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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마치려 합니다.

인연 |2013.12.01 00:10
조회 629 |추천 9

안녕하세요. 평소에 톡을 즐겨보던... 이라구 다들 하시더라구요, 사실 가끔 심심하면 찾아봅니다.

 

저는 29살 평범한 남자입니다.

 

제겐 너무나도 사랑하는 4살 연상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여자친구와 저는 제가 16살 때, 여자친구가 20살 때 처음 만났습니다.

 

전과목 학원에서요.

 

저는 당시 그 학원 수강생이었고 여자친구는 영어 강사였습니다. (20살이 무슨 강사냐고 하실텐데 정식 수업이 아닌 결석 수강생들 보충이나 초등학교에서 중입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맡았었습니다. 시간제였고 여자친구는 나이와 다르게 영어 실력이 뛰어났어요.)

 

사실 저는 여자친구와 만날 리가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의외로 근면 성실한 편이라 결석이나 지각 같은 것이 없어 보강을 받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중3 때 교통 사고가 나서 학원을 한달반 정도 쉬게 됐습니다.

 

왠만큼 몸이 건강해져서 다시 나가자 진도는 이미 산더미처럼 밀려 있었고, 저는 평일엔 한 시간씩 남고 주말엔 두 시간씩 학원에 나와 보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중 월수금이 여자친구와 영어를 보강하는 날이었습니다. (본래 여자친구는 중3은 맡지 않았습니다. 맡아봤자 초6과 중1 정도까지였죠. 그런데 다른 영어 선생님께서 정규 수업이 있으셔서 정말 우연히 저를 맡게 됐었습니다.)

 

여자친구는 어린 나이보다 더 앳된 외모였고 굉장히 다정다감하고 밝은 성격이었습니다.

 

목소리도 사근사근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고입을 준비하고 있던 제게 그 때 시험 문제 추세에 맞는 키 포인트를 정확히 집어서 설명해주기도 하고, 낯을 가리는 제가 처음으로 따르는 선생님이 생겼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점점 친해지고 나니까 저도 모르게 제가 변하는 걸, 어느 순간 느꼈습니다.

 

선생과 제자간에 칠 수 있는 농담이 있고 아닌 농담이 있는 건데 제가 자꾸 이성 친구 대하듯 짓궂게 굴고 장난을 치게 된 거였어요.

 

여자친구는 때로는 선을 그으면서 때로는 그냥 동생 장난 받아주듯 오냐오냐 하면서 넘겼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제가 선생님을(과거이니 호칭을 선생님으로 바꿀게요. 쓰다보니 조금 이상한 것 같아서... 글솜씨가 형편없습니다. 이해해주세요.) 이성으로서 좋아하고 있다고 깨달았는데,

 

그 뒤로는 보강을 할 때마다 미치겠는 겁니다.

 

제가 키가 당시 컸는데 선생님은 154 정도였습니다. (지금 여자친구는 그 때보다 더 컸다고 우기는데 아닌 듯 합니다.)

 

맨날 쪼만해서는 책 들고 총총 걸어와서 왔냐며 인사하는데 진짜 너무 끌어안고 싶고, 얼굴도 새하얘서는 만져보고 싶고...

 

그래도 참고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가 결정되서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그만두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직 고백도 한 번 못해봤는데...

 

그래서 선생님 출근 마지막 날에 솔직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여자로서 좋아졌다고. 이제 학원 그만두니까 선생님 아닌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정말 슬프다는듯이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남자로 안느껴진다면서 좋은 학생이라고 또래의 좋은 여자친구 만날 수 있을 거라구요.

 

선생님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알겠는데...

 

너무 답답하고 몰아붙일 수 없는 게 슬프더라구요.

 

어려서 몰아붙일 수 없었고, 괜히 더 잡으면 어려서 그래, 라는 소리를 들을까 내 어린 치기에 선생님이 난감해지실까 그대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등학교를 입학했고 3년 동안 몇 번 받았던 고백을 다 거절하며 공부만 했습니다.

 

그리고 목표하던 대학에 갔고 일년 뒤 군대를 갔습니다.

 

선생님을 여전히 좋아하는 건지 첫사랑에 대한 향수인지, 그 때도 여전히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역한 뒤 삼개월쯤 지나서 친한 후배 녀석 밥이나 사주려고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면서 기다리는데, 선생님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 때와 달리 긴 머리를 하고,

 

그 때와 달리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달려가서 붙잡았습니다.

 

정말 놀라더라구요, 저 역시 놀랐지만...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억지부려서 번호를 땄고 꾸준히 연락하고 구애한 끝에 반년 뒤 사귀게 되었습니다.

 

사귀고 시간이 좀 지나서 여자친구가 말하기로는 그 때 중3에 불과했던 저를 이성으로 느끼는 본인이 미친년 같고 저한테 못할 짓인 것 같아 죄책감이 너무 심했다고 하더라구요.

 

과거야 어쨌든...

 

저희는 어렵게 다시 만났고

 

연애를 했고

 

이제 그 연애를  마치려고 합니다.

 

내년 봄에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상견례까지 끝났고 날짜까지 잡혔어요.

 

만날 인연은 다시 만난다는 말, 저는 믿어요.

 

세상에 있는 모든 분들이 행복한 사랑을 하셨음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수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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