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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니가 들려주는 아련한 사랑이야기 1

부르니 |2013.02.23 21:38
조회 129 |추천 0
안녕하세요~ 부릉부릉부르니 입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들려줄 사랑이야기 들을 준비 되셨죠?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본 내용은 창원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도시에 살았다.

 

창원이라고, 요즘이야 통합도 하고 공룡구단도 생기고 인구도 늘었지만, 내가 서울에서 내려갔던 5살 때는 저녁 8시만 되어도 널찍한 길거리와는 대조적으로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마치 유령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중소 규모의 도시......

 

그만큼 예전만 해도 사람이 없는 만큼 녹지 비율도 높았고, 우리 아파트에서 5분만 걸어나가면 개천이 흐르는 뒷산이 있었다. 지금은 축구장 들어섬.

 

거기에 올챙이랑 도롱뇽이 참 많이 살았었는데, 어렸을땐 책만 처읽던 나도 봄만 되면 나가서 올챙이를 잡았고, 집에 데리고 왔다가 다 쳐죽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 자주 보였던,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쌍둥이 자매가 있었다.

 

일란성 쌍둥이라 구분이 거의 불가능했고, 그건 특히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나한테는 더욱 불가능했다.

 

어렸을 때니까 쌍둥이, 그것도 일란성인데다 귀욤귀욤했어서 솔까 관심이 많이 가기도 했지만, 내성적인 나는 인사나 몇 번 하고 말았던 정도였지.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 그 애들이랑 같은 반으로 배정을 받았어.

 

쌍둥이 중 누나였던 애가 내 옆자리에 앉게 됬고, 나는 속으로 무척 설레서 괜히 책상에 그어져있던 선에 필통을 걸쳐두고 은근히 걔가 트집을 잡길 바랬고

 

병신같았던 나였지만, 자매 둘 모두 활발했던 성격이라 그런지 걔는 내게 참 말을 많이 걸어줬다.

 

그러다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걔네집은 우리 아파트에서 이사해서 다른 학군으로 가버렸다.

 

휴대폰이 그리 흔할 때가 아니라 우리 집에서 아버지만 폰이 있었고, 당연히 나도 걔도 휴대폰이 없었고, 집전화번호는 있어도 따로 전화를 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나는 어린 맘에 전화 한 번 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맘을 잊어버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그 애들을 보지 못했고, 그 애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사라져 버릴 즈음이었지.

 

기억났던건 초등학교 졸업할때까지 그 애들을 확실히 구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 정도.

 

 

나는 고등학교를 조금 집에서 먼 곳으로 갔다.

 

1지망 학교에서 튕기고 배정이 튕기고 튕겨서 생각도 못할 학교로 갔지.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학교라, 남녀공학이라는 것만이 유일한 장점인 꼴통인문계

 

거기서 그 애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창원 시내에 남녀합반인 학교는 없었고, 지금도 아마 없는걸로 기억한다.

 

만나게 된건, HR활동때 할 활동 부서를 정하면서였다.

 

나는 영화 보면서 꿀이나 빨려고 농구부와 축구부 다음으로 치열했던 가위바위보에서 이겨 3명 안에 들었고,

 

들어갔던 곳에서 만났던 것이 그 애였다.

 

그 애는 나를 알아보는 기색이 없었기에 나도 가만히 있었는데

 

수업이 끝나면서 그 애를 데리러 옆반에서 네모로직반을 하고 있던 쌍둥이 동생이 왔고, 그 애가 언니, 라고 해서 나는 그제야 같은 반에 있었던 애가

 

초딩때 옆자리에 앉았던 그 애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일단 그 애가 언니 쪽이었다는 걸 알게 된 그 다음부터는 그 애들을 절대 헷갈릴 수가 없었다.

 

그건 무척 당연한 일이었다.

 

그 애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HR은 토요일에 있었고, 당연히 일찍 마쳤다.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어서, 나는 그 애의 반을 찾아갔다. 반을 알아내는건 쉬웠는데,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애가 걔밖에 없었다.

 

그 애는 혼자 휠체어를 굴리면서 나왔고, 자기 앞을 막고 있던 나를 보고 화를 냈다.

 

왜 남의 반 문 앞에서 그러고 있냐면서.

 

정확하게 뭐라 했는진 잘 기억 안나는데 아무튼 예전의 활발하고 상냥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신경질적이던 모습이 뚜렷하다.

 

당황한 나는 어버버하면서 그 옆으로 비껴섰고, 뒤를 따라가면서 말을 걸었다.

 

나 기억 안냐나고, 초등학교 6학년때 니 옆자리에 앉았던 구필삼도라고.

 

그 애는 아, 몰라! 화를 내면서 엘리베이터에 들어갔고

 

(우리 학교는 당시 보조금 받는답시다고 장애인 교육 시범학교였는데, 솔직히 엘리베이터 외에 특별히 신경써줬던 건 모르겠다)

 

나도 그 뒤로 따라 들어갔다가 1층에서 학주랑 마주치고 니가 이걸 왜타새꺄? 에서 부터 시작하면서 개까이기 시작했다.

 

그애는 나한테 신경도 안쓰고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경사로가 있는 건물 오른쪽 통로로 사라져갔다. 난 학주한테 귀를 잡히고 해명하면서 멀어져가는 그애를 봤다.

 

 

 

그 다음날 그 애 동생이 점심시간에 날 찾아와서 말했다.

 

너 구필삼도 아니냐고. 맞는데 왜 왔냐고. 언니가 어제 집에 와서 초등학교 앨범에서 누굴 찾아봤는데 그게 너였다고.....언니 다리는 왜 그러냐 물어보니까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됬다고 그러더라.

 

그때는 나도 폰이 생겨서 동생편으로 그 애 번호도 받았는데, 몇번 문자를 썼다 지웠다 했다가 결국은 못썼다.

 

내 성기같은 기질이 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떠올리고 자기검열해서 못했기 때문에.

 

아무튼 그 후에도 그 애는 나를 계속 쌩깠다. 매주 토요일마다 봤는데도 그랬다.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고 해도 설마 하반신 마비같은 심한 건지 생각하지 못해서 나는 조카 병신같이 말도 못 걸었다.

 

그러다가 여름방학도 지나고 2학기도 세 달 정도 지나서 가을이 되었을 즈음에 난 담배를 배웠다.

 

일진들한테 아버지 담배 뽀려다 개비당 300원 받고 팔던 놈이 하나 있었는데,  집 근처에 이사를 와서 친해지다보니까 그렇게 됐다.

 

그걸 계기로 걍 조카 평범한 존재감이었던 나는 일진 중 몇 놈들하고, 친구는 못먹었고 같이 담배 피고 엉덩이 뚜드려맞는 사이정도가 되었다.

 

 

학교 뒷문에 체육할때 필요한 거랑 수위 할배가 쓰던 물품들 넣어두던 창고가 있었는데 잘 안쓰는 곳이라 거기가 학교 공식 담배 던전이었다

 

자물쇠는 번호식이었다가 나중에 가서 열쇠식으로 바꼈는데 당시에는 번호식이었고, 당근 0000에서 9999까지 어떤놈이 맞추다가 풀어내서 애용되던 곳이었다

 

나는 머리가 아프다고 담임한테 구라를 치고 여덟시쯤 야자를 조퇴했는데, 담배나 한 대 피고 가려고 창고로 향했고

 

한 년이 앞에서 망을 보고 있고, 들어가니 다른 년 네 명하고 그 애가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는 그나마 좀 조용한 분위기였는데 걔는 눈에 약간 핏발이 서 있었고,

 

다른 년들은 담배를 꼬나물고 다른 손으론 핸드폰 플래시로 걔 얼굴하고 눈을 비추면서 걔를 갈구는 중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냐고, 그 자리에 있는 애중에서 그나마 좀 아는 여자애한테 물어봤더니

 

걔가 휠체어타고 가다가 갈구는 중인 년 책상을 건드려서 우유를 교과서랑 교복에 쏟았다나

 

왜 그런거 가지고 그러냐고 몸도 안 좋은 애를.

 

내가 그러니까 작게 말했는데도 그 애가 그 소리를 듣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댔다

 

여자애는 봤냐고, 한 두번도 아니고 계속 저러는데 저건 성격을 고쳐놔야된다고 그랬고

 

나는 그걸 말리려고 걔한테 제일 가까이서 지랄하고 있던 년한테 다가갔다

 

그 년은 당시 학교 일짱(조카 어이없는데 고딩때도 있긴 있더라) 깔치였는데 말을 해도 들어쳐먹지 않는 년이었다

 

조곤조곤 말을 하고 이쯤에서 끝내라 그러는데

 

싫은데? 이 지랄하고 걔도 니가 뭔데 참견이야? 이러더라

 

그러면서 그년은 들고 있던 담배를 그 애 치마에 비벼껐고, 그 애는 비명을 질렀다.

 

그건 내가 말리기도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 당황해서 그걸 던져버렸을땐 벌써 구멍이 조금 나고, 폴리에스테르 타는 냄새가 나고, 그 애 허벅지도 빨간 자국이 남았다.

 

그러면서도 조카 당당하게 그년이 처웃어대서,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년 싸대기를 날렸다. 여자 때려본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자리는 어떻게 어떻게 조카 시끄럽게 지랄하면서 끝났지만 나는 그 다음날 그 창고로 불려가서 조카 처맞았고

 

더 화가 났던건 그것말고도 그 년들이 화내는 년을 붙들고 어떻게 나가버린 창고에서

 

그 애가 눈물콧물을 잔뜩 흘리면서 나한테 화를 내던 거였다.

 

아무튼 창고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뭐라도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지만 한 마디도 못하고 있던 나한테 그 애가 화를 냈던 요지는 이런 거였다

 

무슨 자격으로 너같이 찐따같은 새끼가 나한테 관여를 하냐고. 자기가 불쌍해보이냐고. 오지랖도 엄청 넓다고

 

그런 말을 끅끅 울어가면서 욕을 섞어가면서 계속 말을 해댔고, 나는 할 말이 없어서 담배만 피웠다.

 

그 애는 그러면서 자기도 한대를 달라고 해놓고 울음이 어느 정도 멈춘 뒤에도 몇 모금 빨지 못했다 내가 보기엔 많이 피워 본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눈이 잘 붓는 타입이었는데, 눈두덩이 퉁퉁 부어서 콧물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던 그 얼굴이 아직도 꽤 선명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창고에서 한 20분 동안 있었다. 10분 정도는 걔가 나한테 화를 내면서 울었고, 그 다음 10분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걔 끅끅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 다음 날 나는 창고에 불려가 싸대기 때렸던 년 남친한테 뒤지게 맞았다.

 

 

 

부모님한테는 아무 말도 안하고 맞았던 날 다음 날은 학교를 쉬었다. 피씨방에 가서 하루종일 떼웠다.

 

그날 밤 정도 되서 몸에서 담배 냄새 풀풀 피우면서 들어가서 아버지한테 조카게 처맞고

 

방에 들어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자려고 하는데 문자가 왔다.

 

솔직히 나는 내심 그게 그 애 문자이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예전 슬라이드폰에서는 보낸 사람과 내용이 미리 떴었고, 그건 그 애 동생이 보낸 내용이었다.

 

한동안 문자를 주고 받다가 그 애네 집이 다시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온 내용을 알았다. 근처라고 해도 버스 타고 1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지만.

 

전화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좀 들어보자고 해서 그 애네 집 근처로 갔다.

 

그 애 동생을 불러내서 놀이터에서 그네에 앉아서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었다.

 

그 애가 하반신 마비가 된 건 중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고 했다.

 

동생에게서 들었던 것이고, 나중에 사귀게 된 다음에도 그 애는 그 이야기 하는 걸 꺼렸기 때문에 순전히 동생 관점이었지만 정리하자면 이랬다

 

 

중학교 2학년 여름에 그 애는 방학을 맞아서 친구들이랑 부산으로 놀러갔다고 했다.

 

동생은 학원에 가 있을 때라서 같이 가진 못했고, 창원에서 부산까진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려서 정말 아무런 걱정 없이 부모님도 보내줬고,

 

부산에서 다시 창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먹을 정도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창원에서 친구들하고 밥을 먹고 노래방에서 놀고 난 다음에 한 여덟시가 됬다고 했다

 

그때 집으로 오는 길에 뺑소니를 당했다고 한다

 

말했던 것처럼 창원은 도로며 길이며 다 잘되어있어서 차들이 빠르게 다니기 좋은 곳이었고, 게다가 걔를 치고 지나간게 1.5톤 트럭이었다고 한다

 

뺑소니는 곧 잡혔지만 걔는 방학 중간에는 이미 장애인이 되어 있었고

 

그때부터 우울증이 시작되고 히스테리가 도져서 성격이 저렇게 됬다고 했다. 그때부터 해서 중3 때는 반 친구들도 성격을 못참아해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다.

 

동생은, 자기도 솔직히 당시에는 언니가 불쌍하고 그랬지만, 계속 그러는 걸 보면 불쌍한 걸 떠나서 좋아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그 애는 나를 쌩깠다. 아니, 오히려 더 의도적으로 피했고 난 일진한테 처맞았던 이후부터 반에서 아싸가 되어버렸다

 

2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하기 직전에 매주 그 애를 마주쳤던 HR 영화감상반이 끝났고

 

나는 방학 시작한 다음 날 걔한테 문자를 넣어서 만나자고 했다

 

그 애는 이틀 동안 답장을 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 이틀 동안 무척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결국 확답을 받은 건 동생이 다시 문자를 보내줘서였고, 나는 밥을 먹자고 해놓고 영화표를 미리 예매해뒀다

 

솔직히 그때까지 연애를 안해봐서 만나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애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후 다섯시였는데 갑자기 한파가 몰아쳐서 몹시 추웠던 기억이 난다

 

창원은 서울보다 보통 4도 정도 겨울이 따뜻해서 2년에나 한 번쯤 눈이 내렸는데, 그 날은 찝찔하게 진눈깨비인지 먼지인지 모를 것들만 날리고 있었다.

 

나는 10분 전에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고, 거긴 던킨 도너츠 앞이었다.

 

그 애가 언제 올지, 분명 보내지도 않을 문자를 계속 확인하면서 서 있는데, 한 5분 정도 지났을 때 던킨 도너츠 문이 열리면서 그 애랑 동생이 같이 나왔다.

 

동생도 같이 올 지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한건 아니었는데 묘하게 허탈했다

 

 

우리는 치킨을 먹으러 갔다.

 

창원에서 제일 번화가는 상남동이었는데, 한 건물에 안마방, 노래방 세 개, 술집 두 개, 좀 큰 빌딩이면 룸싸롱까지 몰려있는 그런 유흥밀집지역이었다.

 

그런만큼 미성년자에 민감한데 그 애는 굳이 맥주를 먹겠다고 하다가 종업원한테 혼나고 치킨만 조금 깨작대다가 콜라만 마셨다.

 

이야기는 주로 나랑 동생이랑 했고, 그 애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잔뜩 화가 난 모양이었는데, 솔직히 말을 걸 배짱도 뭘 말해야 할지도 몰라서 동생하고만 말했다

 

왜 만나자고 한건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 날은 그렇게 치킨만 한 마리 반 먹고 난 다음 헤어졌다

 

그 날 다음부터 이상하게 말을 안하던 그 애 생각만 났다.

 

난 방학 자율 보충학습을 나갔는데, 그 쌍둥이들은 학원을 따로 다녀서 마주칠 일도 없었는데도 계속 그랬다

 

그러다 해가 바뀌었고, 난 걔네 집 근처에 독서실을 끊었다 엄마한테는 다니던 독서실 분위기 개판이라고 말하고 그쪽이 좋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구라를 쳤다

 

이미 처맞은 다음부터 친구관계도 다 꼬인 판이라 독서실 가기 전에는 걔네 아파트 근처에서  5분쯤 서성대다가, 나와서도 또 그네에 앉아서 5분쯤 있다가 가곤 했다.

 

병신같이 연락은 안하고......

 

 

 

그러던 노력이 아주 효과가 없지는 않아서, 방학 동안 걔를 한 네 번 정도는 봤었다.

 

사실 한 번 우연히 마주친 다음부터는 일부러 그 시간에 밖에 나와서 멍때리고 있었다.

 

그쯤되면 걔를 좋아한다는 자각이 있어야 했는데 당시로서는 그런 걸 깨닫지를 못했다 어쩌면 장애인하고 사귈 수 있나? 라는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독서실에서 친구 하나를 만나게 됬는데, 같은 학교에 다른 반 녀석이었고, 그 애랑 같은 아파트 단지 사는 놈이었다

 

오늘 내가 이런걸 싸지르고 있는 것도 그놈이 오늘 군대 입소를 해서 우울해져서 그렇다

 

아무튼, 그 놈이랑 친해져서 노가리 까다가 그 애가 어느 날 너 걔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말을 못하겠더라

 

그때 집에 와서 자기 전 쯤에 그 애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웃긴건 그 애 동생이랑 한 문자 보고 있다가 그걸 알아차렸다.

 

 

 

근데 그때의 나는 지금하고 별로 다를 것도 없는 병신찐따였어서, 좋아한다고 생각을 했든 말든 별로 행동에 바뀌는 것은 없었다

 

걔한테 아예 문자를 안 한것도 아니었는데, 가끔 1,2 주에 한 번씩 문자를 해도 답장이 없어서 말았다. 딱 한 번 오긴 했는데 시험 범위는 가르쳐주더라

 

 

그 애랑 사귀게 된 건 솔직히 아주 드라마틱한 그런 사건으로 된 건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 애가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까지 내 삶에서 제일 드라마틱한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그 애는 중 3때부터 은근히 왕따를 당했고,

 

그건 고등학교 올라와서 2학년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 와중에 허벅지에 담배빵 맞았던 그런 사건 비스므리한 것이 몇 개 더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늦게 알게 되었든, 그게 진행 중이었을 때 동생한테 문자를 받아서 알게 되었든 상대편한테 가서 따졌다

 

이상하게 그런 용기는 났다 어쩌면 좋아한다고 마음을 정한 순간부터 좀 바뀐 것 같았다

 

정확히는 대단하게 가서 깽판을 놨다거나 그런것도 아니고, 상황 정리하고 걔한테 욕처먹고 그런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거때문에 찐따새끼랑 애자년이랑 사귄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화도 많이 났지만, 무엇보다 화가 많이 났던건 그 말을 듣고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버린 사실에 제일 화가 많이 났다

 

 

그러면서 나는 걔한테 조금 더 말을 많이 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가 되어서 걔가 있던 HR반, 그니까 십자수반으로 특별활동반을 옮겼다

 

그 애는 이제 나를 생까고 넘어가지만은 않게 되었고

 

고등학교에서 만난지 거의 1년 반 정도 되던 날 고백을 했다

 

토요일 십자수반이 끝나고 반으로 돌아가는 걔를 불러내서 몇 번씩 고쳐썼던 두 장짜리 편지를 쥐어주고 좋아한다고 말한 다음 도망쳤다

 

진짜 내가 생각해도 너무 병신같았다

 

 

그날 밤, 걔한테서가 아니라 동생한테 문자가 왔다

 

언니가 펑펑 울고 있는데 왜 그러는지 혹시 아냐고 물어봐도 문잠그고 안나오는데 걱정된다고

 

난 또 걔가 혹시 자살이라도 하려고 그러는지, 뜬금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걔한테 전화를 했다.

 

진짜 조카 받든 안받든 계속 걸었다.

 

부재중 통화가 네 통이 되었을때 걔가 전화를 받았다.

 

 

나도 니가 좋다고

 

그애는 그렇게 말했다 버릇처럼 끅끅대면서 말하는데 중간부터 딸꾹질을 멈추지를 못했다

 

전화 너머에서는 계속 울고 있는데 나는 조카 처웃다가, 그 동안 힘들었던게 생각나서 중간부터는 질질 짜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고 그 애의 꼬이고 꼬인 성격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나는 걔한테 정말 붙어 있을 수 있을 때는 떨어지려고 들지를 않았고 걔도 부담스러워하더니 나중에는 내가 없으면 많이 불안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데이트는 솔직히 별거 없었는데, 만날 때 동생이 같이 오지 않았다는 점 정도만 달라졌다

 

둘이서 창원 시내는 거의 다 돌아다닌 것 같은데 휴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걸어다녔다. 그러다 지치면 벤치에 앉아서 별거 아닌 이야기를 했다

 

너 전날밤에 라면먹고 잔거 같다고 얼굴 부었다고. 안 부었는데-- 이러면서 정색하면 볼 꼬집고 머리 흐트러뜨리고 그럼 둘 다 조금 시간을 두고 빵 터져서....

 

집에도 많이 데려다 줬고 걔네 어머니하고도 대화 많이 했었고

 

그때 자주 갔던 스타벅스는 솔직히 아직도 못간다

 

100일 선물로 은으로 만든 커플링 35000원하는거 싸구려티나는거 두 개 사서 나눠끼우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사하면서 잃어버렸다

 

 

 

걔랑 나랑 헤어졌던 건 걔가 아버지 부임때문에 고 3 초반에 말레이시아로 가면서였다.

 

시간으로 따지면 6개월 정도밖에 안 된 시간

 

딱 189일.

 

걔가 말레이시아 가고 난 다음에도 연락을 했던 걸 생각하면 200일 찍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걔가 가기전에 공항에서 세이코 시계를 선물로 줬다

 

아직도 그건 차고 다니고 있고,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헤어지면서 걔네 부모님 다 보고 있는데 둘다 펑펑 울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페이스북이라도 하면 소식을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모르겠다

 

못찾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학에 와 있고, 나는 스물 한살이 되었다. 지금 그 애가 뭘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가끔 내 생각하고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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