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 글을 쓰는 게시판 위 '인기채널'에 떠 있는 [김치년]이라는 말도 참 거슬린다.
무개념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라지만 유독 여자에게 년년거리며 비하하는 건, 시대가 지나 여성이 대통령이 된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내 나이 서른, 치열하게 살아오다 작년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한 여성으로서 그냥 내가 느껴오는 이상한 분노와 허망함을 어디에든 표출하고 싶었다. 보통은 대학동기 여자친구들과 모여 맥주한잔 하면서 한탄하는 내용들일 것이다.
모두들 느끼듯, 20대란 참 허망하게도 쏜살같이 지나가버린다. 요즘처럼 모두들 스펙쌓기에 전념하느라 온갖 점수들과 자격요건을 맞춘다 치면 더 심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보통의 '20대 남성&여성'들과 비슷하게 고등학교때까지 한번의 일탈 없이 열심히 공부해, 나름 유명한 학교의 사범대를 나와 임용고시를 칠까 / 기간제를 하다 사립학교에 들어갈까 / 아니면 내 특기인 어학을 살려서 외국계기업에 취업을 할까 /아니면 좀 더 자유로운 과외를 하면서 프리랜서로 살까 / 혹은 좀 늦은감이 있어도 열심히 돈을 모아 대학원에 가서 좀 더 깊은 공부를 해볼까.... 매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또 매년 기간제 계약을 위해 이력서를 쓰고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뭐 그랬다.
나는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을 아직은 팔팔한 청춘이기에 꽤 오랫동안 자유로이 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결혼'이라는 것이 이렇게 크게 나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결혼을 한 것 뿐이지만, 남편과 사회가 '나'라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180도 바뀌었다. 나는 이제 자의보다는 타의로 내 인생을 계획해야 하고, 무언가 도전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공부하고 시간과 돈을 쓰기에는, 그것이 얼마만큼 가치롭고 생산적인지에 대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세상이 얼마나 변했냐에 관계없이 결혼과 동시에 남편이나 사회는 예전시대의 '어머니'를 여자에게서 떠올린다. 여자의 가치와 능력이 '가사.육아.내조' 등등의 내용들로 훌륭한 여자인지 결혼을 괜히 한 여자인지 평가되는데.. 난 이 부분부터 숨이 턱 막혀오기 시작했다. 일전에 밥을 안 챙겨 준다는 이유로 엄청나게 남편에게 욕을 먹고, '결혼을 괜히 했다' '이런 여자인지 몰랐다' 등의 이야기들로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순간에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곱씹어 생각해보니 맞벌이를 하면서 오히려 집에서 시간이 더 할당된 쪽은 남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을 한 이후로 누군가가 밥을 안해줘서 화가 난 적이 없는데.. 남편쪽은 다른 생각으로 매우 화가 나 있었다는 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조선시대 여자가 아니기에, 딸 하나 애지중지 키워오던 집안에서 자라면서 니들과 똑같이 중학교 가정시간때 배운 깍둑썰기 채썰기가 전문적인 요리기술이라면 기술인지라.. 갑작스럽게 대장금 수준의 요리실력을 요하는 요구가.. 회사나 대학교에서 갑작스럽게 조별과제로 PPT와 리포트를 써내라고 했을때의 압박감보다 크게 느껴졌다. 왜? 내가 자신없는 분야였으니까...
남편의 가부장적 성격상의 문제일뿐 아니냐 할 사람이 있겠지만, 내가 남편과 '사회'를 함께 언급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기간제교사를 계속 해왔는데, 참 신기한 현상을 목격했다. 내 나이가 들수록, 내 경력이 많아져 좀 더 노련한 교사가 될 수록, 결혼을 해서 안정적인 상태의 여성이 될 수록 사회와 직장에서 나의 능력을 좀 더 높이 사 주고 인정해 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은 내 오산이었다. 그들은 나를 고용함에 있어 불안함에 벌벌 떨었다. 20대 후반이 될 수록 혹여 결혼하지 않을까.. 결혼을 하고 나자 혹여 임신하지 않을까.. 심지어 면접 볼때 엄청난 사생활을 아무렇지 않게 질문하기도 한다. '결혼예정 없습니까? 임신계획 없습니까?' 이런 미친 질문은 선진국에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많이들 경험했겠지만 저런 내용에 솔직하게 대답할 여자는 없다. 고용이 안될 것임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임신했음을 알리지 않고 고된 일을 맡아하다가 유산을 하는 교사들도 허다하게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책임감이나 죄책감은 학교에서는 '전혀' 없어보였다. 그 좋다는 직장 - 학교.. 가장 여성에게 대우가 좋다고 모든 여성이 꿈꾼다는 직장인 공립학교에서 느낀 숨막히는 유리벽이 이 정도였으니, 일반적인 직장에서는 어떨지 가히 짐작이 간다. 그리고 공무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결혼 계획이 있어서... 임신 계획이 있어서... 출산 계획이 있어서....' 여자는 직무능력이 더 떨어지고 직장을 떠날 가능성이 더 높으므로 연봉을 더 낮게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 낮은 연봉은 남편으로부터 '그깟돈 벌어올바엔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라는 푸념을 받기에 적절해진다. 육아를 맡기기 위해 새는 지출이 여자가 벌어오는 월급에 육박할 땐 더욱 그렇다.
아마 일찍이 공무원시험을 합격한 소수의 여성을 제외하고서는 결혼을 하고 나서 위와 같은 고민을 안 해본 여성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남성들이 욕하는 '김치년'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파악이 안 되지만.. 돈 안벌고 결혼해서 편하게 놀고먹으려는 여자들이 그들이라면... 그들도 제외하고 말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존재하지 않는가...'부도덕'하고 '몰상식'한 사람들을 성적인 구분으로 몰아 일반화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사고방식이다. 인터넷에서 이야기하는 이상한 여성들을 나는 내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왔고 살고있고 살아갈려고 걱정하는 여성들, 그런데 그렇게 발버둥을 쳐도 어떠한 가려진 막에 절망하고 힘들어 하는 여성들을 더 많이 보아왔다. 경력이 단절되기 싫어 아이를 등쳐업고 집안일을 하며 잠 몇시간 못 자고 출퇴근을 하지만 결국에 돌아오는 것은 낮은 연봉과 승진에 대한 제약, 육아를 등한시 한다는 죄책감, 회사에서 보이는 눈치 등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허둥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우리 부모님(지금 내 나이또래의 여성들의 부모님)들은 이렇게 세상이 불평등할 것이라고 예언해 주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만 살면 내 노력에 대한 댓가에 대한 보상이 주어질 줄 알고 열심히 살았다. [물론 지금의 경제상황에서 누구라도 힘들다. 하지만 이 글에서의 포커스는 자유의지나 능력에 상관없이 짊어져야 하는 불평등만을 가지고 얘기한다.] 난 솔직히 얘기해서 내 잘난 여성친구들의 능력이 아깝다. 아까워 미치겠다. 서울대 나온 친구도 집에서 밥만 하고 있다. 어릴 때 문학천재로 불리웠던 동네언니도 맞벌이가 고되어 살림을 택했다. 일전에 티비에서 보니, 엄청나게 성공한 재벌의 와이프가 서울대 음대생이었는데, 아이를 다섯을 낳고 집에서 피아노만 치고 있었다. [근데 서울대 나와서 집에서 살림만 하는 '남자'는...음 글쎄... 무직의 40대 남자라도 고시공부를 했으면 했지 살림하는 남자는 상상하기 힘들다.]
!!!!!!!!!!!!!난 지금 집안살림과 육아를 평가절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중요하다. 교육학을 배운 나로서 엄마의 육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꿈.. 여자들의 꿈.. 어릴때 그 꿈을 위해 가꿔오고 단련해 온 숙련된 기술과 지식과 능력은 도대체 어디로 날려버리는 건가. 박근혜 대통령도 국가적 손실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여성들보고 열심히 일하라고 대안으로 나온 것이 '시간제교사'와 같은 백만원짜리 알바.. 아...참 답답하다.
여기서 들려올 반박이 들린다. [니가 일하고 남편 살림시켜라!] 그런 간단한 문제인가... 나도 하기 싫은 살림을 남편은 순순히 해 줄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토록 간단한 문제였으면 이렇게 고민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여자가 살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남자가 살림하는 것은 '실패'로 인식되는 게 명백한 사회적 현상임에 반박할 자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살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평가절하되고 '꿈'으로 지향하기에는 부족한 뭔가 하찮은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겉으론 '소중한 것. 귀중한 것. 당연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듯 하나 그것은 가식이다. 그토록 소중하면서 왜 선뜻 하지 않으려 하나... 사실 귀찮은 것이기 때문이다. 명성, 성공, 꿈, 성취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의무'에 가까운 일이니까..... 살림을 미친듯이 잘했다고 박수쳐 주진 않으니까. 연봉이 오르지도 않고 인정받지도 않으니까. 상대적으로 인정이 많은 여자가 도맡아서 하는 경향이 강하다. [선택적 전업주부는 제외하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릴 때 절대로 꿈이 현모양처가 아니라 변호사, 경찰, 교사, 디자이너, 외교관 등등 이었던 대다수의 여성들..]
현재 사회는 누군가가 희생을 하여 대신 육아를 해 주지 않으면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꼼짝도 못하는 불구의 상태가 되는 구조이다. 양성평등시대라고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공정한 시험을 통해 입사할 수 있는 공무원외에 평등한 직업군은 거의 없다. 여자들이 시험에 목매는 것도 단지 그 이유이고.... 평생 고용보장된 상태로 육아할 수 있는 직업군이 그 뿐이기에 그것을 택하는 거지.. 사실상 그들 중 대다수의 원래 꿈이 공무원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순히 능력과 점수만을 가지고 평가되었을 때는 여성이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는 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직무능력이 없어 연봉을 반 밖에 못받는 여자들인데.... 왜 시험통과는 더 많이하는거지?] 그 마저도 여자들이 많이 몰려드는 것을 사회가 용납을 못한다. 남녀 비율제로 뽑으라는 둥,, 남자들의 가산점을 늘리라는 둥,, 끌어내리기 위해 불을 켜고 덤벼댄다. 아직까지 여성의 사회진출과 평등한 기회에 대한 못마땅한 시선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내가 그 차별을 당하는 나이선상에 들어옴과 동시에 아주 가까이에서 몸소 느끼고 있다.
양성평등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겉에서 대충봤을때 그러하게 보이는 것 뿐이다. 세계 인구의 반이 여성이지만 세계 부의 99%는 남성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 1%도 사실상 세상은 용납하지 못한다. 그 수치를 이야기해준 강의에서 얘기했던 한마디가 충격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계층의 남성도 집에서 때릴 여자는 있다"
아직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그리고 더 큰 불만은 이것에 대해 불평만 할 뿐, 큰 의문을 제기하거나 나서거나 변화에 대해 고민하려는 여성들은 아직도 너무 적다는 것이다. 남편이 가정적인 좋은 남편으로 변해주길 복불복으로 기다리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 너무 아쉽다.
계속 고민만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생각이 모이고 목소리가 되어서 조그만 변화라도 이끌어 내는 것이.. 혹은 아주 작게나마 긍정적인 발전이 생기게끔 하는 것이 지금 여성들이 해야할 진짜 일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든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해결점에 대해 고민해 보고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나 혼자서 아직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