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소녀는 나보다 키가 컸다. 아니 나는 H소녀보다 키가 작았다.
나는 아담한 편이었고 그녀는 길다란 편이었다.아무튼 우리의 간격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H소녀는 새내기였고 나는 그런 새내기가 신기한 2학년이었다.아무튼 그렇게 우린 서로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첫만남은 선후배 대면식인가 하여튼 이름 복잡한 먹고죽는 술자리였다.데칼코마니 마냥 그날이 그날 같은 수많은 술자리 중 나는 그날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H소녀는 이미 입학식부터 학과의 연예인이었다.20살 H소녀는 모든 것을 다 가졌었다.
큰 키와 백옥같은 피부, 조금 말라서 볼륨감은 부족했지만 청순한 몸매.웃으면 초승달이 되는 만화같은 눈매와 과하지 않게 염색된 갈색 긴생머리.
약간 더워보이는 빨간 코트를 걸치고 조금 늦게 도착한 H소녀는이미 소주병에서 독소를 빼내고 있는 선배들에게 연신 죄송하다며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교양수업이 늦게 마쳐서.."
죄송함미다 함미다 미다 미다 다 다 다...H소녀의 아기자기한 말투는 그순간 나의 세반고리관을 휘저었다.
그리고 그날 내가 알게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H소녀의 최종무기'는그러한 외모와 그러한 말투가 아닌 '밑도끝도 없는 순수함' 이었다.
2.
H소녀와 내가 친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나는 그 당시 학생회와 동아리 활동 등으로 학과의 마당발이었다.
새내기들은 흔히 이런 선배와 친해지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삼는다.비록 나중에 버릴지언정 말이다.
작은키에 평범한 외모도 한몫했다. 섬씽따위 절대 없을듯한 태생적 만만함이여자 새내기들로 하여금 나의 주위에 모여들게 했다.
H소녀도 그렇게 나의 주위에 모여든 여자새내기중 한명이었다.나는 그렇게라도 H소녀와 가까워 지는 것이 행복했다.
3월 새내기들의 점심은 선배가 사주는 전통이 만연했다.이 3월을 위해 겨울내내 나는 초밥집 접시를 닦았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새내기1 새내기2 새내기3...을 돌아3월 중순쯤 되었을때 드디어 H소녀에게 연락이 왔다.
"선배님 저희도 점심 사주세요. 선배님 너무 인기 많으셔서 우리 까먹으신거 아니시죠?"
다음날 곧바로 약속을 잡고 H소녀를 만났다.형식적으로 나도 H소녀도 친구를 대동했는데, 내가 그때 데려간 내친구는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우와 선배님 진짜 이거 다 시켜도 되는거죠? 헤헤. 우리 되게 많이 먹어요!"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들고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메뉴판을 보는 H소녀를 보며나는 진심으로 가슴이 떨렸다. 맘같아선 그 식당을 통째로 사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번호로 다음에 밥자리를 하게되면보통 상당히 어색한 대화가 오고간다.
"그래 선배 누구누구한테 밥 얻어먹었어? 집은 어디야? 자취해? 밥은 해먹어? 고향은? 동아리는 뭐할거야? 학교생활 해보니 어때?"
이런 영혼없는 질문과 성의없는 대답이 오고간다.하지만 그 날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오고갔다.
확실히 H소녀는 사람들(특히 남자들)을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그건 H소녀의 외모뿐만 아니라 그녀가 지닌 모든 것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사실 그러한 즐거운 분위기는 그녀와 함께 나온 A걸에게도 큰 공이 있었다.활달한 성격의 A걸은 H소녀와 가장 친한 친구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절친이 되는 장소는 두가지가 있다.하나는 논산훈련소, 하나는 신입생 OT.
그 둘은 만난지 한달도 안된 주제에 마치 소울메이트 같았다.뭐 아무래도 좋았다. H소녀가 내 앞에서 웃고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 자리에서 우린 오빠동생이 되었다. 선배라는 호칭대신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친분의 표시였다.
H소녀가 나를 오빠라고 부르던 그날.나는 비로소 남자가 되었다.
3.
3월도 다 갈때 즈음, 껍데기만 있는 관계들은 서서히 정리되었다.학과의 사람이 많다보니 동아리, 학회, 소모임 등으로 교통정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공통 모임이 없는 사람들은 새로운 이들이 유입되는 내년 봄까지 남이되기 일수였다.정말 다행스럽게도 H소녀는 내가 속한 동아리에 가입원서를 냈다.
별 생각없이 동아리방에 들어갔던 어느날, 신입생 지원서를 보던 내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야, 너 H소녀랑 무슨 사이야? H소녀 우리동아리 지원한거 알지? 걔가 친한 선배에 니 이름 썼더라"
무슨 이런 황송한 질문이 다 있나 싶었다. 나는 담담한척 친구 대동해서 밥한번 먹은 사이일뿐이라고 대답했다. 마치 연예인이 된 느낌이었다.
H소녀는 역시나 A걸과 세트로 묶여다녔다.원플러스원은 새내기 여학생들의 습성이었다.
회장이 H소녀를 데려오기 위해 A걸에게 러브콜을 엄청 쏟았다는 소리가 있었다.술자리를 사랑하고 외향적인 A걸은 우리 동아리에 매력을 느끼고는 H소녀와 들어온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깨달음을 얻은 듯 했다.원플러스원. 내가 왜 그생각을 못했을까.
오빠라는 호칭에 취하여 진전이 없던 나날들이었다.사실 H소녀의 오빠들은 매일 늘어나는 추세였고 나는 "대학생활 도우미" 수준으로 전락중이었다.
나는 A걸과 본격적으로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A걸은 친해지기에 너무 손쉬운 상대였다.
부천집에서 서울까지 등하교 하는 H소녀와 달리지방에서 상경한 A걸은 학교앞에서 자취하는 새내기 여학생이었다.
'학교앞에 자취하며 술을 좋아하고 사교성이 좋은 새내기 여학생'과 친해는것보다 쉬운일은아마 세상에 얼마 없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A걸에게 연락을 했다.
to be continued...
== 덧붙이기.
다음편 문의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렇게 덧붙여서 글 올립니다. 다음편 이미 다 썼구요. 여기 주소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1탄 주소 입니다.
http://pann.nate.com/talk/3179308992탄 주소 입니다.
http://pann.nate.com/talk/3179365643탄 주소 입니다.
http://pann.nate.com/talk/3179596254탄 주소 입니다.
http://pann.nate.com/talk/317965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