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들려오는 아기울음소리
쓰레기장 옆에 상자에서 들려온다.
덜컥 겁이났다.
한창 뉴스에선 아기를 버리는 내용을 다룬 이야기를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을 때라
혹시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더니
손바닥만한 고양이 한마리
눈도 못 뜬 새끼인듯 싶었다. 주인이 꼬리를 자르려 시도했었나
어째서인지 꼬리 끝 쪽은 줄에 묶인 모양대로 털이 빠져 피 범벅이였다.
동물이라면 종류 불문 무서워하던 내가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고양이를 품에 안아 집으로 달려갔다.
주변에 동물병원은 없고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들도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급한대로 상처 부위 먼저 흐르는 물에 씻겨내고 소독약을 발라주었다.
내 손바닥 위에 느껴지는 콩콩콩 울리는 진동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고양이를 만져본 순간이였던거같다.
이 조그마한 몸통에서도 나와같이 심장박동이 느껴지는데 말로 표현이 안되는 기분이였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안간힘쓰듯 씩씩거리며 숨을 느릿느릿 몰아쉬는데
혹여 내 큰손이 아픈아이를 다치게 할까봐 손가락 하나로 조심조심 쓰다듬으며 마음으로 응원을 했다.
그러면서 밀려오는 걱정.
아빠가 집에와서 보면 난리칠게 분명했다. 강아지를 예뻐하는 아빠임에도 집에서
동물은 절대 안키우는 성격인데, 게다가 어른들은 고양이를 요물이니 어쩌니 나쁘게 생각하니
당장 내다놓으라할게 뻔하다. 그건 둘째고 쓰레기장에서 주워왔다하면...
이말은 아마 꺼낼 기회도 없겠지 싶을 정도로 답이 없었다.
결국 몰래 숨겨놓고 상처가 아물때까지만 어떻게든 해보자 식이였다.
다음날이 되니 다행이 이리저리 움직여보고 눈이 안보인탓인지 이리 꿍 저리꿍 하면서도 잘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늘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던 나는 고요한 집에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것이 묘하게 외로움을 덜어주는 기분이 들었고
하얗고 동그란발 세모난 코와 사랑스러운 입매 어릴때 가지고 놀던 구슬같은 눈
그 작은 녀석을 찬찬히 뜯어보고있자면 신기하게도 시간가는 줄 몰랐다.
며칠가지 못해 고양이는 들켰다. 하루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커가던 녀석은 너무 건강해진
탓인지 배고프면 배고픈데로 화장실이 필요하면 필요한데로 마치 말을 갓 배워
종알대는 아기처럼 모든걸 야옹야옹 소리지르는 걸로 표현했으니 들키지않을 방법이 없었다.
물론 주워왔다는 말은 못했고,
친구가 키우는 고양이가 아기를 낳다가 죽었는데 친구 어머님이
너무 상처받으셔서 새끼를 내보냈다는 말도 안되는 소설을 써가며 몇일만 봐주면 입양 할 사람 찾아
보낸다고 둘러대었다.
뭐 먹힐거란 기대는 안했던 만큼 아빠의 불 벼락은 피할수없었다.
내 심란한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양이는 방 여기저기에 일을 저질러대고 나는 화가 잔뜩나
뛰어다니는 녀석을 붙들고 화를 냈다.
여기 찔끔 저기 찔끔 어째서 여기저기 볼일을 보는거냐고 소리치는데
고양이의 눈이 이상하다.
초점을 잃은 정도가 아니라 오른쪽 왼쪽 눈동자가 무서울 정도로 따로 놀고있었다.
이것은 피범벅때 받았던 충격과는 너무 달랐고 단 한번도 무언가 키워보고 떠나보내본적
없던 나는 당장이라도 죽을거 같던 고양이를 어찌할지 몰라 눈물만 죽죽 흘렸다.
무심히 헛기침하던 아버지는 내 울음소리에
너무나 담담하게 고양이를 데리고 방으로 갔다.
가까이 가지도 못한채 한발 물러서 지켜보며
속으로 ' 아빠가 분명 고양이를 버리려 할거야 어떡하면 좋지'
라며 마음만 졸이고 대책은 없었다.
아버지는 밖에 나갔다 오더니 아기들이 먹는 우유병과 우유 그리고 하얀봉지에 사료몇알을 들고 왔고
따듯한 우유에 사료를 불리더니 고양이에게 손으로 일일히 먹이는 모습에 눈을 못 뜰 정도로 울었다.
그날 이후 아빠는 더 이상 고양이를 보내라는 말은 없었다. 고양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기도 하였고
그러면서 활기를 다시 찾는듯 했다.
문을 닫고 제 각각 공간에 살아가던 우리가족은 이제 거실로 자연스럽게 나와
우스꽝스러운짓을하는 녀석 두고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16살 여름, 너덜너덜한 녀석을 나는 주웠다. 그리고 가족이 되었다. 혼자 산책을 다녀올만큼
건강하고 똑똑한 고양이로 커주었고 덕분에 우리아빠는 고양이아빠라는 별명이 생겼다.
녀석도 자신과 똑닮은 네 마리 새끼들의
아빠고양이가 되었지만, 한달 뒤 새끼들을 지키려다 들개 다섯마리에 의해
처음 발견한날처럼 너덜너덜해져 죽어버렸다. 내가 21살이되던 겨울에.
나는 새끼를 지키려 싸웠단 녀석을 보면서 아빠를 생각했다.
아마 나의 아버지는 어릴 때 아프기만한 너를 보며 나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나는 너를 주웠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네가 나를 구원해주었다는 표현이 더 맞는것 같다.
사람에게 무참히 버려진 너에게 나란 사람은 염치없게 선택받았고
24살의 지금도 길을 걷다 닮은 고양이라도 마주치면 네 생각에 심장이 쿵쾅거린다.
나는 봄에 마주치는 길고양이에게 늘 하는 말이있어
"겨울을 잘 견뎌주어 고마워"
나는 겨울 끝자락에 너를 잃어 사죄하는 마음으로 네 친구들을 마주치면 응원해
그래도 여전히 마음아프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