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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나한테만 겨울인 4월..

에휴 |2013.04.06 00:20
조회 1,652 |추천 7
끝났다.이뤄 놓은 건 아무 것도 없는데 다 끝이 났다아니 끝났다기 보다는 내가 끝낸 것이다
CC였다.너는 공부를 참 잘했다.나보다 어렸고 무뚝뚝했지만 미래에 대한 생각이 확고한 성실한 대학생이었다.그리고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무엇을 할 지 몰라 방황하는 대학생이었다.너의 성실함이 마음에 들었고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으며, 결국에는 분위기에 휩쓸려 너의 고백을 받아냈다.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이겠지만행복했었다고 확신할수도 없었다.왜냐면 우리 둘 다 표현에 서툴렀기 때문이었다.문자로, 카톡으로는 쉽게 사랑을 말했지만 막상 입 밖에 꺼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아마 둘 다 은연 중에 항상 그것을 섭섭해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사실 네 탓이 아니라 우리의 탓인데도 나는 늘 네 탓을 했다.
넌 날 좋아하지 않는것 같아.좋아한다면 이럴 수 있어?내가 그렇게 편하니?
추억도 별로 없었다.둘 다 대담하지 못해 외박은 꿈도 꾸지 못했다.집 근처와 학교 근처, 가끔 시간이 날 때면 시외버스를 타고 교외로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때마다 우리는 늘 다투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덥다고 다투고,배가 고프다며 투정을 부리다가 다투고,네가 사준 음료수를 다 먹지 않고 버린다며 타박하는 네게 섭섭함을 토로하다 다투고올라가고 싶지 않은 산을 올라가야 한다며 날 잡아 끄는 네게 화를 내다 다투고.
그리고 작년 여름, 네가 군대를 가고 너의 편지를 받기 위해 수강시간표를 모조리 오후로 바꾸었다.너는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만.한번에 다섯 통을 써서 부친 적도 있었다.연애 자체를 반대 하시는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나의 생각이었고, 나는 늘 편지를 가장 먼저 사수해 내곤 했다.맘에 들지 않는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저녁에서야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것이 힘들지는 않았다.일주일에 한번이면 아파트 1층 우체통에 편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톡으로, 문자로 남발했던 사랑한다는 말이 너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을 때나는 너의 마음을 가끔 의심했던 것들을 반성했었다.
훈련병이 끝났을 때는 10월 초였다.
네가 군대를 가고 겨우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겨 무던히도 학원을 다녔을 때 부터는내가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너는 자연스럽게 편지를 보내지 않게 되었다.내가 보내지 않을 때에도 오곤 했던 편지들이 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 너의 마음을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전화로 편지를 보내달라고 조르면, 전화를 할 수 있으니 편지는 보내지 않겠다고 말하는 너를 보면서 섭섭해 할 수도 없었다.
군인이니까.
차라리 그때 우리가 크게 싸우고 서로를 이해했더라면 며칠 전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휴가를 나올 때마다, 우리는 어디를 가야 할 지 몰라 길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늘 같은 데이트와 같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왜 이렇게 재미가 없는 건지.연인이라면 어디를 가도 즐거워야 하는 것인데도, 나는 똑같은 데이트에 지겨워지고 있었다.그렇다면 나는 사실 널 사랑하지 않은게 맞나. 착각하고 있었던걸까
너와 나의 생일이 네 휴가와 비슷한 시기에 겹쳐 일주일 내내 고심했던 선물을 들고 네게 나타났을 때 그제서야 너의 첫마디는 귀걸이 사러 갈래? 였다.귀걸이가 싫다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내가 선물을 내밀자 그때서야 귀걸이 이야기를 꺼내는 네가 섭섭했다.내가 선물을 내밀기 전, 먼저 귀걸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너에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까?하다 못해 데이트를 오기 전 집에서 돌아다니는 연습장을 찢어 생일 축하한다는 카드조차 쓸 수 없었을까.그래도 나는 네가 섬세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위안 했다.
군인이니까.
내가 휴학을 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 타지에서 자취를 할 때, 휴가 때에 거기 까지 가기 어렵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전화기에 대고 울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넌 군인이니까.
난 공부 때문에 바빠서 도저히 왕복 8시간 버스를 타고 면회를 갈 수 없었다.어쩌면 이것도 다 핑계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사랑을 갈구 할 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너도 표현 안하는건 마찬가지야. 나한테만 그러지마.그래서 네가 내게 올까말까 고민하는 말들은 내게 이렇게 들렸다.
너도 한번도 면회 온적 없잖아.
그냥 나는 너에게 먼저 사랑받고 싶었다.어느 여자가 그렇듯, 내가 원하는 작은 것들을 먼저 표현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뿐이었는데먼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벌인가.
너는 좋은 학생, 좋은 아들, 좋은 친구이자 좋은 형이었지만, 자상한 남자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그렇다면 나는 좋은 딸, 좋은 학생, 좋은 친구이자 좋은 누나인가.그렇다면 나는 살뜰한 여자친구가 맞았나,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들이 쌓인다.
4월이다.4월의 첫째주가 지나간다.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데, 같이 갈 사람은 없다.
작년엔, 넌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며 벚꽃 구경은 같이 가주질 않았다.그래서 사실 이번 휴가엔 꼭 같이 가고 싶어서 여러 군데 알아보았는데도 전화로 말하지 못했다.꽃 구경을 가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내가 네게 헤어짐을 종용했다.
후회하냐고 물어보면, 모르겠다.마지막으로 네게 날 사랑하냐고 물었을때, 너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내가 그럼 사랑하지 않는것이냐고 물었을 때도, 너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헤어지자는 말에 후회하지 않으냐고 묻는 너의 말에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실 잘 모르겠다.어쩌면 나 또한 사랑할 사람이 있어서 행복했던 것이 아니라날 사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에게서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해 억울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네게 사랑을 갈구하기 전에 내가 백번 정도 사랑한다고 말했다면너도 감동받아 백번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사랑한다고 대답해 주었을까
널 사랑했던 걸까?이제는 그것도 잘 모르겠는데, 너와 헤어지고 잘 때마다 혼자 누운 침대 위에서 눈물이 난다.사실 지금이라도 네가 전화하며 꽃구경을 가자고 하면 웃으면서 그래, 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럼 이건 사랑일까.
페이스북에 비밀그룹 올려두었던 이야기들을 네가 다 읽은 것을 확인했다.헤어진 뒤였다.꽃구경을 가자며 신나서 썼던 글들이었다.그런데도 너는 전화 한 통 오지 않는다.당연하다. 헤어졌으니까.
헤어지자고 말했더니, 알았다고 대답했다.그 대답을 듣고서야, 지금껏 그 말을 다른 여자들처럼 단 한번도 내뱉지 못한 내가 후회가 되었다.헤어지잔 말은 금기였으니까.그래서 더 진심이 느껴진 걸지도 모르겠으나이렇게 빨리 알았다고 대답할 남자에게서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건지.사실 헤어짐을 종용하면서 무언가 기대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인것이다.
남자는 사랑하면 붙잡는다는데,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나.나는 네가 날 온전히 좋아하고 사랑해주기만 했던것만 바란 것이었는데, 무뚝뚝한 내게 사치였나.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건 거짓이다.그렇다고 기다린다고 말하는 것 또한 거짓이다.나는 공부하느라 눈 코 뜰 새없이 바쁘고, 널 기다리겠다며 청승을 떨고 있을 여유도 없다.
그런데도하루 일과가 끝나니 네 생각이 밀려든다.방금 페이스북을 확인한 뒤엔 더욱 그랬다.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를 후회하지 않는다그저, 네가 알았다고 대답했을 때에 서러웠던 것 뿐이다.
추천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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