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0여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며칠 전 이곳으로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하고, 오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느껴지는 싸한 느낌, 그리움의 마음인지, 아님 이곳을 낯설어 하는 사람과의 동행에서 오는 중압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지금 이곳에 나는 다시 와 서 있는것이고, 저 멀리 내가 살던 곳이 물 속에 잠겨, 불어 오는 바람에 물결을 찰랑이며, 어릴적 친구들의 손짖마냥, 날 부르는 듯 했다..........
"점례야..점례야....!!"
"아우 좀 조용히 좀 해...들키겠다..조용히 하라니까"
자꾸 옆구리를 찌르며 내 이름을 부르는 친구를 다그치며, 흙담 위로 머리를 들어 올려 한참 벌어지는 굿판을 보고 있었다.. 왠지 모를 오한과 스릴 그리고, 뭔가 야릇한 분위기의 이 느긋함, 따뜻한 봄 날에 살랑이며 부는 바람을 맞으며, 그 햇살 아래 드러누워 솔솔 잠에 취하는 느낌, 마치 그런 좋은 느낌이..저 굿판을 보며 느껴졌다...
하지만, 그 느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자꾸만 옆에서 체근하는 친구 때문에 그 좋은 느낌은 어느새 어디론가 달아나버리고, 호통을 치며 뛰어 오는 동네 어르신에 깜짝 놀라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흙담 옆으로 나 있는 길을 한참을 달려 동구밖 들판까지 뛰쳐 나오고야 말았다..
"야 너 때문에 구경도 제대로 못했잖어.."
"야 기집애야 너는 저게 뭐가 좋다고 자꾸 저런걸 보고 그래..난 무섭기만 하구만, 우리 엄마가 굿하는거 구경하다가 귀신 들러붙은 사람 여럿 봤다고 하더라구, 암튼 난 너무 무서워 얼른 집에가자..."
친구의 볼맨 소리를 들으며, 투덜 투덜 거리기는 했지만, 이미 시간은 저녁때를 가르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마당 가운데 놓여있는 마루에 들어 누워, 하늘에 초롱이는 별들을 바라봤다....
"야 들어가서 자, 얼른 다 큰 기집애가 밖에서 뭐 하는 짖이야?!"
엄마의 호통에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낮에 보았던 굿판이 자꾸만 머리에서 맴 돌았다, 굿을 할때 울리던 북소리, 장구소리, 징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귀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무당의 손에서 흔들리던 대나무 가지의 울림과 방울 소리의 카랑카랑한소리...............................................
흑색 안개가 자욱하게 사방을 애워싸고 있다, 정처없이 떠도는듯한 느낌 하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무엇엔가 이끌리듯 한방향으로만 걸어가고 있는 내 자신이 느껴졌다, 저기 어디에선가부터 흐릿한, 방울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따라 가다보니 바람이 나뭇잎에 쓸리며 우는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좀 더 다가서자..색동옷을 이쁘게 입고, 방울과 대나무 가지를 흔들며 위아래로 뛰어 오르는 무당이 보였다, 얼굴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길게 늘어트린 하얀 천을 뒤집어 쓰고 있어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어디서인지 모르겠지만, 뭔가가 주변으로 몰려드는듯했고, 이내 무당이 춤을 추고 있는 주변으로 작은 호로불같은것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흔들거리며 사방으로 퍼졌다가 다시 무당에게로 쏘아지듯 날아들던 불꽃들은 다시 흩어져 원을 그리고 크게, 또는 작게 무당의 주변을 원처럼 돌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현란한 불꽃에 신경이 온통 집중이 되어 있어, 어느새 무당이 나에 옆에 와 있는것도 몰랐다, 인기척에 놀라 옆을 돌아보자 무당이 그 길게 늘어트린 천을 뒤집어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그 얼굴은 마치 선녀처럼 밝게 빛을 발하고 있었고, 인자하고, 따뜻한 느낌이 났다...
뭐라 할 수 없는 경이로움에 깨어나보니 어두컴컴한 내 방이었고, 쪽진 창문 밖으로 어둠 밤에 하늘을 수 놓고 있는 별들이 초롱 초롱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날의 별들이 어찌나 이쁘고 고왔던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그리고...그 꿈에 나타난 무당이 내뱉듯 아련하게 내게 한말도....아직도 귀에 못이 박힌듯 기억이 난다...'넌 가야 할길이 있단다..그 길을 가야만 한단다..언젠가...내가 널 찾아 갈것이다..기다리고 있거라...기다리고 있어...'
아련한 그 기억에서 날 깨어나게 한것은 함께 이곳을 찾은 어떤 여자였다, 그녀가 날 치며 가르킨 곳에서...젊은 남자 세명이 뚜벅뚜벅 걸어 오고 있었다...나이가 들어 눈이 어둡기는 했지만, 그 중 한명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반갑게 손을 쳐들어 흔들면 달려오는 녀석, 오래전 내가 찾은 아이.....정훈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