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Mr. Law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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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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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이 16, 첫사랑을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였다.
나는 소위 말하는 양아치였고, 그아이는 얼굴도 이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다.
개학한 첫날, 벚꽃잎과 함께 나는 그애와 짝이 되었다.
그애는 내 옆에 앉자마자 담배 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향수 한병을 샀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대신 엎드려 그애가 몇번이나 안경을 추켜 올리는지를 세어보았다.
언제는 열번, 언제는 두어번. 그 애는 날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신선했고, 기대됐다.
그 아이의 짝은 언제나 나였다. 아이들은 모두 날 무서워했다.
그 애는 자리를 바꾸는 날마다 한숨을 쉬곤 했다.
난 그애가 날 싫어했다고 생각했다. 그 애와 난 많이 달랐다.
난 입양아였다. 그 사실을 처음 가출했던 날 아버지가 내게 소리치셨었다.
하지만 그건 부족이 아니었다. 오히려, 꽉찬 무언가를 마음속 방안 한구석에 가둬놓고 잠갔다.
부족한건 오직 마음의 공간이었다. 맘편히 머물 곳이 없었다. 집, 학교, 심지어 나 자신에서도.
유일한 탈출구는 탈선이였다. 그런데 그 애의 미소, 향기가 진정한 '공간'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말할 순 없었다. 그아이와 난, 여러모로 이루어질 수 없는 양상이었다.
그 애와 말은 일주일에 두어번 할까말까였다.
하지만 난 항상 눈빛으로 그 애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아침 뭐먹었니. 어제 그 드라마 봤니. 수학이 그렇게 재밌니. 꿈이 뭐니.
혹시 너도 날 좋아하니.
일학기가 끝나고,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그 아이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친구라고 불리던 쓰레기들을 버리고, 담배를 끊었다. 손에 펜을 쥐었다.
그리고, 2등이라는 성적표가 나오는 순간 나는 그애에게 말을 걸었다.
나 사실 입양아야.
마음속 자물쇠가 서서히 풀리는 느낌이었다.
몸의 모든 구멍으로 그것들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와 그애를 껴안았다.
그아이는 그렇게, 조용히, 그것들을 모두 받아주었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었다.
그애와 처음으로 같이 등교를 한날, 우리는 졸업을 했다.
그리고 꽃과 함께 그애가 쥐어준 쪽지는, 그만, 어딘가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날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보내셨다.
하루에 오십번씩 그 애 생각을 했다.
그 애는 핸드폰도 없었고, 메신저도 안했고, 그 흔한 미니홈피도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절망, 그 자체였다.
나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대학까지 마치고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꾸준히 한국에 들르긴 했지만 동창중 그 누구도 그아이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하긴, 그 아이는 나만큼이나 말수가 적었다. 유일한 친구가 문제집인 것처럼.
나또한 필사적으로 그애를 찾진 않았다. 그냥, 왠지 모르게 자꾸 재회를 미루게 되었다.
사실, 내심 그애가 먼저 연락을 하길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날, 동창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그애 결혼한대.
함께 첨부된 청첩장에는 내 이름이 박혀 있었다.
묵묵히 짐을 싸고,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비행기 안에서도 묵묵히 영화를 보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공항에 발을 딪는 순간, 억눌렀던 모든게 터져나오듯, 그 언젠가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가끔, 그애와 함께 점심을 먹던 나날들이 생각이 난다. 그 애가 내 가방에 쑤셔넣었던 목도리, 내가 수업시간에 몰래 건넨 사탕 따위의 것들 , 내 귀에 꽂아주던 이어폰에서 들려오던 뉴에이지 음악, 한쪽 귀퉁이에 써내려갔던 필담, 그리고 낮잠 자는 그아이의 감긴 속눈썹 마저도 말이다.
..
결국 결혼식은 가지 못했다.
그애에게 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편지는 썼지만, 그것또한 전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전, 한국집의 이삿짐을 싸던 중 나는 잃어버렸던 그 쪽지를 발견했다.
그 빼곡한 쪽지에는 그 아이의 집주소, 집 전화번호, 진학하는 고등학교, 꿈, 가족, 좋아하는 음식, 취미, 생일, 사실 공부 못하던 나도 괜찮았다는
이야기, 왜 콩을 안먹느냐는 이야기, 친부모님을 꼭 찾길 바란다는 이야기 그리고,
좋아한다,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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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야, 혹시라도 너가 이글을 본다면, 전하고 싶어. 결코 너의 고백때문에 널 피한게 아니야. 오히려, 만약, 내가 그 쪽지를 그날에 당장 펴보았더라면, 너의 옆자리엔 내가 있지 않았을까, 가끔 후회를 해. 너의 소식을 들을 기회는 많지만, 듣지 않으려 하고 있어. 지금으로선 그게 너와 나의 최선이니까.
너 닮았다는 딸, 보고싶긴 한데, 보고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