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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기형인 남자(기록XXX 이란 글 쓰신분 봐주실래요~)

씨앤앤 |2013.08.28 17:17
조회 160 |추천 0

안녕하세요. 32살 지방에 사는 사람입니다.

여기 올라온 많은 글을 읽다가 고민 끝에 올립니다.

맘에 안드시면 디스 날려주세요.겸허히...

 

제 발가락은 손가락으로 비유하자면 약지에 해당하는 발가락이 중지 밑으로 깊게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땐 정상적으로 걸으면 너무 아파서 발 옆면으로 걸어다녔습니다. 안아프더군요.

문제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시작이었죠. 걷는 모양이 이상했던 탓에 초등학교 3~4학년때까지 같은 반 애들이며 친구들이 저를 괴롭혔었죠...선생님도 저를 유독 심하게 다뤘던거 같습니다.

그게 저에겐 분명히 상처가 되었죠. 똑바로 걷고 싶었습니다. 정말 다른애들처럼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등교했었죠. 그리고 똑바로 달리는 연습을 매일 운동장에서 했죠.

제 기억으론 5학년때부터는 정상적인 애들처럼 걸어다녔던걸 기억 합니다. 2년정도 운동장에서 이른아침에 혼자 달릴 때면 정말 발가락을 잘라내고 싶은 고통이 매일매일 발끝에서 발목까지 왔지만 제대로 한번 걸어보겠다는 간절함이 그 당시에 저에게 큰 힘이 되었던거 같습니다. 

 

중학생때는 축구를 정말 좋아하게 되어 축구부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정상적인 애들보다 열심히 했고 잘했었다고 생각합니다.

2학년때 축구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정말 좋았었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축구부는 보통 하루일과과 새벽에 달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해질 때 달리는 것으로 끝이납니다.  

무리한 운동 때문이었을 겁니다. 제 기형발가락이 더욱더 기형이 되어버린것이죠.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발가락탈골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상황...

울고불고 난리났었죠. 결국 축구를 그만두고 공부에  ㄱ자도 모르는 꼴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또다른 시련이 절 기다리고 있더군요. 바로 공부죠.고생한걸 생각하니 욕이나오네요...

 

중학교 땐 공부 잘하는학생 못하는 학생이 섞여있어서 덕분에 전 겨우 저희지역에서 가장좋다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죠 저희지역이 예전에는 비평준화지역이었습니다. 잘하는 애들끼리모아놓고 그다음잘하는애들끼리 모아놓고 그런흐름이었죠.  

전 정말 운이 좋아서 좋은학교에 입학은 했는데...고등1학년 첫전국모의고사 시험보니 47명중에 45등했습니다. 45라는 숫자에 맘이 상해서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공부를 시작했었죠.

영어는 뭔소린지 수학은 또 뭔소린지 과학은 정말 뭔소린지... 중학교때랑은 확실히 다르더군요.

아예 못 알아듣겠더군요.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찾아가서 학교 못다니겠다고 했더니...저를 정말 개패듯이 패더군요. 그리고 목표대학을 함께 정한 뒤에 3당4락이라는 공부를 1학년부터 시작하라고 제게 말해주시더군요. (정말 지금도 그당시에 저를 개패듯이 안패줬으면 나 지금 뭐할까 혼자 생각해보곤 합니다.) 3시간 자면 대학 합격이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이죠. 별 개똥같은 말입니다.흘려들으세요. 전 공부를 제대로 해 본적이 없어서 담임선생님 말씀을 바이블인양 따랐습니다.

 

1학년 내내 죽어라 했는데 성적이 안오르더군요. 다들 잘하는 애들만 모아놔서 그랬나 내가 멍청했나 아마 둘다 일겁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죽자고 공부해도 성적 안나오면 정말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죠.

그래도 참고 버티니까

정말 1등도 안오르고 45에만 머물러있던 성적이 11월 모의고사에서 19등으로 빵 치고 올라가더군요...화장실가서 혼자 조용히 눈물 한방울 찍 짜줬습니다. 그때부터 더 욕심이 나서 2학년땐 하루에2시간 자고 공부했었죠. 예전 중학교때 성실히 축구 한 덕에 체력이 받쳐주더군요.

2학년 내내 성적 18~19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요...공부가 힘들어질 무렵.

또 11월 모의고사에서 빵 터지더군요 5등으로. 또 화장실 갔죠.

 

3학년 담임과의 면담

민아 너네집 형편안다. 사관학교가라. 최선이다.

전 바로 네 했습니다. 집 형편이 불편했습니다.

오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두분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사신 분들입니다.

다만 고2때 아버지가 보증 한번 잘못서서 방한칸짜리 월세로 이사갔었죠.

아버지는 동해로 오징어배 타러 갔었죠.

그 이후로 전 대학교 장학금이라는 것 때문에 더 공부에 집착했던거 같습니다.

고3 7월이었죠. 잠안자고 제대로 못먹고 불안한 심리 뭐 많은 이유탓에 결국 사고가 터집니다.

 

전 기억이 하나도 없는데 제가 자다가 일어나서 길가는 사람을 잡고 때리고 물건부수고 그랬다는 겁니다. 물론 병원에서 아침을 맞이했구요. 응급실침대 옆에 어머니가 서럽게 우시는데 ...

저로서는 이 상황 뭐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새벽일들을 들었을 때

그냥 서러웠고 앞으로 정신병자로 살아야하나 무서웠습니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삶.

병원으로 한달간 통원치료받았습니다. 공황장애에 의한 행동조절장애 진단 평가 받았고.

리보트릴이란 약을 엄청 많이도 먹게 하더군요. 그리고 그날이후로 교실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책만 보면 미칠 것같은 끼가 막 생기더군요. 그러니 피해야지 별 수 없죠.

그리고 대학은 그동안 공부해놓은 게 있는탓에 고향에 있는 국립대로 갔습니다.

대학가서 군대가기 전까지 신나게 놀고 군대갔다오니까 병은 거의 다 나았습니다.

.그만하고...

.

.

지금도 걸을 땐 매일같이 발에 무한통증이 오고

밤에는 망가진 자율신경계 덕분에 자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고

재정적 밑바탕이 없었기에 7년간 숨만 쉬고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누구하나 저 신경도 안써주더군요. 뭐 제가 신경 안쓴걸수도 있구요.

아무튼 전 지금 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말은 나같은 놈도 했는데 네가 못할리 없다 한번 해보자

예전 제 아픔을 통해 동기부여를 조금씩 해줍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위 이야기들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이것들만 적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죠...그러나 참...

인생이란 게 정말 바라는대로 되는건 몇가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유전적인 문제, 심리적 문제, 내부 및 외부적 상황등 많은 변수에 의해서 좌절하게 됩니다.

다만 그 실패들을, 과거의 문제점들을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한다면

비록 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인 실패를 겪게 된다하더라도

그게 나중엔 실패나 문제점이 아니라 자신만의 지혜가 되는거 같습니다.

힘내세요. 지금의 고통을 버틴다면 분명 더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 지혜덕분에 학원하면서 저도 먹고 사는 모양인거 같습니다.

 

여정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입니다.

The journey is the reward.   -By Steve Jo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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