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르지 않던 나른한 저녁시간 현관 유리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그 녀석이 보였다.
이 녀석이 이곳에 방문한지 벌써 3일째다.
나는 PC방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얼마전 대학을 입학하면서 이곳을 그만뒀지만 일년간 나를 지켜본 사장님이 나름 유능한 인재라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학교 다니면서 알바를 할 수 있게 편의를 봐주셨다.
그 덕분에 낮에는 학교 다니면서 공부를 했고 과제나 시험기간이 아닌 평일에만 다섯 시간씩 아르바이트 해서 여대생이 할 수 있는 최소 비용으로 나를 꾸밀 수 있었다.
나는 일 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손님에 대해 빠삭 했다.
손님들이 어떤 음료를 드시고 어떤 게임을 하는지, 이런 사소한 것들을 모두 파악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이곳에 새로 보이는 얼굴이 들어오면 유심히 관찰했다. 보태 말한다면 사실 나는 사람을 관찰하는걸 좋아했다.
저 녀석이 처음 온 날 시원스레 천장으로 뻗어있는 큰 키와 지면에 떨어지는 흰 눈을 닮은 뽀얀 피부를 시험날 컨닝하는 학생처럼 긴장감 있는 얼굴로 틈틈이 살폈다. 살짝 찢어진 눈과 작지만 매섭게 솟은 콧등이 그녀석 얼굴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는 살짝 마른 체형에 흰색 후드티를 자주 입었고 진하지 않은 회색 파카를 따뜻하게 걸쳤다. 그리고 옅은 물 빠진 청바지에 손을 넣고 하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매일 흥얼 거리며 그 녀석은 처음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이내 반짝이는 눈동자를 빠르게 흡연구역 으로 돌렸다.
나는 한 참을 그녀석이 들어간 흡연구역을 바라봤다.
헛웃음을 지으며 나보다 연하 같은데 무슨 생각이람. 하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나는 학교 과제로 써오라는 리포트 주제들에 대해 인터넷을 불이 나듯 뒤지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같은 내용을 적을 수 없노라는 투지를 불태우며 내 얼굴은 점점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때였다. 산속에 울려 퍼지는 스님의 목탁 소리처럼 맑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저기요. 누나?”
누나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흡수 되어버릴 뻔 한 모니터에 얼굴을 떼고 놀란 토끼눈 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부른 사람을 쳐다봤다.
내가 매일같이 관찰하던 그 녀석 이었다.
“어? 왜?”
이 녀석이 내게 말을 시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곳은 PC방이다. 손님이 알바 생을 찾는건 당연한 일이였지만 나는 왜 그렇게 놀랐는지 모른다. 그리곤 어색한 미소한 지어보였다. 일하는 가게에 손님이 불러준 것뿐인데 이상하게 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볼이 빨개지고 나는 자리에 일어나는것도 까먹은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그 녀석을 빤히 쳐다봤다.
“저기 안에 너무 추워요. 난방 좀 해주세요.”
간단하게 자기 말을 하고는 그녀석도 내가 웃겼는지 피식 웃었다.
너와 처음 섞은 첫마디가 기뻤음을 아는지, 가슴이 자꾸만 뛰고 있는걸 아는지 모른 채 그 녀석은 흡연석에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수정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옷의 모양새를 자리 잡았다. 그리곤 흡연석으로 들어갔다. 내 손엔 리모컨이 들려있어 구지 그녀석이 있는 자리까지 가지 않아도 됐지만 내 발걸음은 이미 그 녀석이 앉아 있는 의자 뒤쪽 까지 갔다. 그 녀석은 내가 바로 뒤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스타크래프트에 집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지만 난 그 주변을 아직도 서성이며 기존에 알고 있던 손님들에게 커피를 갔다주는 수고를 했다. 평소엔 알아서 뽑아 드시라며 손님께 백원을 손에 쥐어 주던 패기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손님들도 고마웠는지 아가씨가 이런 적 처음이란 눈빛을 보냈다.
그때 그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지 삼십분 밖에 안됐는데 벌써 가는 걸까 싶어 아쉬웠다. 삼십분 동안 난방 해 달라는 말 한마디 밖에 못했는데 벌써 간다고 생각하니까 다신 못볼것만 같은 느낌에 서운했다.
근데 그녀석이 점점 내게 가까워졌다.
그리곤 내 앞에 우뚝 서선 살짝 짜증난 표정을 지었다.
“저기, 누나 왜 에어컨을 트세요.. 저 추워 죽겠어요.”
그 녀석은 말을 끝내자마자 빨개진 자기 손을 모아 호호 불었다.
왜일까 나는 흡연석에 10분 동안 에어컨을 틀었는데 춥지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지만 서둘러 리모컨에서 난방을 눌렀다. 그리곤 빤히 리모컨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 내가 이 한겨울에 에어컨을 틀었니? 하하.. 미안....”
나는 진짜 미안했는지 아니면 창피했던 건지 그 녀석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말했다. 그 녀석은 한겨울에 에어컨을 틀어준 내가 원망스러운지 좀처럼 화를 풀려하지 않았다.
딱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던 나는 좀 전에 손님들에게 나눠줬던 자판기 커피가 생각났다.
“뜨거운 음료라도 줘야하나? 음 너도 커피 뽑아줄까?
말을 끝내자마자 나는 몸을 돌려 시선을 자판기 커피에 향했다.
그러자 돌아서는 내 몸을 잡으려는 듯 그녀석이 말했다.
“그거 말구요.”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그 녀석을 바라봤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거 말곤 차가운 음료밖에 없는걸? 그럼 뭐줄까?”
“누나 이름이요. 누나 이름 알려주세요.”
몇 초간 멍해졌다. 계속 이 녀석 주변을 맴돌며 호강하던 눈이 커졌다. 지금 내게 반한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냥 이름만 궁금했을 수도 있는 것 같고, 혹은 단골이 되려고 친하게 지내자는건가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좀처럼 결론 내기를 두려워했지만 나는 떨리는 입술을 차츰 열었다.
“나는..”
내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본인의 이름을 전하며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이준호.”
처음으로 그렇게 긴 시간을 아무 말도 없이 눈빛으로 서로를 알았다. 그때 마주친 눈빛이 너무 맑아서, 너무 예뻐서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생생하게 귀로 전해들은 나는 살포시 웃었다. 이윽고 내 눈이 하늘에 반짝이는 초승달 모양으로 변하며 내 주변 색깔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