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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고해

아아주여 |2013.03.17 01:52
조회 145 |추천 0
그다지 어릴 적도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아직 대학생이었던 그 때 솔직히 말해서 여자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던 주제에 입만 살아서 동동 떠다니던 어리버리한... 그야말로 사랑 한 번은 커녕 여자 손 잡아 본 것도 고등학교 포크댄스 때가 처음이고, 그게 마지막인 남자였을 그때의..

이제 막 전역한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서 잠에서 깨어나서 시계를 보면 아직 6시 정각인 경우가 태반인 그런 물 오른 복학생이던 그 시절 내가 처음으로 사랑이란 걸 시작하게 되었다.

1학년 때 나는 동아리 활동을 했었다. 물론 그 작은 역사 관련 동아리는 여자들의 관심 밖이었고, 역시나 우리 동아리는 남자 6명이 전부였다.
그 중 5명이 내 동기였고, 한분이 회장이자 선배셨는데 rotc 4학년 대선배셨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당시 05년 마지막으로 남자 6명이 대학정원에서 막걸리에 두부를 먹고 입대한 뒤로 동아리는 폐쇄되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지.
역사 동아리에, 폐쇄되어 다른 동아리방이 되어 있어야 정상인 그곳이 아직 명패가 걸려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왠 여자 후배들이 바글바글하더라.
더욱이 한명, 두명도 아니고 전부 다 여자.

갓 전역해서 구질구질 복학생의 캠퍼스 라이프에 찌들어보려던 나는 아주 신이 났다. 그땐 정말 동아리 술자리에 술게임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그냥 죽자고 먹고 먼저 취한놈 술주정보면서 쾌감을 느끼던 구릿빛 술자리는 사라지고, 수십가지 술게임이 복학한 우리를 반겼다.

그때 난 한명의 후배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무슨 말에도 잘 웃어주고, 쾌활함에 주변까지 환하게 비춰주며 리더쉽까지 갖고 있던...
그런 밝은 후배였다. 음충맞게 만화책이나 보며 히히덕거리던 나에게 어쩌면 그 아이는 빛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모임으로 바쁘던 그 아이와는 다르게 나는 친구들과 pc방을 가든지 만화방을 가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
나에겐 그 밝은 아이와 함께하는 동아리 모임이 일탈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독 그 아이는 인기있었고, 제법 소심했던 나는 고백은 꿈도 못 꾸었다. 내가 뭐라고 고백을? 외려 못생긴 편이라고 자학하던 그 시절인지라 다가가지 못했다.
멀리서 바라만 봐도 좋았기도하고...

어느날은...

친구라는 놈이 그 아이에게 고백을 했을 때 그저 화이팅! 이란 말을 외쳐주며 술이나 퍼먹었다. 결국 그 친구가 차이는 걸 보고 한편으로 안도하고 한편으로 더욱 자신감을 잃어가는 나날 속에서 나는 여자가 필요한게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결론은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말 존재하더라.

그저 속으로 삼키며 바라만 보다가 그렇게 1년이 가고 당시 마지막 학년이었던 그 아이의 졸업..

내 마음은 곱게 접어서 웃음으로 포장하고 그 아이의 졸업을 축하해줬다. 취직 빨리하라고 응원해주며, 그렇게 돌아섰으면 좋았을텐데...

그 끈이 끊어졌어야했는데...

모자란 마음은 결국 상처를 입혔다.

지방대에서 공부하던 나는 어느 날 그 아이의 연락을 받았다.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찮게도 그곳이 선배가 사는 곳이더라.
나중에 시간되면 만나서 옛날 이야기라도 하자.
그런 일상적인 대화.

그러나 그 대화는 나에게 계시처럼 들렸다. 신이란 존재가. 빌어먹게도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기들을 우르르 데리고 그 아이가 취직한 내 고향으로 상경했다. 직장일로 바쁜 그 아이를 붙잡고 오랜만에 부어라 마셔라 술을 먹고 동기들을 보내고 난 그 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던 길에 고백했다. 좋아했노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왔다고.

개뿔 무드도 없이 술집이 즐비한 그 번화가에 서서 시끄러운 노랫소리와 구역질나는 토사물이 즐비한 거리에서 술에 취한 채 고백했다. 그리고 당연히 차였다.
그냥 친한 오빠동생이란 말을 듣고도 포기를 못했다.

그 아이는 전혀 마음이 없다는 것을 그때도 지금도 알고 있지만 그때 간절한 마음은 포기를 하지 못했다.

얼마간 더 보아달라고. 내가 너에게 어울리는 남자라는 걸 증명하겠노라고. 오그리토그리. 와글와글. 주옥같은 명대사를 있는 대로 날려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여자의'여'자도 모르는 얼간이가 자신감만 가득해서 제멋대로 한 고백에도 그 착했던 어이는 여지를 두었었더랬다. 다음 기회를 받고 좋아했던 얼간이갚지금 내 눈앞에 있다면 연애 코치라도 해주었을텐데...

그 다음 기회부터 본격적으로 나란 남자 이런 얼간이...
라는 것을 어필하게 되었다. 첫 데이트에서 영화보고 밥먹고 커피먹는 그런 과정조차 몰랐다. 하루종일 생각해 낸 데이트 코스가 분위기 좋은 술집이었다.
정말 솔직히 술먹이고 어째보겠다는 의도보다는 말 한마디 못하겠어서 술기운을 빌리고 싶었다.
물론 그 아이는 순순히 따라와주긴했지만 좋아할리가 없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얼굴이 붉어진다. 그 아이 기분이 어땠을지도 예상이..

결국 술취해서 추태부리고 그렇게 첫만남이 끝났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얼간이로 끝났어야했는데..
그 착한 아이가 기회를 또 주더라..
이번에는 밥을 먹자!

빕스에 처음가보는 복학생. 샐러드바의 존재를 모르다.

6만원 스테이크 2접시에 데이트 자금이 사라지고 밥만먹이고 헤어졌다.

못난 행동들, 못되먹은 고백, 충분히 서로에게 괴로움을 주었던 긴 시간들이 지나고 서로 얼굴도 보지 않게 됨이 전부 내탓이었다. 죄책감에 밤마다 담배를 물고 밤하늘을 보는 게 일상이 되었고,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이 일을 해줬더라면하고 후회하며 반성하는 하루하루...

그 시간들이 약이 되어 성격도 변하고 여자의 '여' 자는 알아챘다.


그리고 많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제대로 된 연애를 하게 되었고, 애인이라고 할만한 여자도 생겼다.


그러던 하루, 번화가에서 알콩달콩 깍지끼고 길을 가던 중 반대편에서 터벅터벅 퇴근하는 그 아이와 마주쳤다. 스윽 스쳐가던 중에 나도 모르게 바라본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서로 의식적으로 눈을 피했다. 난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너 아니면 죽을 것 같다. 이 말도 했었다.
영원히 너만 사랑할게. 이 말도 했었다.

말은 역시 말이구나. 쉽게 내뱉는 그런...

그 아이와 마주친 그 길. 그 아이에게도 지금은 헤어진 여자친구에게도 미안했던 그 길을 오늘 걸었었다.
변함없이 부끄러운 그 길을 걷다보니 유난히 끊은 담배가 생각나서 신세나 한탄하는 걸로 참아보려 글을 써 봤다. 두서도 없고 대중도 없이... 그냥 써본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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