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일구국 의지 담긴 창간사
단재는 장문의 창간사에서 잡지를 내는 이유 다섯 가지를 밝히고 있다. 첫째 단락에서 일제의 국권탈취와 만행을 밝히면서 “왜놈들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짧은 필봉으로는 도적들을 물리치는 무기가 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짧은 필봉으로 작은 종이에다 그들의 해악을 기록할 것이며 그들의 죄악과 만행을 꾸짖고 알릴 것이다. 또 급박한 위기에 처한 한 배에 탄 동포들을 꾸하려 한다. 이것이 천고를 만드는 첫째 이유다”라고 밝힌다.
둘째 단락은 신라 시대 이래로 수천 년을 “왜(倭)와의 혈전사(血戰史)”라 부른다면서 “일본의 우리에 대한 혹독한 정책과 음모, 그리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결연하고 장렬한 대항을 우리와 함께 그들을 미워하고 이웃나라와 이웃나라 사람들에게 소개한 것, 이것이 천고의 두번째 창간 이유며 뜻이다”라고 선언한다.
셋째 단락은 한국과 중국의 관계 그리고 일본의 조선사 왜곡을 지적한 다음, “역사를 파고들어 이 같은 왜곡을 추적해서 바로잡고 잘못된 것을 변명해야 한다. 긴긴 밤의 달과 별을 찾듯이 잘못된 그들의 이론과 주장을 우리의 붓과 책으로 없애며 진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내가,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이것은 천고의 세번째 대의다.”
넷째 단락은 3·1운동 이후 국내 언론 상황과 일제에 부역한 언론을 비판하고, “해외에서 발간하는 보잘 것 없는 간행물이 우리나라 땅 안에서는 비록 널리 읽힐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이 보잘 것 없는 간행물로서 대의를 바로 밝히고 가까운 이웃(나라 사람들)에게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어찌 이 같은 시도(잡지를 만드는)를 마다하며 포기할 수 있으랴? 이것이 생사와 목숨을 걸고 천고를 내는 네번째 이유라 하겠다”고 천명한다.
다섯째 단락은 잡지를 내는 단재의 혼령을 쏟아내는 내용이다. 한 편의 시이고 격문이다.
〃천고(天鼓)여, 천고여,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이 땅에 가득찬) 더러움과 비린내(역겨움)을 씻어다오. 혼이 되고 귀신이 되어 적의 운명이 다하도록 저주해다오. 천고여, 총과 칼이 되어 왜적(倭敵)의 기운을 쓸어버려다오. 폭탄이 되고 비수가 되어 적을 동요시키고 뒤흔들어다오. 국내에선 민족의 기운이 고양돼 (적에 대한) 암살과 폭동의 장거가 끊이지 않고 있노라. 밖으로는 세계 추세가 달라져 약소국가들의 자결운동이 계속 벌어지고 있도다. 천고여, 천고여, 너를 북을 두드려라~. 나는 춤을 추리라. 우리 동포들의 사기를 끌어 올려보자꾸나. 우리 산하를 돌려다오. 천고여, 천고여, 분투하라, 노력하라, 너의 직분을 잊지 말지어다.〃
세상에 나온 수많은 잡지 창간사 중에 이만한 기백과 항일구국정신, 펄펄 뛰는 웅휘한 문장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심훈이 지켜보았던 내용은 바로 이 대목이었던 것 같다.
˝천고 창간사
천고는 어떤 인연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가?
왜(倭)는 우리나라만의 오랜 원수가 아니라 또한 동양의 구적(仇敵)이다. 숙세(叔世) 이후로 우리의 해안 지방을 침범 능멸하여 우리의 선조로 하여금 장자(壯者)들은 무기에 기름치게 하고, 노약자들은 웅덩이에 구르게 하여 대대로 편안히 쉴 겨를이 없게 했던 놈들이 바로 왜가 아닌가? 또한 이조(李朝)의 임진년(壬辰年)에 대대적으로 침략해 와 인민을 도륙하여 그 피로 전국의 산하를 물들게 하고, 능묘를 파헤쳐 그 화가 백년 묵은 해골에 그 피로 전국의 산하를 물들게 하고, 능묘를 하페쳐 그 화가 백 년 묵은 해골에까지 미치게 하여, 후대의 독사자(讀史者)들로 하여금 뼈가 부닥치고 피가 끓게 만든 놈들이 바로 왜가 아닌가?
병자통상(丙子通商) 이후 앞뒤에서 기이한 술수를 부려 여러 번 약속하기를, 우리의 독립을 보장하고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키겠다고 큰소리치더만, 결국 우리의 국권을 빼앗고 우리의 국호를 없애고 우리의 인민을 도탄에 빠지게 한 놈들이 왜(倭)가 아닌가? 교육을 제한하여 우리 인민들의 지식을 막고 이익을 훔쳐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의이(艤耳)·족주(族誅) 등 전제시대(專制時代)의 야만스런 형벌을 되살려 우리 의사를 죽이고, 계구양시백일(鷄狗羊豕百一) 등 잡다한 악세(惡稅)를 거둬 우리 인민들의 재산을 곤궁케 한 놈들이 왜가 아닌가? 삼천리 강역은 이미 저들이 만든 큰 감옥이 되었고, 지금 흉악하고 잔인한 칼날이 마침내 해외의 타국에까지 미쳐 촌락을 불태우고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을 도살하고 심지어 손과 발을 자르고 귀와 눈을 떼어버리는 야만스런 행위를 하고도 태양이 없음을 근심하는 놈들이 왜가 아닌가? 또한 그들은 우리에게 했던 짓을 중국에게도 하려고 여러 번 밀약을 맺어 이권을 훔치고 책사를 파견하여 남북을 이간질하더니 지금 또 명분 없이 군대를 내어 동성(東省)을 유린하고 인명을 가볍게 여겨 행하지 않는 악(惡)이 없으니, 아시아에 살면서 아시아에 화(禍)를 끼치는 놈들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왜보다 앞서는 자가 있겠는가?
아아, 우리 아시아의 황족(黃族)들은 적어도 4백~5백조 이상인데 저들은 구구한 수천만의 무리로 전 아시아를 제멋대로 하고 이웃 나라를 유린하고 민족의 자결을 무시하고 세계의 조류를 억지로 막아 과거의 몽고제국을 오늘날 다시 되살리려 하고 있다. 그 뜻은 분수를 모른다고 해야 할 것이며 그 죄는 또한 죽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적은 종이와 작은 붓으로 비록 적들의 날카로운 무기를 물리칠 수는 없으나, 그 죄를 성토하여 바야흐로 팽창하려고 하는 원악(元惡)을 없애고, 입술과 이[脣齒]의 관계를 다시 일깨워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위급한 상황을 구제하려고 하니 이것이 천고(天鼓)의 첫번째 의의이다.
예로부터 우리와 대치한 강한 종족은 비록 그 종류가 하나가 아니지만 아주 흉악하고 독하다 한들 왜(倭)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왜를 막지 않으면 자존할 수 없으니 이에 우리 선조들은 또한 전전긍긍(戰戰兢兢) 정성을 다하여 왜에 대한 것 이외에는 국시(國是)가 없었으며, 왜를 막는 것 이외에는 국방이 없었으며, 왜를 없애는 일 이외에는 용사가 없었으며, 왜를 토벌하는 일 이외에는 영웅이 없었다. 신라 이래로 수천년 역사는 왜(倭)와 혈전(血戰)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저들이 비록 항상 대륙을 잊지 않고 개미처럼 누린내를 좇아 들어왔어도 해안을 막아 지켜 마침내 감히 뇌지(雷池)를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은 바로 우리의 힘이었다.
뒤에 후손이 태만하고 우매하여 금수강산(錦繡江山)을 마침내 팔짱 낀 채 남에게 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또한 이미 여러 선열들이 앞뒤에서 분기하여 맨손으로 사자와 호랑이를 잡고 맨주먹으로 창과 포에 대적하여 머리를 치고 목을 베면서 강한 도적들과 백전(百戰)하여 차가운 바람과 처절한 피로 세상을 씻어냈으니, 인의(仁義)를 성취하여 후세에 보이도록 한 것은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의 전후에 이르러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되었다.
옛날에 명나라의 장수 유정(劉綎)은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구원할 때 여러 번 왜병(倭兵)과 싸웠는데, “중국의 병사 10명이 일본의 병사 1명을 당해낼 수 없으나, 일본의 병사 10명이 조선의 병사 1명을 당해낼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세 나라 사람들의 용맹함과 겁 많음의 사정이 이처럼 달랐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왜인들의 속성을 익히 알아서 싸움을 잘하는 데에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옛 일을 논함에 비록 사정이 다르고 공사(公私)로 분개하고 원수가 되어 이곳저곳에서 막혀 답답하여도, “삼호(三戶)가 진나라[秦]를 멸망시킬 것이다”라고 햇으니 마땅히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음모·학정들과 그에 대항한 우리의 투쟁 노력들을 두루 널리 찾아내어 이웃 나라의 원수를 같이하는 인민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천고의 두번째 의의이다.
옛날 중화인(中華人) 가운데 조선에 대해 기록된 자들은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서술한 지역 범위는 패수(浿水) 이북을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은 조선의 한 귀퉁이지 전부가 아니다. 사실은 위만(衛滿) 한 사람이 할거(割據)한 흔적을 기록한 것에 불과하며 이것은 또한 일시적인 침략의 예일 뿐이지 본격적인 역사가 아닌 것이다. 조조(曹操)의 위나라[魏] 이래로 사신 왕래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전문(傳聞)이 점차 상세해졌다. 그러나 본국에선 왕왕 자가(自家)의 비장(秘藏)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를 꺼렸던 까닭에 중국의 역사가들이 채집한 것은 긁어모으고 전해 받은 나머지들로 교린고사(交隣故事)에 대비한 자료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밖에 외국인으로서 조선의 사정을 강구(講究)하는 자라 할지라도 의당 왜보다 나은 경우가 없었다.
그들이 우리를 깊이 도모하였던 까닭에 우리를 아는 데 있어서도 가장 상세하니 합병(合倂) 이래로 더욱 정력을 기울여 고서(古書)를 수집함에 거의 전국을 망라하고 고적(古蹟)을 탐구함에 땅 속까지 이르니 또한 부지런하다고 할 만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조선을 부지런히 연구한 이유는 장차 조선을 해치려는 것 때문이지 조선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며, 장차 조선을 무고하고 업신여기려 함이지 진정으로 조선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런 까닭에 유언비어(流言蜚語)를 널리 퍼뜨려 지금 사람들을 몹시 욕되게 할 뿐 아니라 또한 역사를 날조하여 선대를 나쁘게 무고하고 있다. 회화 등을 곤궁한 거리의 보잘 것 없는 풍속으로 잘못 서술하여 우리 민속의 야만과 우매를 증명하고, 도서(圖書) 저술에 대해서는 오로지 말단의 약점만을 지적하여 우리나라의 바탕이 비약(鄙弱)하다고 단정하며, 역사의 연대를 축소하여 곧 단군(檀君)과 신무(神武)를 형제 사이라고 하고, 고전을 바꿔 곧 신라가 일본에 부용(附庸)했다고 하는 것이다.
근거 없는 책과 이야기가 이미 사람들의 귀와 눈에 익숙하게 되어 중국과 서양의 학자들 또한 그것을 믿어 정사(正史)라 여긴다. 삐져나온 것을 밀어 넣고 굽은 것을 바로 펴 잘못을 분별하고 오류를 바로 잡아 진실을 돌려놓는 것이 긴 밤에 해와 별을 밝혀 놓는 일이요, 한창 창궐하는 사설(邪說)을 종식시키는 일이니, 또한 어찌 우리에게 이득이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천고의 세번째 의의이다.
3·1운동 이후 나라 안에 책자를 보는 경향이 점차 대두하여 일간과 월간을 합해 수십 종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합병 이후 점차 약화되는 추세에 있고 또한 10년 동안 왜가 단행한 전제(專制)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말할 바를 말하지 않고 마땅히 써야 할 바를 도리어 삭제하여 그 상황이 가히 애석하고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언론은 그 때마다 압수당하며 언론사도 또한 자주 폐쇄당하여 3개월 이상 계속 간행되는 책자는 거의 봉황의 터럭과 기린의 뿔[鳳手麟角]과 같이 극소수인 실정이다. 그리고 유독 저들이 총독부 기관지나『매일신보(每日申報)』등과 같이 적에게 붙어 천성을 잃고 미친 것들은 의병을 칭해 폭도라 하고 열사를 불러 흉한(兇漢)이라 하여, 무릇 독립운동의 줄에 들어간 자들을 말살하여 난민이라 하고 깎아 내려 불경한 무리라고 이르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왕과 적이 뒤바뀌고 충(忠)과 역(逆)이 바뀜이 이처럼 심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왜(倭)가 화(禍)가 되는 이유는 오직 생존한 사람을 때려눕히고 그 종자까지 멸하려고 하는 데뿐 아니라, 또한 지하의 귀신조차 미워하여 애국의 이름으로 생전에 이미 칼과 가마 등에 의해 살육당한 사람들을 흉하고 나쁜 이름으로 사후에 또 덧붙이는 데에 있다. 마음속에 성심(聖心)을 가진 자라면 진실로 영욕으로 포폄(褒貶)하지 못하거늘, 옮기고 바꾸어 선악(善惡)을 뒤집어 놓고 선민(先民)을 욕하니 또한 어찌 우리들의 심통(深痛)한 바가 아니겠는가? 해외에서 붓 가는 대로 책을 만들어 비록 감히 국내에 보급될 것을 기대하지 않지만, 만약 대의를 널리 밝히고 이웃 나라에 전해져 보일 수 있다면 또한 이 시도를 그만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천고의 네번째 의의이다.
이상 서술한 바는 진실로 천고가 마땅히 생사를 걸고 해야 할 일들이다. 천고여! 천고여! 장차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더러운 비린내와 누린내를 씻어 내고, 장차 귀(鬼)가 되고 여(勵)가 되어 적들의 운명이 장차 다하기를 저주하고, 장차 칼과 창과 방패가 되어 침입자의 기운을 빼앗고, 장차 총탄과 비수가 되어 적들을 크게 놀래 주어라. 안으로는 인민들의 기운이 날로 성장하여 암살과 폭동의 장한 거사가 거듭 나타나 끊이지 않고, 밖으로는 세계의 운명을 일신하여 유약한 나라와 족속의 자립운동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으리라. 천고여! 천고여! 너는 울고 나는 춤을 춰 우리 동포들을 일으키고 저들 흉악한 무리들을 잡아 없애 우리의 산하를 예전처럼 돌려놓자. 천고여! 천고여! 분발하고 노력하여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잊지 말자.˝ - 최광식, 역주,『단재 신채호의 천고』,아연출판부, 2004년 출판, 49쪽~53쪽, 재인용.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저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