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웃대 - 듀라라님
거의 반쯤 감겨있는 두 눈으로 나는 보았다. 분명히 어두워야할 방에 이상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을.
‘야광?’
그 야광이 빛나고 있는 곳은 철문의 왼쪽 부분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화살표 모양이었는데 그 화살표는 철문의 왼쪽의 어느 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 살 수 있어.’
마지막 힘을 다해서 문을 향해 기어갔다. 중학교 때 호기심으로 담배를 피다가 선생님에게 걸려서 받은 얼차려 때 이후로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포복이었다. 당연히 능숙하게 앞으로 갈 리가 없었다. 게다가 바닥은 말 그대로 이산화탄소뿐이었다. 지옥.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고통을 두 글자로 표현하자면 그랬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떨어질 때 문 앞에 떨어진 덕분에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금세 철문 옆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상체를 일으켜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힘도 없다. 만약 이것이 꾹 밀어야하는 버튼이라면 나는 이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틱.
손이 닿자마자 바로 몸은 젖은 이불처럼 축 늘어졌다. 몸은 그렇게 퍼졌지만 마음속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조금만 더 움직여! 움직이라고!! 야이 병신아! 일어나라고!!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인간은 마지막 순간에 추접해진다고 했던가. 삶의 대한 갈망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렬했다. 조금만 더 하다못해 10초 만이라도 아니 5초 만이라도 더 움직일 수 있다면. 그렇게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막을 찢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곧 그 소리가 바로 코앞에서 들려오는 것을 눈치 챘다.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철옹성 같던 철문이 열리기 시작한 거였다. 그 철문 너머로는 빛과 공기가 순식간에 흘러들어왔다. 당장 녹아 없어질 것 같던 뇌 속에 산소가 공급되자 짜릿한 현기증과 함께 온 몸에 나른함이 밀려왔다.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 했다.
“후우우우…….”
조용하면서도 깊게 산소를 빨아들이자, 온 몸에 피들이 돌기 시작했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다면 뇌사거나 혹은 뇌가 망가질 뻔 했다.
“쿨럭! 쿨럭쿨럭!”
산소를 너무 급히 들이쉰 탓에 사래가 걸렸지만 그래도 좋았다. 사래 걸리는 것 따위로 죽을 리는 없으니까.
‘살았어. 살았다고!’
살아났다는 쾌감 후에 갑자기 울분이 터져 나왔다.
“크, 크흑…….”
울음을 참고 싶어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고, 아버지와 다시금 장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다. 따뜻한 이불에 누워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너무 돌아가고 싶다.
살았다는 쾌감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에 감정이 뒤섞여 오열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낯선 음성이 귀에 닿았다.
“누, 누구야!”
“!!”
밖인가? 나는 급히 고개를 들어 그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열린 철문 너머에서 나오는 밝은 빛 때문에 자연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사, 살려주세요!”
이제 겨우 산소가 공급됐기 때문에 힘이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내 입에서는 고함에 가까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사, 살 수 있어.’
그렇게 온 몸에 남아있는 나른함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있는데 문 너머에서 작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대체 뭐야? 사람이 살려달라고 했는데 지금 한숨을 내쉰 거야?’
밖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짜증이 솟구쳤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데 한숨이라니? 어떤 미친 인간이 그 따위 대꾸를 한단 말인가.
“살려달라니까요!! 신발! 지금 뭐하는 거야!! 살려달라고!!”
나의 그런 욕설에도 건너편에 있는 그 사람은 더욱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뭘 살려줘요. 바닥에 누워있는 것뿐이면서……. 다 보이니까 얼른 일어나요.”
대부분 사람이 살려달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살려주려고 애를 쓴다. 그것이 기본적인 사람의 양심과 도덕심이니까. 하지만 건너편에 있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이럴 경우 그가 감정이 없는 싸이코패스거나 혹은 남을 어지간히 돕기 싫어하거나 아니면 범죄를 많이 저지른 범죄자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나랑 같은 처지의 사람이거나.
조금씩 산소를 들이쉬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몸을 이끌고 그 육중한 철문을 열었다. 그러자 밝은 빛이 순식간에 동공을 태웠지만 감을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여, 여긴…….”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방금 전까지 있던 방과 거의 같은 방 구조였다. 육중한 철문하며 중간에 놓인 테이블까지 거의 같다고 해도 동일했다. 딱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오른쪽 구석 위에 위치하고 있는 환풍기와 내가 지금 들어온 철문. 그러니까 그 방에는 철문이 2개 있는 셈이다.
“보아하니 나랑 똑같은 처지 같네요. 있던 방도 비슷한 것 같고.”
그제야 방금 전 나의 말에 한숨을 쉬었던 그녀에게 눈을 돌릴 수 있었다.
“누, 누구세요?”“그건 제가 할 말 같은데요?”
당돌한 여자애였다. 확실히 갑자기 철문 너머로 내가 나타났으니 놀랄 법도 하다. 처음 그녀가 ‘누, 누구야!’ 라고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녀 역시 구조를 기다리는 납치된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밀폐된 공간이 그녀와 내가 같은 입장임을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래서 처음 놀래다가 내 모습을 보고 실망한 거겠지. 하지만 그걸 그 짧은 순간에 판단한 건가? 설마 여기에 납치된 사람들은 전부…….
같은 나이 또래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녀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겨울방학 교복이라니…….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기분 나쁘게 뭘 훑어봐요?”
“아, 미, 미안해요.”
평소에도 처음 보는 사람이면 전체를 훑어보는 스누핑(소지품이나 흔적만으로도 상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상대를 꿰뚫어보는 힘)을 하곤 했는데 그 버릇이 또 나오고 말았다. 여전히 추리가 내키지 않지만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그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말 그대로 평범한 여고생의 복장이었다.
스누핑 결과 의외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이 겨울에 교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은 수능이 끝난 고등학생 3학년은 아니라는 뜻이다. 수능은 이미 끝났으니까. 그 다음은 그녀가 신고 있는 슬리퍼였다. 여기저기 때가 많이 탄 걸로 봐서는 고등학생 1학년이라고 보기는 조금 문제가 있었다. 물론 1학년인데 많이 싸돌아다녀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신발을 제외한 그녀의 단정한 복장과 묵은 때 하나 없는 교복을 본다면 그리 활동적인 성격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슬리퍼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정보는…….
‘학교에서 납치된 건가.’
그게 가장 큰 정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학교에서나 신을 법한 실내화를 신고 있으니까. 물론 스누핑은 어디까지나 정보를 추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100% 맞을 순 없다. 그냥 집에서 신을 수도 있고, 학원 등 어디서든지 자기 마음대로 실내화를 신을 순 있으니까. 하지만 교복과 실내화의 조합을 본다면 그런 생각이 안 떠오를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일단은 학교에서 납치됐다고 가정을 하고 생각을 했다.
‘범인은 장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대담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학교 측까지 마수가 뻗힌 건가?’
다음은 그녀의 귓불에 귀걸이 대신 낚싯줄을 꿰맨 흔적이었다. 학교에서는 귀걸이를 착용하면 혼나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흔히 하는 행동인데 밖을 나가면 바로 낚싯줄을 끊고 귀걸이를 착용하기 위해서 하곤 한다. 어린 나이에 귀를 뚫으면 다시 막히기 때문에 대처법이다. 더욱 더 학교 안에서 납치되었다는 가설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었다.
귀걸이를 안 착용한 걸 보면 어느 정도 학교 선생님들의 힘이 있다는 뜻이다. 즉, 이름 있는 학교일 가능성이 있다. 단순히 실업계와 사립 인문계의 차이라고 될 것 같다. 물론 실업계라도 어느 정도 관리는 하지만 아무래도 인문계보다는 조금 여유로운 것이 사실이니까.
‘즉, 그녀는 유명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 학생으로 겨울 방학임에도 학교에 나가서 공부를 하는데 납치됐다. 대충 이렇게 생각하면 되려나?’
그 생각은 5초 안에 끝낸 뒤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직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 처했는데 여자로서 무섭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몸 상태는 정말 최악이지만 그녀를 조금 진정시켜야만 했다.
“저기 그런데 여기가 어디죠?”
나와 동갑이기는 했지만 일단 초면이기에 존댓말을 하기로 했다.
“그걸 알면 여기에 이러고 있겠어요?”
의외로 나보다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앙칼지게 소리쳤는데 그제야 겨우 그녀의 얼굴을 정면에서 볼 수 있었다. 얼굴 위에 고르게 바른 BB크림이 살짝 광택이 나는 걸로 봐서 갇힌 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얼굴 위로 기름이 뜰 정도면 적어도 5~10시간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잠깐만? 그녀가 여기에 납치된 지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른 거라면 철문이 하나밖에 없는 방 맨 구석에 납치된 나는 대체 얼마나 거기에서 뻗어있었던 거지?’
생각해보면 아무리 납치범이라도 나에게 문제를 풀 시간을 고작 2시간(어림짐작) 정도 밖에 주지 않았을까? 그 때문에 산소가 모자라서 정말 죽을 뻔 했지 않은가?
내가 그녀보다 납치된 시간이 훨씬 전이라고 친다면 정황상 얼추 맞다. 방 안에 충분히 가득 산소가 있는데 내가 너무 오랫동안 잠들어있었다고 한다면 말이다.
‘아마 사람마다 마취제 풀리는 시간이 틀리니 때문에 범인이 실수한 모양이군. 덕분에 정말 죽을 뻔 했네…….’
그러한 잡념도 잠시 이렇게 납치됐음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그녀의 태도에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닌 것 같아보였다.
‘그리고 보니 납치된 것 치고는 너무 담담하지 않았나?’
그녀는 여자치고는 이런 상황에 너무 담담했다. 방금 전까지 조금 놓고 있던 긴장의 끈을 다시 굳게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