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올해 26인 말 그대로 워킹맘 입니다.
남편과 저는 친구의 소개로 만나 3년의 연애 후 제가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식을 올렸습니다.
벌써 년차로 치면 3년 차 주부네요.
저흰 꿈과 이상향이 너무 비슷합니다.
둘다 유복한 집에서 자라지 못하였고,
아버님의 부재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둘다 장녀 장남인지라
가장의 무게를 져야만 했습니다.
저는 17살 때 부터 인문계 임에도 불구하고 예체능이라 야자를 하지 않고,
평일에는 4시간 정도, 주말에는 풀타임으로 일하며 제가 하고 싶었던 피아노
고작 한달 월급 30~40 받아가며
제 돈 으로 주 1회로 레슨 받다가
예체능 전공하신 분들은 다 아실겁니다.
입시 준비하는데 그냥 레슨만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부턴 본격적인 입시 준비에 교수레슨을 받아야 하는데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저희 친정어머니의 손을 빌리게 됬습니다.
중간중간 좌절할 때도 많았습니다.
정말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는가..
내가 너무 어리석게 나의 고집만 부리는 것은 아닌가
하루에도 수백번씩 생각이 오락가락 하며
비틀거릴 때 저희 어머니께서 저에게
이제부터 돈걱정은 하지말라 하시며 연습에만 집중해라 하셔서
정말 연습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다행히도 재수없이 합격하여 부산 모 대학교 기악과 피아노전공자로 졸업하였습니다.
남편은 19살 때 아버님께서 간암으로 돌아가시며
아버님의 빚때문에 어머님은 남편과 아가씨를 버려둔 채 도망을 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빤 밤잠설쳐 알바로 전전하며 1살 어린 아가씨
뒷바라지 다해주며 전문대까지 졸업 시켜 준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설움을 늘 곱씹어 교훈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저희는 누구의 고통이 더하다 보단
너도 나도 그리 평탄한 인생은 아니니 우리 서로 평생 위로하며 살자며
결혼을 했고, 저는 레스너로 저희 남편은 자영업을 하며 오손도손 가정을
잘 이끌어 오다가
12년 5월 17일 저희의 사랑스러운 아들이 하나 태어났습니다.
네..지금 돌인데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너무너무 귀여운 행동과
사랑스러운 행동들만 하고 저희한테 큰 웃음을 주는 아주 이쁜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100일 지나서부터 저희남편이 하던 자영업이 슬슬 힘들어 지기 시작하면서
작년 말 결국 사업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양심상 권리금은 포기한채 보증금만 돌려 받고 그 생활을 접었습니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빚도 없는 상황이였지만,
남편의 벌이가 없고, 저도 벌이가 없는 상황이라
매달 적자를 낼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고,
매월 들어가는 적금만해도 300이 넘습니다.
남편과 몇번의 상의 후에 남편은 남의 밑에 들어가 일을 하겠다고 하였고,
저는 다시 레스너로 일을 하겠다고 남편에게 얘길했습니다.
아들을 어디다 맡길곳 없나..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시어머님은 저희남편 19살때 집을 나가셔서 없으시고,
저희 어머니도 저보다 7살이나 어린 미성년자 동생 키우시느라
일을하셔야만 합니다.
제가 벌어 생활비를 드리려 해도 가까우면 같이 살면 되는데
가깝지가 않습니다ㅠㅠ..
도무지 아이를 맡길곳이 없어 이리저리 영아 전담 어린이집을 알아보다가
알림장도 써주고 맘에 드는곳을 찾아서 그 곳에 보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였지요.
그 때마다 정말 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찢어 졌습니다.
그래도 그 어린것을 왜 보내야만 했냐하고 물으신 다면
제 아이만큼은 하고싶다는거 현실의 벽에서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하고싶다는거 할수 있는거 모두 다 해주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 돈을 못벌고 안모여서 못해주는 것 뿐이지 어느부모의 맘이 그런것
아니겠습니까?
저나 오빠의 경우도 기억속에 1~2살의 기억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무의식속의 기억이지만
5살 때 남들 다가는 유치원..
그리고 초등학교 때 메보고 신고 싶었던 메이커 가방 신발.
주위친구들 방학 때만 되면 이곳저곳 여행간다는데
여행은 머나먼 얘기지요..
어머님은 매일 홀벌이에 저는 집에 혼자남아 동생이랑
쓸쓸히 보내야만 하고
운동회 때 엄마가 왔으면 좋겠는데 할머니가 자꾸와서
할머니께 쪽팔리다며 언성을 높인적도 있습니다.
중학교때는 사춘기가 와서 가출도 하고 어머니께 반항아닌 반항을 자꾸 하게되고
심지어 그때는 저희 어머니께 왜 저를 낳았냐며 가슴에 대못을 박았죠..
저는 그때의 기억만이 존재합니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가 않고
비단 피아노 뿐만이 아니라 하고싶은거 먹고싶은거 정말 많았는데
참아야 할 때가 대부분이였죠..
저희 남편도 초등학교때의 시절까지는 저와 비슷한 상황이였구요.
그때의 설움이 잊혀지지가 않고 아직도 한이되어
마음 속 응어리가 집니다.
제 자식만은 절대 그리 키우지 않겠다
유복한 집에서 유복하게 키우겠다
생각했는데 남편의 월급만으론 하루벌어 하루먹는 생활밖에 안됩니다.
저와 남편이 꿈꾸는 생활도 할수가 없습니다.
물론 저희 아들도요.
그런데 제 친구가 얼마전에 전화와서는
제 속을 박박 긁습니다.
제가 정말 개념없고 모성애 없는 아이라면서요.
친구가 얼마전에 아이를 낳았는데 이리 이쁜 피덩이를
어디다 맡길 생각을 하냐구요..
저희아이를 보낼 때 전 이미 독한 마음먹고
그저 유복함 하나만 생각하고 악착같이 몇달간 일해왔는데
신경쓰지 말아야 하는데..
제 주관이 저희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일 수도있고..
남편과 저만의 주관일수도 있는것이고..
참 흔들리네요..지금이라도 제가 봐야하는걸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