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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거울

 

 

 

 

 

 

 윤석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학교 선배 용준이 자기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뛰어갔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멋내기를 좋아하는 것을 빼면, 용준은 꽤 괜찮은 선배였고 후배들을 매우 잘 챙겨주던 복학생 중에 한 명이었다. 윤석은 그런 용준을 친형처럼 잘 따랐으며, 용준 또한 다른 후배들보다 윤석을 더욱 각별하게 대해주었다.

그랬던 두 사람이었는데, 윤석이 군대를 가고 용준이 졸업을 하면서, 연락이 끊겨 4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윤석은 그의 앞을 가로막아서며 방긋 웃었다. 그런데 용준 선배는 윤석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인양 쳐다보는 것이었다. 윤석은 군대에 있던 동안 통통하게 살이 쪘기 때문에 금방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안녕하세요? 저 윤석인데요."

"네? 윤석이요?"

"기억 안 나세요? 전에 부학회장 했던..."

"부학회장? 학교?? 아! 윤석이구나. 이야... 반가워. 몰라봤다. 미안... 난 또 누군가 했네."

 

용준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윤석도 따라 손을 내밀다가 그제야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멋쟁이로 유명했던 선배였는데... 옷소매에 때가 지저분하게 껴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당당했던 예전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폐병 환자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으며, 유행이 몇 년은 지난 듯한 촌스런 셔츠에다 그 단추까지 잘못 끼워져 있었고, 머리는 빗기는 빗었지만 무슨 새둥지가 앉아있는 것 같이 지저분했으며, 수염도 엉성하게 깎아서 여기저기 삐죽삐죽했다. 어딘가 모르게 표정마저 어색해 보였다.

 

'용준 선배가 왜 이렇게 변했지? 온몸을 명품으로 도배하는 것은 물론이고, 피부관리실까지 다닐 정도로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하던 분 아니었나?'

 

게다가 선배는 뭐가 그리도 무서운지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가끔 시커멓게 썬탠이 된 자동차나 옷가게의 쇼윈도라도 보일라치면 황급히 고개를 숙이거나 자신의 눈을 양손으로 가렸다. 윤석은 너무나 변해버린 그의 모습이 이상하기만 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폐인이나 미치광이의 모습이랄까?

윤석은 ‘진짜 그 선배가 맞을까?’라는 의문에 몇 번이고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역시 그 선배가 맞았다. 변한 것은 차림새와 헤어스타일뿐...

그런 윤석의 이상한 기분도 잠시... 두 사람은 반가운 나머지 이런저런 회포도 풀 겸 근처에 있던 술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컴컴한 곳이 싫다며 창가에 앉아 멋스럽게 다리를 꼬고 앉을 선배가 그날따라 구석자리를 더듬더듬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를 따라 구석진 자리에 앉은 윤석은 예전의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의 괴상한 행동에 또 한번 어리둥절 할 수밖에는 없었다. 선배는 주머니 속에서 나무로 된 숟가락을 두 개 꺼내더니 그 중 하나를 윤석에게 내미는 것이었다. 나무 숟가락은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것처럼 지저분했다. 너무나 어이가 없는 나머지 윤석은 선배의 장난이라 생각하며, 앞에 놓인 수저통을 열려고 하는데...

 

"수저통 열지 마!"

"네?"

"수저통 열지 말라고 했다!"

"무슨 말씀인지??"

"아니, 미안. 그냥... 쇠로 된 수저를 쓰면 안 되기 때문에..."

 

진짜 정신병이라도 걸린 걸까? 윤석은 의아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앉은자리는 어둡고 침침한데다 오래된 나무장식으로 둘러싸여서 퀴퀴한 냄새까지 풍기는 곳이었다. 윤석은 '왜 그러시냐고... 예전의 선배 같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입이 근질거려 미칠 것만 같았지만, 말 없이 술을 따르고 마시는 행동을 반복하는 선배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술병이 3개가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술을 마시며 계속해서 바닥만 쳐다보고 있던 선배가 잔을 내려놓더니 비로소 윤석을 쳐다봤다. 취기가 오른 얼굴이었다.

 

"미친놈처럼 보이지?"

"네?"

"그렇게 보인다는 거 다 알아. 애써 숨길 필요는 없어."

"아니... 아니에요. 그건 아니고... 그냥..."

"실은 기막힌 사연이 있어."

"네??"

"거울이 말을 한다고 하면, 내 말을 믿겠니?"

"거울?"

"그래, 거울... 얼굴을 비추는 거울... 그게 말을 걸었어."

"말을 걸다뇨?"

"응, 거울이 이야기를 하는 거야."

 

순간 윤석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을 수 있었다. 농담을 이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무게까지 잡으며 하다니...

 

"거울이 말을 한다고요? 무슨 말씀이세요? 진짜로 이렇게 생긴 거울이 말을 했다는..."

 

윤석이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려 하자 선배는 마치 급소라도 맞은 사람처럼 괴성을 질러대며 벌떡 일어났다. 윤석은 동작을 멈추고는 매우 황당한 표정으로 선배를 쳐다보았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의 시선도 일제히 윤석과 용준에게 쏟아졌다. 용준은 식식거리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소주병을 들더니 그것을 단숨에 마셔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 희한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은 네 얼굴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 눈이 많이 나빠졌어. 네가 거울을 꺼내도 네가 들고 있는 물건이 거울인지 뭔지는 잘 보이지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이젠 너무 겁을 먹어서 쇠로 만들어진 숟가락도 쓰지 못하지. 얼굴이 비추거든..."

"....?"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나 깜깜하구나. 믿어지지 않더라도 끝까지 들어줘.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건 진짜로 벌어진 일이니까... 아무에게라도 이런 심정을 말하지 않으면 정말이지, 진짜 미친사람이 될 것 같아서 말이야."

"네?... 그, 그럴게요."

"고맙다. 그럼 내가 겪은 기막힌 사건을 이야기 할게. 이년 전쯤일 거야. 약을 잘못 먹었는지 얼굴에 여드름 같은 것이 나서..."

 

***

 

샤워를 마치고 나온 용준은 그 날도 전신 거울을 보고 있었다. 여자들처럼 꾸미기를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그 거울 옆으로는 명품 브랜드의 옷들이 즐비하게 쌓여있었다.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 소리... 용준은 번호를 확인하더니 한숨을 쉬었다.

 

"쳇, 카드사에서 전화가 왔구나. 요즘은 하루만 연체되어도 이렇게 난리를 친다니까..."

 

거울을 볼 때면 교수님의 전화도 잘 받지 않는 용준이었다. 용준은 핸드폰의 배터리를 빼버리고는 전신거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 헤어 드라이기를 집어들었다.

 

"내일부터는 폰을 집에 놓고 다녀야지. 참! 깜빡했다. 오늘은 헬스 갔다가... 마사지 받으러 가는 날이네?"

 

항상 옷 값, 피부관리 값 등으로 빚에 시달렸지만 이상하게도 외모에 대해서는 아끼는 것이 없는 용준이었다. 거울을 하루에 골백번 이상 들여다보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다시 거울을 보니, 이마에 잘 익은 여드름 하나가 불거져 있었다.

 

"이게 뭐람? 분명 조금 전까지는 깨끗하던 이마가... 피부 트러블이 생기는 거 아냐? 원장한테 따져야겠군. 그러면서 돈은 다 받으려고 해."

 

용준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소독한 집게로 여드름을 조심스럽게 짜내기 시작했다. 아팠지만, 피가 멈춤 때까지 짜고, 또 짜낸 다음, 그 위에 독일제 스킨과 크림을 바르면 금방 깔끔해질 거란 생각에 눈물이 찔끔 쏟아질 정도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피지 덩어리와 함께 피가 터져 거울에 튐과 동시에...

 

("아야!")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용준은 두리번거렸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을까? 다시 여드름을 짜내기 시작한 용준... 또 다시 '아, 아파라' 라는 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라 다시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이 조용하기만 한 방안이었다. 용준은 헛것을 들었다는 생각에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그때였다.

 

("야! 김용준! 아파 죽겠네.")

 

누군가가 용준을 부르는 것이었다. 용준은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리며 불을 켜려고 했다. 그러자 그 목소리는 또 다시 들려왔다.

 

("불 켜지마!")

"뭐야?"

("난 바로 너야.")

"무슨 소리야? 누구야?"

 

방에 누군가가 숨어있다는 두려움에 용준은 장식용 하키채를 집어들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목소리는 급히 대답했다.

 

("잠깐!! 나도 너한테 이렇게 말하는 거가 싫어. 그런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뭐?"

("무슨 놈의 남자새끼가 하루종일 거울만 쳐다보냐? 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 그런데 이젠...")

"넌 대체 누구야?"

 

용준은 불을 켜고는 목소리가 들리던 곳을 쳐다보았다. 용준이 하루에도 수십 번은 들여다보는 전신거울이 있던 자리였다. 용준이 다가가자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용준은 아무래도 피곤해서 그런 것인가보다 생각하며 다시 불을 끄고 누우려는 찰나...

 

("난 네 거울 속의 모습이야.")

"또 뭐야?"

("놀랬겠지만, 잠시만 내 이야기를 들어봐. 침착하게... 난 네 거울 속의 너야.")

"무슨 헛소리를..."

("네가 이렇게 거울을 쳐다보지 않고 있어야만, 내가 비로소 움직일 수 있지. 아주 자유롭게 말이야. 이렇게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네가 거울을 보면, 난 네 행동을 따라서 해야해.")

"뭐라고?"

 

용준은 너무 기가 막혀서 스위치부터 올리려 했다. 그러자 목소리는 매우 겁을 먹은 듯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용준이 불을 켜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한참을 헉헉거린 용준이지만 헛것이나 꿈을 꾸고 있는 거겠지란 생각에 침대에 누워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그 다음날이었다.

용준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하고 버릇처럼 거울을 보았는데... 좀 이상한 것이 있었다.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거울 속의 용준은 모습이... 용준이 하는 실제 행동과는 약간 차이가 나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었다.

0.01초의 차이랄까? 용준이 오른팔을 들면 그 미세한 시간 이후에 거울 속에 용준이 왼팔을 들었고, 용준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면, 거울 속의 용준의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더 이상한 것은 거울 속의 용준이 마지못해 그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자꾸만 반복되자 용준은 그제야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드사, 학교 공부 등등 피곤한 일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날 밤이었다. 평소 때처럼 용준이 불을 끄고 자리에 눕자...

 

("왜 궁금해?")

 

그 목소리가 또 들려오는 것이었다. 용준은 대답 없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마에서 땀방울 하나가 흘러 용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긴, 거울 속의 세상이지. 너희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 거울 속의 세상에도 있어. 하지만 아주 똑같진 않아. 너희가 거울을 보지 않으면 우리 거울 속의 사람들은 매우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있으니까...")

"대체 넌 뭐냐! 꿈이면 사라지고... 누가 장난치는 것이면 내 방에서 어서 꺼져. 거울 속의 나라고? 좋아하시네. 지금 영화 찍냐?"

("그건 내가할 소리야. 좋아. 증거를 보여주지.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네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네 탁자 위에 있을 거야.")

"내가 가지고 싶은 거라니?"

("난 너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 마음을 다 알고 있어.")

"뭐?? 네가 나라고??"

("그래, 난 너야. 그래서 내가 생고생을 하는 것 아니겠냐? 나는 너 때문에 아주 혹사를 하고 있어. 이곳의 다른 사람들은 다들 쉬는데도, 난 너 때문에 일을 더 많이 해야 하거든? 네가 거울을 너무 자주 보는 바람에, 난 일을 해야한단 말야!. 넌 다른 사람에 비해 열 배 이상 거울을 보잖아? 내가 열 배 이상 일을 해야한다는 의미야. 솔직히, 거울 보면서 춤을 익히는 무용단 사람들보다 다섯 배는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거 넌 알기나 해? 어쨌거나, 본론으로 넘어가자. 이 세상에서는 시간제로 수당을 받거든? 너 때문에 돈은 많이 벌었어. 줄기차게 일을 하니까... 그런데, 그럼 뭐해? 여가를 즐길 시간도, 돈을 쓸 시간도 없는데... 그래서 수당으로 모조리 복권을 샀지. 그런데, 우연찮게 그 복권이 크게 터져서 난 이 세계에서 엄청난 돈을 가지게 되었어. 네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카드 빵꾸도 메우지 못하는 너와는 차원이 다르게...")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래서 확인시켜 준다니까!")

"웃기는군! 뭐로 확인시켜 주는데?"

("너 평소에 왼쪽 약지에 칠백 만원이 넘는 티파니 세공반지를 끼고 싶어했지? 다시 말하지만, 내일 아침에 거울 앞에 있는 탁자를 확인해봐. 너희 세상에 이곳 물건을 주는 것을 여기 사람들은 매우 싫어하지만, 일하는 게 지겨워서라도 꼭 확인시켜주고 싶으니까...")

 

용준은 터무니없는 꿈이라고 생각하고는 대꾸 없이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 다음날...

우연히 테이블을 쳐다본 용준은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단순한 꿈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테이블 위에 잘 포장된 티파니 반지가 진짜로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가지고 싶어도 너무 비싸 사지 못했던 명품 중에 명품이었다. 하지만 간밤에 일어났던 일들이 아직까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 용준이었다.

그 다음 날부터, 테이블 위에는 용준이 가지고 싶어하던 값비싼의 물건들이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다. 고급 목걸이, 명품 옷, 금장 라이터...

거울 속의 용준이라고 자신을 밝힌 목소리 또한 거의 매일 찾아오다시피 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자 용준은 거울 속에 '자신'이 진짜로 존재하며 그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믿기 시작했다. 그 무렵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그가 찾아왔다.

 

("솔직히 나도 일하는 것이 싫어서 널 매일 찾아오는 거야. 이제야 내 존재에 대해 믿겠니?")

"흠..."

("제발 거울 좀 자주 보지마라. 내 부탁은 그거 하나니까... 나도 이 세상에서는 꽤 부자인데, 네가 매일 거울만 보는 통에 즐기지도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잖아. 부탁이야.")

 

반지에다 티셔츠 등등 여러 가지의 '거울 속 세상의 물건'을 받은 용준은 슬슬 욕심이 생겨 '거울 속의 내가 그렇게 부자라면... 정말 그렇다면...'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뭔가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난 용준은 간밤에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고 밖으로 나섰다.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표시제한이 되어있어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는데... 하필이면 카드사에서 온 전화였다. 대충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으려다 카드사 직원의 마지막 말에 용준의 귀가 뜨였다.

 

["전화를 너무 안 받으셔서, XX신용정보로 처리내역이 넘어갔습니다. 아직은 신용불량자 명단에는 넘어가지 않았지만..."]

 

XX신용정보라면 악독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깡패들처럼 생긴 사람들이 운동복 차림으로 돈을 걷으러 다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용준은 더욱 초조해졌다. 갑자기 갚을 능력도 없었고, 그렇다고 돈을 꿀 때도 마땅치 않았다.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며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시간을 질질 끌었었는데, 이제는 벼랑끝까지 서게 된 것이었다.

대학간 아들을 위해 고향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적어도 용준이 알고 있는 XX신용정보의 작자들이라면 용준의 고향까지 쳐들어갈 것이 뻔했다.

 

그 날 밤이었다.

며칠 동안 찾아오지 않았던 거울 속 용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민이 있구나")

"시끄러워. 좀 사라져!"

("너랑 나랑은 한 몸인데 내가 그럴 수 있겠어?")

"한 몸 좋아하시네."

("네가 깡패들한테 맞으면, 내 몸까지 아파지거든... 혹시 그 근처에 거울이 있기라도 하면, 나도 이 세상에서 진짜로 맞아야 하는 거고... 너 때문에 내가 왜 아파야 하는데? 고민 한 가지는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데...")

"치... 사람도 아닌 주제에..."

("어쭈? 좋아. 그럼 거래를 하기로 할까?")

"무슨 거래? 네가 돈이라도 줄 수 있어?"

("돈? 겨우 그걸 원해?")

 

용준은 순간, 머리가 번뜩였다. 그러고 보니 밀린 카드 빚도 있고 해서 용준은 연기를 하듯 대답했다.

 

"돈... 진짜로 줄 수 있어?"

("금이나 다이아몬드... 이런 거 말고?")

"돈을 못 주니까... 엉뚱한 소리하네?"

("나 부자라니까 그러네. 주식까지 터져서... 돈 쓸 때가 없다. 줄께.")

"현금으로?"

("돈을 원해?? 보석이 더 나을 텐데...")

"다른 건 필요 없어."

("좋아, 현금으로 주지. 원한다면 매달 월급처럼 줄 수도 있어. 후회는 하지마.")

"진짜?"

("대신 나도 원하는 것이 있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니?")

"뭔데?"

("네가 거울을 보지 않은 것! 그거 하나야. 난 부자라서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거든? 그러니까 거울을 아예 보지 않았으면 해. 죽겠어. 나도 좀 쉬자. 그거 뿐이야. 아무리 우리 세상 사람들의 일이 따라하기라고는 하지만, 하루종일 앞에 있는 사람이 하는 행동 똑같이 따라해 봐라. 짜증나지 않겠냐? 게다가 너는 거울이 셋 달린 곳에 까지 가서 갖가지 생쇼까지 하잖아. 거울 한 개만 해도 힘든데, 네가 거울이 세 개나 네 개 달린 곳에 가서 그 거울들을 보면 동시에 난 여러 곳에 비추어야 하니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홍길동도 아니고...")

"좋아. 알았어, 거울을 안 보도록 할게. 돈은 얼마나 줄 수 있는데?"

("매달, 500만원이면 되나? 1000만원? 그 정도면 충분해?")

"천만 원이라고? 그것도 매달?"

("왜? 적어?? 아직 학생이잖아. 졸업하면 그 몇 배는 더 줄 수도 있어. 학생 때 돈 너무 밝히면 몸 버린다. 네 몸이 상하면, 내 몸까지 힘들어 지잖아.")

 

이것이 무슨 횡재냐 하는 표정을 하던 용준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대답했다.

 

"좋아좋아, 그런데 만약, 네가 돈을 주었는데 내가 간혹 거울을 보게되면?"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어. 하지만... 그 이상을 넘게되면...")

"넘게되면?"

("아예 거울을 못 보도록 네 시력을 조금씩 가져갈 거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겠지만....")

"시력?"

("눈이 나빠지면, 난 그만큼 쉴 시간이 많아지잖아. 넌 지나치게 눈이 좋아.")

"좋아!"

("그럼 거래가 완료된 거지?")

"그래."

("오케이, 당장 내일부터 시작이다.")

 

***

 

용준 선배는 윤석에게 거기까지만 이야기하더니 다시 술잔을 집어 들었다. 윤석은 의아하기만 했다.

 

"선배님 말이 정말이라면, 횡재한 거잖아요?"

"그렇게 보여?"

"그럼요. 거울은 안보고도 살 수 있잖아요. 한 달에 천만 원이면... 일 년이면 억이 넘네. 우와! 평생 노력해봐야 그만큼 월급 주는 회사에 취직할 수도 없는데..."

"맞아... 네 말처럼 거울쯤은 안 보고도 살 수 있지. 그 후로 난 거울을 절대 안 봤어. 내 꼴을 봐라. 머리도 제대로 빗지 못하잖아. 그런데 말이야. 내 시력이 왜 떨어졌는지 알고 있니? 난 지금 네 얼굴의 윤곽만 보일 뿐이거든? 그래서 널 금방 못 알아 본거고..."

"그래요? 거울을 안 봤는데, 시력이 왜 떨어졌어요?"

"그게 말이야. 다른 사람이 거울을 볼 때 근처에 내가 있으면... 난 거울을 본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거야. 왜냐면... 그 속으로 내가 비출 수밖에는 없거든? 거울을 보고 있는 어떤 사람이 그 안에 내가 없으면 이상할거 아냐? 다른 사람이 거울을 보게 되더라도 그 속에 내가 비추게되면 거울 속 그 녀석이 흉내 일을 해야하는 거지. 그때마다 내 눈이 조금씩 나빠지는 거고... 그래서 거울을 누가 보든 안 보든 근처에 거울이 있으면 절대 안 돼."

"!!"

"난 그걸 여태 몰랐던 거야. 그래서 눈이 이렇게 나빠졌고... 일반 거울 뿐만이 아냐. 쇼윈도며, 선탠 한 차의 유리, 꺼진 TV화면... 심지어는 쇠로 된 숟가락마저도 얼굴이 비추는 것은 모조리 거울과 같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어. 집에는 이제 얼굴이 비추는 물건이 단 한 개도 없지만, 바깥 세상에는 얼굴이 비추는 것이 너무나 많아. 심지어는 핸드폰까지도... 그래서 어쩌다 한 번씩 밖에 나올 때마다 그렇게 주의를 하는데도 시력이 점점 나빠진 거야. 그렇지만, 너무 답답해서... 눈이 나빠질 각오를 하고 외출을 하곤 해. 오늘도 그러다가 널 만나게 된 거고..."

 

선배는 술잔을 홀짝거렸다. 술은 어느새 다섯 병이 비워졌고, 시간도 꽤 흘렀다. 그제야 선배는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구겨진 천 원짜리 몇 개와 동전을 꺼내 세기 시작했다. 선배가 백 원짜리까지 세기 시작했을 때였다.

 

"선배님? 뭐하세요?"

"오랜만에 만난 후배... 술값은 내가 계산해야지."

"그게 아니고..."

"그럼?"

"그거 잔돈이잖아요?"

"눈 때문에 아르바이트도 하지 못하는 형편이라..."

"거울이 돈을 주지 않았나요?"

"주지. 잉크도 마르지 않은 현금으로 천만 원씩... 한 장도 틀리지 않게, 꼬박꼬박 테이블 위에 놓아두던데?"

"그런데, 아르바이트라니요?"

"훗... 맞다. 그 얘기를 안 했구나. 그것이 진짜 기가 막히는 거란다. 난 분명 돈을 받고 있어. 여기 손가락에 낀 반지도 그 녀석한테 받은 거고... 이 라이터도 그렇고..."

"그런데?"

"이유는 바로 이거야."

 

선배는 안주머니에서 장지갑을 꺼내 살짝 벌려서 보여주었다. 빳빳한 만 원짜리 지폐가 적어도 백 장은 넘어 보였다. 그런데도 꾸겨진 잔돈푼을 꺼내다니 정말 이상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선배는 지갑 속의 빳빳한 돈 중에 몇 장을 꺼내 윤석의 손에 들려주었다. 잉크 냄새가 나는 것이 찍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만 원짜리 지폐였다.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둘러보던 윤석은 잠시 후 깜짝 놀랄 수밖에는 없었다.

그 돈은 거울에 비친 모습, 그대로를 하고 있는 돈이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림과 글씨 등이 전부 거꾸로 인쇄된 돈이었던 것이다. 윤석은 그제야 선배가 백 원짜리를 세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윤석이 어이없단 표정으로 입이 벌어져 선배를 쳐다보는데, 선배는 한 숨을 푸욱 내쉬었다.

 

"매달 천만 원씩 3년 가깝게 주고있으니, 집에 족히 3억 정도는 쌓여있을 거야. 어디다 버릴 수도 없고..."

"그럼? 전부 다?"

"그렇지. 그래서 항의를 하려고 매번 그 녀석을 부르지만... 거래를 했던 날 이후로 녀석은 나타나지 않는 거야. 일부러 그러는 건지..."

 

계산을 마친 선배와 윤석은 술집에서 나왔다. 선배는 거울을 피하려는지 여기 저기 눈치를 보며,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내가 학교도 가지 못했던 거야. 외출을 할 수 없으니까... 사는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랬던 거로군요."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야. 내가 이런 바보가 되어 버렸다는 거..."

 

윤석도 어느새 선배와 마찬가지로 주변에 거울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며 걷기 시작했다. 거울 비슷한 거라도 있을라치면 선배를 팔을 끌어서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길모퉁이를 지나고 있을 때쯤이었다. 재수가 없는 건지 마침, 커다란 거울을 든 사람이 그것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윤석은 놀라 급히 선배의 몸을 숨기려고 하다가 술기운에 넘어지면서 거울을 든 사람과 부딪히고 말았다.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한 거울 운반자가 휘청거렸고, 커다란 거울은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윤석은 넘어진 그 상태로 놀라 거울조각을 쳐다보았다.

거울의 조각, 조각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선배의 얼굴이 비추고 있었다. 거의 모든 조각에서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놀라운 것은 각각의 조각이 약간씩은 다른 모습을 한 선배를 비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뒤에서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석아, 무슨 일이 벌어진 거니? 갑자기 앞이 캄캄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왜 그러지? 왜 그래? 윤석아... 무슨 일이 벌어진 거니?"

 

 

 

 

 

 

 

- THE END -

 

 

(제가 쓴 저작물이므로 불펌 및 상업적으로 이용하면 안 됩니다.) 

 

 

 

 

1화: 말하는 거울

2화: 포스터를 그리면서

3화: 하얀 원피스

4화: 딸을 위한 선물 (19)

5화: 천재 작가 (19)

6화: 소름끼치는 목소리

7화: 뫼비우스의 운명

8화: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을 때...

9화: 최고의 상품

10화: 과거로 돌아간 남자 (운명의 새해)

11화: 사이버 세계로 떠난 웹툰작가 上

12화: 사이버 세계로 떠난 웹툰작가 下

13화: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14화: 내 잘못이 아니야

15화: 파우스트의 진실

16화: 그의 노래가 들리는 곳에는...

17화: 0,01% 상류층의 은밀한 놀이

추천수32
반대수7
베플운아|2013.07.10 04:04
유리님 소설 처음부터끝까지 헉헉거리면서 봤네요 ~ 간만에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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