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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기가 되는 히브리어 성서 사본

학생 |2013.10.09 15:37
조회 191 |추천 0

본보기가 되는 히브리어 성서 사본

1947년에 사해 두루마리가 발견되기 전, 당시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 된

히브리어 성서 사본들은 - 몇 개의 단편을 제외하면 - 기원 9세기 말부터

11세기까지의 것이었다. 사해 두루마리는 그보다 약 천 년 전의 것이다.

그렇다면 1947년 이전에는 히브리어 성서 본문이 불확실하였다는 말인가?

그리고 고대 히브리어 사본의 수가 매우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두 번째 질문부터 고려해 보면, 전통 유대인제도에서는 계속 사용

하기에 너무 낡았다고 생각되는 히브리어 성서 사본는 회당의 보관실인

게니자에 보관하였다. 그 후 낡은 사본들이 쌓이면 꺼내서 땅 속에 묻었

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성경이 불경스럽게 잘못 사용하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어로 흔히 "여호

와"라고 표현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글자들인

테트라그람마톤이 그 성경에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극치"

고대 히브리어 본문은 대부분 시초부터 충실하게 전수되어 왔다. 예를

들어, 케테르 즉 "극치"라고 불리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 혹은 "구약" 전

체가 들어 있었다. 그 사본은, 이슬람교인이 우세한 도시인 시리아, 알레

포에 사는 유대인들의 유서 깊은 작은 마을의 가장 오래 된 회당에 간수

되어 있었다. 그보다, 앞서 예루살렘의 카라이파 유대교인들이 사본을 간

수하고 있었지만, 1099년에 십자군이 탈취해 갔다. 도로 찾게 된 그 사본

은 이집트의 구카이로로 옮겨졌다. 늦어도 15세기까지는 알레포로 옮겨

졌고, 그리하여 알레포로 책자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적어도 기원 930

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그 사본은 이름이 암시하듯, 마소라 학문의 극치로

간주되었다. 그 사본은 성서 본문을 옮기는 데 어느 정도의 주의를 기울

였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훌륭한 예가 되며, 실로 본보기가 되는 히브리어

사본이다.

근대에 와서, 이 뛰어난 사본의 보관자들은 그들이 소장한 성물이 더럼

혀지지 않을까하는 미신적인 두려움에서 학자들이 참조하는 것을 허용하

지 않았다. 더욱이, 단 한 장도 촬영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연구용으

로 복사판을 발행할 수도 없었다.

1948년에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자, 알레포에서 유대인들을 반

대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유대인들의 회당이 소각된데다 귀중한 책자본도

보이지 않게 되자 소멸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놀랄만하게

도, 약 10년 후에 이 책자본 중 약 4분의 3이 보존되어 시리아에서 예루

살렘으로 밀반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1976년에 천연색으로

된 양질의 복사판 500권이 발행하였다.

대가의 작품

이 사본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히브리어 성서를 베끼는 데

숙련된 저명한 학자로 손꼽히는 아론의 벤 아셀이 기원 930년경에 원래

의 자음 본문을 교정하여 거기에 모음절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본은 본보기가 되는 책자본으로, 후세의 덜 능숙한 필사자들이 만든

사본의 표준이 되었다.

원래 이 사본은 380장(760면)으로 된 것으로, 앙피지에 대체로 삼단으

로 기록하였다. 현재는 294장으로 되어 있어, 모세 오경과 마지막 부분

즉 예레미야 애가, 아가,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로 구성된 부

분의 대부분이 빠져 있다. [참조주 신세계역 성경]에서 그 사본은 "A1"로

표시되어 있다. (여호수아 21:37, 각주) 기원 12세기의 저명한 중세기 우

대인 학자 모세 마이모니테스는 알레포 팩자본이라고 발표하였다.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히브리어 본문 필사본은, 마소라 본문과 관련

하여 주요 두 가문인 벤 아셀과 벤 납달리 가문에 의해 만들어진, 혼합

본문이었다. 16세기에 야곱 벤 하임은 그 혼합 본문을 근거로 하여 히브

리어 성서 본문의 인쇄본을 만들었으며, 이 본문이 그 후 400년 동안 인

쇄된 거의 모든 히브리어 성서의 기초가 되었다.

1937년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인쇄된 히브리어 본문) 제 3판에서, 벤

아셀의 전통 방식이 참조된 것은, 그 내용이 러시아에 소장된 레닌그라드

B19A는 기원 1008년의 것이다.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에서는 사해 두

루마리를 포함하여 여타의 모든 중요한 사본과 함께, 알레포 히브리어 본

문 전체를 상당 기간에 걸쳐 발행한 계획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서 본문은 믿음직하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

은 것으로 꼼꼼하게 일한 능숙한 필사자들에 의해 여러 세기에 걸쳐 전수

되어 왔기 때문이다. 1947년에 사해 근처에서 발견한 이사야 두루마리와

마소라 본문을 비교할 때, 사해 두루마리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것인

데도 놀랄 만큼 거의 차이가 없다는사실에서 그 복사자들이 극도의 주의

를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학자들이 알레포 책자본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히브리어 성경 본문의 확실성을 믿을 만한 이유가 한층 더

제공될 것이다. 실로,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살리라."

- 이사야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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