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내가 사는 세상에 나도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숨어 있었습니다.
교보문고에서 나오는 길, 200명쯤 되는 아주머니 무리들이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장군님만큼 늠름한 기세로 열을 지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일일까. 불 구경, 싸움 구경, 제법 흥미로운 구경거리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성격인지라 발길이 저절로 광장을 향했지요.
‘STOP 종교증오’라는 현수막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종교 증오라.. 대개 백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하거나 증오하여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뉴스를 본 적은 많이 있었는데, 종교를 차별하여 범죄를 일으킨다?
아주머니 군단은 ‘종교증오범죄피해자연합’이라는 인권시민단체에서 나온 분들이었습니다.
정부가 종교증오범죄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종교증오범죄예방 및 처벌법’을 제정하기를 바라며 여러 인권단체끼리 연합하여 출범기념 기자회견을 갖는 자리였습니다.
한 분으로부터 이 단체가 출범하기까지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종교증오범죄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면서 직장인, 부녀자, 대학생들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신학원, 기도원,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수십 일씩 감금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녀사냥이 일어나던 중세시대도 아닌데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종교의 자유가 법으로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는 겁니다.
요지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대중적이지 않은 종교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증오의 대상이 되어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부에게 호소하고 있었던 겁니다. 종교로 인해 범죄의 표적이 되는 천인공노할 일이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불행하게도 범죄가 일어났다면 범죄자가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달라고요.
이게 어려운 일입니까? 말도 안 되는 일입니까?
종교증오범죄의 끝을 외치던 아주머니 군단에게서 저는 80년대 군사정권에 대항하며 독재타도를 외치던 젊은이들의 냉엄한 투지를, 목숨 바쳐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뜨거운 피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속으로 가만히.. 광화문광장을 365일 지켜주고 계시는 이순신 장군님 앞에서 감히 검을 빼 들었습니다. 증오범죄는 단절되어야 하리라.. 종교든 인종이든 차별하는 자 단죄하리라..
인터넷을 뒤져보니 ‘증오범죄’가 사전적으로도 정의되어 있더군요.
***증오범죄 [hate crime]: 소수 인종이나 소수민족, 동성애자, 특정종교인 등 자신과 다른 사람 또는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층에게 이유없는 증오심을 갖고 불특정한 상대에게 테러를 가하는 범죄행위를 일컫는 말. 나치주의자, 쿠클럭스클랜(KKK) 등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증오범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증오범죄는 대개 잔혹성과 집단성을 띤다. 미국에선 지난 91년부터 증오범죄를 공식범죄통계의 한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상은 사전이 정의한 ‘증오범죄’에 관한 설명이었습니다.
얼마 전, 터키에서는 사상 최대의 정치개혁안을 발표했는데, 그중 하나가 종교 증오범죄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인종과 종교 증오범죄를 중형으로 다스려 뿌리뽑겠다고 했답니다.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에게도 정치적, 문화적 권리를 확대해주고요.
터키는 공화국 건립 초기에 정치, 종교를 엄격히 분리하고 여성공무원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해 왔다는데, 종교적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이마저도 폐지한다고 합니다. 99% 이상이 이슬람교도인 터키는 건립 초기부터 스케일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물론 터키 총리가 지금의 사태를 잠재우기 위한 카드일 수도 있을 겁니다. 또, 정부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지지고 볶고 할는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참 세련된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이 터키보다야 모든 면에서 선진국이 아닐까 했었는데, 아뿔싸… 제 생각이 틀렸나 봅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터키에서는 정부가 먼저 나서서 종교적 증오범죄를 뿌리뽑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하루빨리 진일보한 정치국가로 탄생하길 기대하며, 하늘을 더 높이 띄우고 말을 살찌우는 가을에게 어서 오라 인사를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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