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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명산 40좌 도전기] 2013년 2월 16일 (토) 무등산 산행

쩜장™ |2013.02.20 16:39
조회 32 |추천 0

☞ 산행일 : 2013년 2월 16일 토요일

 

☞ 산행동반인 : 수원 2030 산사랑 산우들

 

☞ 산행지 : 무등산

 

☞ 산행지 소재지 : 광주광역시 북구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및 담양군 남면에 걸쳐 있는 산.

 

☞ 산행지 소개

 

[개설]

 

무등산은 동경 126°06′~127°01′, 북위 35°06′~35°10′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1,187m, 총면적은 30.23㎢

(광주광역시 27.03㎢, 전라남도 3.20㎢) 이다.

 

[명칭 유래]

 

산세는 웅대하지만 산정 부근의 암석노출지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식생의 밀도가 높은 토산(土山)이어서

믿음직하고 덕이 있는 느낌을 풍기고 있다.

무등산은 동부의 산악 지대와 서부의 평야 지대의 결절점에 위치하고 있다. 북서·남동의 능선은 무등산 천왕봉에서

중봉(915m)·향로봉(367m)·장원봉(386m)에서 망월동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규모가 크다. 동서 방향의 능선은 무등산

천왕봉에서 중봉·중머리재(608m)·새인봉(490m)에서 학동으로 뻗어 있다. 무등산 천왕봉에서 남서 방향으로는 장불재(910m)

·만연산(665m)·수레바위산(363m)·정광산·죽령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뚜렷하다. 이 산줄기는 북쪽의 극락강 수계와 남쪽의

지석천의 분수계를 이룬다.

무등산은 중생대 화상암 산지로서 산지 전체가 부드럽게 풍화되어 있고 곳곳에 주상절리(柱狀節理: 암괴나 지층에 있어서 기둥

모양의 절리가 지표에 대해 수직으로 형성되어 있는 형태) 경관이 있다. 이 주상절리는 남한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서 산정상이나

능선을 따라서 이들 주상절리와 관련된 성곽형의 토르(tor: 차별적인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그 지역의 기반암과 연결되어 지표에

노출되어 형성된 독립성이 강한 암괴미지형)가 발달해 있다.

또한 산지사면을 따라 설형(舌形)으로 발달하는 암설의 퇴적지형인 애추(talus)가 발달되어 있다. 애추는 우리말로 너덜겅 또는

 너덜지대라고 하고 가장 보편적인 주빙하기후 지형으로서, 기계적 풍화에 의해 단애면(斷崖面)으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진 암설이

집적된 지형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골이 많이 발달하였고, 153과 897종의 식물이 고루 분포하는데 그 중 465종은 약용식물이다.

광주광역시는 남부 서안형과 남부 내륙형의 점이지대에 속하며, 연평균 기온은 13.5℃, 강수량은 1,368㎜, 최한월 평균 기온이 0.5℃로

온화한 편으로 온대기후에 속한다. 무등산은 비교적 적설량이 많고 12~3월까지 눈이 내리고 1,000m가 넘는 무등산에 2주일 이상 눈이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형성 및 변천]

 

암석은 대부분 중생대 백악기 중성 및 산성의 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고 화강암과 석영반암이 곳곳에 관입되어 있다.

화산암 지대는 높은 산지가 발달하여 있고, 화강암 지대는 낮은 구릉이나 평야를 이루고 있다. 기반암에 따라 풍화양상이 다르고

곡지모습이나 사면발달 모습도 차별성을 보인다.

 

[현황]

 

특히, 마능선 일대에는 억새가 널리 분포하여 장관을 이루며 매년 가을에 열리는 ‘무등산 갈대제’ 행사가 유명하다. 무등산 일대는

산세가 웅장하고 산중에는 많은 명승고적이 있어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으로는 증심사(證心寺)와 원효사(元曉寺)의

2대사찰과 많은 암자들이 있다.

무등산 최대의 사찰인 증심사는 신라시대의 고찰로 오백나한전·오층석탑·칠층석탑·석조보살입상·증심사철조비로사나불좌상

(鐵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131호) 등을 소장하고 있다. 원효사는 신라시대 원효가 창건한 절인데, 증심사와 함께 한국전쟁 때의

공비토벌작전으로 소실되었다가 근년에 복구되었으나 그 규모는 휠씬 작아졌다.

광주 시내에서 원효사에 이르는 도중의 북구 충효동은 임진왜란 때의 유명한 의병장인 김덕령(金德齡)의 출생지이며, 부근 산기슭에

그의 사우인 충장사(忠莊祠)가 있다. 무등산의 산정 가까이는 주상(柱狀)의 절리가 발달하여 기암괴석의 명소가 많다. 동쪽 사면을

따라 정상을 오르는 길에는 입석대(立石臺)·서석대(瑞石臺)·삼존석(三尊石)·규봉암(圭峰岩)·풍혈대(風穴臺) 등이 있고 정상

가까이에는 수신대(隨身臺)가 있다.

2005년 12월 16일에 무등산주상절리대 10만 7,800㎡는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화산활동의 산물인 무등산주상절리대는

수직으로 솟아오른 굵은 돌기둥과 동서로 길게 발달하한 돌병풍 등이 빼어난 지질 경관을 이루고 있어 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등산도립공원측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주상절리대를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위해 8개월동안의 공사를 거쳐

2008년 12월 서석대(1,100m)를 개방하였다. 개방된 등산로에 나무판을 깐 산책로를 만들었고, 산책로는 서석대에서 조금 떨어진

입석대(1,017m)까지 이어져있다.

광주에서 무등산에 오르는 길은 증심사를 기점으로 하는 용추계곡 등산로와 원효사를 기점으로 하는 원효계곡 등산로가 있다.

광주광역시는 탐방객의 75%가 증심사 쪽으로 몰리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 무등산공원 증심사지구 자연환경복원사업을 2006년부터

시작하여 2008년까지 진행하였다. 그리고 2009년 원효사쪽에 자연지형을 살린 옛길을 복원하였다. 조선시대 만들어져 1960년대까지

이용됐던 무등산 옛길 11.9㎞ 중 경사가 완만한 산수동·청풍쉼터·충장사·원효사 7.8㎞구간의 복원을 마치고 2009년 5월 개방했다.

완만한 산록 지대에서 많이 재배되는 수박과 차는 예로부터 무등산의 특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등산 차밭은 허백련(許百鍊)이

 맡아 일구어 삼애다원이라 이름 짓고 ‘춘설’이라는 녹차와 홍차를 생산하였다. 무등산의 웅장한 자태에서 생겨나는 정기는

광주학생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애국지사·문인·예술가 등을 배출시키는 근간이 되었다.

[출처 : 네이버]

 

☞ 산행코스

[산행개념도]

산행코스 : 원효사 - 제철유적지 - 서석대전망대 - 서석대 - 입석대 - 장불재 - 중머리재 - 증심사

 

☞ 산행기

[무등산 탐방지원센터 부근]

두번째 찾은 무등산 국립공원 지정후 꼭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아름다운 도전 40좌 명산에 포함이 되어 있다.

작년 5월에 왔을대와도 사뭇 다른 풍경이다.

작년에는 푸릇푸릇한 나무들과 이쁜 꽃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는데, 오늘은 도전단 및 등산객들이 많아 산행이 걱정이 된다.

 

[무등산 옛길 아내석]

오늘에 인증 목적지는 서석대 정상석이 있는 곳이다. 산행시작은 작년과 동일하게 무등산 옛길로 시작을 해본다.

 

[첫 이정표]

넓직한 나무 판넬로 만들어진 이정표, 다른곳보다 좀 스케일 남달라 보이지 않는가???

 

[제철유적지]

임진왜란 당시에 무기를 만들었던 장소라고 한다.

 

[무등산 의병길]

제철유적지 바로 옆에 있는 무등산 의병길 안내도 이다.

 

[주검동 유적]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김덕령 장군과 관련된 유적지로, 무기를 만들던 곳이다.

무등산 꼭대기에서 서북쪽으로 뻗은 능선이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의 평탄한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검동(鑄劍洞)’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이곳은 위아래 2단으로 돌을 쌓고, 제철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급경사면을 만든 후 제철, 단조(緞造:광석에서 금속을 뽑아 두드려

만드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철기 생산에 필요한 기본과정과 시설을 배치해 놓았다. 제철로는 작은 판돌과 깬돌을 이용하여 직사각형으로

만든 후 그 안을 점토 등으로 다졌다. 제철로에서 생산된 철을 다시 가열하여 불순물을 없애는 정련로는 가운데 바닥의 판돌이 열 때문에

갈라져 있다. 제철로의 동쪽 8m에는 단조철기(두드려서 만든 철기)에 사용되었던 단조로와 단조대석이 있다. 단조로는 많이 파손되어

그 형태가 변형되었는데, 타원형 내지는 직사각형으로 보인다. 단조대석은 불순물이 없어진 철괴로, 단조철기를 만들던 시설이다. 제철로와

정련로에서 생산된 철괴의 불순물을 없애는데 이용했던 대형대석이 확인되었고, 철제·단조박편·철촉·철촉반제품·추형철기 등의 제철유물과

분청자·질그릇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들로 보아 조선시대인 15∼16세기에 사용되었던 유적으로 보인다.

이 유적은 무등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뻗은 능선이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의 평탄면에 자리한다. 임진왜란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장군의 활동과 관련된 무기 제조창으로 주검동(鑄劍洞)이라 불리우는 곳이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 1992년 3월∼4월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곳은 상하2단의 석축을 쌓고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하여 급경사면을 조성한 후 제철에서 정련(精鍊), 단조(鍛造)에 이르기까지 철기생산에 필여한 기본공정과 시설을 배치하였다. 제철로는 절두원추형(截頭圓錐形)으로 작은 판석과 할석을 이용하여 대략 장방형의 구역을 만든 후 그 내부를 점토 등으로 다졌을 뿐 방습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정련로는 제철로에서 생산된 철괴를 재가열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는 곳으로 제철로의 북쪽 3.5m에 있다. 판석과 할석을 혼용한 형태인데 중심부 바닥의 판석은 심한 열에 의하여 균열되어 있다. 제철로의 동쪽 8m에는 단조철기가 제조되었던 단조로와 단조대석(臺石)이 있다. 단조로는 많이 파손되어 변형되었으며 타원형내지 장방형으로 주변은 괴석과 판석이 부정형으로 돌려져 있다. 단조대석은 단조로의 서측 경사면에 있으며 불순물이 제거된 철괴로 단조철기를 만들던 시설이다. 대석의 서측에 소형괴석들을 호형으로 돌려 단조박편들이 주변으로 흩어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 그리고 제철로와 정련로에서 생산된 철괴의 불순물 제거에 이용되었던 대형대석이 확인되었다. 제철의 원료는 철재의 성격으로 보아 하천 사질층에 퇴적된 사철(砂鐵)을 정선하지 않고 사용한 것 같다. 출토 유물은 철재(鐵滓), 단조박편(剝片), 철촉, 철촉반제품, 추형(錐形)철기 등 제철유물과 분청사기, 질그릇 등이 있다. 특히 철촉 반제픔으로 보아 김덕령장군의 활동과 관련하여 주검동 지명이 철제무기를 제작하였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유적은 김덕령장군의 활동시기와 분청자 등의 출토유물로 보아 15∼16세기에 사용되었음을 알수 있다.

[출처 : 문화재청]

 

[무등산 옛길 물통거리]

 

[원효계곡 시원지]

작년 방문시에는 계곡의 물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주었는데, 아직 겨울철이라서 그런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상상을 해본다.

 

[도전단]

행사 초기에는 도전단 깃발을 베낭에 부착하는 도전단분들이 많지 않았는데 행사가 거듭 될 수록 베낭에 도전단 깃발을

흔히 볼수 있다. 모든 분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40좌 완주를 성공했으면 좋겠다.

 

[얼름골 삼거리] 

 

[등산로] 

 

[전술도로?]

얼음골 삼거리를 지나 약간에 깔딱고개를 지나게 되면 도로가 나타난다. 군대에서 흔히 말하는 전술도로이다.

 

[중봉과 서석대]

전술도로상에 보는 풍경 모습이다.

 

[서석대]

광주 무등산에 상징인 서석대

 

[서석대를 배경으로]

 

[서석대 부근에 있는 이정표]

 

[무등산 정상 해설판]

 

[서석대 정상석]

 

[서석대 정상석에서...]

역시 오늘도 나는 없다. ^^

 

[개인인증]

일곱번째 인증!!

무리하지 않게 하나하나씩 해 보자!!!

 

[천왕봉 방향]

천왕봉 코스는 다음을 기약해 본다.

 

[입석대와 장불재 방향]

작년에 왔을때는 짙은 안개로 인해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날씨가 좋으니 조망도 너무 좋다.

 

[승천암]

 

[입석대 표시석] 

 

[입석대] 

무등산의 정상 1,017m 지점에 있는 돌기둥의 무리이다. 무등산의 대표적인 절경의 하나로 장불재(長佛峙)에서 동쪽으로 약

200m 올라가면 정상의 서쪽에 있다.

높이 10∼15m의 돌기둥이 반달모양으로 둘러서 있는 석경은 다른 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경관이다.

돌기둥은 5∼8면체의 각석(角石)이며, 하나의 암주(巖柱)나 3,4단의 석주(石柱)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 바위에 ‘立石(입석)’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축단을 통해서 이곳이 가뭄이나 질병의 전염이 심할 때 지방관리들이 하늘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 제를 지내던

제천단(祭天壇)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하여도 이곳에 입석암(立石庵)을 비롯하여 주변에 많은 암자와 절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장불재]

광주광역시의 동구 지원동 관할 용연동과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사이의 고개이다.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에서 남서쪽으로 

서석대와 입석대를 거쳐 내려선 고개마루가 있다. 억새 군락이 장관이다. 고개 서편 샘골에서 광주천이 발원한다. 『대동지지』에

 '장불치(獐佛峙)'로 기록되어 있다. '긴골' 또는 '장골'을 한자로 장불치(長佛峙)로 표기했다. 말 잔등 같은 능선이라 '백마능선'

이라고도 칭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불동에서 철이 생산되었고, 『유서석록』에 "장불천은 그 상류에서 쇠를 씻기 때문에

언제나 탁한 물이 흐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 네이버]

 

[장불재에서]

또 언제 올지 모르니 기념 사진은 필수이다.

 

[이정표] 

중머리재 방향으로...

 

[중머리재]

광주광역시의 동구 학운동 관할 운림동과 지원동 관할 용연동 사이의 고개이다. 무등산 천왕봉에서 서석대를 거쳐 중봉으로 

내려선 능선이 삼광대 아래로 이어지면서 잿등을 이룬다. 남서쪽으로는 서인봉으로 향하는 등산길이다. 『유서석록』에

 '중령(中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갯마루가 넓은 초원지로 마치 스님의 머리 닮아 '중머리[僧頭峯]'이라 한다.

[출처 : 네이버]

 

[증심사 방향으로]

 

[보호수]

450년이나 된 느티나무다.

 

[증심사]

현존하는 당우로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오백전(五百殿)과 대웅전ㆍ지장전(地藏殿)ㆍ비로전(毘盧殿)ㆍ

적묵당(寂默堂)ㆍ종각ㆍ일주문ㆍ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오백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오백전은 대웅전 뒤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초기에 지어진 강진 무위사(無爲寺)의 극락전과 같은

계통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전내의 오백나한상은 1443년의 중창 때 김방이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 오는데,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불상이다.

오백전 옆에는 높이 205㎝의 석불 1구가 있는데, 고려시대(10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조보살입상으로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로전 안에 안치된 높이 90㎝ 정도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철불은 본래 광산군 서방면 동계리에 있던 것을 1934년에 옮겨온 것이다.

이밖에도 문화재로는 증심사 창건 때 만들었다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인 삼층석탑,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1933년의

보수 때 탑내에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금동보살 입상 등이 나왔던 오층석탑,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칠층석탑 등이 있다.

특히,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금동석가여래입상과 석조보살입상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분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이 절 입구의 왼쪽 산록에는 약 3만여 평의 차밭이 있다. 이 차밭은 원래 증심사에서 공양을 위하여 가꾸어왔던 것이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이 경영하였고 광복 후에는 허백련(許百鍊)이 인수하여 고유의 차를 재배하였다. 절 주변이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 네이버]

 

[고드름]

증심사에서 내려오는길에 보이는 고드름 이다.

 

[무등산공원 탐방안내 센터]

작년에 왔을때에는 푸르름한 무등산이 나를 반겨주어 아주 좋은 추억이 남았었는던 무등산 이었다.

좀더 일찍와서 설경을 보지 못해 아쉬운 산행 이지만, 겨울과 봄이라는 중간 느낌은 산행을 느낄수가 있었다.

또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다음엔 시간적으로 좀더 여유 있게 와서 오늘 보다 더 많을걸 느껴야 겠다.

오늘 산행에 여운은 여기까지, 다음 산행을 기약한다.

 

☞ 산행기록

[GPS 기록]

 

[산행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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