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타맞고 정신 못차리고 있는 서른 직장인 여자입니다.
너무 답답하고..모든게 꿈인것 같아서 정신 좀 차리고자 여기에다 신세한탄 하게 됐네요.
이전 회사에서 저는 사내커플이었습니다.
저보다 4살이 많았던 그는 외모도 훌륭했지만 무서울 만큼 이성적이고, 한편으로는 인간적이고, 망가질땐 망가질 줄 아는 지성미모를 다 갖춘 참 사기캐릭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공채입사 2년차였고, 경력직으로 왔던 그 사람이랑은 바로 뒷자리 였음에도 1년 가까이 말한마디 안나눠보다 미혼 직원들끼리 어울려 술한잔 하고 하면서 가까워 졌어요.
그사람과의 연애는 참 행복했습니다. 저는 주말에는 돌아다니는걸 조아했지만 항상 일이 많아 피곤해 했던 그사람과는 집에 짱박혀 있기만 해도 재미있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커질수록 그 사람이 과거에 만났던 잘난 여자들과 스스로를 자꾸 비교하게 되고 제 어리석은 자격지심에 그의 진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그런 문제로 여러번 크게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다시 헤어지고 친구인 척 지내도 보고 결국은 다시 헤어지고. 그러다 다시 연락하고 지내고. 다시 서로 연락하면 죽일것처럼 싸우고.
그도 한동안은 힘들었던지 턱이 점점 뾰족해지는걸 보고있자니 마음이 아프고, 미친듯이 다른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걸 듣고있자니 너무 힘들어 제가 그 회사를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가끔 연락이 왔고, 잠자리도 두세번 가지곤 했어요. 그 때 저도 그사람도 각자 다른 이성을 만나고 있었지만, 저도 그사람이 너무 그리웠기 때문에 냉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짧지만 불같았던 연애가 결국은 작년 9월로 완전히 끝이 났어요.
한번씩 연락하고 한번씩 불같이 잠자리 하고 하는게 정상은 아니었으니 저만 더 상처받는거 같아 완전히 결론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 끝은 제가 온갖 용기를 다 짜내어 이렇게 지내지말고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만나보는게 어떻겠냐는 고백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없이 냉정하고 이성적인 그 사람의 대답은 NO 였습니다. 이미 두세번 붙었다 헤어졌음 해볼만큼 해본거라고. 한없이 차분한 본인의 감정을 들쑥날쑥하게 하는 제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항상 먼저 연락하고 먼저 찾아오곤 했으면서 저한테 여지를 준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카톡에서도 지우고 번호도 지우고 미친듯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하고 하면서 힘들게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달에 생각지 못하게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전 회사에서 친했던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그사람이 왔습니다. 제가 있는데도 올꺼냐고 물어보니 오겠다고 했다더군요. 어색하게 술을 마시고 잔뜩 취한 그사람은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용서해 달래요. 저는 지금 만나는 사람도 있고 잘먹고 잘살고 있을뿐더러 너란 사람 다 잊었으니 용서 구할 필요 없다고 개쿨한척 했습니다. 그러곤 오랜만에 본 그사람 얼굴이 계속 생각나서 힘들었어요.
그 이후, 이번 화요일에 전화가 왔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그사람이 할얘기가 있으니 만나자고 하더군요. 제가 현재 회사문제로 많이 힘들어 하고있는 걸 친구들 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언을 해주려나 보다 해서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여자의 촉이란.. 혹시나 청첩장 줄꺼면 괜찮으니 안보겠다고 했어요. 그 말에 그사람은 웃더니 일단 만나서 얘기하잡니다.
그래서 어제 만났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 걸 과장하려 신경 많이 쓰고 나갔습니다.
용건이 뭐냐는 말에 계속 회사얘기 하며 말을 돌리더니 결국은 얘기 하더군요. 결혼한다고.
내일 삼일절이 상견례 래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예상은 했었습니다. 그 사람 항상 말했었어요 올 가을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꼭 결혼 할꺼라고. 그리고 뭐든 한다고 마음먹으면 하는 사람이니까 그럴꺼라고 생각은 했었습니다.
저랑 동갑에 증권사 다니는 똑똑한 여자라고 하더군요. 분명히 예쁘겠죠...그 사람한테 잘 어울리는. 잘난 그 사람도 껌뻑 줄을만큼. 연봉이 저의 2.5배 정도 되는...저랑은 게임이 안되는 사람이겠죠... 암튼.
상견례 하기전에 제 허락 받으러 왔답니다. 본인이 미안한 마음 가지고 있는 전 여친들 중에 저만 아직 결혼을 안했대요. 가장 최근이니 당연하겠지만.
그래서 제 허락을 받으러 왔대요. 농담반 진담반으로 결혼식에 와서 깽판 부릴까바 미리 허락받으려고 밥사먹이고 얘기하려고 보자 그랬다고 합니다. 당황스러웠지만 예상은 했던 일이라 다른 이런저런 얘기하며 아무렇지않게 마주보고 밥을 먹고 헤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는길에 곰곰히 생각하니 화가 나더군요. 저랑 헤어질 때 그 사람은 본인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냉혈인간이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못만날 것 같다고. 너는 꼭 좋은 사람 만나서 본인보다 먼저 결혼하라고 그랬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이렇게 빨리 결혼을 결심할만큼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는게.. 참..축하하면서도 화가났습니다.
그 사람과의 짧은 연애기간동안 울고웃고물어뜯고행복했고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허무하더군요.
그 사람이 두어번 결혼얘기를 꺼냈을 때 애써 회피했던 건 저였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결혼에 회의적이었던 제가 간절하고 유일하게 이 사람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처음으로 이사람과 아이를 상상해 봤고, 같이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해서 바랄게 없었지만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과 자신이 없었어요.
그 미련들과 후회가 정말 힘들게 정말 조금씩 잊혀지고 있었는데...어제 이후로 불난 집에 휘발유 뿌린듯 감정이 일어나는걸 주체할수가 없네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사람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결혼할 사람 생기면 먼저 연락해서 자랑해 줄 테니 절대로 연락하지 말고, 결혼식도 안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오빠는 분명히 잘 살꺼라는 덕담도 잊지 않았습니다.
또 힘들게 개쿨한척을 하고 저는 지금 멘붕이네요.
그사람과의 추억이 세세하게 모든게 다시 떠오르고 그 생각들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 같네요.
월요일에 제가 아무것도 모르던 고1때 처음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저세상으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고1 때 짧은 만남 이후로 수능 쳤던 날 연락을 해왔고, 군대갔을 때 연락을 해왔고, 사회인이 되서 연락을 해와 제작년 부터 한번씩 연락하며 서로 좋은 술친구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못하는 17살 때의 제 모습을 기억해 주던 사람이었고, 어제 휘발유를 뿌린 그 나쁜 사람과 헤어졌을 때 폐인이 되있던 저를 밤새워 위로해 주던 그 친구가 어느 날 부터인가 연락이 안되더군요. 작년 12월에 저세상으로 갔다는걸 이제야 알게 된 제가 너무 원망스럽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일, 이 친구 묘소에 갑니다. 그 친구와 더는 만날 수 없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동안 그 사람은 상견례를 하고 있겠죠. 내일은 제 삼십년 인생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네요. 모든게 귀찮아지고 무의미해지려고 하는 마음을 애써 추스려봅니다. 그 사람한테 결혼하지 말라고, 나한테 돌아오라고 매달려보고 싶은 마음도 추스려야 겠죠.
미련에 몸서리 칠때는 차라리 그사람이 결혼을 해서 일말의 미련도 다 털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애써 부정하려 했던 제 본심은 저한테 돌아와주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끝인 것 같네요. 어디 굴파고 들어가서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런 감정 다른 분들은 어떻게 추스리시나 궁금합니다. 지난 번에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몸빵했더니 몸과 마음이 폭싹 늙더군요. 훌훌 털수있는 방법 조언 좀 해주세요.
주절주절 쓰고보니까 엄청 기네요.
누구에게든 얘기하고 위로 받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