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 남편의 친어머니와 여동생을 찾을수 있을까 싶어 글을 올려봅니다.
네이트 판은 많은 분들이 보는 곳이라 혹시 여동생분이 볼수있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글을 쓰겠습니다.
제 남편은 40대 초반입니다.
성은 강씨 이구요.
남편이 어릴때 전라도의 어느 외딴 마을 (지역이름은 생각안남) 에 살고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가족구성원은 엄마와 아빠 남편과 여동생 그리고 당시 초등학생이던 이모 한분이 계셨답니다.
당시 살던 집을 가려면 대나무 터널과 뽕나무 밭을 지나가야 했으며 길을따라 올라가면
집이 하나 있었고 거기서 더 올라가면 제일 꼭대기에 있는집에 살았다고 합니다.
집엔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구요.
그리고 외갓집은 시골로 갯벌이 있는 바닷가에 있었다고 하구요,
외갓집에 놀러갔던 기억이 있다고 하네요.
남편이 기억하는 엄마는 생계유지를 위해 남편을 데리고 장사를 하러 다녔다고 합니다.
남편이 엄마를 떨어지지 않아서 함께 다녔고 이모가 여동생을 돌봤다고 합니다.
남편이 기억하는 아빠는 늘 바쁘고 집에 잘 안들어 왔다고 하네요.
부모님은 혼인신고가 되어있지않아 남편 호적도 16살에 올렸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혼인신고만 했었더라도 어머니를 찾기 쉬웠을텐데 참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늦은 여름 추석때 외참촌이 남편에게 한복을 사주기로 했는데 그걸 받지못하고
엄마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엄마와 차를타고 모르는 시골로 갔는데 그곳에 아빠가 있었고
엄마가 아빠에게 얘는 당신 자식이니 당신이 키워라. 라고하고 가셨고 엄마가 가신뒤
남편과 여동생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고 하네요.
그로부터 몇개월후 남편은 아빠를 따라 새엄마와함께 광주로 이사를 했고
여동생은 전라남도 화순군 죽정리 새엄마의 외갓집에 남겨졌다고 합니다.
남편은 새엄마와 아빠와함께 남광주 부근에 살고있었는데 1978년도에 친엄마가 여동생과함께
찾아와서 철아, 엄마는 이제 서울로 간다. 엄마는 너를 만나러 못온다. 네가 크면 서울로 엄마를 찾아와라.
이말이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고 이를 끝으로 엄마와 여동생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호적상으로 71년생이고 실제는 73년생 이라고 하구요, 1월15일이 엄마가 챙겨주던 생일이라고
합니다. 친어머니의 성은 박씨가 확실한걸로 기억하고있고 성함은 모른다고 하네요.
여동생의 이름은 미라, 혹은 미란이로 기억하고 있구요.
남편은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합니다.
나이가 먹고 자식이 생기니 어머니에대한 그리움은 날로 커지는듯 합니다.
혹시 이글을 보시는 비슷한 사연을 가진 분이 계시다면 덧글을 남겨주세요.
남편의 친어머니와 여동생을 꼭 찾고싶은데 단서가 없으니 방법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