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처음 봤던 OT때가 생각난다.
우린 다들 너무 어색해서 멀찍히들 떨어져 앉아있었지.
그날 소주를 두병은 마신 것 같은데도
긴장했던 나는 취하지도 않았었어.
니가 나에게 반한 건 이튿 날 아침이었지.
햇빛이 비추는 내 얼굴 뒤로 후광이 보였다고 그래서 첫눈에 반했다고.
그 말은 아마 평생 기억할거야.
당사자가 나인데도 그 얘길 들을 때 난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았거든.
그 말 처음 너에게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웃었었는지.
같은 오티조에서 두명의 조원이 날 좋아한단 걸 알았을때
나는 기숙사 방에서 머리를 쥐어뜯곤 했어.
내 룸메는 드라마가 따로 없다고 옆에서 웃고 있었고 말이지.
처음에 난 둘 다 거절이었고.
그리고 MT, 너의 의도와 네 주위 친구들의 의도로
우린 담력훈련 짝이 됐었고 난 무척 용감한 척 했었지.
끝내는 한번 망신당했지만 말이야.
그때 내가 소리 한 번 지른 걸 웃으며 동기들한테 말한 건 좀 얄미웠어.
나는 니가 날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널 외면했고
그러다 내 생일이 왔어.
학교안의 작은 공연장같던 그 곳에 예쁘게 놓여져있던 촛불길,
그리고 하트모양의 종착지엔 꽃다발을 든 너.
니 전재산 5만원을 털어 했던 너의 이벤트.
미리 눈치채는 바람에 감동의 눈물 보여주지 못했지.
그래도 난 그날 니 마지막 고백에 답례로 Yes를 줬어.
사실 그때만 해도 니가 좋았던 건 아냐.
'그냥 한번 만나보지 뭐.' 이정도 생각이었어.
너. 그거 알아?
나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사람이야~
근데 떠올려보면 너한테 그때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아.
이슬만 먹을 것 같았나 내가.
학교 앞 김밥이 커다랗지만 맛있었던 곳.
넌 내가 그 김밥을 먹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며 그 곳엔 가지 않았었잖아.
사실 난 입 안 가득 음식이 차는 걸 좋아하지 않기는 해.
무거운 가방을 들어서 멍이 든 내 팔뚝을 신기해하며
주변 동기들에게 자랑하듯 보여주던 너.
몸뚱아리가 약한 건 자랑이 아닌데,
그게 너에겐 연약함의 상징이라도 되는 거였나봐.
그리고 니가 제일 친한 친구한테 날 소개시켜주기로 했을 때 말이야.
사실 난 좀 널 팰 뻔했어.
내가 실제로 널 팼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여자친구를 자랑하고 싶었던 니 마음은 이해를 하겠지만
김태희보다 예쁘다고 말을 하면
니 친구가 실제로 보고 실망을 얼마나 할거며 얼마나 화가 나겠니. - _ -
아마, 그때 우리가 너무 어렸었기에
그러니까 넌 나에 대한 환상에 가득 차 있었겠지만
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람"이란다!
예쁜 기억, 고마운 기억, 미안한 기억이 꽤나 많아.
운동장 계단에 둘이 앉아 있을 때
넌 내가 자일리톨을 씹고 싶다고 하자
운동장 건너편에 있는 매점을 뛰어 갔다 왔었지.
카페에 앉아있다가 레몬맛 사탕이 먹고 싶다는 내 말에
편의점 세군데를 뒤져서 사다줬던 너.
놀라울 만큼 얼굴이 얇았던 너는
사탕이 없던 처음 두 곳의 편의점에서 드링크제를 사마시고 와서는
내게 레몬맛사탕을 건네주고 물배에 힘겨워했지.
그 모습이 바보스러우면서도 참 기분이 좋았어.
난 내 가방은 내가 들자는 주의인데도
넌 만나기만 하면 내 가방을 뺏어갔었어.
축제날 쌀쌀하던 때에 날 덮어주겠다며 기숙사에서 가져 온 핑크색 가디건.
아무날도 아닌데도 날 맞아주던 장미꽃 한송이.
기숙사 앞 50m까지 사다줬던 죽.
(참치죽을 사달라고 해서 미안해.
기어이 다른 죽을 사온 니가 이상했는데
너와 사귀기 전, 다른 아이가 참치죽 사다줬던 걸 니가 알고있는지는 몰랐어.
기분 안 좋았을텐데 티도 안내고!)
난 자주 장난이 지나쳤었지.
봄날의 캠퍼스에서 니 머리에 커다란 꽃을 꽂아놓고는 못빼게 하고
니가 가르쳐 준 때리는 법을 사람 많은 거리에서 네게 하기도 하고
풍선을 무서워하는 니 옆에서 풍선으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가만보면 난 좀 사악한가봐.
내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던 넌 한참을 내 손도 잡지 못했었지.
네 손 먼저 잡은 거 나였잖아.
근데 손 잡고 걷게 된지 좀 지나서 니가 진지하게 했던 말 기억해?
다리에 손이 자꾸 닿는다고
그래서 내가 오해할까봐 자꾸 신경이 쓰인다고.
손을 잡고도 그 손 내 몸에 닿지 않게 하려고 애쓰던 너
귀여워서 웃음만 나왔었어.
나랑 사귀기 전에 자른 머리.
밤톨같이 되버려서 술에 취해서 그랬다며,
나 만나야 하는데 머리가 그렇게 됐다고 어떡하냐고
아 내 머리! 아 내 머리!
니가 울부짖었다고 그 술자리 있던 애한테 전해들었어.
그랬을 니 모습 상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
근데 그 밤톨 머리 귀여웠어~
난 너에게 고마웠던 게 참 많지만,
그 중 가장 고마운 건 예쁜 첫키스의 기억인 것 같아.
자주 가던 카페 겸 밥집 기억하지?
거기 주인 이모가 나보고 문어다리해도 되겠다고 해서
니가 기분나빠했었잖아.
그래도 저녁 무렵 카페 2층에 우리 둘만 남았을 때 촛불을 제외한 조명은 끄고
예쁜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던게 그 이모니까 미워하지마~
그 때 그 첫키스의 순간
모든게 아름다웠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떨림이야.
어찌나 덜덜 떨던지 내 볼에서 입술까지 그 떨림이 선명히 전해지는데
나 웃을 뻔 했잖아.
그렇게나 떨리는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줬다는게, 예뻐도 너무 예쁜 기억이라
너의 그 때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워.
항상 손이 찬 나는 따듯한 니 손이 참 좋았어.
사실 내 손이 따듯했다면 난 손이 차가운 사람은 별로 였을 것 같은데
흔치 않게 내 손이 따듯했던 어느 날 니가 말했지.
내 손이 따듯해서 실망했다고.
내 차가운 손을 녹여주는게 너무 좋은데 오늘은 손이 따듯하다고.
그 말이 얼마나 내 마음을 따듯하게 했는지 넌 알까?
넌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절대 잡지 않는 타입이라고 했지.
사실 그래도 난 그렇게나 날 좋아하는 니가 그럴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형편이 어려웠던 너였기에 데이트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했던 나는
니가 알바라도 하길 바랬는데 넌 그런 것에 대해 너무 몰랐고
또 부모님의 반대를 이유로 들었었지.
그게 사실이었던 거 알아.
니가 나한테 뭔가를 아까워하거나 계산하기에는 넌 날 너무 좋아했잖아.
근데 그때는 이것 저것 조금씩 다 답답했었어.
넌 나에게 큰소리 한 번 내는 일이 없었어.
우리가 기분이 안 좋을 땐 넌 풀이 죽어 있었고 난 짜증을 냈고
그게 다였어.
마지막으로 싸웠던 건 내가 집에 걸어오는 길에
아는 남자 선배랑 마주쳐서 같이 걸어왔던 일 때문이었지.
넌 질투에 속상했던건데 좀처럼 말을 하지 않았고
매번 풀죽어 있을 뿐 제대로 말을 하지 않는 너에게
너무 답답했던 나는 이렇게 답답할 바엔 그만두겠다는 생각에
너무 쉽게 헤어지자고 말했고 진심이라고 문자까지 보냈어.
사실 그때까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몇 시간 뒤 니가 인터넷에 내 흔적을 모조리 지운 걸 보니
그제서야 실감이 나더라.
한번도 이별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던 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랐어.
마음이 아파 널 다시 잡으려 했을때
난 아무 것도 되돌릴 수 없었어.
그리고 니가 군대에 간다는 얘길 들었지.
동기로부터 전해들은 말에서
어렴풋이 군대갔다와서 다시 날 찾겠다는 니 생각을 알았을 땐
사실 난 널 비웃었어.
그땐 무척이나 너에게 화가 나 있었거든.
먼저 헤어지자고 한 건 나였는데도 그냥 그때는 그렇게 화가 났었어.
우리가 만날 때
내가 적어도 열 명의 남자는 만나보고 결혼을 해야한다는 말을 했을 때
넌 너 군대 가 있는 동안 그 열명 만나고 다시 널 만나면 안되겠냐고 했었는데
어쩌면 너 그 말 진심이었나봐.
사실 너와 헤어지고 나 한동안은 널 많이 미워했고
또 한동안은 널 잊고 싶어했고.
그리고 한참동안 너를 까맣게 잊었어.
그런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때의 너,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
솔직히 나 널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아.
이제는 예전처럼 그렇게 순수하게 아무런 계산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만나는 거 못하게 됐거든.
흘러버린 시간이 내가 겪어온 날들이
나를 성숙하게도 했지만
나를 계산적인 겁쟁이로 만들기도 했거든.
그렇지만 너에게 꼭 말하고 싶었어.
니가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고 마 워.
그 짧은 만남 동안에 이렇게나 예쁜 기억을 선물해 준 네게 정말 고마워.
널 기억하며 웃을 수 있으니 정말 정말 고마워.
부디 이 거친 세상에 넘어지는 일 없길
구혜선 닮은 예쁜 여자친구도 만나길
네 앞길에 햇살만 가득하길 바랄께.
나의 첫 남자친구야.
고마웠어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