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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과 페미니즘을 같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안티페미 |2013.09.21 14:35
조회 680 |추천 1

양성평등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민주주의의 이념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인간으로 경쟁하도록 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은 똑같은 인간이며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민주주의는 여성이 노력해도 꿈을 이룰 수 없는 이념이라고 선동한다.

 

페미니즘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자고 선동한다.

 

민주주의 이념 안에서 사고하는 양성평등과 민주주의 이념을 부정하는 페미니즘의 차이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다르다.

 

남성성은 진보적/파괴적인 공격성이고 여성성은 보수적/창조적인 방어성이다.

 

남성성은 호기심으로 대변되고 여성성은 모성으로 대변된다.

 

파괴와 창조를 반복하면서 인류는 진화해왔다.

 

누가 먼저인지는 아무리 싸워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공존하는 것 만이 살아남는 것이며 진화하는 방법이다.

 

 

남성성은 개인으로 하여금 공격성을 극대화하여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여성성은 개인으로 하여금 방어성을 극대화하여 파괴된 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한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성인 공격성을 강화하여 사회적 책임을 극대화하려는 개인도 있고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성인 창조성을 강화하여 사회적 돌봄을 극대화하려는 개인도 있다.

 

둘 중 어느 것도 틀린 게 아니다.

 

 

기회의 평등에서 민주주의가 출발하듯이 양성의 평등에서 성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피부색이 어떤 색깔인지가 인간을 결정하지 못한다.

 

피부색이 달라도 같은 인간이다.

 

피부가 검은데도 백인 위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이 탄생하며 피부가 흰데도 흑인 위주의 힙합에서 래퍼가 탄생한다.

 

피부가 노래도 미국에서 대통령도 될 수 있고 래퍼도 될 수 있다.

 

 

성별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이념 아래서 남성과 여성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

 

여성임에도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공격성을 강화하여 대통령이 될 수 있고 남성임에도 여성 위주의 사회에서 방어성을 강화하여 요리사가 될 수 있다.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인정하는 것,

 

그게 양성평등과 페미니즘의 차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깰 수 없는 유리천장이 있다?

 

그건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핑계에 불과하다.

 

흑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깰 수 없는 인종차별이 있다?

 

그것도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핑계에 불과하다.

 

나는 생물학적 여성이니 사회적 능력인 공격성을 가질 수 없어 라고 포기하는 자세다.

 

나는 생물학적 남성이니 사회적 능력인 방어성을 가질 수 없어 라고 포기하는 자세다.

 

 

페미니즘의 모순은 어머니의 숭고한 여성성인 모성을 부정하면서 출발한다.

 

어머니가 하시는 사회적 돌봄이 아버지가 하시는 사회적 책임에 비해 하찮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고 인내하는 모성을 폄하한다.

 

자신의 매력인 가슴의 모양이 망가지더라도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의 기쁨과 소통을 부정한다.

 

 

페미니즘은 모순에서 출발한다.

 

여성이 공격성을 가지고 남성이 방어성을 가지면 어떤 세상이 될까? 라는 순진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사상이 페미니즘이다.

 

모순으로 시작한 가설은 아무리 논리적인 주장으로 뒷받침하고 감정적으로 억지를 부려도 모순일 뿐이다.

 

시작 자체가 잘못됐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름에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이념은 남성과 여성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페미니스트 자신들 스스로가 여성 국회의원이 됨으로써 모순을 증명한다.

 

여성은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고 노력을 포기하고 꼼수를 부려서 국회의원이 되어 있지 않나?

 

꼼수를 노력으로 바꿔라.

추천수1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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