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더 잘 연주하는 방법에 대하여 ‘마지막 4중주’
저만의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가을과 겨울은 현악기가 중심이 된 클래식 곡이 잘 어울리는 계절 같습니다.
현악기의 선율이 흐르고 도톰한 니트에 긴 스커트를 입은 여인이 실내에서 낙엽이 지는 창 밖을 보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마저 포근해 보이는 커피 한잔을 마시는 장면…
아마도 어릴 적 봤던 CF의 세뇌 효과가 아닐까 생각도 들지만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영화는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현악기의 선율이 살아있는
‘마지막 4중주’(A Late Quartet)입니다.
지난 7월말에 조용히 개봉하여 아직 몇몇 극장에서 계속 상영하고 있으니,
주말 나들이 계획에 포함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 속 현악 4중주의 선율에 심취해 보는게 어떨까요?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영화와 클래식, 그 아름다운 하모니에 대하여
영화와 관련된 교양 수업 시간 첫날에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는 종합 예술이다.’가 바로 그것이지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오락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술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의 예술성은 단순히 연극•문학•음악•미술 등 기존 예술이 영화의 구성 요소로 등장하는 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것을 취사선택하여 영화적 표현과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적절히 결합되었을 때
예술성이 구현되는 것 같습니다.
그 중 영화 음악은 청각의 시각화라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이전에 기고한 적 있는 ‘문라이즈 킹덤’ (바로가기) 에서 사용된 벤자민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이나,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100곡에 빠지지 않는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1악장이 ‘올드보이’에 등장했던 것처럼 장면과 절묘하게 어울릴 때 영화의 매력이 배가 됩니다.
비발디 사계의 재발견… 관객님 많이 당황하셨어요?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때문에 장면을 위해 새로 작곡된 배경음악도 좋지만, 영화 이전에 있었던 곡들 그 중에서도
클래식의 사용은 감독과 관객 사이에 특별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감독이 그 곡을 듣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형언할 수 없는 그 감정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표현
(시각화)이기도 하니까요. 하나의 곡에 대해 여러 명의 감상자가 같고도 다른 느낌을 받은 것에 대한
소통이라고나 할까요? 아… 그 곡, 느낌 아니까~ ^ ^
특정 곡을 중심으로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에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대표적인 영화로 이제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467′ 의 별칭까지 바꿔버린
영화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 1967)이 있습니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는듯한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신분의 차이, 세상의 감시 등 현실에 굴복해야 했던
젊은 연인의 사랑의 도피에 이 곡의 제2악장 안단테가 삽입되어 인상적인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죠.
눈치채셨겠지만, ‘마지막 4중주’도 이런 영화에 속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어림짐작으로 느꼈지만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던, 어쩌면 흘려 들은 그 선율에 녹아 있는 2시간짜리 이야기가 감독에 의해
발굴된 보물처럼 빛이 나는 영화에요. 어떻게 이렇게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해냈지? 감탄 또 감탄하죠.
(좌) 엘비라 마디간 (우) 마지막 4중주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쉼 없이 연주해야 하는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현악4중주단 ‘푸가’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들 사이에서 음악적, 정신적 멘토 역할을 하던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게 된 것이죠.
처음에는 푸가는 피터 없이도 지속적으로 4중주단으로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피터의 마지막 공연이 될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연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인가만
문제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4중주단 ‘푸가’ 외적인 삶의 영역에서의 계기들과 각자의 마음 속에 잠재해있었으나
거론하지 않았던 서로에 대한 감정들이 만나 표면적인 갈등과 사건으로 드러나죠..
현악 4중주단 ‘푸가’의 모습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곡은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으로,
‘푸가’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에 연주할 곡이죠.
현악 4중주는 바이올린 2, 비올라 1, 첼로 1의 현악기로 구성되며
보통은 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곡은 7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악장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베토벤은 이 곡이 쉼 없이 연주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피터의 수업 장면을 통해 왜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 이어야 했는지
화두를 던집니다.
“이렇게 쉼 없이 오래 연주하면 각 악기들의 음률이 서로 어긋나게 돼.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연주를 멈춰야 할까 아니면 불협화음이 생겨도
서로 필사적으로 맞춰가야만 할까? ”
영화 속에서 쉼 없이 연주되어야 하는 것은 이 곡뿐만은 아닙니다.
은퇴를 앞둔 멤버 피터의 바람대로 ‘푸가’도 쉼 없이 연주되어야 하고, 등장인물 각자의 삶도 그러하죠.
불협화음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현악4중주단 ‘푸가’는 각자가 삶에서 실현하고 싶은 바람이 있지만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벗어나서 독자적인 연주만을 할 수 없는 삶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푸가 내에서 누가 제 1바이올린이 될 것인지 갈등하는 모습에서는 누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만
모두가 그럴 수 없는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고, 빼곡한 메모로 뒤덮인 악보대로 해오던
그대로의 연주만 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인지 연주방식에 대한 갈등에서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부딪히며 변화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불협화음이 나더라도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춰가야 할까요?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나아가 늘 제2바이올린 연주자였지만 제1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고 싶은 욕심,
순간적인 실수로 외도를 저지른 배우자에 대해 용서할 것인가의 문제,
딸 알렉산드라가 모두가 반대하는 사랑을 하는 대니얼과 관계를 이어갈 것인가의 문제 등
등장인물들이 겪는 갈등을 통해, 영화는 각자의 삶과 타인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겨서
불협화음이 일어날 때,
쉼 없이 연주되어야 하는 삶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조용히 구심점이 되어주는 피터 /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영화가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연주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의 격렬한 갈등 속에서도 파킨스 병을 진단받고
묵묵히 그 과정을 대처해나가는 피터의 모습을 보면 그러하죠.
아름다운 연주를 위하여 내가 차지한 자리도 때가 되면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내가 함께 하지 않더라도 지속되어야 할 것은 지속되고 지켜야 할 것은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
화음을 위해서 때로는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내가 위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들을요.
삶을 더 잘 연주하는 방법에 대하여
앞서 언급된 수업 장면에서, ‘불협화음이 난다 해도 필사적으로 맞추어 보아야 하나?’에 대한
피터의 답은 ‘난 잘 모르겠다. 한번 같이 알아보자고’ 였습니다.
각자의 인생에서 자신이 주연이지만, 인생이 모노극이 아니기에
내 삶에 조연으로 등장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도 합니다.
결국 인생의 불협화음의 답 또한 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알아봐야 할 것일 수도 있지요.
자신의 음색만 도드라지게 연주할 수 없는 4중주처럼, 더 큰 그림에서 화음을 위하여
자신의 악기를 조율하듯이 삶에서도 더 중요한 ‘우리의’ 것을 위해
‘나만의’ 것을 양보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요.
때문에 삶이란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최고로 잘 연주하는 것이 아닌 주변과 어울리면서
더 잘 연주하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그동안 소원했지만 다시 멋진 화음을 만들어낼 사람과 함께 ‘마지막 4중주’를 관람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