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둥이+1 남자의 도보여행기, 1-2푠!!
속초-인제 무작정 걷기, 인제 너 나와!!
앞서도 적었지만 백담사행 셔틀 버스는 겨울철에 운행하지 않습니다.
겨우내내 눈이 진득히 내리는데다 길이 험하기 때문에 대형차량이 다니기는 위험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겨울, 백담사를 가시는 분들이라면 꼭 이 점 아셨으면... 저처럼 멘붕 안 오려면요..
인근에는 황태의 고장답게 길 양편으로 황태구이, 산채비빔밥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기왕 왕복 15km 걷기로 마음 먹은만큼 배를 든든히 채워주기 위해 산채비빔밥을 5분만에 뚝딱 먹어치우고 나옵니다.
시간이 넉넉치 않아졌기 때문입니다.
오후 5시 퇴근하는 친구와 만나야하기 때문인데 오후 2시를 넘긴 시각, 백담사를 다녀 오려면 부지런히 걸어야만 했습니다.
대략 계산을 해본 결과 백담사를 30분이나마 보려면 편도 7km를 1시간 20분대로 끊어줘야 합니다.
이미 배도 가득 채웠겠다, 그동안 달리지 못한 이 두 다리가 힘차게 달릴 준비가 됐다고 시동도 걸었겠다
힘차게 한 발 한 발 전진합니다.
눈이 깔린 임도, 그것도 오르락내리락 길을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합니다.
우왓, 큼직한 배낭을 메고도 이렇게 잘 달릴 수가 있다니,,,
역시 사람이 다급해지면 못 할 일이 없다더니... 잘 달립니다.
찬바람과 숨까지 가득 차 얼굴이 새빨개질 무렵, 백담사가 눈 앞에 살며시 보입니다.
군 복무 당시 한자 자격증 3급과 2급을 연달아 취득하며, 행정보급관으로부터 넌 머리가 참 좋은 녀석이란
칭찬을 받았던 기억은 아직 어제 일처럼 선명한데, 그당시 외웠던 한자들은 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을까요?
내설악 백담사(솔직히 못 읽은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만 ^^;;) 가운데 악 자는 전후 문맥을 고려해야만
겨우 아 저게 악자겠구나 하는 저를 대면하며 한심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아... 뱅알군 공부 좀 합시다...ㅠ
백담계곡으로부터 백담사를 이어주는 다리, 수심교가 보입니다. 마음을 닦다, 수련하다
얼마 전까지라면 그냥 흘겨보고 지났을 다리 이름 하나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간 내 마음은 얼마나 단단해졌을까? 조금은 나아졌을까? 묘한 잡념이 이는 것을 보니
아직 한~~~참 멀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겨울인지라 물이 마르고 눈이 가득 덮여있는 백담계곡에는 또 하나의 장관이 펼쳐집니다.
각자 저마다의 크고 작은 소원을 담은 돌탑이 계곡 위로 주욱 펼쳐집니다.
날이 풀리고 물이 흐르면 사라질 돌탑이겠지만....
사람들은 어떤 소원을 빌고 어떤 꿈을 꾸는 것일까요?
절에 들어와서는 만해기념관 앞에 붙은 글귀 두 장만 찍고는
가급적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배터리도 얼마 없었지만
절은 관광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죠. 조용히 둘러 보고 눈으로 기억하자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사진을 들이댄다는 게 경우에 따라서는 예의가 아닐 때도 있구나 싶었던 것이죠.
두 글귀 모두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절은 아담하지도 작지도 크지도 않은 어중간한 규모입니다만,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숙연해지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돌아 나오는 길, 콧구멍 다리 양 옆으로 돌탑들이 가득합니다. 눈 밭을 푹푹 밟고 돌탑 사이로 가봅니다.
나도 쌓을까? 하다, 사심 가득한 소원이 가득 담긴 부정탄 돌탑을 남기고 갈 것 같아 가만히 보기만 하다
나왔습니다.
바람이 일고 눈보라가 일때이거나 석양질 무렵이라면 돌탑들의 풍경이 더 운치있겠지만,
지금도 나름 나쁘지 않습니다.
백담사를 둘러 보고 입구에 다시 나온 시각, 오후 3시 50분,, 다시금 마음이 급해집니다.
가뜩이나 통화가 잘 안 되는 산속이다 보니 휴대폰 배터리는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오후 5시 만나기로 한 친구와 여차하다간 엇갈리거나 통화가 안 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
또이또이한 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 친구의 번호를 외우고 휴대전화는 절전모드로 돌립니다.
ABCD에 SDFS 이런식으로 내려 오는 내내 외웁니다. 그러다 띵똥 카톡에 답장하고 나니
그새 까먹습니다. 아 또이또이한 게 아니라 완전 돌이네요.
어쨌든 느긋해지려고 간 여행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다급해지고 마니 기분 참 묘합니다..
허겁지겁, 오를 때보다 훨씬 빨리 내려와 반가운 친구를 만나니,,, 어찌나 아무렇지 않다니....
심드렁한 친구나 저나 인제의 또다른 명물 송어회를 먹으러 고고씽& 또다시 시작된 코알라 놀이로 이날 밤을 마무리합니다.
인제 과학화훈련단에서 근무하는 제 친구놈은 아침형 인간의 전형입니다.
다음날 그러니까 여행 2일차인 19일 오전 7시 전날 마신 술의 고통에 느즈막히 일어난 저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쌩쌩합니다.
대충 씻고 해장 겸 아침 식사겸 보리밥을 먹습니다. 참 메뉴 선정하는 센스는...
이제는 마지막 행선지,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을 가야 합니다.
중간에 친구 녀석 한 명을 더 태우고 룰루라라 산골짜기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데
이것들이 둘다 일반 운동화에 새로 합류한 녀석은 아침 밥도 안 먹고 왔습니다.
저는.. 기고만장하게 입구에 나를 떨구고 니들은 이제 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같이 가자, 여기 버스 없어서 나 혼자 남으면 두세시간은 걸어 나가야 한다
나 버리지 마라))
의리 넘치는 이놈들은 그래도 저를 버리진 않고 10분에 한 번씩 아직 숲은 멀었냐 멀었냐 칭얼거립니다.
입구에서 자작나무 숲까지는 편도 3km를 걸어야 합니다. 경사가 거의 없는 임도이지만 눈이 쌓인 길이라
운동화를 신고 온 두 녀석은 내내 투덜거립니다.
1시간 조금 안 되게 땀이 삐질 날만큼 걸으니 자작나무 숲 입구가 보입니다.
블로그에서 봤던 할매 강아지도 보이고 흰 숲이 가득 들어오네요.
드디어 자작나무 숲입니다. 실은 이번 여행의 핵심 포인트였죠. 이곳이
마음의 힐링이 필요했던 제게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은 인터넷으로 보는 순간, 어머 여긴 가야 해!!!
이승기의 되돌리다라는 노래 뮤직비디오에 나와 더욱 화제가 된 숲이기도 합니다.
준비성 철저한 저는 여행 전 요 뮤비를 보고 묘한 숲의 느낌에 끌렸더랬죠.
운동화를 신고 온 두녀석은 귀찮은지, 아니면 제법 경사가 가파른 둔턱을 오르 내릴 자신이 없었는지 위에 머물겠다고 해
저만 숲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경사가 가파른데다 눈이 가득해 아이젠을 필히 착용해야 했지만, 이제 와서 신자니
귀찮아집니다. 그럴 거면 왜 가져온 거야 무겁게스리..
위에 두고 온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해 황급히 둘러본 탓도 있지만, 생각만큼 자작나무 숲은 '쨍'한 매력은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겨울보단 가을에 와야 제격이라고 하는군요... 음...
재밌는 건 여기 온 사람들 대부분 땅바닥에 누워 삐쭉삐쭉 솟은 나무를 찍고 있더군요.
여러 명이 이렇게 사진을 찍는 그 광경이 묘한 웃음을 짓게 했는데 초상권도 있고 그분들의
숲 감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비켜 나왔습니다.
어찌보면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고 뭔가 울림이 있을 줄 알았던 숲은 고요하기만 했지만
그 나름의 운치는 있었습니다. 어차피 숲은 가만히 있을 뿐 그것에 감명받고 안 받고는
제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저같은 성격은 이럴 때 참 좋아요. 응??
친구들과 급히 내려가 순대국밥 뚝딱 먹고 마지막으로 인제빙어축제를 보고 노곤한 몸 이끌고
집으로 귀가하며 1박2일 새해 첫 여행은 마무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