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스물네살 아가씨입니다.
일단 저희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고모들의 문제니까 여기다 넋두리해도 괜찮을것 같아 올립니다.
방탈이라면 죄송해요 ㅠ
요즘 네이트판의 대세를 따라, 그리고 제 편의를 위한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이유로 음슴체 갈게요
우리 아빠는 2남 2녀 중 셋째이자 장남임.
위로 누나가 둘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있는 형식임.
그래서 우리집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소위 큰집임.
할아버지는 필자가 다섯살 때 돌아가셨고 현재는 할머니만 같이 살고있음.
필자는 철들기 전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엄마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인지하지 못했음.
요즘 결시친에서 가장 핫이슈인 시집살이를 우리엄마는 올해로 25년째 하고 계신거였음
나에게는 할머니나 부모님이나 동생 모두 한 집에서 사는게 당연한 가족이지만
울엄마에게 있어 할머니는 시어머님이었던걸 난 인지하지 못했던거임.
하지만 어린 내 시선으로 보기에 엄마와 할머니는 아주아주 사이가 좋았고,
심지어 아주 어릴때(유딩? 국딩?)는 엄마와 할무니는 원래 피가 섞인 사이인 줄 알았을 정도였음
(저는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초등학교로 졸업한 시기입니다. 열한살때 초등학교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철이들고 나서 이 생각은 점점 의구심을 갖게 되었음
우리집에는 어릴적부터 작은아빠네 자매가 방학마다와서 한두달씩 머물다 가곤 했음
작은아빠네의 이혼으로 어린 자매가 와서 지냈던거임.
여튼 자세한 사정은 남의집 사정이므로 이만 각설하고, 필자는 10살때까지 외동으로 있었으므로
두 사촌의 방문이 항상 반가웠음. 물론 피터지게 싸우고 몸싸움ㄷㄷ;;도 해가면서 컸지만
혼자있는 것 보다는 훨씬 좋았음. 철이 없었던거임ㅠ
뭐 얘기가 이상한데로 가는거 같은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울엄마는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도련님네 자식 둘까지 떠맡아야 했던거임.
그때 작은아빠가 울집에 생활비를 줬는지 안줬는지는 모르겠는데 99%안줬을거로 예상함
(아직도 가수한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안정적이지 못함)
그래도 울엄마는 강철멘탈을 가진 강한뇨자(내생각ㅠ?). 이기때문에 힘들다 소리 내색 한 번 안하
고 잘 살았음
게다가 우리 큰고모네 첫째딸은 고등학생때 폭풍같은 사춘기가 옴으로써
학교에서 소위 노는 언니가되어 경찰서를 뒷간 드나들듯 자주 왕래했었음.
그때 뒷처리해주고 술에 떡이된 고삐리 사촌언냐를 업어오고 했던 건 울아빠였음
사촌언냐의 아래에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오빠야도 언니와 똑같이 노는 오빠야가 되었기때문
에
언냐와 오빠가 졸업할때까지 밤늦게 전화받고 뛰쳐나가는 울엄마아빠의 모습은 계속되었음
지금 글쓰면서 생각해보니 나같으면 멘붕이 와도 몇번이고 왔을 상황이었음에도 울엄마는 늘 웃었
던거 같음
이쪽에서 치이고 저쪽에서 치이고 여기저기 가을 낙엽처럼 치이던 울엄마였지만
지아비를 일찍 보내고 홀로 외로우신 시어머니(울 할무니)를 외면하지는 않으셨음
봄이면 꽃놀이 여름이면 물놀이 가을이면 단풍구경 겨울이면 눈구경.
계절이 바뀔때마다 좋은곳에 모셔갈 수 있도록했었고
하다못해 티비를 보는 사소한 일에서도 울엄마는 늘 시어머니 곁에 있어드리려고 노력했음
밖에 나가도 두 고부가 손을 꼭 붙들고 다니는 모습에 동네사람들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을 정도였음.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내가 중딩이가 되었을 무렵임.
울집에는 초3때부터 컴퓨터라는 고급물품이 들어와있었음.
무려 팬티엄쓰리!!! 메이드인 삼성으로.
컴퓨터라는 물품을 보고 울아빠는 "앞으로 이놈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것이다"라는
예지와 같은 통찰력을 선보이고 36개월할부로 컴퓨터님을 모셔온것이었음.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지금은 동생이있씀)에게도 컴퓨터님과 친해지도록 초3부터 컴퓨터학원에 가라는 엄명을 내렸음
여하튼 별 쓸데없는 설명이었던 거 같은 느낌은 제쳐두고,
중딩이었던 필자는 중2병의 섬세한 감성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당시 최고의 화두인 버디버디ㅋㅋ
를 하고있었음
그런데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오는 거임
필자는 마치 사막여우처럼 귀를 쫑끗 세운 후 두런두런 말소리에 내 모든 청각을 집중시켰음
"그러니까 XX엄마가 어머니! 그러니까 그거 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하면서 소리를 꽥 지르는거 아니겠냐"
......Aㅏ..
솔직히 말해서 필자는 그때 할머니 입을 꼬매버리고 싶었음.
얼마나 열받고 어이가 가출하고 황당했으면 아직도 기억하고 있겠음 ?
저게 무슨 말인지 막걸린지 기가막혀 멍때리며 이야기를 계속 들어봤음.
알고보니 전날 저녁에 할무니가 가스렌지 불을 켰다가 깜빡하고 가스를 잠그지 않으셨던거임.
예전에 할무니가 냄비에 물 올려뒀다가 엎지르는 바람에 크게 다치실 뻔 한 적이 있어서
울엄마는 할무니에게 "이런건 제가 하면 되니까 조금만 기다리지 그러셨어요. 잠깐 슈퍼갔던건데. 다치면 어쩌시려구요" 라고했음.
저 말이 요상하게 변형되어 고모네 귀에 들어간거임
원래 울할머니는 과장이 좀 심해서 예를 들어 "할머니 화장실 바닥에 물뿌리면 미끄러져요. 물뿌리지 마세요" 하면
"XX엄마야, XX가 나한테 바닥에 물뿌리지마세요! 하고 소리를 꽥질렀단다" 라고 하심.
무슨 말을 하면 소리지르는게 되고 문소리가 조금만 크게 나면 집이 부셔져라 닫았다는 표현이 됨.
또 옆으로 샌거 같은데ㅠㅠ 다시 돌아와서 말하자면
그 일로 고모들이나 작은아빠가 울엄마에게 뭐라고는 안했던거 같음
왜냐하면 친가쪽 사남매 통틀어서 제일 멀쩡하게 살고 있는 게 우리집 뿐이었기 때문에
장남인 울아빠가 빡이란걸 치기라도하면 나머지 삼남매는 큰일나는 거였음.
대신에 아니나다를까 그 주 주말에 우리집에 큰고모와 작은고모가 출똥했음
뭐 시누이노릇하고 이런 목적은 아니었고 그저 안방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음. 필자는 꽃밭생기는 줄 알았음^^
무슨 이야기 꽃을 피웠는고, 하니.
Aㅏ.. 하느님아버지 부처님 알라신 세상의 제가 알지 못하는 모든 기타등등 신님이시여 제게 인내를 주어 살인하지 않도록 해주옵소서
바로. 울엄마 욕이었던거임. ㅋ..ㅋ?ㅋ?ㅋ?ㅋ?ㅋ?
정말 예를 들어 설거지하다가 튀긴 물을 못봐서 닦지 못해 할머니가 닦았다고 치면,
고모들과 할머니 사이에서는 "시어머니에게 온갖 집안일을 다 시키는 천하의 ㅆ냔" 으로 둔갑하고있는거였음
뭐 거기까지는 좋음.
세상에 앞에 없으면 나랏님도 욕한다는데 필자는 이성이 돌아갈 것 같지만 어찌어찌 억지로 이해할 수는 있음.
근데 문제는 여기부터임.
고모들과 할머니에게는 뭘 어떻게해도 미운 며느리지만 필자에게는 소중하디 소중한 엄.마.임
근데 고모ㄴ..들과 할머니는 빤히 내가 옆에 앉아서 티비를 보고있음에도 계속해서 욕을 함.
필자가 진격의 고딩이 되어서도, 밑빠진 독과 같은 날티 대딩이 되어서도, 대학 땔치고 사회로 뛰어든 직딩이 되어서도
고모ㄴ들과 할머니의 엄마욕 배틀은 멈추질 않았음. 물론 필자 앞에서.
님들 본인과 한 핏줄이 흐르는 사람들이 본인 앞에서 엄마욕을 하는걸 고이 듣는 그 개똥같은 기분 아심?
한번은 고딩때 진격의 사춘기패기로 "그만하시죠. 딸앞에서 엄마욕하시는거 아닙니다. 하실꺼면 뒤에서 하세요" 하고 돌직구를 던진 적이 있음
그리고 쿨하게........사실 오글오글거리는 포즈로 문을 탁 닫고 나갔음
그랬더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날 저녁 울엄마 아빠 앞에서 필자는 무려 "고모들과 할머니에게 소리지르고 집안이 부셔져라 문을 닫고 나간 천하에 둘도 없는 ㅆ패륜아"가 되버린거임
그리하야 복날 개잡듯 빗자루를 거꾸로 든 아빠에게 사랑의 매찜질을 당하고 방에 하루동안 있으라는 감금형에 처해졌음
센스있는 울엄마 화장실 핑계대고 나올까봐 빈 세숫대야도 하나 넣어줌^^...
뭐 그런식으로 내가 직딩이 된 스물한살까지 할무니와 고모들의 만행은 이어져감
근데 또 그사람들은 울엄마 앞에서는 둘도 없는 시누이와 시어머니가 된다는거임.
그놈의 정이 뭐라고 할머니는 이십사년간 함께 살았으므로 미우나고우나 정이 들어
이제는 "연세가 들어 뭐라도 이야기하고 싶으신갑다, 아프시니 애정이 필요하신거다" 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라도 더 잘해드리려고 함.
실제로 울 엄마가 할머니 드시라고 과일같은거 사다드리면 고모들한테 포풍자랑하심.
필자가 할머니 이석증때문에 출근 미루고 병원길 에스코트해드렸을때도 폭풍처럼 자랑하셨음.
여하튼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다보니 할머니는 "원래 그런 분. 아주 나쁜분은 아니심. 어쩔 수 없는 내가족" 이라는 마음이 생겨났음.
근데 문제는 고모들이었음. 필자는 고모들이 정말 죽도록 싫음.
어느정도냐면, 한달에 한두번씩 고모들이 필자의 집에 찾아옴. 꼴에 큰집이라고ㅡㅡ
그럴때마다 필자는 집에 들어가지 않음. 얼굴 보고있으면 속에서 용암이 치솟을 거 같음
집에 있는다하더라도 콕 박혀서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모든 청각을 문밖으로 집중한 후 밤을 샘.
물론 적의 동태를 알아보기 위한 필자의 방책임.
사실 이정도로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고모들과 할머니의 이야기 꽃을 삼사년간 가슴속 깊이 눌러 참고
삭히며 혼자 끙끙대고 묻으려다 눈치가 LTE-A급인 울엄마에게 딱걸렸음
"우리딸, 요즘 뭐땜에 글케 기운이 없어?"
ㄱ...그게 엄마 그게 와하하하하 사실은.. 별거 아닌데.. 와하핳 잠깐 엄마? 그거 내려놓고 얘기하자
요래요래 다 밝혀진거임.
그리고 필자는 가슴이 찢어진다는 걸 고등학생때 처음 느껴봤음.
엄마는 다 알고있었던거임.
그렇게 극진히 모셨던 시어머니가 본인 앞에서는 웃으며 뒤로는 욕하는 그 사실을,
고모들이 앞에서는 빙그레ㅆㄴ처럼하고 뒤에서는 악마처럼 엄마를 씹고 있었단 사실을.
그러면서도 싫은 내색하나 없이 조카들 수발, 시어머니 수발, 울아빠 내조까지 다 커버하고 있었던 거임
이제 필자는 2년뒤 결혼을 약속한 품절녀, 예비 유부녀가 되었음.
남자친구 부모님과 부산에 여행도 다녀오고 서로 양가에 묵어가기도 하고 그런 사이임.
학생때는 마냥 엄마의 대단함만 보였지만
남자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며 느낀 그 불편함과 어색함을
20년이 넘도록 견디고 버티고 적응하며 살았을 엄마가 안쓰럽고 안타깝고. 슬펐음.
남자친구네 부모님은 정말 잘해주셨고 그 흔한 설거지 한 번 안시키셨음.
오히려 예쁜 옷 입혀주고 싶다며 '서프라이즈~!' 하시며 필자에게 새 옷도 안겨주시고 했음.
그러함에도 필자가 철이 덜 든건지 불편하고 어색했음.
엄마는 어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작년 설이었을꺼임.
고모들이 온다는 소식에 난 엄마에게 말했음.
"아 왜 온대 미쳤나 진짜. 걍 집에 찌그러지라그래 짜증나"
말이 좀 심한거 같음? 글이 너무 길어지는 거 같아 생략한 이야기들이 태백산맥보다 높이 쌓여있음.
기회가 된다면 하나하나 풀어보도록 할테니 필자가 심하다해도 잠시만 욕은 접어두시길 바람.
여하튼 나의 거친 발언에 엄마는 아무 말도없이 방에 들어갔음.
엄마가 이상해 따라 들어간 나는 엄마처럼 아무 말 없이 폭풍처럼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었음.
엄마가 울고있었음.
아빠와 함께 양대산맥처럼 우리 가족을 지켜주던 그 엄마가 울고있었음.
스물 셋이었나 넷이었나. 꽃다운 나이에 시집와 오십이 다되가도록 속앓이만 하던게
딸의 철없는 발언에 빵- 하고 터져버린거였음.
그 이후로 필자는 엄마에게 더욱 잘하고 친구처럼 아들처럼 개그우먼처럼 좋은 딸이 되려고 노력중임.
필자는 부모님이 정말 이제라도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음.
사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다 얘기하자면 밤을 새서 타이핑을 해도 모자라기에 이만 줄입니다.
요즘 판을 둘러보다보면 고부간의 갈등, 며느리와 시댁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올라오고,
많은 분들이 따끔한 충고와 조언, 그리고 위로를 아끼지 않는 모습에 위로받고싶어 키보드를 잡았습니다.
남자친구는 멀리 떨어져있어 한달에 한 번 만나는게 고작이고
필자보다 더 아프고 힘들 부모님께는 내색할 수 없고, 소중한 친구들도 멀리 떨어져 있기에
요즘 이사와 결혼, 돈 문제로 더 힘들어진 마음을 기댈 곳이 없었지요.
예전, 집안 사정으로 인해 대학을 자퇴하고 부모님께 호기롭게 말했어요.
"대학 졸업 못하면 어때? 나 학생으로 즐기는 대학 캠퍼스란걸 느껴봤으니까 일찍 돈벌어도 아쉬울 거 없어.
돈 많이 벌어서 엄마아빠 호강시켜줄게"
사실대로 말하자면 필자는 그때 굉장히 힘들었죠.
또래들은 시험이다 방학이다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데 필자는 사회에 치여 쪼들리고 있었으니까요.
아직도 대학졸업장이란게 굉장히 아쉽고 미련도 남지만 이제는 그 미련을 버려야한다는 걸 압니다.
그래도 힘든 마음을 버리기에 아직 전 많이 어린가봅니다.
여러가지 문제로 각기 다른 사정으로 힘들어하고 계실 수많은 분들께
이제 겨우 24년을 살아온 제가 주제넘게 말씀드립니다.
저희 엄마, 비록 그리 힘겹게 버티며 사셨지만 지금도 할머니 손 꼭 붙들고 다니고,
고모들에게도 항상 웃는 낯으로 대합니다.
아직까지도 소녀의 감성을 가지고 저보다 더 아가씨같은 엄마,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엄마.
여러분들께 저희 엄마처럼 인내의 세월을 가지고 살라는 말씀은 안드립니다.
그저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한발자국씩 양보하고, 조금만 견디면 어느 순간에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밝고 긍정적으로 살다보면 언젠가 행복해질 수 있을거에요.
지금까지 부족하고 쓸데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들 행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