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이 입헌정치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면, 5.16혁명은 부패와 무능과 무질서와 공사주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잡으려는 민족주의적 혁명”
장준하 선생이 1961년 <사상계> 6월호(95호) 권두언에서 쓴 글입니다. 장준하와 박정희 관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조금 놀라운 글입니다. 하지만 장준하 선생이 박정희 ‘군사혁명’에 대한 기대한 이유는 같은 글에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시급히 혁명과업을 완수하고, 최단시일 내에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한 후 쾌히 그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다는 엄숙한 혁명공약을 깨끗이, 군인답게 실천하는 길 이외의 방법은 없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박정희가 민정이양을 빠른 시일 안에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군사반란 세력은 ‘혁명공약’에서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고 다짐했습니다. 특히 박정희는 8월 12일 성명을 통해 민정이양에 관한 일정까지 발표했습니다.
2년 후인 63년 초에는 정당 활동 허용한 후, 같은 해 여름은 민정이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군사정권은 일정을 차곡차곡 진행합니다. 1962년 10월 8일 ‘국가재건비상조치법’ 개정, 10월 12일 ‘국민투표법’을 제정합니다. 특히 윤보선이 대통령에서 물러나자 권한대행에 오른 박정희는 11월 15일 최고회의가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개정안을 공고합니다. 또 12월 6일 계엄령 해제, 12월17일 헌법개정안 국민투표를 실시합니다. 당시 헌법개정안은 ‘국회단원제’, ‘대통령 4년 중임제’ 따위였습니다. 4년 중임제를 유심히 봐야 합니다. 그 유명한 ‘3선개헌’ 빌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이듬해(1963년) 4월 대통령 선거, 5월 국회의원 선거 실시를 발표합니다. 특히 1월 1일부터 민간인 정치 활동 허용을 약속합니다. 이제 민정이양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습니다. 그 민간인 중에는 현역군인이 아니라 전역군인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내외 정세를 종합 고찰하여 검토한 결과 최고위원들이 군복을 벗고 민간인 자격으로 민간정부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 더욱 충실하게 봉사하는 길이라고 결정했다. 본인도 최고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민정에 참여하기로 했다.”
말만 민정이양이지, 군사반란을 일으킨 자신들이 전역을 하고 나서 민간인 신분으로 정권을 잡겠다는 말입니다. 특히 박정희는 ‘당에서 결정을 내린다면 당원은 당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대통령 선거 출마에 나설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물론 “군인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혁명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한 김재춘처럼 민정이양을 촉구하는 이들과 군 수뇌부와 미국도 박정희 민정 참여에 반대합니다. 박정희는 이 같은 분위기가 되자 민정이양과 군정연장에서 오락가락합니다.
2월 16일에 열린 3군 수뇌회의는 박정희의 민정 참여에 반대한다고 결의했다. 미국의 케네디 행정부도 같은 의견을 보이자 박정희는 2월 18일 9개 항으로 이루어진 ‘시국수습안’이 받아들여지면 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9개 항의 핵심은 ‘군의 정치적 중립과 민간정부 지지’, ‘5·16의 정당성 인정’, ‘한일 문제에 대한 군정의 방침에 협력할 것’이었다. 그 무렵에 박정희의 잦은 변심을 가리키는 ‘번의(翻意)’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박정희의 번의는 열흘이 멀다 하고 되풀이되는 적도 있었다. 그는 1963년 2월 27일 각 정당과 정치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정국수습선서식’을 열고 민정에 불참하겠다고 약속했다.-2012.09.21 <미디어오늘> 군정연장 반대투쟁을 선도한 사상계
하지만, 끝내 민정이양 약속을 깨뜨립니다. 박정희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미디어오늘> 같은 기사에 따르면 3월 16일 박정희는 민정 불참과 민정 이양 약속을 깨뜨리고 ‘군정을 5년 동안 연장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뒤 ‘비상사태 수습을 위한 임시조치법’을 공포함으로써 모든 정당 활동을 정지시키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했습니다.
그래도 미국은 신경이 쓰인 것 같습니다. 박정희는 ‘군정연장 선언’을 한 사흘 뒤인 19일 케네디에게 군정연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말하며, 자신을 지지해 달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재미블로거 안치용씨는 지난 2011년 11월 14일 자신의 블로그 ‘스크릿 오브 코리아’에 “박 전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에 군정 4년 연장 선언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요청했다”고 말했습니다. 블로그 바로 가기 <박정희, '케네디각하, 군정연장 팍팍 밀어주세요' 63년 박정희 친서전문 첫 공개>
박정희는 이렇게 국민에게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칩니다. 군정연장을 하겠다고 하자 함석헌 선생은 분노했습니다. 함 선생은 1963년 <사상계> 4월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 제목 글에서 박정희에게 직격탄을 날립니다.
민정으로 넘어가는 길을 묻느냐? 어려운 것 아니다. 간단 명료하지 않으냐, 군인은 군도직입이라더라. 이야말로 사뭇 들어가는 칼 같이 뻔한 진리지, 군인이 정권 쥐었으니 민정 되려면 군인이 물러서는 것이지 무슨 다른 복잡한 것이 있겠나? 물러설 마음이 없기에 헌법 개정이요 민의요 하지 깨끗이 물러서는 사람이 토론이 무슨 토론이냐? - <장준하 문집 3> 44쪽
“깨끗하게 물러나라”고 했습니다. 그게 정직한 것이고, 군인 다운 것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이어 "민중이 곧 일어서야지, 도대체 정권 넘겨준단 말부터 고쳐야 한다"며 "정권이 뉘건데 누가 뉘게 넘겨주어? 천하는 단 한 사람의 것이 아니란 말을 벌써 몇 천 년 전의 사람이 했는데 정권을 민중에게 넘겨주다니 그런 시대착오가 어디 있나? 이양이란 글귀를 쓰는 사람도 있으나 그것은 민중 모욕이다. 이양이 아니라 가져갔던 정권을 도로 바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중이 일어나 박정희 군정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함석헌 선생 다운 모습입니다. “스스로 영웅인 듯 하는, 스스로 나라 일 맡은 듯 생각하는 그런 구식 머리 좀 고쳐라. 이 시대를 모르나, 매스컴의 시대라 하지 않나? 인생이 예와 다르다”며 “한 사람이 걱정해서 천하를 건진다는 생각은 이제는 인생을 망치는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어 “너는 겸손히 민중에게 물어라. 그러기 위해 언론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전체만이 자기 일을 하고 자기 길을 택한다. 신문 잡지를 마비시켜 놓고 민정이 무슨 민정이냐?”고 직격탄을 날립니다.
박정희는 그해 8월 30일 강원도 철원군 7사단 연병장에서 전역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다음의 한 구절로써 전역의 인사를 대(代)할까 합니다.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라는 전역사를 합니다.
민주주의를 안다면 당연히 해야 할 말입니다. 과연 우리 시대 이런 결기를 가진 언론인과 지식인이 있을까요? 박근혜 대통령도 국민과 한 약속은 100% 지키겠다고 했지만, 경제민주화 공약, 복지공약 등등. 어디 제대로 지킨 것이 없습니다. 민정이양 약속을 팽개친 아버지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 인터넷 매체〈데일리서프라이즈〉익명 칼럼니스트 탐독(耽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