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웃대 - 후잉후이잉 님
건방진꼬맹이님을 위해 복원합니다.
이것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를 봤을 때의 이야기다.
찌는 듯한 더위, 온 세상이 녹아 내릴 것처럼 더운 날이었다.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편안한 자세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꽤나 긴장했던 나는, 내 생각과 지나치게 대조되는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진으로만 접해온 그의 모습이었지만, 실제와 별반 차이는 없었다. 어색한 침묵을 깬 건 내가 아니라 그였다.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때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는 이유에 대해서 아세요?"
"엎드려! 김 진우!"
그를 거칠게 넘어뜨린 나는 수갑을 채우며 매우 흥분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김 진우. 너를 유월동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한다.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사람들은 모르는 거 같아요"
"시끄러!"
지나치게 차분한 그와 지나치게 흥분한 나의 체포는 썩 그 상황에 들어맞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면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를 거칠게 밀어 붙여 뒷좌석에 태웠다.
유월동 살인사건. 우리 팀이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알고있는 모든 학식을 동원해야만 했다. 피해자의 사체는 지나치게 훼손되어 있었다. 단순한 살인이나 우발적인 범행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현장은 마치 홍수가 지나간 듯 거실 전체가 흥건했다. 사체의 구멍 아래로 보이는 바닥 장판에 뚫려있는 수십 개의 구멍을 통해 사건 당시 피의자의 감정상태가 극에 달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범인은 피해자가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칼질을 했다. 애초에 피해자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죽었든. 살아있든. 확실한 것은 살인의 어떤 목적이 보였다는 것이다. 원한을 품었을 수도 있고, 단순한 살인욕구 일지도 모른다. 주변은 깨끗했다. 물이 고여있는 것만 빼면 범행에 사용한 흉기도 아주 깨끗하게 씻어서 닦아두기까지 했다. 피해자의 지나친 저항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기에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았다고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반장님의 의견은 달랐다. 자세한 것은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피해자가 저항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면식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확실한 의견이라기보다 어느 정도의 추측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왜? 무엇을 위해서? 용의자는 금품에 관심이 없었다. 피해자의 지갑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의자는 그 지갑을 그대로 두고 갔다.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싸이코 패스의 소행일 가능성은 낮았다. 그들은 치밀하고 냉정하기 때문에 쉽게 발각되는 흔적은 남기지 않는다.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다음 먹잇감을 찾을 시간을 벌기 위해 나름대로 머리는 쓰는 편이다. 고의적으로 방에 물을 뿌렸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족적은 지우지 않았다는 점과 칼을 깨끗하게 씻어서 현장에 두었다는 점이 우리에겐 몹시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급하게 빠져 나오느라 족적을 지우지 못했다고 보기에는 깨끗하게 씻겨진 칼이 의문이었다. 어느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움직인 게 분명했다. 곧이어 과학 수사팀이 도착했고, 현장에 모든 족적과 지문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과학 수사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엉뚱한 수사를 했다. 저번 달 말에 일어났던 연쇄살인사건에 지나치게 집착하던 선배들 때문에 정확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수사방향은 자연스럽게 같은 물줄기로 흘러갔다. 일주일 후, 국과수로부터 넘어온 자료에는 용의자의 신상이 한 가지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자료를 토대로 주변 지역에 전단을 뿌리고 TV를 통해 몽타주를 공개하는 등 대대적인 검거활동을 벌였다. 그러던 중, 지방 산골마을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때마침 나는 장인어른의 부름으로 최초 신고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상주하고 있었다. 본부에 연락을 취한 나는 신고자와 통화 후 즉각 현장으로 달려왔고, 그렇게 그를 체포하게 된 것이었다. 룸미러로 뒷좌석을 봤다. 순간 나는 놀란 마음에 핸들을 돌릴 뻔 했다. 뒷좌석에 앉은 그가 언제부터였는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자연스럽게 앞을 보며 운전에 집중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조용하지만 또렷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한 이야기는 서에 가서 해도 되니까 조용히 해"
"제 이야기가 궁금하실텐데. 여기까지 체포하러 오신 거 보면 분명히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이 있으신 거 아닌가요?"
"닥치라니까. 이 새끼가 조용히 인간 대접해주려고 했더니"
"그런 거 안해주셔도 돼요"
'끼익!'
나는 격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한 마디만 더 하면 아가리 찢는다"
내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말해서였을까?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등을 등받이에 밀착하고는 창 밖을 바라봤다. 꼬박 30분을 시골 도로를 달리니 터널이 나왔다. 터널이 지나면 본부로 연결되는 순환도로에 진입하게 된다. 터널에 들어가기 직전에 다시 룸 미러를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창 밖을 보고 있었다.
"팔도 다리도 묶여 있고 형사님과 저 사이에 철 창살도 쳐져 있는데 굳이 계속해서 확인을 하셔야 하나요? 아니면 제 이야기가 궁금하신 건가요?"
"너 이 강아지 내가.."
"여기는 곡선 터널이라 브레이크는 밟을 수 없어요. 같이 죽고 싶지 않다면요. 터널이 끝나면 바로 순환도로에요. 그곳 또한 차를 세울 곳이 없어요. 그러니까 통하지도 않는 협박은 하지 마세요. 칼로 사람 도려낸 저한테 그런 협박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 이 시발새.."
"제가 두렵나요?"
"뭐?"
나는 엑셀레이터를 더욱 깊게 밟으며 룸미러를 응시했다.
"왜 더 밟으시죠? 두 눈은 저를 죽일 듯이 바라보면서 왜 속도는 올리시냐구요"
"빨리 가서 너 밟으려고"
"제가 두려우신 거네요"
"진짜 그만해라"
"당장이라도 차를 세우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저를 처참하게 짖밟으시지 그러세요. 저는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칼로 난도질한 흉악하고 쓰레기 같은 살인범이니까요"
짜증이 극에 달한 나는 순환도로 한복판에서 차에서 내리기 위해 브레이크를 밟고 안전밸트를 풀었다.
"거래하시죠"
나는 안전벨트를 풀던 손을 잠시 멈추고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말 없이 한참 동안 그대로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처음으로 그와 눈이 똑바로 마주쳤다. 사람을 죽였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순수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승낙하시면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드릴게요. 형사님께는 득이 되는 이야기이고, 저에게는 누군가가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마지막 순간이 되겠네요. 송치되는 순간부터 저는 인간취급 받기 힘들테니까요. 상상이 가요. 유도심문, 필요에 따라서 가해지는 고문들과 협박들까지요. 하지만 제가 죽였다는 증거는 현관 손잡이에 묻어있는 지문과 족적뿐이에요. 물론 그걸로 상황을 증명하고 저를 사형장으로 몰아넣을 수는 있겠지만 제가 입을 다문다면, 아마 형사님은 제가 죽고 나서도 찝찝하실 거에요. 저는 인권을 논하자는 게 아니에요. 잠시 자유가 주어진 지금,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는 범죄자였다. 사람을 죽인 살인마였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흔들었다. 승진이나 인정받는 일 따위에 집착해서 그의 이야기가 궁금한 건 아니었다. 단지, 이 상황 자체가 나의 궁금증을 극대화 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다시 문을 닫고 안전벨트를 채웠다.
"감사해요. 저 같은 쓰레기에게 인권 따위는 없지만, 최소한 제게 귀를 기울여 준 사람은 이 세상에 형사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거에요"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그리고 그 가시들은 의미심장하게 내 가슴을 찔러댔다.
"거래 이야기. 계속해봐"
"성격이 급하시네요"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는지 그는 곧이어 입을 열었다.
"간단합니다. 바로 서울로 가시죠. 천천히 가주세요. 여섯 시간쯤 걸리겠죠? 그 동안 저는 제가 저지른 일에 대한 모든 내막을 말씀 드릴게요"
"그건 안돼"
"왜요?"
"이미 본부에서 지방청으로 가라는 오더가 떨어졌으니까"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다소 억지스러운 이 상황에서 약 10분 가량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차는 어느덧 지방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청사 앞에는 이미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그곳을 지나쳤다. 잠시 스치듯 본 기억으로 내 차를 알아본 몇몇 청사 직원들이 뭐라고 크게 소리쳤고, 그와 동시에 기자들은 차를 향해 플래쉬를 연속해서 터트렸다는 것. 휴대폰의 배터리를 분리했다. 방금 전 내 행동으로 그와 나 사이에 침묵의 깊이는 더욱 더 깊어졌다. 잠시 후, 먼저 침묵을 깬 건 그였다.
"허락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형사 생활 12년 차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의 말은 보통 범죄자들이 해대는 변호성 발언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억압하고 제압해도 되지 않을 것 같은 힘이 있었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이 나의 물리적인 힘과 이성을 짓눌렀다. 나는 완벽하게 제압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지나친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다. 의무를 져버린 것은 내 선택이었기에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치르기 전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했다.
"시작해. 지금 시각 다섯 시 십 분. 열두 시까지 서울청사에 도착한다. 그 전에 끝내. 만약 쓸데없는 개수작이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
나의 냉담한 어투와 표정을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그는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요. 대신 가는 동안만이라도 저를 범죄자가 아닌 동생으로 대해주셔야 해요”
“바라는 거 조카게 많네”
“형사님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그건 왜?”
“제가 옛날 이야기를 하려고 하거든요”
“난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국민학생이었으니까 그냥 이야기해라”
“94년도 천해동 가정주부 살인사건..혹시 알고 계세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생각이라도 해보세요”
“근대 이 새끼가”
나는 뭐라고 욕을 하려던 차에 좀 전에 했던 동생으로 대해달라던 말에 수사를 위해 최대한 감정을 짓눌렀다. 그리고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습관처럼 턱을 어루만졌다.
“아, 알 거 같다. 그거 미제 사건인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냐?”
내 질문에 그는 잠시 창 밖을 보더니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띄었다.
“소중한 걸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아세요?”
나는 그때까지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몰라 그런 거”
“아는 게 뭐야”
“뭐 새끼야?”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제가 여섯 살이었어요. 아버지는 막노동 다니시고, 엄마는 봉투나 인형 눈알 붙이기를 하셨어요. 아마도 그날 날씨가 딱 지금처럼 흐렸을 거에요. 아직 저는 그 날이 바로 어제처럼 생생해요. 거실에서 엄마가 붙이는 인형 눈을 몇 개를 들고 방에 들어와서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어요. 제가 춥다고 하자, 엄마는 비가 오겠다고 하시면서 창문을 닫으러 여기저기 움직이셨어요. 그때 갑자기 엄마의 움직이는 소리가 멈춘 걸 느꼈어요. 멀리 있어서 그런 거라 여기고 계속 구슬치기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대화소리가 들렸어요”
그는 말을 멈추고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엄마가 엄청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게 들렸어요. 누구냐고 묻는 거 같았어요. 그 뒤로 외마디 비명소리가 짧게 들렸고, 무언가가 엄마 입을 막았는지 웁 웁 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너무 무서워서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울고 있었어요. 거실에서는 물건이 널브러지고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어요. 그리고 스카치 테이프 뜯는 소리가 났는데 그 사이에 잠시 엄마가 살려달라고 울면서 애원하는 걸 들었어요. 저는 열려있는 문틈으로 그 장면을 봤어요. 알몸으로 팔과 입이 테이프로 감긴 채로 어떤 남자의 몸 아래에 눌려있는 엄마의 모습을요.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걸 해결했는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입었어요. 엄마는 고통스럽게 울고 있었는데, 남자가 계속해서 조용히 하라고 했어요.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거지만, 아마 그때 엄마가 조용히 했다면 죽지는 않았을 거에요. 엄마는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테이프로 가려진 입으로 소리를 질렀어요. 그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남자의 시선이 멈춘 곳은 제 신발이었어요. 그리고는 ‘새끼는 어디 있을까?’ 라고 흥얼거리며 제 방으로 다가왔어요. 저는 본능적으로 장롱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아마 엄마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제가 장롱 여는 소리를 그가 들었을 거에요. 그때 그 소리를 들었더라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거고, 누군가를 죽일 일도 없었겠죠”
한참 동안 그의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감정이 복받쳤는지 잠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지금 상황에 어떤 반응을,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그를 대해야 할지 몰랐다. 수많은 이들이 내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나였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에는 이겨낼 수 없는 진실성과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마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전제조건으로 깔아둔 것들이 한몫한 것 같다. 잠시 후, 나는 룸 미러를 통해 그의 표정이 싸늘해지는 것을 봤다.
“제 방을 몇 차례 두리번거리던 그는 엄마가 미친 듯이 발악하자 나가서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다시 한번 옷을 벗고 그 짓거리를 해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남자에 신음소리는 들리는데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어요. 그때 불안감은 잊을 수가 없어요. 내가 조용히 장롱 문을 열자, 그 틈새로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엄마 얼굴이 보였어요. 그는 계속해서 엄마의 목을 조르면서 죽은 사람에게 그 짓거리를 해대고 있었어요. 저는 너무 큰 충격에 눈물도 나지 않았어요. 그냥 멍하니 그 장면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죠”
나는 최대한 동요하지 않기 위해 창문을 내리고 담배를 피웠다.
“너도 한 대 줘?”
“아뇨. 전 담배 끊었습니다”
“독한 새끼”
짓눌리는 분위기를 깨보고자 농담을 했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계속 할까요?”
난 대답 대신 룸 미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를 죽인 그 강아지는, 아니 그는..”
“괜찮아. 욕해도 돼. 그 강아지는”
“네.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대야에 물을 받아와서는 엄마의 몸을 구석 구석 씻기기 시작했어요. 같은 사람을 죽인 입장으로 생각해봤을 때 정말 대단한 여유를 가진 놈이었어요”
마지막 말에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치 본인의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그 새끼는 집을 한 순간에 초토화를 만들어놓고 가버렸어요. 저는 온몸을 미친 듯이 벌벌 떨면서 기어 나왔어요. 엄마를 부르면서 울부짖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옆집 아줌마가 들어왔고, 바로 119와 경찰을 불렀어요. 병신 같은 새끼들이 현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한 시간 뒤, 검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와서는 형사들에게 왜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지 않았냐고 소리쳤고 한동안 서로 다투는 걸 봤어요. 아버지는 뒤늦게 집에 도착해 울다가 쓰러지셨구요. 그렇게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어요”
이야기에 집중하던 나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목격자는 너 하나뿐인 거네”
“네”
“얼굴이나 뭐 인상착의도 기억 안나?”
“글쎄요”
그는 마치 남의 일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처럼 팔짱을 끼고는 눈을 굴렸다.
“문신이 있었어요”
“어떤 문신?”
“왼쪽 어깨에 한자로 문신을 해놓은 게 기억이 나요. 어차피 그때 경찰한테 다 이야기했지만, 문신한 놈이 한 둘이냐며 한숨을 쉬더라구요. 무능한 병신 새끼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마 내가 그의 상황이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을까? 자신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저는 대도시로 이사를 갔어요. 그곳에서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담임 선생님이 조용히 문을 열더니 저를 부르더라구요. 그때 복도에서 선생님에 표정은 잊을 수가 없어요. 사람이 그렇게 난처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거든요”
“무슨 일이었길래?’
“이런 저런 이야기 다 제쳐두고, 아버지가 목을 매달았다는 거에요. 엄마 죽고 나서부터 일도 안가고 매일 술만 마셨거든요. 불안은 했지만 설마 저만 남겨두고 그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충격이 보통이 아니었죠. 어릴 적부터 가슴 속 깊은 곳에 억지로 누르고 살아온 모든 것들이 터지는 순간이었어요. 저는 그 길로 학교를 자퇴했어요. 아버지 장례가 끝나고 기숙사가 달린 공장에 취직했어요. 물론 나이가 걸리기는 했지만, 아는 분이 제 사정을 잘 이야기해줘서 형들하고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게 됐죠. 그때 제가 열 여덟 살이었어요. 공장에서 번 돈으로 저는 검정고시를 땄고, 대학교까지 합격했어요. 뭐라도 하지 않고 아무런 목표 없이는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거든요”
“대단하네”
나도 모르게 탄식했다. 지금은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는 그 당시 나이에 비해 굉장히 성숙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잠시 예전에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저런 작고 큰 이유들로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부정하기 일쑤였다. 그보다도 훨씬 많은 나이에 말이다. 아마 지금 이런 상황으로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 성격에 분명히 술 한잔 사주며 함께 눈물 흘려줬을지도 모른다.
“감사해요. 누구한테 칭찬을 듣는 게 몇 년만인지 모르겠네요. 어렸을 때는 엄마가 매일매일 안아주고 보듬어줬는데”
그 말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그때 느낀 거지만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자꾸 그의 이야기 속에서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고 몇 번이고 스스로 되뇌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는 게 힘들어서 군대를 가려고 했지만, 국가에서는 끝내 저를 받아주지 않더라구요. 동창인 녀석 중에 가족이 없는데도 지원해서 군대를 간 놈이 있었거든요. 저를 받아주지 않았던 건 아마 저희 엄마가 강간당한 뒤 살해당했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목 매달고 자살해서 그렇겠죠?”
마치 내게 심문을 하는 듯한 말투였다. 아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뼈 있는 말이었다. 사회에 대한 그의 불만과 겹겹이 쌓여 층수를 헤아릴 수 없는 높은 분노가 느껴졌다.
“그 사람들도 어쩔 수 없었겠지”
“그렇군요”
그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이해한다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의도치 않게 불특정 다수를 변호해야 했다. 우리는 시가지를 벗어나 다시 한적한 국도로 들어섰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다른 국도로 넘어갈 때까지 네비게이션의 안내 메시지만 종종 울려댈 뿐이었다. 원래 한 가지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하다가 대화의 맥이 끊겨버릴 때, 다시 같은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다. 분위기가 바뀌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 안에 무거운 분위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몇 분이 더 흐르자, 몇 가닥의 빗방울들은 어느새 폭우로 변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어둑해진 날씨 덕에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와이퍼를 가장 빠르게 맞춰봤지만 헛수고였다. 속도계의 눈금은 계속해서 30km 에 머물렀다. 나는 어제 마지막으로 집에서 나올 때 봤던 일기예보가 떠올랐다. 오늘 오후를 시작으로 3일 간 전국에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였다. 다시방에서 사이렌을 꺼내 창문을 반쯤 열고 차 지붕에 붙였다. 켜지는 않더라도 이런 악조건에서는 최소한 사고 예방에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발 이럴 때는 조카게 정확해요. 뭔 비가 이따위로 내리고 지랄이야”
내가 그를 의식한 채 옷을 털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창 밖을 바라볼 뿐,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마치 우박이 쏟아지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그는 내가 룸 미러로 자신을 살피는 것을 느꼈는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순차적으로 진행하려면 빨리 이야기를 끝내야겠네요”
나는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그의 첫 말이 걸렸지만, 12시까지 주어진 시간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제가 살인미수 전과가 있는 건 아시죠?”
“그래. 사건 파일을 열어보진 않았는데, 후배한테 대충 들었어”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는 24살이 되던 해였어요.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거든요. 물론 제 과거 때문에 대기업 입사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꽤 괜찮은 중견기업 사무직에 입사하게 됐어요. 그때까지 저라는 사람에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죠. 근대 한번 재수 없는 놈은 끝까지 재수가 없어야 되나 봐요. 고등학교 때, 옆 반에 사이가 나쁜 놈이 있었는데 걔가 회사에 있더라구요. 어떻게 들어왔는지 사무직으로요. 저보다 2년이나 빨리. 처음엔 살갑게 대해줬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드라마 같은 대서 보면 주인공이 지나가는데 뒤에서 쑥덕거리는 거요. 저는 참을 수 없었고, 그 놈과 함께 옥상에서 만났어요. 말 다툼은 결국 주먹다짐으로 이어졌고, 서로 밀고 밀던 중에 어쩌다가 그 놈이 울타리에 다리가 걸려 아래로 떨어졌어요. 다행히 4M 아래에 옥상이 하나 더 있어서 죽지는 않았더라구요. 차라리 뒤지지 강아지”
난 지속적으로 룸 미러를 통해 그의 감정 변화를 살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로 정말 특이한 점은 그는 이야기를 할 때 몸을 전혀 쓰지 않았다. 표정의 변화도 눈빛에만 있었을 뿐, 격앙된 감정에 비해 굉장히 절제된 모습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 정도로 감정 억제에 유능한 인간이 사람을 죽였다니, 어떤 이유일지 궁금했다. 그래도 보채지 않기로 했다. 형사생활 12년에 얻은 노하우 중 하나로, 사람은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반드시 진실을 토해내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맞은 편 건물에서 목격했던 사람들의 눈에는 울타리에 다리가 걸리는 부분이 보일 리가 없었고, 결국 저는 살인미수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어요. 제 인생이 지옥에서 다시 한번 더 깊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어요. 원래 형사들은 사람을 그렇게 벌레 취급하나요?”
“으, 응?”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나는 꽤 놀랬는지 말을 더듬었다.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네가 생각해봐 임마. 매일 죄 짓고 사는 인간들하고만 마주하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돼. 우리가 한결 같은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사건에 질질 끌려 다니게 되거든. 이게 보통 일인 줄 아냐? 전부다 일 저지르고 도망가면 그만이지만, 수습은 전부다 우리가 하고, 거기다가 걔네 짱 박혀봐. 우리는 집에도 못 가, 잠도 못 자, 사람 잡는 거야”
나는 오른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꽤나 감정을 담아 말했다.
“하긴,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의 말에 잠시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지만, 내 심문의 원칙 상 나는 끝까지 상대의 말을 다 들어주고, 모순을 짚어내는 스타일이었기에 다시 한번 더 스스로를 다잡았다. 비교하자면 이건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다. 굉장히 힘이 센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다 보면 나도 지치고 황소도 지친다. 그러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도 않은 채 어설픈 마무리가 이어진다. 황소에겐 본전이겠지만, 내게는 밥 줄이 달린 문제이기에 신중을 가할 수 밖에 없는 것. 3판 2승제로 이어지더라도 첫 판에 내 쪽으로 조금이라도 당겨놔야 한다. 참으려면 끝까지 참고, 밟으려면 처음부터 밟아야 하는 법. 어느새 나는 다시 나의 본분으로 돌아가, 그의 이야기에 혀를 차기 보다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그림에 집중하며 조금씩 밧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끝났냐? 이야기?”
“그럴 리가요. 요점만 말씀 드리기엔 시간이 너무 많아요. 하여튼 그 일로 저는 회사에서 해고당했어요. 어쨌든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저는 외국인들이 들끓는 공장에서 하루 16시간씩 일하게 됐어요. 그 날도 엄청 피곤했어요. 특근에, 잔업에, 말이 필요 없었죠. 최대한 빨리 퇴근하려고 평소보다 일찍 나왔어요. 원래는 양키들하고 이야기도 좀 나누는 편이었거든요. 좁은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앞 차에서 운전석에 앉은 사람과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다투는 것처럼 서로 손짓이 오가는 걸 봤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길래 저도 놀래서 차를 세웠죠. 그렇게 제 뒷 차도 제 차를 들이받았어요. 뒷 차에 아저씨 한 분과 저, 그리고 앞 차에 두 사람이 다 차에서 내렸어요. 다행히 때마침 지나가는 순찰차가 왔고, 각자 보험회사에 연락을 했죠.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조수석에 타고 있던 경찰관이 저를 알아보는 거에요. 그리고 앞 차에 다투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거에요. 선배라나 뭐라나. 그리고 뒤에서 제 차를 박은 아저씨는 꽤 돈이 많은 사람 같더라구요. 경찰차를 운전하던 경찰관이 그 아저씨한테 90도 인사하는 걸 봤어요. 그리고 자기들끼리 뭐라고 쑥덕거리더니, 제가 더 말씀 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죠?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고, 가운데 있는 저를 중심으로 사고가 일어난 걸로 보험사 직원에게 이야기 하더라구요.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따지고 들자, 뒷 차 아저씨가 저한테 집행유예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저를 뭐 보듯이 쳐다보는데 와..진짜 세상 더럽더라구요. 그깟 돈 몇 푼 더 내는 거 상관없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을 몰아세우는걸 보니까 그때 그 동창 놈이랑 싸울 때처럼 속에서 뭐가 올라오는 거에요. 그때 봤어요. 그 아저씨 삼베 옷 사이로 비치는 왼쪽 어깨에 문신을요”
내 동공은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