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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 6 - 예수님에 대하여

카톨릭신자 |2013.02.23 13:24
조회 120 |추천 0
각 물음별로 따로 올리기도 하지만, 모든 물음을 한데 모은 글 링크도 같이 남겨 놓습니다.
질문은 아래 링크에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pann.nate.com/talk/317763794


예수님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예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주장으로

이집트의 태양신 신화와의 유사성이 있습니다.

처녀 수태, 부활신앙 등등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다른 종교에서 이미 존재하던 신화를 베껴온 것이라고

합니다.

12월 25일은 사실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탄생과는 무관합니다.

12월 22일이 동지죠? 사실 태양신 신앙에서 동지는 겨울이 물러나고 봄이 시작되는 그 출발을 의미합니다.

태양신의 부활을,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에 대입한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은 있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탄생은 12월 25일이 아닌 4월 언저리라고 하는군요.

그리고 이거 아세요?

예수님이 목회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등에서 영적인 수행을 하셨다는거요.

목수로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갑자기 어느날 성령이 내려와서 광야로 가서 40일간 기도 한번 한 다음에

뿅 하고 구원자가 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수십년을 영적인 수행과 헌신의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은 선지자가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하느님의 아들로 모시는 예수님은 사실

그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본인을 의미하기보다는 어떤 형성된 관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실존 인물에 신격을 덧씌운 존재지요.


그러나 인간의 힘이라는 것은 마음을 어떤 영적인 힘으로 실체화할 수 있습니다.

카톨릭에서 가장 많이 외우는 '주기도문'이라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구조 자체가 어떤 영적인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역사상 수억명의 사람들이 수십 수백 수천번을 암송하였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그 주기도문에 힘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 마를 퇴치하는 힘이 깃든 것입니다.

예수님 또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도 있지만, 사람들의 신앙 속에서 힘을 부여받은 어떤 신성한
힘으로서의 예수님 또한 존재합니다.

지금의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은 후자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이 힘이 많은 사람에게 신비 체험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악한 영혼을 제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역사적인 예수님은 인간일 뿐입니다.

그래서 항상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전제를 다신 겁니다.

자신을 어떤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자신 또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내려온 존재임을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에서는 결코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보다 우월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우열이 없이 모두다 신의 권능을 가진 존재입니다.

다만 탁한 마음과 무지의 베일에 가려져 그 신의 진리를 체현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구약의 인격신 하느님은 어떤 의도를 가진 존재에 의해 왜곡된 존재라고 보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새롭게 나기 위해서는 구약을 과감히 포기하고, 신약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약이 없으면 종교의 시스템 자체의 존립이 위태하겠지요?

인간이 곧 신인데 왜 사제가 필요하고 왜 교회가 필요하고 왜 교황이 필요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구약을 붙들고 있을 따름입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속일 수 있어도 결국 자신은 속일 수 없습니다.

뭔가 마음 속으로 시원하게 뚫리지 않는 의문이 있는데, 그것을 단지 억누르기만 하고 다른 사람의

가르침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면 더한 고통의 연쇄가 있을 뿐입니다.

왜 다들 자신의 직감에 그렇게 자신이 없으십니까?

의심하면 누가 불벼락이라도 내릴까봐 두려우십니까?



인간의 고통은 사실 많은 부분이 두려움에서 출발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잃으면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

이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두려움. 내가 죽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

사실 이러한 두려움은 영적 진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면서, 또한 그것을 극복했을 때 더 큰 진화로 이끌어

주는 스승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합니다.

물론 육신을 가진 존재로서 동전 그 자체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동전의 존재가 있다는 자각을 가졌을 때 더 이상 그 동전의 앞면과 뒷면 중 하나에 휘둘리는 삶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자각이 있고 없고가 자유 의지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두려움에 자신을 내맡기는 삶은 동전의 한 면이 세상의 전부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자신을 믿고 그 두려움을 뛰어 넘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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