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인테리어] 서재같은 분위기의 햇살 가득 아이 놀이방

이봉주 |2013.04.13 13:38
조회 104 |추천 0

우리 집 서재엔 아치형의 아주 큰 남서향 창문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엔 남편의 사무실로 썼던 곳이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아이 방 외에도 놀이전용공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말이 거창해서 '놀이전용공간'이지 사실 이 코너 저 코너 아이 장난감들이 우리집 전체를 차지하게 하고 싶지 않은 남편와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아이 놀이방이었다. 이 놀이방 외에도 패밀리룸의 TV 장 안에도 아이 장난감을 가득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정리를 해두니 아이 가진 집 치고는 꽤 정신차릴만한 분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한국에 살았다면 넓게 넓게 공간 쓰기가 어려웠을테므로 아이 물건들이 집 전체를 잠식해버리는 상황이 쉽사리 만들어질 수도 있었을 듯. 허나 어떠한 사이즈의 공간이든지 공간의 한계를 염두해두고 물건을 가진다면 - 다시 말해 자신의 테두리를 분명히 안다면 - 물질이 정신을 황폐화 시킬 일은 없기에.

 

 

 

 

벽 페인트 색은 따뜻한 느낌의 카키다. 정원수가 보이는 바깥 풍경과 참 잘 어울리고 남서향 햇살을 잘 어루만지는 색이다. 평화로운 마음 상태를 유지시켜주는 색이기도 하다. (평화로운 마음 상태는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아주아주 중요하다.) 윗 사진에서 아이는 한살 반쯤 되었을 때였다. 아이 닿는 곳에 아이책들을 놓아두어 장난감처럼 놀게했다. (더 어렸을 땐 책을 염소처럼 야금야금 뜯어먹기도 했다. 다행히 이 버릇은 지금 사라졌다.) 바닥에서 무엇을 그리는 것은 허리를 뻐근하게 하므로 적당한 사이즈의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아이의 색칠 공부를 도왔다.

 

지금도 '뽀로로'를 너무나도 좋아하는데 뽀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을 때, 정말 뽀로로는 아이의 절대적인 존재였다. 뭐든 캐릭터 상품을 말도 안되게 비싼 경향이 있다. 태평양을 건너 밴쿠버에 도착한 뽀로로 상품은 그 값어치가 상당하다. 한국 수퍼에서 뽀로로 칫솔 하나를 사주며 돌아섰었는데 그래, 내가 좀 만들어보자 싶어서 달러샵에 가서 이런 저런 색상의 얇은 폼지를 구해서 뽀로로 캐릭터를 만들어주었었다. 이 캐릭터들 덕에 아이의 놀이방은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사진엔 없지만 포비도 만들었었고 뽀로로와 크롱이 키우던 민들레도 만들어 벽에 달아주었었다. 이 캐릭터들을 놀이방에서 발견했을 때 아이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 엄마는 실로 위대하다. 아이를 위해서 '별짓'을 다한다.)

 

창문에 캘리포니언 우든 셔터가 달려있긴 하지만 바깥 풍경 보는 재미로 잘 닫아두지 않는다. 남서향의 햇살이 저녁 무렵엔 따가울 때도 있어서 창문에 뭐라도 달아 슬쩍 슬쩍 햇빛을 가리기도 했다.

 

 

 

 

 

햇살을 완전히 가리기엔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알록달록한 색상 덕에 우중충한 밴쿠버 날씨가 어느 정도 용서되기도 했었다. 놀이방의 사이즈는 아담하다. 아이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모습은 이러했다.

 

 

 

 

 

사이즈가 아담하니 어질러놓아도 치우기가 빠르다. 장난감도 너무 많이 사주면 안된다. 아이의 정리 능력엔 한계가 있다. 부모의 정리 능력에도 당연히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가계 지출의 한계또한 있지 않는가? 아무리 제 새끼가 이뻐도 이 세상엔 아직까지 허기와 질병으로 제 인생 다 살아보지 못하고 일찍 명을 달리하는 아이들이 많다. 능력껏 적당히 사주고 헌것들도 깨끗하게 씻어서 쥐어주자. 난 일부러라도 중고물품 가게에 가서 아이 옷이며 장난감들을 산다. 깨끗하세 잘 쓰고 난 뒤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거나 다시 그 중고물품가게에 도네이션해서 리싸이클링이 되게 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알랑방구용 장난감이나 혀에 단 음식이 아니라 부모가 '진심으로' 전해주는 사랑이기에.

 

 

 

 

 

 

위의 드레스를 '평상복'으로 이용하는 딸아이. 가장 편하다고 단언한다. 발레를 너무나 사랑하는 세살배기 딸아이다. 지난 겨울, 이 놀이방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워놓았었다. 아이는 너무나 행복해했다.

 

 

 

 

 

역시나, 드레스를 입고서 놀이를 행하는 딸아이. 아직은, 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 이 방은 아이의 놀이방으로 쓰일 요량이다. 언젠가 아이가 크면 예전 우리가 썼던 것처럼 오피스로, 서재로, 다시 쓰겠지만 그때도 아이의 향기는 여전히 남아있을 터. 아이의 웃음이 영원히 남아있을 터. 그렇게 한덩어리로 오랫동안 살아갈 우리.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