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땅의 색깔? 그래봤자 황토빛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안개까지 있기에 이틀째 햇빛을 못쬔 몸으로서는 그닥 힘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그렇게 메세타를 벗어나고 싶지는 않다. 코스가 일관되긴 해도 위아래로의 굴곡이 없으니 신체적으로는 무리가 덜 가는 구간이다. 스틱으로 딱딱 땅을 쳐가며 리듬도 한번 맞춰보고 산보나 하듯이 걸어보려고 하지만,
내가 봐도 전혀 신나보이지 않는다. 다른 외국인 순례자들보다 우리가 1시간은 일찍 출발했기에 이 길위에 현재 보이는 것이라곤 나와 태수형 뿐이다. 그것도 이젠 메세타에서 서로 힘들다보니 태수형은 나보다 30m쯤 떨어져 걷는게 일상이 되버렸다. 뭐 일부러들 혼자 걷는 길이니 나쁠건 없다.
나무 한그루 없다던 메세타에 나무가 두 그루씩이나 보인다. 역시 가이드북이란 독자에게 괜한 경계심을 심어주고자 약간의 허구를 더해주기도 한다...라고 생각할려는 찰나에
나무들이 아주 뭉탱이로 보인다. 메세타에는 나무가 존재한다는게 밝혀지는 순간이다. 워낙에 계속 같은 풍경이다보니 저렇게 가끔 나와주는 나무 몇그루도 심심함을 달레주는 존재가 된다. 평지에서는 나와 태수형 둘다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같이 다른 사람들과 출발해도 1시간~1시간30분은 알베르게에 먼저 도착하곤 한다. 그래서 오늘은 몇시쯤 도착할까 생각해보고있는데 저 멀리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저 언덕은 무엇이며 그 위에 저 건물은 또 무엇인가. 태수형이 앞에서 멈추서는 것이 보인다. 평소에 우리가 오르막길을 안걸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로 이틀째 평지만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등장한 저 언덕은 절대 반갑지 않다.
언덕에 가까워질수록 그 위에있던 구조물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아마도 이미 낡아서 안쓰는 듯한 교회인 것 같다. 지금 중요한건 저 건물이 교회인지 아닌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나와 태수형이 저 언덕을 넘어야하냐 마냐이다. 다행히 길은 저 언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전혀 다행이라고 말할 수 없는것이, 이 언덕에서 조금떨어진곳에
이분께서 계셨다. 좀전에 언덕은 나무라도 심어져 있고 위에 심심하지 않게 건물이라도 하나 있지만, 이 언던은 그냥 황무지 언덕이고, 누가 봐도 저 길다란 것은 길이다. 저길 넘어야한다는건 부인할 수 없었다. 멀리서 봐도 경사가 심한 언덕이다.
태수형이 멈춰서는 것도 당연한게, 지금 우리둘다 다리상태가 썩 좋지가 않다. 이대로 아무 준비없이 저 길을 오르는건 올라가다 쓰러지겠다는 강한 의지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준비할건 그저 간단한 휴식과 물 그리고
각오를 다지는 기념촬영이다. 어차피 올라가는 동안은 둘이서 말한마디 안할게 너무나도 분명하다. 태수형이 여기서라도 웃으라고 사진을 몇번을 찍었지만 그렇게 웃은게 저정도다. 그렇게 10분정도의 짧은 휴식 후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도저히 앞을 보고 걸어갈수가 없다. 묵묵히 땅만을 쳐다보고 한발짝 한발짝 정상이 나올때까지 걷는 수밖에...
정상으로 가는 원동력중 하나는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궁금함 때문이다. 이 언덕역시 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미리 알고 있었다면 오르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정상에서 태수형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막 정상을 넘어온 나에게 언덕 뒤에 펼쳐진 관경은...정말인지 허탈했다. 길을 따라 그 길이 이어진 언덕을 우린 넘었고,
이젠 다시 그 길이 이어진 언덕을 길을 따라 내려가야한다. 어차피 방향은 저쪽인데 아무것도 없는 이 민둥 언덕을 우회해서 가게 길을 만들면 될것을 뭐하러 언덕위에 길을 내서 이런 허탈감을 선사해주시는지 모르겠다.
메세타가 워낙에 평지이다 보니 그 평지 위헤 조금이라도 높은 것이 생기게 되면 그래도 온 바람을 맞게 되있다 그렇다 보니 낮은 언덕들마다 풍력발전기가 많이 설치되있다.
별로 늦지 않은 시간에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 마을에는 알베르게가 2개 존재한다. 우선 마을 입구쪽에 첫번째 알베르게가 나타났다. Bar와 알베르게를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Bar안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카드를 치고 있었다. 딱 봐도 음식도 맛있을 것 같고 알베르게도 나빠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태수형이 다른 알베르게도 가보자고 했다. 이렇게 괜찮은 알베르게가 있는데 왜 굳이 다른 알베르게를 또 찾냐고 하니 더 싼 곳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와 형의 갈등이 격해졌다. 언제나 주된 갈등내용은 편의냐 재정인지냐다. 돈을 좀더 내더라도 편한데서 쉬고 맛있는 걸 먹자는 것이 내쪽, 절약하며 다니자는 것이 태수형쪽이다. 결국엔 두번째 알베르게까지 가보긴했다. 열려있어서 들어가봤더니 규모는 크지만 딱 봐도 오늘 우리2명만 잘곳인듯했다. 넓은 공간에서 2명만 잔다는것 그날 얼어죽겠단 뜻이다. 주인장도 안오고 해서 결국에는 다시 첫번째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우리가 짐을 다 풀고 씻고 나오자. 거대한 외국인 두명이 우리 방에 들어왔다. 우리방이 6인실이어서 그 2명도 같은 방으로 배정된 듯했다. 얼마전 부르고스에서 본 군인같았던 외국인이었다. 뚱뚱하고 대머리에 안경을 쓴 사람은 알렉산더; 네덜란드에서온 42살의 사진작가다. 금발의 조금 마른 사람은 빈센트; 역시 네덜란드에서온 41살 사진작가다. 알렉산더와 빈센트는 20년전 사진관에서 함께 일하면서 만난 20년지기 직장동료다. 사진작가다 보니 그날 찍은 사진을 바로바로 아이패드를 통해 업로드하는 알렉산더의 모습이다. 알렉산더가 양말을 벗자 모두들 경악을 했다. 온 발가락에 물집들이 터지고 터져 짓물이 나오고 있었다. 이게 상태가 너무 심하다 보니 스스로 주사까지 넣고 약도 발라가며 고통을 참는다.
4명이서 알베르게 옆에 딸린 Bar에서 저녁 만찬을 가졌다. 이 두 외국인이 덩치가 워낙에 크다보니 먹는 양도 상당했다. 알렉산더는 비만과 성인병에 시달리지만 콜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 콜라 중독자이고 빈센트는 이 맛있는 와인들보다도 맥주를 더 좋아해서 걸을때 가방에 항상 맥주 5캔을 넣고 다니는 맥주 중독자다. 네덜란드인들은 영어가 가능해서 서로 즐겁게 얘기하면서 식사가 가능했다. 둘다 너무 유쾌한 사람들이었다. 40세의 한국인을 만나는 것과 40세의 외국인을 만나는것은 상당히 느낌이 다르다. 나이 차이에 중요도를 부과하지 않는 외국인들에게는 서로의 나이에 상관없이 이 길위에서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친구인 것이다. 오늘 태수형과의 갈등도 짙어진 마당에 이 유쾌한 두네덜란드인들을 만나니 왠지 내일 이 사람들하고 같이 걷고 싶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