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판에서 밑천없이 대박을 내는 장사가 있다. ‘종북 판매’다. 잘만 팔면 하루아침에 과오는 모두 덮어지고 애국자로 재포장되니 종북장사꾼들은 날로 늘고 있다. 단언하건대 내년 지방선거에서 그들은 다양한 종북 상품으로 유세장을 활보할 것이다.
그들이 무두무미한 논리로 지목하는 ‘종북주의자’는 국가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북한에 이득을 주는 사람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들과 동조하는 이들이다. ‘혼란’ ‘친북’ 등 종북주의 기준은 늘 그들 맘대로 정하지만 여하튼 기본틀은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의 논리를 그들에게 적용해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종북주의자들은 수두룩하다. 먼저 국정원 등 국가정보기관 직원으로 지난 대선에 개입한 사람들이다. 민주주의 기본정신과 헌법을 ‘개무시’하고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펼쳐 나라를 큰 혼란에 빠트리고 국론을 분열시킨 게 이유다.
그들 중에는 지난 대선 당시 투표에 참여한 국민 절반 가까이가 지지한 야당의 대통령 후보를 간첩이라고 뒤집어 씌운 세력도 있다. 분열 중에도 대분열을 조장한 것이다. 북한이 바라는 남한의 혼란을 만든 주역이니 종북세력에 해당한다. 국민의 기본 권리를 주장하며 촛불집회에 참가한 국민들을 국가 혼란 유발자들이라며 종북주의자로 내몰았으니 이런 지적에 변명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멀쩡한 몸으로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국적을 버리고 병역의무를 내팽개친 현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아들들은 그들 주장대로라면 종북을 넘어 고정간첩이다. 병역기피 아들을 둔 공직자 부모들도 종북주의자를 지원한 것이니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땅에 그런 청년과 부모들만 존재한다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3년 내 무력통일”이라는 야심 달성은 식은 죽 먹기다.
군인이 없으니 탱크를 앞세우고 남쪽으로 행진만 하면 되는 꼴이다. 그야말로 북한의 무혈입성을 도우는 격이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로 시작되는 땀냄새 나는 훈련병들의 군가는 그들 귀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쯤으로 들렸을 것이다.
더 놀랄 일은 그 고위공직자 가운데 현재 청와대에서 국정운영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종북장사꾼들은 모름지기 청와대를 종북 소굴로 끊임없이 공격했을 것이다.
여당과 일부 국회의원들도 종북주의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누리당은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의 2003년 특별가석방을 두고 민주당을 향해 “종북세력의 숙주 노릇을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며 은근슬쩍 종북딱지를 붙였다.
올해 초 탈북자들의 정보를 북한으로 빼낸 혐의로 탈북자 출신의 서울시청 한 공무원이 구속됐다. 최근 1심 재판부가 그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은 항소했다. 이 공무원은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전 서울시장 재임시절에 임용됐다.
두 사건 모두 재판 중이므로 이들 죄의 유무는 차치하자. 하지만 새누리당은 서울시 공무원이 체포되는 순간에는 이 의원 사건 때처럼 종북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그들의 공식대로라면 새누리당도 ‘종북 숙주’가 아닌가.
국정조사와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SNS 댓글 직원들을 두둔한 여당 국회의원들도 결과적으로 국론 분열범들 편에 선 것이니 최소한 종북성향이란 지적에는 동의해야 한다.
범법자들의 불법 행위를 축소하거나 물타기에 편승한 일부 언론 역시 종북세력의 공범들이다. 거기다 반민주적인 작태에 힘을 실어주고 억지 주장으로 선량한 시민을 종북으로 싸잡아 버리는 단체들 역시 이 나라의 정의와 질서를 어지럽히는 동색의 무리들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파와 좌파는 당연히 존재하며 범용적 단어다. 상대를 비하하거나 폄훼하는 데 사용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뚜렷한 근거없는 두루뭉술한 논리로 좌파에 친북, 종북, 빨갱이라는 어순에도 맞지 않는 꼬리를 붙여 대한민국 진보정치세력 전체를 매도하고 있다.
종북주의자가 확인되면 사법당국에 신고하면 된다. 북한을 따르는 사람들인데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중대한 범죄자인가.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그 역시 종북 아닌가. 간첩신고 전화번호는 ‘111’이다.
▶ 이상호『경향신문』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