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문숙이 30년 만에 고백하는 “23세 연상 고 이만희 감독과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 가슴 아픈 이별…”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문형일 기자, 창비 제공
70년대 탤런트 겸 영화배우로 인기를 모았던 문숙씨가 한국 영화계의 거장 고 이만희 감독과의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에 대해 털어놓았다. 스무 살 여배우와 아이 셋 딸린 23세 연상 이혼남 감독과의 운명적인 사랑, 이 감독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그가 겪은 방황과 깨달음.

가꾼 기색 없이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긴 생머리는 염색하지 않아 흰머리가 절반에 가까웠다. 눈가에 주름이 앉은 얼굴에는 화장기 하나 없었다. 하지만 커다란 눈동자와 환한 미소는 여전히 매력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70년대 탤런트 겸 영화배우로 큰 인기를 누리다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췄던 문숙씨(53). 30년 만에 다시 마주한 그의 얼굴에선 세월의 흔적과 여전한 아름다움이 동시에 읽혔다.
소식을 들을 수 없던 지난 시간 동안 미국 등에 머물렀던 그가 다시 한국을 찾은 건 30년 전 불쑥 이곳을 떠났던 그때, 차마 얘기하지 못한 마음속 상처와 아픔을 풀어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당시 신출내기 배우였던 그를 휘감은 운명적인 사랑, 한국 영화계의 거장 고(故) 이만희 감독(1931~1975)과의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과 이별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문씨는 고등학교 3학년생이던 지난 72년 TBC 공채 탤런트로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고등학생은 응시자격도 없었는데도 교복에 단발머리 차림으로 시험을 보러 가 열두 명 합격자 안에 들었을 정도로 당차고 끼가 넘쳤다.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꿈도 컸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좋아해 늘 극장에서 살았던 그는 공채시험에 합격한 뒤 탤런트로 활동하며 “연기는 자신의 천직”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74년 5월, 그의 운명을 바꿔놓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 영화사에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이만희 감독을 만난 것이다. 61년 ‘주마등’으로 데뷔한 뒤 13년 동안 40여 편의 영화를 만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던 이 감독은 당시 ‘충무로의 천재’라는 평을 듣던 명감독이었다. 그에 비하면 문씨는 TV를 통해 겨우 얼굴이 알려졌을 뿐, 영화는 한 편도 출연한 적 없는 신인 배우에 불과했다. 그러나 갓 스무 살 여배우와 마흔세 살 영화감독은 처음 본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에게 빠져들었다고 한다.
심장이 멎는 듯했던 첫 만남, 운명처럼 시작된 사랑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마치 심장이 멎는 것 같았죠. 그분도 저를 처음 봤을 때 오랫동안 찾던 영혼을 비로소 만난 것 같았다고 하셨어요.”
이 자리에서 문씨는 바로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인 ‘태양 닮은 소녀’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 신성일의 상대역으로 영화 촬영을 시작했다. 자연스레 두 사람의 만남도 시작됐다. 하루 종일 촬영을 마치고 충무로 뒷골목에서 스태프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만 따로 술자리를 갖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통금 무렵이 되면 이 감독은 문씨를 서대문구 현저동 집까지 바래다준 뒤 광진구 자양동 자신의 집까지 가지 못해 인근 여관에 묵기도 했다. 두 사람은 함께 있으면 끊임없이 얘기를 나눴고, 언제나 시간이 모자랐다고 한다.
“저는 그분이 저보다 그렇게 나이가 많은 줄도 몰랐어요. 재미있고 사람 편하게 해주고 잘 웃는, 비슷한 나이의 친구 같은 사람이었거든요.”
문씨는 “나는 그분에 대해 너무 몰랐고, 거리를 걷다가 간혹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지체없이 번쩍 들어올려 목말을 태우고 걸어갈 정도로 마음껏 애정을 표현하는 연인으로만 대했다”며 “하지만 이제와 돌아보면 그는 나를 당신의 영혼을 이해해줄 영혼의 동반자로 여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