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툭툭툭......]
갑자기 어디선가 무엇을 가볍게 치는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그리고, 동시에 한참동안이나 멀어져가던 박기자의 의식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조금씩이나마 주변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저기... 입니다. 아까..전... 동생분... 맞습니.. 여보세.. ......세여?"
.............................귀가.. 멍하다........................................
그건 마치 박기자가 군대에서 포병으로 근무하던 시절 155mm 견인포가 뿜어대던 귀청이
찢어질듯한 포성에 한순간 청음을 잃어버린 그때의 고막과 비슷했다.
또한, 지금 박기자의 고막은 그 어떤 음파의 높낮이도 제대로 떨어주지 못한채, 웽~~~하는
기괴음만을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들려주는 주파수안잡힌 라디오였다.
그리고 그건, 벌써 한시간가까이나 슬픔에 복받쳐있던 박기자에게 생긴 일시적인 쇼크성
장애를 말해주고 있었다.
[툭툭... 툭..툭...툭툭... ......턱!!]
이번에도 아까같은 소리가 박기자의 귓가를 희미하게 두드렸다.
하지만, 둔중해진 느낌속에서도 이번에는 뭔가가 다른것이 느껴졌다.
특히 마지막에 들린 소리는...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옷을 터는듯한 소리와 비슷한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순간, 무슨일인지 박기자의 뿌옇게 흐려진 시선은 아무런 저항조차 해보지도
못한채 차가운 땅바닥을 향해 커다란 원을 그리며 세차게 돌기 시작했다.
'큭... 뭐..뭐지?. 머..머리가...'
박기자는 지금 자신의 머리가... 아니, 온몸전체가 모두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듯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까 동생의 사체를 보고난후, 다리에서부터 풀려져버린 신경의 마비가 이제는
아예 몸전체를 마비시켜버린듯했다.
어지럽고, 힘도 하나도 없고, 마치 뇌가 비어버린듯... 심장이 사라져버린듯...
몸안에 생기가 느껴지지않는 메스껍고 역겨운 이 느낌.
박기자는 결국 얼마 참지못하고 회색빛 콘크리트 바닥아래로 머리를 떨구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쓰러지는 박기자의 동공속으로 마지막에 비쳐든 모습은 가죽천으로 덧대어진
두개의 두터운 팔이 빠르게 자신의 눈앞으로 다가오는 장면이었다.
"저기 말입니다! 예? 천반장님~~~! 여기 말입니다. 여!"
소리가.. 아니, 고함이 들려왔다. 그것도 아주 갑작스럽고 커다란...
머릿속을 쾅쾅거리며 울리게 만드는 고함소리가...
박기자는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던 의식의 몸부림속에서도 갑자기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금 고함을 쳤던 그 소리의 주인공에게 뭔지모를 적의같은게 느껴졌다.
그래서, 누구인가 보려는 마음에 눈을 뜨려고 눈꺼풀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여. 여 좀 보십쇼. 정신이 드나 본데요?"
"어? 이 친구, 눈꺼풀이 떨리는데? 어이! 최순경! 거기 허담당관님 좀 오시라캐라!"
계속해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이제는 여기저기서 터져나와서 시끄럽기까지 했다.
박기자는 짜증이 점점 커져가는것을 느끼며 눈을 크게 떠볼려고 했다.
하지만, 전신에 아무런 기운도 남지않는 지금의 상태에서 박기자의 굳게 감겨진 눈꺼풀은
마치 만근거석이라도 된양 너무나 무겁게 내려앉아 쉽게 떠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눈꺼풀에 힘을준지 얼마나 흘렀을까?
딱풀로 금방 붙였다가 떼어내는듯 끈적하게 떨어져나가는 눈꺼풀의 경계면을 바라보던 박기자는
갑자기 왼손안편의 살속으로 뭔가 날카로운 이질감이 뚫고 들어오는것을 느꼈다.
[뭐..뭐지? 이것은... 주사.. 주사바늘인가?]
박기자는 흐릿한 정신의 끝자락속에서도 지금 자신의 주변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상황들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안타까워졌다.
그리고, 그런 박기자의 몸은 정신의 간절한 바램과는 상관없이 몸속 깊숙이 가늘게
한번 가벼운 경련을 일으킨후,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것은 뭔가 이질적인 것이 몸속으로 들어왔음을 알리는 몸의 신호였다.
"흐음...흐으으으으으...... ..후우우우----"
박기자는 서서히 전신에 퍼져드는 이상한 기운을 느끼며 비로소 작지만 편안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아까 띄어졌던 눈꺼풀을 다시 들어올리며 두눈을 껌뻑거려 보았다.
이번에는 눈꺼풀이 박기자의 의지대로 아주 쉽게 떠졌다.
"보소. 기자양반. 내말 들리요? 들리면 끄덕거려보소."
박기자는 누군가가 자신의 귀가까이로 말을 하는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턱을 부여잡고 흔드는 그 누군가를 향해 눈을 힘껏 깜빡거렸다.
그것은 물론, 말귀를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한것도 있었지만 지금 자신의 턱을 부서져라
부여잡고있는 억센손의 악력에 너무나 아파서 그런것도 있었다.
"보소. 들리지요? 이것 좀 들이켜보소."
그리고 곧바로 반쯤 벌어진 입술사이로 차가운 물한모금이 들어왔다.
박기자는 비로소 차가운 기운에 온몸을 들썩이며 한참동안 나가있던 정신을 차렸다.
"여..여긴. 아~! 여..여긴! 동생이.. 내동생이!"
"진정하이소. 기자양반. 좀 더 누워있어야됩니다. 여 좀 누우소."
"내.. 내동생이... 기형이... 기형이가......!"
박기자는 정신이 들어옴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마치 예약기능이 발동된 TV의 내장프로그램처럼
동생의 이름을 입으로 중얼중얼 되뇌이며 몸을 벌떡 일으켜서 동생에게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의 의지일뿐이었다.
이미 늘어질대로 늘어져버린 박기자의 육체는 일어서기는 커녕 꿈틀거리기만 할뿐
더이상 박기자의 의지를 도와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한번의 꿈틀거림으로 다시 기진맥진해버린 박기자의 머리속으로 아까의
그 장면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헉헉거리며 힘겹게 내쉬는 거친 숨몰이속에서도 계속해서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 지워지지않는 동생일가의 처참한 모습들...
하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아까도 그랬던것 같았지만 ---아마도---
그 모습을 보고도...
그 처참한 모습을 두눈으로 보고서도 박기자의 눈에서는 결국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게 다시 떠올라버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박기자는 그제서야 자신의 머리가 다른사람의 손에의해 받쳐져있음을 느꼈다.
다음으로 눈에 비치는것은 검은 가죽점퍼에 둘러쌓인 자신의 길다랗게 뻗은 몸뚱아리...
그것은 땅바닥에 길다랗게 뉘여진채 시체마냥 쓰러져서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않고 있었다.
그렇다. 박기자는 지금 몸을 운신하기에도 힘든 그런 상태인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에 대해서 박기자는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한숨...
세상 모든것이 무너져 내리는듯한 긴 한숨이 힘없이 새어나왔다.
주변사람들은 땅이 꺼진다고, 너무 힘이 없어 보인다고 싫어했던 한숨이었다.
하지만, 박기자에게는 그것이 삶에 치이고 힘들때 할수있는 유일한 행동이었고 탈출구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 한숨을...
길게 입밖으로 새어나오는 뜨거운 한숨을 뒤로하고는 힘들게 고개를 옆으로 떨구고 말았다.
[뭐,뭐지?]
떨구어진 박기자의 두 시선사이로 갑자기 뭔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가가 저릿해지면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눈이 데인듯 뜨거워지는걸까?
...... 아니, 언제 내가 이렇게 눈물을 흘렸었지?
그런 생각들이 지나간 시간사이에 박기자의 눈과 코사이의 둔덕에 고여든 눈물은
이윽고 차가운 느낌을 남기며 아래로 떨어져갔다.
그 다음으로 박기자의 두눈은 다시 스르르 감겨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