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대 출신 연대 로스쿨생의 충격적인 범죄 사실이 보도됐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1/04/2014010400820.html) 고등학교 때부터 1등만, 수능 언수외 모두 만점받고 서울대 경영학과에서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연대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이 기말고사 시험 문제를 도둑질하려고 야밤에 교수 연구실에 잠입했다가 들켜서 붙잡혔다는 것. 연대 로스쿨 역사상 처음으로 전과목 A+도 받아서 다들 놀라워했는데, 그것도 해킹한 결과란다. 결국 그는 영구제적당했다. 최모라는 그 학생은 예전에 공부의 신이라고까지 불렸던 알만한 사람은 아는 유명한 우등생이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솔직히 컨닝 같은 거야 꽤 있기도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만 교수 연구실에 잠입해서 시험문제를 빼돌리다니. 똑똑하고 전도유망한 학생이 왜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한 걸까? 그 머리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기사를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한 책 내용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당장 자세한 책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으니까 여기서(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385245) 보길 바란다. 간단히 요약하면, 어릴 때부터 사람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패자를 짓밟는 이 사회가 지금의 이십대들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부제가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다. 바로 최모 학생 같은 이 책이 말하는 망가진, 괴물이 된 이십대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경쟁에 시달리는 이십대들이 대학 등급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를 외우며 대학생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싸우는 모습은 익숙하다. “연세대는 서강대를, 서강대는 성균관대를, 성균관대는 중앙대를, 중앙대는 세종대를” 멸시한다. 이 계급은 거의 절대적이다.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대학생을 상대로는 우월감을, 더 높은 서열의 대학생을 상대로는 열등감을 느낀다. 최모 학생도 그랬다. 그는 처음에 서울대 로스쿨에 가려고 했으나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수술을 핑계로 휴학하고 한 번 더 시험을 쳤지만 또 떨어졌다. 항상 1등만 해오던 그에게 이는 충격이고 굴욕이었던 듯하다.
문제는 그렇게 자기 기준으로는 2등인 연대 로스쿨에 왔지만 거기서도 공부가 쉽지 않았다는 것. 동기생들의 말에 따르면 최모 학생은 공부할 때 버거워 보였고 그래서 "서울대 로스쿨도 아닌 2등 로스쿨에 와서 '여기서도 1등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자신이 또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에 그는 교수실 침입이라는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묘사하는 학생들은 열심히 노력해 스펙을 갖추어 사회(곧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곧 상품)이 되는 것을 지상과제로 생각한다. 세상은 자신들을 어느 대학에 다니는지, 어느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만을 보고 평가한다. 사회구조가 어떻든 각자가 부딪힌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든, 취업하지 못했다면, 또는 비정규직이 되었다면 그 사람은 패배자가 돼버린다. 이러니 당연히 ‘학교이름’이나 여타 스펙 같은 자신의 브랜드와 성과에 굉장히 집착한다. 책은 과잠을 당당히 입고 다니는 대학가 풍속에서 이런 모습을 단적으로 짚어낸다.
최모 학생의 평소 모습은 자신의 스펙을 과시하려는 이런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는 자동차를 몰고 다녔는데 앞유리에 국회 출입증, 백화점 VIP 주차증, 서울대 기부확인증, 연세대 주차증을 큼지막하게 붙여뒀다고 한다. 국회 출입증은 예전에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면서 받은 거였지만 그 일이 끝나고도 계속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남 보기엔 지 잘난 척이다 싶을 정도로 자기 스펙을 내보인 셈이다. 한 친구는 최모 학생이 "얼핏 보기엔 완벽해 보였지만, 스스로를 너무 계획한 대로 좀 상품처럼 만드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이렇게 추락한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는 많은 수험생들의 멘토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생들에게 "가슴이 뛰는 직업을 찾으라"는 당부를 하면서 "그러면 금전적인 것들과 물질적인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자기계발서에 흔히 나오는 류의 멋진 충고를 했다고 한다. 그는 가슴이 뛰는 직업을 찾으러 교수 연구실에 숨어들어간 걸까?
재밌게도 <우리는 차별에....>에서는 이십대를 괴물로 만들게끔 한 원인의 하나로 자기계발서를 꼽는다. 자기계발서는 온갖 멋진 말들로 치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네가 못난 건 네가 노력 안 한 탓이고, 원하는 결과를 원한다면 더 노력해라!’일 뿐인 논리를 전파한다. 이런 논리에 젖은 이십대는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며 자신과 다른 이들을 더 노력하라고 채찍질하게 된다. 자기계발서를 아무리 읽어봤자,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 같은 경쟁만 계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모 학생은 자기계발서의 메시지를 그대로 수행하여, 남들이 보기엔 경탄할 만한 삶을 살았지만 사실 그 속은 썩어 문들어져가고 있었다. 사실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말로는 열정적으로 꿈을 꾸며 살라고 하지만, 그 자신이 경쟁에 짓눌려 사는 그런... 최모 학생과 같은 이십대가 우리 사회에는 또 얼마나 많을까? 사람들을 안녕치 못하게 하는 오늘날의 모습이 농축되어 나타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