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자신없어 도망치지만, 후회는 안해.

답답 |2013.04.30 14:57
조회 777 |추천 11
많이 사랑했던 그 남자 얘기를 하고 싶어요. 주저리 주저리 회개하듯..    첫 직장 연수원에서 날 보고 첫눈에 반했다며 6개월 넘게 쫓아다녔던 당신. 서글서글한 인상에 그저 사람 좋아보이기만 인상이 나중엔 호감으로 바뀌더라.6개월이 넘는 내 거절에도 질리지않고 밀어부치는 모습도 멋져보였고..나와는 다르게 어디하나 구김살 없어보였던 모습도 너무 좋았고.. 그렇게 시작했지. 우리. 그래서 5년을 넘게 만나고, 당신은 내게 결혼 하자는 말을 수차례 했었지만 난 한번도 호응 해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신이 싫어서 그런게 아니라, 내가 자신이 없어서.. 남들처럼 경제적인 문제였으면 차라리 노력해보잔 대답정도는 했었을텐데..내 문드러진 정신이 문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우리 집, 정원이 있고 사냥개도 두어마리 있었던 큰 집. 사업하는 아빠에, 자기일 취미삼아 하시던 엄마. 속 안 썩이고 공부도 꽤나 잘 했던 나와 내 동생. 근데,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정말 썩어 문드러졌다는 말이 아까울 정도였다. 당신은 취미로 한다는 도박, 접대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참으로 조용할 날 없었던 여자질,사냥 간다고 훌쩍 떠나버리고, 낚시 간다고 훌쩍 떠나버리기 일수였고, 자식들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던 아빠. 그런 아빠때문에 엄마는 술만 마시면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곤 했었지. 그런 두분의 불편한 관계가 자식들에 대한 이상한 집착으로 번져서.. 특히 첫딸인 나에게 너무 많은 걸 강요하고 또 너무 많은 걸 못하게 했었다. 이성친구에게 받은 선물과 편지는 무조건 안 들키게 숨겨야했어. 다른 부모 같았으면 내 딸 인기 많네. 라고 말 해줄 수도 있는 일을 나는 왜 그렇게 겁을 내며 발발 떨었는지.. 한날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한 통의 편지가 엄마 손에 들어가게 되었지. 내가 먼저 편지를 쓴것도 그렇다고 만난것도 아니고 그 친구가 내게 편지한통 보냈을 뿐인데, 나는 정말 그 다음날 학교도 못 갈 정도로 맞았었다.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맞고 온 몸에 피멍이 들어서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아빠가 출근하기전에 머리맡에 두고간 수표 3장...  이혼 하자는 말이 나올때마자 자식땜에 참는다고 말씀 하셨지.중 3때.. 던지고 부시고.. 고함소리.. 동생 귀를 꼭 틀어막고 있는데, 동생 통곡 소리에 마침내 나도 도저히 못 참겠어서 부모님 눈 똑바로 쳐다보고 고래고래 소리쳤지. 우리 핑계 대지말고 차라리 이혼하라고 바락바락 달라들었던 기억이 난다. 뭐 그다음 상황은.ㅎㅎ 당연히 날 때리려고 하셨지. 아빠가 나한테 오길래 나는 내 옆에 깨진 거울 조각을 맨손으로 잡고, 내 허벅지를 마구마구 찔렀던 기억이 난다. 아팠었다는 기억은 없네..  그땐 맞아 죽으나 내가 내 손으로 죽으나 똑같다는 생각이었지 싶다. 차라리 내 손으로 죽으면 맞고 난뒤에 수표 3장따위의 수치심은 없었을테니까..  또 갑자기 기억나는게 있네. 아빠가 새벽까지 안 오셨던 어느날, 엄마가 날 안방으로 부르더니 내 손에 게보린 펜잘..또 무슨 알 수 없는 약들을 한움큼 손에 쥐어주시고..같이 먹자더라.내가 보는 앞에서 엄마가 먼저 먹었어. 약을 삼키고 꽥꽥 거리면서 양주를 병째 마시고...나도 차라리 같이 죽었으면 싶었지만, 꼴에 누나라고 동생 때문에 도저히 안되겠던데..겨우 누나정도인 나도 동생이 눈에 밟히는데 엄마 아빠는 우리가 안 불쌍했을까...? 내 지긋지긋한 과거를 얘기하자면 몇날며칠 꼬박 얘기해도 모자르지만.. 그만 하고 싶다 이제.10년이 훌쩍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 때 일들이 생각나면.. 너무 서럽게 울게된다.특히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기어이 그 상처를 다시 건드리고 만다. 그때는 억지로 입밖으로 말을 내 뱉는다. "살자! 살자! 살자!!"  그러다보니까 나는 죽어도 우리 엄마 처럼은 안 살아야지... 라고 다짐하게 됐는데나이가 점점 더 들어갈수록 결혼에 대한 자신감 자체가 사라지더라.그래서 당신의 물음에 한번도 대답해주지 못했고,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살겠지. ㅎㅎ 당신을 너무 사랑하고 어쩌면 당신과는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란 희망도 보였는데,문제는 당신이 아니라 나잖아. 내가 귀한 집 곱게 큰 아들 인생 망쳐놓을것 같으니까... 내 자력으로는 평생을 살아도 결혼에 대한 희망따위 안 생길것 같아서 차라리 임신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ㅎㅎ 그렇게 되면 어쩔수 없이... 당신과 나의 아이니까... 당신이 내게 보여준 50%의 희망과 우리 아기가 만들어줄 50%의 희망. 어쩌면 나도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았거든. 그런데, 닥쳐보니 아니더라.나는 뼛속까지.. 아니 세포하나하나마저 부정적인 걸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던건지.. 토요일.. 병원가서 임신 사실 확인하고 기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어쨋든 당신한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안 됐어. 토요일 친구 결혼식 사회 본다는 말이 생각이났지. 그리고 한시간 뒤 쯤 당신이 다시 내게 전화를 했을땐, 나는 이미 결심을 한 후였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과 만든 내 아기도 너무 소중하고... 당신은 분명 내게 결혼하자 할거고.. 하지만 난 당신과 평생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고.. 나 혼자서 회사를 정리하고 당신과의 시간들을 정리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던 당신이 그랬지.요즘 왜이렇게 성질 안 부리고 잘 해주냐... 하자는 대로 다 해줘서 너무 좋은데, 불안하다고..못되쳐먹은 나는 농담이라고  지껄인 말이 고작부모가 애 고아원에 버리기전에 맛있는거 사주는거랑 똑같다고 보면 된다... 이거 였다. 당신을 버려도, 당신은 끝까지 날 찾을거라고.. 공개수배 전단지 뿌릴거라고 웃으면서 말 하던 그때 얼굴이 떠오르면 지금도 가슴이 너무 먹먹하다. 미안해. 늦었지만 사과할게. 농담처럼 말해서 방심하게 만든거..사과할게.정말 내가 떠나버리고, 내가 지껄인 소리가 당신에게 얼마나 상처가 됐을지..상처를 받은 사람은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아니까, 상처 주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되는데...나는 상처를 주는 법 밖에 모르고 컸으니까... 당신, 나 때문에 엄청 아팠을거야. 이제서야 이해한다. 5년을 넘게 당신과 함께했던 그 도시로부터 아무도 모르는 시골 작은 동네로 훌쩍 와서..처음 몇개월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당장이라도 당신한테 전화하고 싶었고..낯설고, 아는 사람 아무도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혼자서 해야하는게 너무 힘들었지. 오죽하면 그 지긋지긋한 집구석에 다시 들어가볼까 생각까지 했을까...독립하면 절대 얼굴 볼일 없을 것 같던 엄마도.. 이제 내가 엄마가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보고 싶어지더라. 어쩌면 엄마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불쌍한것도 같고..  남들이보기엔 내 팔자 요란스럽게 만든다고 손가락질 할진 모르겠지만...너무 이기적이라고, 적어도 애 아빤데 알려야 하는거 아니냐고 하겠지.하지만 그 어느 누군들, 당사자인 나보다 많은 생각을 했을까... 겁쟁이가 맞아. 나는 자신도 없고 그래서 도망친거지.당신이 아플거 알고 있고 내가 왜 떠났는지 이해도 안될거고...  그래도 살아보니까 시간 지나면 다 잊혀지게 되더라.나는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망친게 고작이지만 당신은 씩씩한 사람이잖아. 진짜 마지막으로 쓰는거야. 당신은 이런거 안 볼테니까 나혼자 이렇게 변명하듯 회개하듯...절대, 무슨일이 있어도 평생 당신앞에 안 나타날거야. 당신이 너무 보고싶어질때가 있어도 4개월만 기다리면 당신 닮은 애가 있을거니까 그렇게 참아. 애가 태어나서 왜 아빠가 없냐고 물으면 잘 얘기할게. 상처 안 받게....지금부터 무슨 말을 어떻게 잘 해야할지 많이 고민되지만 그건 나중 일이니까.. ㅎㅎ  나는,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내 삼십평생 이렇게 맘이 편한적도 없고, 이렇게 여유로운 적도 없고...아무리 내 자신을 달래고 안아도 늘 내 맘 속엔 서슬퍼런 칼이 솟아있었는데 이젠 그 칼도 없어진 것 같아.많이 보고 싶지만, 하루하루 점점 괜찮아 지는 것도 같고... ㅎㅎ 다음주 부터는 제빵학원 가야하니까..더 바빠지면 더 생각이 안나겠지 ㅎㅎ거기서 친구들도 사귈거고.. 그 동안 모아둔 돈하고.. 이래저래 하니까 작은 빵집 하나정도는 할 수 있겠더라. 열심히 살게. 아직까진 힘든줄도 모르겠고..  행복해. 정말 많이. 그러니까 당신도 행복해라.. 그동안 너무 고마웠고, 당신 아니면 절대 못 줄 선물.. 고마워.보석처럼 내 목숨처럼 아끼면서... 우리 잘 살게.   그리고 ㅇㅇ아. 내 비밀 다 알고 다 들어준 내 친구 ㅇ희. 너한테 말도없이 전화번호 바꾸고 카톡도 탈퇴해버린게, 지금 제일 겁난다. ㅎㅎ니 성격에 분명, 잘근잘근 날 물어 뜯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라도 만나면...나, 아직은 흔들릴 것 같아서 오롯이 날 혼자 내버려 두려고...ㅎㅎ 이해좀 해줘잉. 그리고 이모 될 준비나 잘 하고 있어. ㅎㅎ 4개월뒤에 니가 절대 못 부실 단단한 사람이 되서 깜짝 놀래켜줄게.
추천수11
반대수1

판춘문예베스트

  1. 감정 자판기댓글0
더보기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