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큰아버지가 보내주신 사진 한장을 보고 처음으로 판에 글을 써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23살 학생입니다.
이십년 남짓 살고도 느끼는거지만, 세상 참 많이 바뀌었죠. (응칠이 응구사만 봐도 알 수 있듯이요ㅎㅎ) 24년생이신 우리 할머니가 보는 2013년은 어떤 느낌이실까요.
충청남도 시골 중의 시골 집에 걸려있는 아빠 6남매 어릴적.
제가 어렸을 때, 아빠가 머리맡에서 해 주던 시골집 얘기가 참 재밌었지요.
특히 좋아했던 건 닭장에 갇힌 꿩 얘기, 뒷산 까치독사 이야기, 중학교를 읍내로 다녀서 산을 넘어갈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하는 이야기 등등.
논밭펼쳐진 곳에서 가진 것 아무것도 없이 자란 분들이지만, 온갖 고생끝에 지금은 자수성가하신 6남매. 저희 아빠는 그 6남매 중의 막내이신데, 큰 형 그러니까 제 큰아버지한테는 아직도 존댓말을 쓰신답니다.
이분들을 보면 형제간 우애라는 게 이런거구나.. 싶어요.
(그런데 왜때문에 저와 제동생은 맨날 싸우는 걸까요?)
연세가 연세이니만큼 큰집으로 들어오시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벌써 20년을 혼자 지내오시는 할머니는 듣지를 않으세요.
뒷마당에는 빨간 고무모자쓰고 나란히 서있는 장독대들.
이 리얼한 시골 풍경 본 사람 몇이나 될까요?
앞마당 한쪽에 피는 맨드라미도 정겹구요
봄이 되면 앞뜰에 금잔디가 뒤덮혔는데 아, 정말 예쁩니다.
요즘에는 금잔디하면 에프포만 떠오르려나!ㅋㅋ
초등학교 다닐 때 시장에서 미니토끼라고 데려온 적이 있었어요.
제 첫 애완동물 토끼 이름은 '다비'에요.
한 달이 지나자 '미니'는 무슨...
토끼가 소만큼 커졌어요.
초등학생이 들기에도 무거운 소 토끼를 결국 아빠가 할머니집으로 이송했지요.(지금생각해보니 서울에서 토끼를 데리고 어떻게 거기까지 갔지?)
그 뒤로 한 3년 동안은 시골에서 다비의 자손들을 보는 게 제 철없는 기쁨이었답니다ㅋㅋ
그 후에 할머니 토끼들 키우는게 힘드셔서 시장 장수에게 파셨대요.
연세가 몇인데 아들들이 아무리 말려도 텃밭에 농사지어 시골 올때마다 손에 들려보내시는 할머니.
얼마나 대단하시냐면,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매일매일 붓으로 명심보감을 쓰며 외우십니다.
엄마랑 세상에 이런일이에 할머니사연 보낼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페북과 아이폰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이 시대에,
마지막 남아있는 가장 한국적인 혼(魂)이 있다면 바로 우리 할머니가 아닐까 싶어요.
저기 위에 맨 첫번째 사진은
할머니가 매일 새벽 정화수 한 사발을 떠놓고
첫째아들 철수 둘째아들 영수 셋째아들 명수 ... 첫째 손녀 영희 둘째 손주 민철이 셋째손녀 누구...
자식들 이름을 한명~한명 불러가며 비는 장면을 큰아버지가 찍으신 사진입니다.
문자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오나. 몇 십년 동안을 한번도 거른 적이 없다고. 그 많은 자식들과 손녀 손주들 이름을 한명 한명 불러주신다고.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다니셔서 일본말도 할 줄 아시고, 육이오 난리 이야기도 종종 들었었지요.
저는 지금 외국에 교환학생을 나와있어요.
외국에 있으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작은 나라인지 새삼 느낄때가 있어요.(유럽친구들 강남스타일빼고 잘 몰라요.)
이 작은 나라에서, 가장 토속적인 이 광경을 보며 자란 세대는
제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봅니다.
앞으로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이런 풍경, 배추 것절이와 무우잎짠지와 장독대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하네요.
판에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많으니까
피자를 먹고 스마트폰을 들고있더라도
가장 한국적인 이 정서와 남아있는 우리 시골 풍경을 오랜만에 잠깐 보고가면 좋겠어요ㅎㅎ
마지막으로
눈빛이 맑은 우리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