어? 똑같은 부류되는건데?”

“니들도 왕따되고싶구나?ㅋㅋㅋㅋㅋㅋ”

친구들은 저말을 듣고는 날 쳐다보니 날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야 재왕따였대, 그러면서 우리랑 놀려고 한거야?”

“그러게 아 드러워,”

 

 

 

결국 나는 다시 왕따가 됐다. 말을 걸어도 봤지만

 

 

“야 말걸지마, 왕따였던애랑 말걸기싫거든?”

“미안. 너랑 놀면 나도 왕따돼.”

 

 

 

아무도 나랑은 상대 해주지 않았다. 역시 소문이 퍼져서 나는 또 다시 외톨이 혼자가 되버렸다. 행복해질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하느님께 빌고 또 빌었다. 왜 하필 나냐고. 그 지긋지긋한 5년을 버티고 여기까지 힘겹게 왔는데. 왜 또 나한테 이러는거냐고. 나는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면 안되는거냐고.

내가 큰걸 바란것도 아니고. 그냥 남들처럼 생활하고 싶었을뿐인데 난 그거마저 안되는거냐고. 울면서 발악거리면서 외쳤던거같다.

 

 

울고 울다가 반 미친애처럼 또 다시 생각했다.

아, 나라는 애는 안되는구나. 그냥 이렇게 살아야되는거구나. 이 지긋지긋하고 더러운 이 생활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는거구나. 그래. 난 혼자야. 난 혼자인거야. 외톨이.

인정을 해버렸다. 발악을 하고 별에별 생각을 다해봐도. 난 그냥 혼자다.

 

 

그후로 나는 우울증도 심해지고 피해망상, 폭식, 대인기피증까지 생겨버렸다.

 

학교에 가면 누구와 눈을 맞주칠까봐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다. 내가 자기를 쳐다보면 나랑 눈이 마주쳤다고 드러워할까봐 내욕할까봐. 누가 옆을 지나기라도 하면 멀찍이 떨어져서 지나갔다. 말도 더 이상 하지않게 됐다. 점점 더 난 내성적으로 변해갔다.

나에겐 희안한 버릇이 생겼다.

 

아빠가 무슨말을 하기라도 하면 말을 더듬거나 조금이라도 승질섞인말투로 애기를하면 갑자기 눈물부터 났다. 눈물이 미친 듯이 흘려내렸다. 아빠는 애는 내가 무슨말만 하면 우냐고 화를 냈다. 갑자기 내가 말을 더듬고 누가 신경질을 내거나 화를 조금이라도 내면 눈물이 미친 듯이 흘러나왔다. 주체할수없을정도로. 학교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책읽기순서가 오거나 읽는걸 시키면 난 말을 더듬었다. 읽을줄도 아는데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숨이 턱턱막혔다. 애들은 그런날 보며 비웃었다.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혼내키기라도 하면

난 눈물부터 났다. 점점 더 나는 비참해져가고 자괴감에 빠졌다.

나는 중학교1학년때부터 3학년때까지 급식비를 꼬박꼬박 내면서 단한번도 급식을 먹은적이 없었다. 혼자서 급식실에 가서 밥먹을 용기도 나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교실에 엎드려있었다. 하지만 그거마저도 나에겐 고역이 되었다. 남자애들이 나를 보며

 

 

 “야,재 엎드려있는애 누구냐?”

“ㅋㅋㅋ개잖아 걔.왕따 ㅇㅇㅇ”

“친구없으니까 밥도 못먹나보네 ㅉㅉㅉㅋㅋㅋㅋ”

 

 

 

 수치스러웠다. 남자애들한테까지 저런말을 듣는 내 자존심이 짓밟아뭉게지는거 같았다.

 그후로 나는 점심시간이 되면 여자화장실에 들어가서 점심시간 끝날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여자애들이 속닥거리면서 저기화장실은 왜 사람이 안나오냐고 수군거려도 나는 그안에서 귀를 막아버리고 애써 듣지 않았다.

교실에 있느니 차라리 화장실에

숨어있는게 나았으니까. 난3년동안 점심시간마다 화장실안에서 틀어박혀서 나오지않았다.

 

나는 수련회 소풍이 제일 싫었다. 같이 버스에 앉아서 갈친구도 없었고 그 가는시간은 나에겐 지옥같았다. 아무도 나랑 짝이 되기 싫어서 혼자서 다녀야했고 방에서도 난 언제나 혼자였고 잘때도 애들이 싫어하는 귀퉁이자리 하나에 몸을 웅크리고 잤다. 소풍때도 마찬가지였다. 애들끼리 모여서 밥도 먹고 놀기도 하는데 나만은 예외였다. 난 몰래 빠져나와서 아무도 안보이는곳에서 웅크려 앉아있었다. 수십번 비참해지고 수천번 내자존심은 뭉게져갔다.

 

나라는 애한테는 자존심이라는 게 있기는 한걸까. 난 하늘에 원망하고 원망하며 울기만했다. 다른방법은 나에게 없었으니까.

체육시간이나 이동수업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애들은 체육시간이 되면 같이 옷도 갈아입고 팔짱끼고 웃고 떠들면서 재밌게 나가는데 나는. 혼자 화장실에서 갈아입으면서 혼자 터벅터벅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체육시간에는 나혼자 짝이 없었다. 남녀합반이라서 나에겐 더 치욕스러웠고 수치스러웠다. 내가 뛰거나 뭘하기만 해도 애들은 수군수군거리면서 비웃었다.

 

 

“야야.재뛰는것봐ㅋㅋㅋㅋㅋ”

 “가슴 출렁출렁 돼지새끼하나 뛰어가네ㅋㅋㅋㅋ”

“미친년,튐틀도못해 병신”

 

 

이동수업시간때는 아무도 내자리를 앉는걸 꺼려했다.

 

“야,여기 누구자리냐?”

“개 왕따 ㅇㅇㅇ자리잖아”

“아시발,드럽게. 나여기안앉아 나랑 자리바꾸자”

 “미쳤냐ㅋㅋㅋ저자릴앉게?” “아오,시발 병옮는거아냐?”

 

 

 

내가 다른자리에 앉는거조차 허락되지않았다.

 

 

“아시발,재 내자리앉아?”

“있다가수건로닦아ㅋㅋㅋㅋ”

“아시발, 그런다고드러운게가시냐?”

 

 

 

 

 

똥보다 더 더러운게 앉는다듯이 날 보면서 대놓고 애기를 했다.

저런말을 들을때마다 나한테는 비수로 하나하나씩 내마음에 꽂혀왔고 계속 나는 상처를 받았다.

 

 

나에겐 친구하나가 있었다. 마이마이라는 고마운친구.

마이마이는 지금엠피쓰리랑 비슷한거라고 생각하면 될꺼같다. 그냥 엠피쓰리였다.

난 쉬는시간마다 등학교마다 어딜갈때마다 노래를 들었다. 크게 아주 크게 틀어놓았다.

노래를 들으면 누가 내욕을 해도 전혀 들리지 않으니까. 날 적어도 막아주니까.

언제나 노래를 들었던거같다. 마이마이가 없으면 불안하고 초조했다.

 

 

 

왕따였던 내가. 내주제에. 짝사랑하는 남자애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힐끔힐끔 보다가

개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라치면 다시 고개를 푹숙였다. 아무도 모르게 나혼자 짝사랑을 했다. 한줄 알았었다. 어느날 세이클럽으로 쪽지한통이 왔다. 그 남자애였다.

혹시 너 나좋아하냐 라고 물어보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모를줄 알았다. 남자애가 알아버릴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는 와중에 개한테 다시 쪽지가 왔다.

“너 나랑 사귈래?” 나같은애랑 사귀자고 말한다

. 저 남자애가. 놀라우면서도 떨리면서도.

나속이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바보같이 믿어버렸다. 믿고싶었다.

응.이라고 쪽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답장온 쪽지는

 

 

“야 돌았냐? 내가 너랑사귀게ㅋㅋㅋㅋㅋㅋㅋ너진짜멍청하다.ㅋㅋㅋ이애긴비밀이다소문내면죽여버린다.알겠냐?”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내일 학교가서 어떻게 봐야되지? 날비웃을까? 나또 학교가서 욕먹는거 아닐까 별에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하면서 온몸이 떨렸다. 그냥 오늘 자버리면 일어나지 않게 그냥 이상태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난 학교에 갔고 문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생각을 하다가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크게 들어놓고 고개를 푹숙이고 들어갔다. 그남자애가 나를 보면서 어떤표정을 지을까. 어떻게 할

까. 힐끔 쳐다봤는데 남자애들무리에서 나를 보면서 내애기를 하고 있었다. 분명 난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있었는데 빌어먹을의 내애기는 어떻게 그렇게 잘들리는걸까. 하나도 빠짐없이.

 

 

“어제 쟤가관이였어 미친년. 내가 진짜 지 좋아한줄 알았나봐 병신같은년 왕따 주제에

어딜 날 넘봐?“

 

 

 

 

나같은애는 짝사랑조차 하면 안되는거구나, 빌어먹게도 나같은건, 아무것도 해서는 안되는구나. 난 자꾸 내자신은 비하하며 자학했다.

 

 

 

가정시간이었다. 가정실습실에서 요리를 만드는거였는데. 조를 짜 나누어서 하는 수업이였는데 나랑 할려고 하는 사람은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아무조나 넣어주셨는데. 애들은 대놓고

 

 

 

“아재랑 우리랑 왜같이 해야되?”

 “아만들기싫어지네”

“그냥지혼자만들라고하지 짜증나시발”

“드러워서어떻게만드는거먹어 아오”

 

 

 

 

 

화가 나야되는데 내가 되려 미안했다. 저런말을 들으면 화가나야되는게 정상인데 이젠 미안하기까지 했다. 내가 괜히 끼어들어서 기분망칠까봐 점수못받을까봐 미안해졌다.

 

 

그래서 난 요리평가하는날 얼굴에다가 칼을 그어버렸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슬퍼야되는데 나는 기뻤다. 아, 이제 나 빠지면 애들한테 욕 안 먹겠구나, 다행이다.

선생님께 가서 모르고 칼에 얼굴을 베었다고 하고 조퇴를 했다. 그후부터 난 종종 저런일들이 생길때마다 다리를 다치거나 생리핑계를 대고 조퇴를 했다. 적어도 욕은 안먹고 피해는 안주니까.

 

 

 

 

점점 나는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학교에서 스트레스를 풀수도 없었다.

나의 증오와원망은 가족한테로 돌아갔다. 엄마가 나한테 잔소리를 하거나 나한테 신경거슬리는 말을 하면 나도 모르게 갑자기 화가 나면서 욱하게 되더니 엄마에게 욕을 퍼붓고 화를 내며 신경질을 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하고 화가 풀리면 나는 울었다.

내마음은 이게 아닌데. 화낼려고 하던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나도 모르게. 감정조절이 안되서 팍 터져버린다. 울면서 다시 엄마에게 가 미안하다고 했다.

동생에게도 그랬다. 언제나 집안일은 내몫이였고, 그나마 열중할수 있는게 그거였다.

그러나 동생은 날 무시했다. 내가 왕따였던걸 알았던건지.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내옆에 오더니 자기양말을 내옆에다가 내농댕이쳐버렸다. 바로앞에 세탁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동생은 그랬다. 그냥 내가 치우라는소리였다. 그순간 이성에 끈이 끈어지더니

아, 이제 내가 동생한테까지 이런취급받아야되? 왜? 대체 왜 내가 이런식으로 취급받아야지? 하는 생각과 증오가 동시에 나를 미치게 했다. 난 폭발해버렸다.

미친 듯이 동생을 때렸다. 머리를 때리고 그냥 무지막지하게 욕을 하면서 때렸던거같다.

내가 애들한테 당했던거처럼. 동생을 발로 때리면서 머리를 치면서 욕을 하는 내모습을 보면서 멈춰야되는데 이건 아닌데.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도저히 멈춰지지가 않았다.

결국 내 화가 다 풀린 후에야 멈추게 되었다.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 난 미친 듯이 울었다.

동생손을 잡으면서 미안해 미안해 라고 말했다. 이러고 싶지 않았다. 후회했다. 결국 난 만만한 엄마와 동생한테 내가 그동안 당했던 상처,증오심을 풀었던거였다. 아무 잘못도 없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한테.

내중학교 3년이라는 시간은 초등학교때부터 더 지옥같고 더 뼈저리게 아팠다.

공부는 하지도 못했고 눈에도 안들어왔다. 왕따라는 생활에 급급해서 내자신은 방어하기에도 벅차서. 내 성적은 밑바닥을 기는 수준이였고, 결국 난 고등학교를 실업계.

그것도 남자애들만 간다는 여자는 소수로 가는 그런 고등학교에 가게되었다.

아빠도 그애기를 듣고 충격을 받으셨는지 한동안 날 쳐다도 안보셨다. 아빠와 나는 초등학교2학년 그사건뒤부터 사이가 안좋아졌다. 내가 아빠한테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아빠랑 같이 있는것도 불편해졌고 말도 하지않았다. 남보다 불편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아빠와 엄마도 내가 중학교들어오고나서부터 이상한낌새를 눈치채신거 같았다. 그런데 알면서도 모른체 하신거 같았다. 나때문이였는지 아니면 자기자신들을 위해서였는지 그건 아직까지도 나이먹은 지금도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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