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유진의 말은 맞았다. 확실히 윤아와 현지씨를 죽인 괴물은 몰려 있는 군중을 좋아하는 듯 했다. 그 결과로, 입구로 달려가 서로 끼여 있던 사람들에게 관엽수가 한 그루 날아와, 대부분의 사람을 압사시켜 끔찍한 풍경을 자아냈었다. 나는 욕지기가 올라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봐요! 이 링겔들 들고 따라오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곧 천막이 붕괴될겁니다! 그럼 다, 죽어요!"
손유진이 나에게 링겔 3팩을 던지더니, 천막이 기운, 틈새로 달려갔다.
"넌, 어떡할거냐......"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난동 속에서, 현수가 자신의 어깨에 걸친 우는 아기를 달래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어떡할거냐니.
"저 여자를 따라가는 수 밖에 없겠지. 빌어쳐먹을! 어쩌다, 이렇게 된거야."
나는 머리를 쥐어 뜯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저, 일본에는 즐기고, 지친 몸을 휴식하고, 추억을 쌓기 위해 왔던 것이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걸까.
"씨벌...... 나중에 꼭 묻어주러 다시 여기에 올거다."
나는 피로 물든 침대시트를 쾅, 치며 분노를 삭히지 못했다. 지금은 땅에 묻어주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사태가 진정되면 나중에 여기에 다시 와서 무덤을 만들고 땅에 정식으로 묻어줄 것이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이란 것이. 앞 쪽, 관엽수에 깔려서 눈을 감고 있는 윤아는 당장이라도 눈을 뜰 것만 같았다. 그 옆에 있는 현지씨도 지금이라도 눈을 뜰 것만 같았다. 죽은 것 처럼 보이지가 않았고, 그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하잖아. 미친, 이런 개같은 경우가 다 있냐...... 씨벌...... 어떻게, 이럴수가......"
녀석이 고개를 저으며, 손바닥으로 눈을 눌렀다. 아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링겔을 잡은 손의 힘을 최대한 주었다. 그 덕에 링겔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뇌 속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듯 했다. 흔히 말하는 아드레날린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관엽수가 날라온 방향으로 눈을 있는 힘껏 부라렸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온 몸의 피가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괴물을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
라는 생각만이 뇌 속의 뉴런세포들을 있는 힘껏 자극시켰다.
"죽여버릴꺼야. 괴물 새끼......"
나는, 그 말을 중얼거리며 내뱉고 손유진이 뛰어간 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오로지 윤아와 현지씨를 죽인 괴물에 대한 '살의'만 느껴졌다.
"너만 죽여버릴거냐? 나도 죽여버릴거야. 그 괴물 새끼."
뒤에 있던 녀석이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다시 내린 후, 빠른 걸음으로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지금의 녀석을 보면 꼭 살의에 가득 찬,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참, 늦게도 오셨네요. 뭐, 어쨌거나 이제는 도박입니다."
나와 현수가 천막에서 나올 때, 손유진은 주머니에 있던 휴대용 손전등을 꺼내 소총 개머리에 장착시켰다.
도대체 이 여자 뭐하는 여자인가하고 생각이 들었다.
"저기 보이십니까?"
손유진이 불빛을 앞으로 쏘며, 풀숲 뒤로 숨으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풀숲에 숨었고, 내 뒤로 현수가 붙었다.
앞을 보았더니, 그곳에는 사람과 비슷한 형상의 괴물이 서 있었다. 다만 키는 3m 쯤 되는 거구였고, 오른팔에는 무언가를 썰기 좋게 된 형태의 톱날. 왼팔에는 물건을 잡기 편하게 된 집게 형태의 손이 있었다. 다리는 기린 처럼 길고, 사슴 발굽처럼 생긴 발굽이 있어서, 잘 달릴 것 같았다.
"미친...... 저게 뭡니까?"
나는 입을 틀어막고, 손유진에게 물었다.
"저도, 모릅니다. 다만 처리해야 속 편한 괴물이지요. 이 곳에 오기 전에 저 괴물과 같은 것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처치했지요. 약점도 파악했습니다."
손유진은 뒤를 돌아보며, 우리에게 소곤거렸다. 그러고는 내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링겔 잘 챙기셨죠?"
"네. 링겔은 왜 챙기라고 한 겁니까?"
윤아와 현지씨가 죽어서 정신이 없을 때, 링겔을 챙기라고 한 것은 손유진이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었다.
"저 놈을 처치하기에는 액체 형태를 띤 물질 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아까 전에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괴물을 처치할 때, 차가 물웅덩이를 밟고 지나갔었습니다. 그 때문에 놈에게 물이 튀었었는데, 상당히 괴로워하더군요. 물이 묻은 부분은 즉시 괴사(䈛死)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상 가능했었다. 내가 링겔을 저 놈한테 던지면, 손유진은 그것을 소총으로 맞춘다. 아니, 오히려 던지기만 해도 놈은 저 톱날 팔로 링겔을 썰어버릴 것이었고, 팔에는 링겔이 묻을것이었다. 그럼 그 즉시, 놈의 오른팔은 괴사 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링겔을 저 놈한테 던지면 되겠네요."
"네, 맞습니다. 저 놈이 링겔에 당황하고 있을 때, 제가 소총으로 심장을 가격하면 끝입니다."
심장? 저 괴물한테도 심장이 있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저런 냉정한 괴물도 심장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손유진이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저 괴물을 죽이는 것에 전념해야 했다. 윤아와 현지씨를 죽인 괴물새끼를 바라보자, 다시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그럼, 이제 제가 신호를 보내면 링겔을 던지......"
"으아아아앙!"
나와 손유진은 동시에 현수를 쳐다보았다. 현수의 어깨에 업힌 아기가 타이밍 안 좋게 울기 시작했었다. 아뿔싸, 나는 이마를 쳤고 손유진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안돼! 울지마! 뚝 그쳐!"
현수가 당황해하며 아기를 달래기 시작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었다. 놈이 우리를 본 것이었다. 놈은 우리를 보자 마자, 그 징그러운 아가리를 쩍 벌리며 포효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너무나도 커서, 귀를 막아야만 했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링겔을 저 놈한테 던지세요! 빨리!"
손유진은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나는 대답할 새도 없이, 땀이 쥔 손으로 링겔 하나를 들어 포효를 지르며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놈에게 있는 힘껏, 던졌다.
링겔은 놈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다. 링겔이 맞는 즉시, 놈은 고통에 몸부림쳤었고 얼굴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손유진은 그 새를 놓치지 않고, 사격자세를 취한 후, 한쪽 눈을 감은 뒤, 놈의 가슴께 밑을 노리고 소총을 발포하였다. 총의 반동으로 인하여 총알은 삽시간에 놈의 심장에 박혀버렸었다.
그으으으으-
놈은 괴로워하며, 마지막 울부짖는 소리를 내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즉사했을겁니다. 심장에 정통으로 꽂혔거든요."
손유진이 쓰러져 있는 괴물을 발로 툭툭 건드리더니, 벙쪄 있는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괴물의 심장 위치를 어떻게 아셨죠?"
생각해보니, 이 손유진이라는 여자는 저 괴물의 심장 위치가 어디 있는지, 심장의 존재여부까지 어떻게 알았을까 의문이 갔다.
"아까, 그 자리에서 바로 간단한 부검을 했지요. 심장의 존재여부와 심장 위치를 아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럴만도 하겠네요."
나는 팔을 들어 올려, 긍정의 의미를 나타냈다.
"같은 괴물이 나와서 다행입니다. 만약에, 아직 파악이 안 된 괴물이 천막을 습격했다면 우린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지요. 물론, 애초에 괴물의 습격 같은 것이 없었다면 좋았습니다만......"
나는 한숨을 쉬었다. 손유진의 말대로 괴물의 습격 따위 같은 것만 없었어도,지금쯤 윤아와 현지씨는 내 옆에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왔다.
"밤이 늦었습니다. 여기서 전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일단 천막으로 돌아갑시다. 날이 밝는대로, 자위대에게 연락을 해보도록 하지요. 어서 빨리 이 숲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 숲은 지금 굉장히 위험해요."
손유진은 한숨을 쉬며, 소총의 벨트를 어깨에 메고 무너진 천막으로 향했다.
"정말, 대단한 여자야...... 어떻게 저리 냉정할 수가 있냐? 뭐하는 여자였지?"
내 뒤에 있던 현수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지독히도 냉정하네......"
나는 고개를 젓고, 윤아와 현지씨,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있는 천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