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배달일지) * 화단에 올려진 돌의 의미 *

irish15 |2013.10.10 08:16
조회 126 |추천 0

 

 

 

“국화에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 둥근 꽃송이가 높이 달린 것은 하늘을 본받는 것이고, 잡티 없이 순수한 황색은 땅의 색이고, 일찍 심어 늦게 꽃이 달리는 것은 군자의 덕이고, 찬 서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것은 굳세고 곧은 기상을 드러낸 것이며,

술잔에 가볍게 떠 있는 것은 신선의 음식이다”

 

- 종회 [국화부]

 

 

 

 

  

 

 

(아파트 경비 어르신께서는 근래 들어 자주 현관 앞 화단 주위를 서성거리셨다. 화초를 좋아하셔서 평소에도 나에게 여러 식물과 꽃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신다. 요즘에는 화단에 심겨진 국화꽃이 피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신다. 매년 가장 늦게 피어 인고와 절개의 상징이라며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낮은 음성으로 곧잘 읊조리시곤 하셨다.)

 

 

발송된 신문을 챙기러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어르신께서는 현관 앞 나무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신문을 오토바이에 싣고 있는 나를 보시고는 어르신께서 다가오셨다.

 

“저 화단 위에 왜 돌을 올려 놓았는지 알아?”

“..글쎄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무심코 지나쳤는데 어떤 까닭이 있는 듯 했다.)

 

“하도 사람들이 저곳에다 가방 등을 올려놓아 국화줄기가 다치고 상해서 말이야.”

(그제서야 나는 어르신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들 그렇게 무신경한지.. 그래서 물건들 좀 올려놓지 말라고 저렇게 해 놓은 거야. 말 못하는 식물이라고 아픔도 없는 줄 아나 본데...”

(그리고 보니 국화 줄기와 잎들이 한쪽으로 눕거나 꺾여 있었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때를 기다리는 모든 것들은 오랜 인고를 겪는 중이니까 기다려주고 보살펴줘야 하지 않을까. 지켜주지 못해서 채 꽃이 피기도 전에 꺾여버린다면 국화꽃이 너무 가엽잖아. 꽃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도 슬픈 일일테고..”

(.........)

 

“사람들은 때가 되면 꽃이 저절로 핀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 꽃들도 결실을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책임함을 탓하지 않고 자기 할 일에 정성을 다하는 자연의 생존자세가 대견하지 않냐고.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 뿐인데 너무 이기적이고 함부로야. 그래서 화가 나기도 해. 올해는 웬일인지 국화꽃이 피는 걸 어서 보고 싶기도 한데 말이야.”

 

어르신께서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시고는 국화 줄기를 천천히 어루만지셨다.

 

 

올려다 본 까만 밤하늘엔 여기저기 흩어져 반짝거리는 별빛들만이 어르신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듯 총총히 숨죽이고 있었다..

 

 

 

 

 

* 토토 블로그 *

 blog.chosun.com 

추천수0
반대수1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