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에게 했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면서 신뢰의 정치인을 자임해온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연금공약을 사실상 파기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보도하는 대부분 방송·언론들의 태도는 “조정됐다”, “합리적 선택을 했다” 등 ‘물타기’ 수식어구를 동원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영방송이라는 KBS의 보도는 낯뜨겁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분명히 말했다.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한테 내년부터 20만원의 기초연금을 드릴려고 합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꼭 이것(기초연금)은 실행하려 합니다.”
그러나 선거를 치른 지 1년도 되지 않아 사실상 공약을 파기했다. “세계 경제의 침체와 맞물려 현재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세수 부족이 큰 상황이고……” 2013년 9월 26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약속을 어기게 된 것을 세계 경제의 침체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지난 10개월새 한국 경제에 엄청난 변고가 생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는 최근 올 하반기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상향조정했다.
사과를 하면서도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공약의 포기는 아닙니다.” 그간 내세워 온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국내 방송·언론사, 특히 국민들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는 공약 파기라는 대통령의 책임 문제를 최대한 무마시키려는 보도 태도를 보였다.
대통령의 사과가 나온 당일, KBS〈9시 뉴스〉관련 기사들의 제목이다.
「박 대통령 “어르신 모두에게 지급 못 해 죄송”」
‘공약 파기’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이 불가피하게 합리적 선택을 했다는 했다는 입장을 충실히 전달하는 보도가 먼저 나갔다. “유례없는 세수 부족과 재정 건전성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기초연금 공약 파기 사항을 5대5 여야 공방으로 다뤄 대통령의 약속 위반이라는 본질을 물타기한다.
민경욱 KBS〈9시 뉴스〉앵커 “새누리당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을 사과했습니다. 민주당은 국민을 기만한 행위라며 담화를 통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직접 촉구했습니다.”
그 뒤에 연결되는 보도들을 보면 KBS의 의도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복지예산이 처음으로 100조원이 넘는다는 보도를 통해 마치 우리의 복지수준이 비약적으로 올라간 거 같은 착시현상을 유도한다.
KBS는 복지예산의 절대 수치를 강조했지만 국내 총생산 GDP대비 복지예산의 비율은 여전히 10%에도 못 미쳐 경제개발협력기구OECP 회원국 비율인 19.3%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은 밝히지 않았다.
또 이어지는〈이슈&뉴스〉코너를 통해 정부의 복지혜택을 다시 강조하고 기초연금 관련 대선공약은 파기 또는 후퇴가 아니라 조정됐다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임승창 KBS 경제부 기자 “복지예산이 사상 최대규모라면 당장 내년에 좋아질 복지혜택은 무엇일까요?”
교묘한 기사 배치와 의도적으로 보이는 사실 누락을 통해 공약을 파기한 박근혜 대통령 ‘감싸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대통령의 ‘말바꾸기’나 거짓말은 정상적인 방송·언론이라면 가장 비중있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인 영향력의 강대국에서는 정치인들의 발언들, 특히 대통령 선거후보나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선 철두철미하게 진위여부를 검증하고 있다.
공약이 사실상 파기됐다, 또는 불충분하게 지켜졌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재임 시기는 물론 대통령 선거 때부터 공약의 실행 가능성에 관해 따져 묻는다. 단순히 주장을 중계만 하면서 거짓이나 실현가능성이 없는 선심성 공약을 묵인하고 집권 후에는 대통령 ‘감싸기’에만 급급한 우리나라의 주류 매체와는 차이가 난다.
이광재 한국 매니페스토 본부 사무총장 “선거 때 약속했던 부분들에 대한 신뢰가 깨졌을 때 그럴 때는 민주주의에 위기가 있다는 점들을 왜 지적하지 않는지 이런 것들이 결국은 시장에 영향을 미쳐서 자본주의의 근간마저도 위태롭게 할 수가 있다는 것을 왜 언론들이 지적하지 않는지가 굉장히 의문스럽다…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영방송 KBS가 나온지 1년도 채 안 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덮으며 책임소재를 감추려 할 때 트위터를 비롯한 SNS 공간에선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찾아내 보여주면서 무책임한 공약 파기를 비판하고 나섰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키니까……”
어떻게든 덮으려는 공영방송사와 꼬치꼬치 따져 묻고 파헤치는 시민들…
우리나라 주류 방송·언론의 현 주소이다.
▷《NEWSTAPA》, 2013년 10월 1일자,〈한국탐사보도저널리즘센터〉정유신 기자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