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시리아 내전의 원인과 전망(2012년) (펌)

이코모 |2013.04.15 01:23
조회 3,049 |추천 0
[시론] 시리아 내전의 원인과 전망

http://www.sdjs.co.kr/read.php?num=612&quarterId=SD201203

I

 

시리아가 내전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 2011년 1월 튀니지, 이집트, 예멘 등 중동지역에 민주화 시위를 촉발한 튀니지 청년 노점 청과상 부아지지(Mohammed Bouazizi) 분신자살 후폭풍이 시리아에 상륙한 것은 두 달 후인 3월 15일. 남부 도시 다라에서 청소년들이 담벼락에 “국민은 정권의 전복을 원한다”는 낙서를 한 죄로 구속되자 부모들이 시민들과 함께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민심이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개도 국경을 넘어야만 짖는다”는 시리아에서 시위는 놀라울 정도로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은 국민 150명 당 1명의 비밀경찰을 곳곳에 심어 국민들을 철저히 감시하면서 권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10대들의 담벼락 낙서에서 시작된 민주화 요구 시위에 대하여 정부는 군․경을 동원하며 단호하고도 무자비한 강경 유혈 진압작전에 돌입, 수천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격노한 반정부 인사들이 무기를 들고 무력항쟁에 나서고, 정부군에서 이탈한 군인들이 자유시리아군(Free Syrian Army)을 결성하여 반정부 세력에 힘을 보태면서 정국이 격렬한 내전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시위 발발 17개월째인 현재 정부군과 반군이 제2의 도시 알레포를 두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외신과 국제단체들은 현재까지 2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 약 2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II

 

시리아 국민의 민주화 요구 시위는 군사쿠데타로 1971년 대권을 거머쥔 하페즈 알 아사드부터 2000년 그의 사후 차남으로 대권을 승계한 바샤르 알 아사드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무려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아사드 집안의 철권통치에 대한 국민 불만이 튀니지발 중동민주화 바람에 편승하면서 일어났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는 집권 기간 동안 반정부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여 국민들에게 정권에 대한 도전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1982년 2월 ‘하마 학살’이다. 당시 무슬림 형제단이 반정부 항쟁에 나서자 하페즈는 정부군을 동원하여 3주간 하마 시를 봉쇄하고 전면 공격을 퍼부었는데, 이 때 약 3만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아사드 정권이 이웃 아랍국가에 비해 자국민들에게 더 폭력적인 이유는 약 12%에 불과한 소수 알라위파 무슬림이 다수 순니파 무슬림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라위는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632년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은 후 무슬림들은 누가 공동체를 이끌 적법한 지도자인가를 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이 때 무함마드의 사촌 동생이자 사위인 알리를 최적의 지도자로 여기고 따른 사람들을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시아투 알리), 즉 시아파라고 불렀다. 알리를 초기 4명의 지도자 중 하나로 보는 순니파와 달리 시아파는 알리만이 적법한 지도자이고, 알리의 후손들이 그를 이어 공동체를 이끌어 갈 적임자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지도자를 시아파는 이맘(Imam)이라고 부르는데, 첫 번째 이맘 알리부터 12번째 이맘까지 따르는 사람들이 현재 시아파의 주류인 12이맘 시아파로 현재 이란이 대표적인 국가다.

그런데 시리아의 알라위는 종파의 원조가 11번째 이맘 하산 알 아스카리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제자 무함마드 이븐 누사이르 알 나미리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시리아의 알라위는 종조의 이름을 따서 누사이르파 내지 나미르파로 불려오다가, 프랑스가 시리아를 지배하던 근대에,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1920년부터 알라위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12번째 이맘까지 따르지 않고, 알리를 신격화해서 믿고, 알리가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보냈다는 비의적(秘義的) 해석을 하며, 이슬람의 정형화된 예배나 법을 따르지 않는 등 주류 시아파와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다. 그러나 하페즈는 모스크 예배에 참여하였고, 알라위 지도자들은 1973년 12이맘파 시아 종교지도자인 무사 알 싸드르로부터 알라위가 12이맘파 시아라는 법적 견해를 얻어내 알라위가 이단이 아니라 엄연한 시아파임을 천명하였다. 더 나아가 이를 토대로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시리아는 이란과 종파 연대를 하며 선린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시리아 국민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순니 무슬림들 눈에 알라위는 이단이다. 따라서 정권을 쥔 알라위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페즈 알 아사드는 충성스러운 알라위로 채운 군대와 비밀경찰을 양성하였고, 이들 기관은 정권안보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사실 역사 속에서 알라위의 삶은 험난하였다. 중동의 소수 종파들이 그러하듯 알라위 역시 생존을 위해 시리아 서부 라타키아의 안사리야 산악지대에서 모여 살았다. 이들의 용맹함을 높이 산 프랑스 식민정부는 알라위를 군인으로 받아들이고, 자치권을 주면서 보호하였다. 시리아 독립 후 알라위들은 종파 차별이 없는 바아스(Ba‘th) 당에 입당하면서 주류 사회로 진출하였다. 하페즈 알 아사드가 그러한 인물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바아스당에 입당하고 공군에 들어가 조종사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결국 대권을 거머쥐었다. 바아스당과 군은 알라위의 생존처였다. 하페즈는 집권하면서 기독교, 드루즈파 등 소수종파들의 권익보호를 약속하여 우호세력을 확보하였다.

알라위라는 소수종파의 태생적 한계로 인하여 하페즈 알 아사드는 늘 은밀하고 강압적으로 정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다보니 시리아에 민주주의가 통용될 리 만무하였다. 반정부 시위는 곧 죽음을 의미하였다. 2001년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둘째 아들 바샤르는 원래 정치에는 뜻이 없는 안과 의사였으나 후계자였던 큰형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뜻하지 않게 정권을 물려받게 되었다. 18개월 동안 영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고, 평소 개혁개방 및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식견이 높다는 평가와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바샤르는 아버지가 잡아들였던 정치범을 석방하고 언론의 자유를 약속하는 등 ‘다마스쿠스의 봄’을 열어 변화를 주도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나친 개방이 정권을 위태롭게 한다는 정권 내 지도층의 조언에 따라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개혁 정책을 중단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 인물은 정권의 주축 알라위 군을 통솔하는 남동생 마히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호만 요란했을 뿐 실속 없는 개혁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은 컸다. “차라리 말이라도 하지 않았으면 기대라도 안했을 텐데”라는 원망이 적지 않았는데, 결국 이러한 배신감이 중동 민주화 바람에 힘입어 “국민은 정권의 전복을 원한다”는 과감한 담벼락 낙서로 표출되었고, 거듭된 강경진압이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의 정권교체를 보고 자신감을 얻은 반정부군의 내성과 희망을 키워 시위가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III

 

시리아 내전은 리비아와 견주어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리비아군이 민간인에 총부리를 들이대자 국제사회는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즉 국민보호의무를 앞세우며 적극 개입,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 교체를 이루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시리아에서 민간 시위대가 정부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해도 국제사회는 모두 개입을 꺼리며 구두 경고만 남발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리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자칫 잘못하다가는 시리아 내전이 중동 역내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위험이 크다는 인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미국을 위시한 서방은 바샤르를 대체할 뚜렷한 야당 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반정부 세력을 돕는 것을 위험한 도박이라고 여겼다. 반세기 동안 시리아에는 아사드 집안과 알라위 외의 다른 지도층이 존재할 수 없었다. 더욱이 시위를 주도하는 반정부 인사들이 어떠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정권교체를 앞세우며 개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기에는 이슬람정치를 지향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한 몫 거들었다.

사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바샤르에 대한 기대를 접지 못하고 있었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말마따나 바샤르가 다른 중동의 지도자들과 달리 변화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 왔기 때문이다. 또 구관이 명관이라고 바샤르는 예측 가능하기에 지역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이스라엘은 시리아가 그 어떠한 아랍국가보다도 강경일변도의 반이스라엘 정책을 유지해 온 악마와 같은 존재이지만, 그래도 예측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 대화가 되는 악마라고 생각한다. 어떤 악마인지 잘 알기에 나름 대처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는 이스라엘에게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최대 희망사항은 바샤르가 개혁을 추진하고,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 이스라엘의 국가안보를 보장하는 것이다. 시리아가 이스라엘과 화해의 길로 들어선다면, 이란-시리아-레바논 헤즈볼라 연결 고리를 단박에 끊어 역내 안정구도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미국과 이스라엘은 공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위초기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가급적 바샤르의 퇴진보다는 민주개혁을 주문하며 사태의 추이만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살이 지속되고 내전의 골이 깊어가면서 미국도 최근에는 반정부 지지로 돌아서 정권교체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판단, 좀 더 구체적으로 바샤르 이후의 시리아에 대한 구상을 조용히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란과 손을 잡지 않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 두 나라의 최대 희망이 된 것이다.

이처럼 시리아를 제어(制御)하면 이란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이란이 현대 중동의 판세를 읽는데 핵심적인 존재라는 반증이다. 이슬람 혁명 이래 이란 정부는 반 이스라엘 정책을 지속해왔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를 지원하며 아랍 중동 지역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란 입장에서 시리아는 레바논 헤즈볼라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지만, 이란은 헤즈볼라가 활동하는 레바논 남부를 자국 영토로 인식하기에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한다. 레바논 헤즈볼라는 이란에게 왕관의 보석과 같은 존재다. 따라서 헤즈볼라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인 시리아를 잃는다는 것은 이란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이다. 그러나 이란을 적으로 여기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아랍 순니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게는 시리아 사태가 이란고립의 중요한 기회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 및 바레인, 쿠웨이트 등 걸프지역 유전지대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소수 시아파의 봉기를 유도하고 지원하면서 자국 및 역내 순니 왕정의 안정을 위협하는 이란을 제어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담 후세인이 사라진 이후 이라크에서 시아가 정치주도세력으로 등장함에 따라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에 이르는 초승달 모양의 지역을 시아파가 주도하게 되었다. 이란이 군사·경제·인구 측면에서 이러한 시아 지역의 핵심 주축국으로 영향력을 발휘함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순니 아랍국가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위기의식은 상당히 깊고 심각하다.

터키 역시 시리아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다. 시위 초기부터 터키는 반정부 인사들을 지원하면서 바샤르를 코소보 전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 비유하며 압박을 가해왔다.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고 야당 모임을 터키 내에서 주선하면서 바샤르 정권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더니 급기야는 시리아의 공격으로 인해 전투기를 잃는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초래하였다. 평소 이웃과 문제없이 지내는 것을 외교 정책의 틀로 삼아 온 터키로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행보인데, 이 역시 이란을 제어하여 터키의 대(對)아랍중동 영향력을 제고하고 시리아 내 쿠르드족 문제가 자국 내로 번지지 않도록 차단하기 위해서다.

반면 러시아, 중국, 이란은 사면초가(四面楚歌)인 바샤르 정권을 옹호하고 있다. 러시아는 냉전 이후 유일한 중동 통로인 시리아를 잃지 않고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시리아 서부 지중해 연안 따르뚜스 항을 해군기지로 확보한 러시아는 시리아를 잃을 경우 지중해 거점을 상실, 중동 역내에 미치는 영향력이 사실상 소멸되고 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따라서 러시아는 바샤르 정권 지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실 러시아보다 시리아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가진 나라는 없다.

중국 역시 미국에 맞서 중동 내 교두보를 시리아에서 확보하고자 국제사회의 시리아 제재를 막고 있다. 이미 중국은 리비아 정권교체로 타격을 입은 상태다. 경제적 이권을 확보해 놓은 리비아에서 이미 서구에 밀려났는데, 상당한 경제협력을 진행하면서 이권을 확보한 시리아마저 친미, 친서구로 돌아선다면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동 내 위상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란에게 시리아는 ‘왕관의 보석’이라고 부르는, 대 이스라엘 항쟁 창구인 레바논 헤즈볼라로 연결되는 핵심통로다. 따라서 이란은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시리아 위기를 통제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습 비행경로 중 하나가 시리아 영공인데, 현재 이란은 시리아에서 촘촘한 레이더망을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의 도움으로 이스라엘 공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다. 유사시 러시아는 이란에 공습 정보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고 알려져 있다. 더 나아가 이란 역시 러시아처럼 시리아의 서부지역 지중해 항구를 해군기지로 쓰기로 바샤르의 약속을 받아내었다. 2011년 2월 이란 군함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다르뚜스항에 정박, 미국과 이스라엘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잃어서는 안 되는 시리아를 지키기 위해 이란은 현재 바샤르 정권을 적극 지지한다고 천명하였다. 전문가들은 만일 바샤르가 무너지면 이란은 시리아 내 종파 분쟁을 유도하여 정국을 계속 혼란 상태로 몰고 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IV

 

첨예한 이해관계에 따라 운신의 폭을 조정하는 국제사회의 속성상 시리아 내전에 정의나 인권이나 민주주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이해 당사국이 시리아라는 큰 파이를 두고 치열하고도 치밀한 셈법으로 득실을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정부 세력에 대한 서구, 터키, 아랍의 엇갈린 지원만 보아도 반 바샤르 측 국제사회의 행보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위 초기부터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 온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내 왕정을 반대해 온 무슬림형제단보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 이슬람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이슬람 그룹에 무기를 지원해 왔다. 반면 터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달리 시리아 내 무슬림 형제단에 대해 더 호의적이다. 이는 현 터키 여당이 무슬림형제단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직접적 개입을 기피해 온 미국은 최근 전향적인 자세로 정부군에서 이탈한 자유시리아군을 지원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 시리아 정권에 대한 찬반과 관계없이 국익을 앞세운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는 현실은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올 초 해킹된 스트랫포(Stratfor) 메일에 따르면 이란이 바샤르를 포기하였고, 쿠데타를 지원해 바샤르를 무너뜨리고 신정권과 지속적으로 선린관계를 유지하려 했다고 한다. 이란은 터키가 시리아를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에 공조하자는 신호를 보냈는데, 미국 역시 이러한 일련의 정변이 미국에 해롭지 않다면 개의치 않는다고 화답했다는 것이다.

한편 2009년 11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보관계자 모임에서 바샤르가 이스라엘과 평화를 위해서라면 이란, 헤즈볼라와 협력을 기꺼이 포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또 위키리크스 미국 외교비밀문건(2009. 12. 22.)에는 바샤르가 이란의 핵프로그램이 평화적이라고 동조하면서도 정작 이란과 이스라엘, 또는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도와달라는 이란의 부탁에 대해 이란은 강하므로 혼자 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거절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문건들이 사실이라면 이란과 시리아의 관계는 서로의 편의를 위한 일시적인 것으로 종파적 동질성이나 역사적 우애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입증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시리아가 레바논의 시아인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순니 하마스를 돕는 것은 종파를 떠나 최대의 적 이스라엘을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을 도운 것 역시 자국 내 다수 순니를 제어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후세인 이후 이라크 정정(政情)에서도 예상과 달리 시아 대신 순니 무장 세력에게 무기를 지원하였다. 시리아는 이라크나 레바논에 시아파가 장악하는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시리아 역시 종파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일관된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즉, 이란과 시리아의 연대도 편의에 의한 선택이라는 말이다.

현재 전황을 보면 바샤르 정권 교체는 불가피할 듯하다. 정권의 운명은 동생 마히르가 이끄는 5만의 정예부대에 달려 있다. 아버지 하페즈를 닮아 무자비하다고 알려진 그는 T-72 탱크와 공격형 헬기로 무장한 2만 5천의 기갑사단과 장갑부대로 수도 다마스쿠스를 방위하는 2만 5천의 공화국수비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러나 견고한 방어망이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권 내 고위급 인사들의 해외 망명이 계속되고 있고, 강력하게 바샤르를 지원했던 러시아마저도 미묘한 변화를 보이며 바샤르 없는 시리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후문이 나오는 것을 보면 시리아의 정권교체도 그다지 먼 미래의 일은 아닐 듯싶다. 결정적인 계기는 바샤르가 반정부 세력에 대해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첩보를 입수한 러시아는 “생각조차 하지 말라”며 강력하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 바샤르의 무모한 계획을 제지하였다는 언론 보도가 뒤따랐다. 만일 화학무기를 사용한다면, 이는 국제사회의 필수불가결한 개입을 자초하는 최악의 수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명분은 러시아 뿐 아니라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할 것이다.

화학무기 파동으로 국제사회는 바샤르 정권의 위험성과 무모함을 재차 인식하게 되었고, 시리아 내 화학무기 제거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켰다. 사실 시리아는 그동안 화학무기 존재 자체에 대해 강력히 부인해 왔는데, 정권이 위급한 상황에서 스스로 화학무기의 존재를 인정한 셈이다. 시리아는 1973년부터 화학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연간 생산량이 수백 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 따르면 시리아 내 화학무기 시설을 모두 제거하는 데에는 7만 5천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시설 폭격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이는 지상군이 투입되어 완전히 제거하는 것보다 불완전한 방법이다. 완파되지 않는 시설에서 화학무기가 유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화학무기에 대해 극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국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만에 하나라도 반 이스라엘 항쟁 세력인 헤즈볼라가 화학무기를 입수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바샤르 정권이 화학무기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과 아울러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은 화학무기를 통제·제거하기 위해 국제사회를 통해 다각도로 압력을 가할 것이다.

 

 

V

 

시리아 내전은 내전이 아니라 중동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이스라엘,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이란, 미국과 서방, 러시아와 중국 등 역내·외 국가들이 벌이는 치열한 국제전이다. 일찍이 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아랍과 이스라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이집트 없이 전쟁을 하지 못하고, 시리아 없이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했는데, 이는 여전히 시의적절한 말이다. 만일 바샤르가 무너지고 친서방 정권이 들어선다면 최대의 패배자는 반 이스라엘 항쟁의 첨병 레바논 헤즈볼라로 연결되는 통로를 상실할 이란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시리아 문제가 서방의 의도대로 된다면, 이란 핵에 대한 압력은 더욱 가중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는 곧 시리아 내전 종식 후 이란 핵이 중동 최대 현안으로 부각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물리적 공격이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한편 시리아 내전 종식 과정에서 러시아는 시리아 지중해 항구를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는 곧 러시아와 타협 없이 시리아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바샤르가 무너질 경우 어떠한 성격의 정권이 들어설지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해외망명 인사들로 구성된 야당조직보다는 내전에서 피 흘리고 싸운 자유시리아군이 주축이 되는 것이 정통성이 있을 것이나 구심점이 되는 지도자가 부재한 현실을 감안하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야당 인사들 간에 치열한 공훈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바샤르가 끝까지 버텨 정권을 유지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청소년들의 담벼락 낙서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가 내전을 넘어 국제전으로 확산된 시리아를 보면서, 북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첨예한 국제이해관계가 얽힌 북한은 시리아와 다를 바 없다. 만일 북한 정세가 시리아처럼 급변하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누구도 시리아에서 시위가 일어날 줄, 그리고 그 시위가 이렇게 내전으로 번질 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철옹성 같은 북한이 시리아처럼 흔들릴 날이 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 것일까? 열강의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힌 시리아, 그 복잡한 나라에서 진행 중인 내전이 시리아와 너무 유사한 북한을 마주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심각한 화두다. 우리는 정말 잘 준비하고 있는가?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