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4.
이런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분이 힘내라고 해주셔서 많이 위안이 됐어요.저랑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분도 있고, 지금 겪고 계신 분도 있는데,다들 힘냈으면 좋겠어요.
저희 아빠, 장례는 치르지 말고 화장만 해달라고 하셔서돌아가시고 화장할 때도 저희 가족만 있었는데이렇게 많은 분들이 위로해주셔서 기뻐하실 것 같아요.
24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세상을 오래 산 기간은 아니고또, 아빠의 반절 밖에 살지 못 한 아들이지만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고, 따뜻한 분들도 많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됐어요.
그저 감사하다고 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감사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24살 철부지의 글에 위로를 해주셔서.감사합니다. 우리가 아는 사이였다면 조금 더 좋았을 텐데 싶을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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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에 올려야 맞을지 카테고리 하나하나 눌러보다가그나마 사는 얘기가 가장 맞을 것 같아서 올림... 근데 좀 길어...다들 그렇게 하듯이 본인도 여자친구가 음슴이니 음슴체로 해보겠음
닉네임 본 사람은 알겠지만 본인은 올해 24살이 되는 남자사람임학교를 일찍 가서 친구들은 25살이라고 하지만 반오십이라고 놀리는 중이건 쓸 데 없는 얘기고... 얼마나 읽어주겠냐마는
우리나라 최고인 아빠에 대해서 써보겠음.
어릴 때는 아빠가 하는 일이 정확하게 뭔지 몰랐음엄마는 그냥 회사원이라고만 말해줘서 난 그냥 남들처럼 회사 다니는 건줄 알았음다들 초등학생 때는 그렇지 않나..? 아니라면 쏘리 :D
아무튼 그랬는데, 한 3학년쯤 돼서야우리 아빠가 가방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음.물론 그 때는 캐릭터 가방같은 거 들고 다닐 때라서 그게 가방의 전부라 생각했지만...
아빠가 핸드백만드는 사람이라는 건 거의 고등학생이 돼서야 알았음사실 그 때도 무슨 브랜드도 잘 몰랐고, 신발 메이커며 자동차 회사같은 것도 몰랐음물론 아직도 시계 브랜드도 모르고, 자동차도 관심 없고, 옷도 그냥 지나가다 예쁘면 사거나 함
전문직이라고 깔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우리 아빠는 나름 엘리트였음. 그래 뭐 사실 고등학교 졸업이긴 한데할머니가 대학을 안 보내줌. 원래 공고라 핸드백쪽이긴 했지만, 성적이 됐는데 안 보내줌.일단 아빠 9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이차이 좀 나는 형(큰아빠)이 25살에 돌아가심큰아빠는 자동차 쪽이었는데 빛도 보기 전에 돌아가심.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랑 고모(아빠의 누나)는 아빠 이름을 두 가지로 불렀음.나도 참 왜 두 가지로 부르는지 몰랐는데, 아빠가 고3 때 말해줘서 알았음.18년 만에 큰아빠라는 사람의 존재를 깨달음 ... 헣...
다시 본론으로 와서, 전문직이라고 깔보지 말라는 이야기.그래도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아빠 이름 말하면 모르는 사람 없었음(디자이너 이런 사람들 말하는 거 아님.)
정확하게 아빠가 했었던 일은 바이어가 가져온 샘플을 보고 샘플을 만들어줌...이게 써놓으니까 내가 바보같은데...바이어가 어디서 샘플을 가져옴. 그리고 아빠는 그걸 두꺼운 도화지 같은 거로길이, 모양, 다 따서 만듦. 그게 생각은 쉬운데 겁나 어려움손잡이 일일이 따고, 몸통 따고 뭐 그런 거임 본드로 붙이고 어쩌고 하는데일단 종이로 만들어놓으면 그쪽에서 가져온 원단이나 가죽으로 그걸 본따서 또 만듦
우리 아빠는 그걸 다 잘했음. 이게 좀 안 믿을 수도 있는데의류, 가방 취급하는 회사 중에 조금 큰 회사가 있음. 요새는 그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원이라고, 지금 내 세대보다 조금 위 정도?엔 잘 나갔나봄.(미안, 그냥 모델에 소지섭 쓰길레 지레 짐작한 거임)
아무튼 거기서 아빠 상급자가 하도 아빠한테 별 것 아닌 걸로 트집잡고 하길래뭐 어느 자리에서 사장한테 얘기함(사장이 스카웃 해 간 거라 서로 아는 사이임 원래)"막말로 내가 우리나라에서 핸드백은 제일 잘 만드는데, 여기 있는 거 사장님 때문이지 저 사람 비위 맞추자고 있는 거 아니다."고 함.근데 사장과 더불어 그 회사 직원이나 심지어 그 상급자도 앎. 아빠가 잘 하는 거그래서 그 상급자가 다른 데로 돌려짐 우왕ㅋ굳ㅋ
이건 빈폴인가 어디 거 해줄 당시 군대 가기 전에 중국 여행갔을 때 일화인데(우리나라보다 인건비가 싸서 회사들이 중국에 공장 많이 차림)청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짝퉁 시장이 있음. 말 그대로 짝퉁 모아서 파는 데.거기 갔는데 막 가방, 지갑 파는 데가 있는 거임 좀 크게근데 아빠가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갔지 졸래졸래근데 난 다른 거 잘 모르겠더라고, 진품 가품 구분법을 모르니까.아빠가 알려준 거 딱 하나 있는데 MCM... 제품 중앙에 MCM이 똑바로 있고, 오른쪽인가?왼쪽인가가 똑같이 MCM이 정방향이고 반대가 반대방향으로 있어야 진품이라고근데 요새는 짝퉁도 다 그렇게 나오긴 하더라.......
근데 우리 아빠 엄청 신기한 능력이 있는데(다른 사람도 있으면 미안)사진으로 보면 한 70%, 실제로 보면 90% 거기에 만져보면 거의 100%그게 무슨 가죽인지, 그냥 비닐인지 뭔지 그런 거 다 앎 오오 신기신기 동방신기그리고 내가 볼 땐 똑같은 박음질인데, 그거 보고도 진품 가품 구분을 하심 헣아 또 다른 데로 셌네 미안, 그 짝퉁 가게 주인 입에서 '가짜가 맞다'는 말이 나오게 했음"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데 이게 진짜야?"하니까 "진짜"라고 우겼는데듣다 듣다 실수로 "가짜 맞아"가 나옴 ㅋㅋㅋㅋㅋㅋ 옆에서 터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진짜 대단한 건 이제부터임사실 아빠가 이십대 들어서면서부터 앓던 병?이 있는데 B형 간염B형 간염이 생기고 나면 해결이 안 됨. 그리고 그 당시엔 김치찌개같은 것만 같이 먹어도옮긴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회사에 들어가서 오래 있질 못함. 정기검진 받으면 거의 퇴사니까.그래서 자영업 식으로 일을 떼어다 와서 해줬음. 그래도 잘 벌었을 때는 월 5-600이었음.
그러다 어느 회사랑 이래저래 돼서 중국으로 출장을 3-4개월정도씩 다니다가한국에 정착할 즈음, 내가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음한 2-3주를 몸살감기같이 앓으셨음. 병원 안 가신다고 감기약 먹고 좀 나아지는 것 같다가다시 또 그러고 반복. 그러다 병원에 갔음. 응급차에 실려서...
간경화 말기. 시한부 2년.
솔직히 와닿지 않았음. 아빠랑 나랑 나이 차이 25살났고,내가 고1때면 16살 때니까. 아빠 겨우 42살이 되실 무렵인 거임근데 약같은 거 처방 받고 하면서 일 하심. 자식들 대학 보내야 한다고.2년 후, 내가 고3 때 연습생 생활을 했었음.그러다 일이 조금 틀어져서 계약을 파기해야했는데 그쪽이 안 놔줌.아빠가 그 몸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결국 파기했는데그러고 얼마 안 지나서 당뇨가 오고, 몸이 더 안 좋아지셔서 너무너무 죄송함.
내가 군대가 조금 일이 꼬여서 22살 봄에 감. 아빠 살아계셨고,입대 전에 같이 PC방이나 노래방도 같이 갈 정도로 괜찮으셨음.(원래 어릴 때부터 용산 같은 데도 같이 가고 친구처럼 지냈음. 이거 좀 자부심 있음)그런데 그 해 겨울에 가게 같은 거 내려고(직원들만 일하고, 아빠는 관리하는 식) 했는데하...... 드라마같이 사기를 당했음...... 아 그 사람 생각만하면 욕이 나옴......
작년 초, 봄이 올 무렵에 부대에 아빠가 면회를 오셨음.그 일 있은 후로 몸더 안 좋아지셨는데도 굳이 보러 오신다고 오셨음.심지어 다음주가 휴가임에도... 와서 얘기도 하고 뭐도 조금 먹고 하고 가셨고,난 예정대로 휴가를 나감.그리고 고1 때보다 큰 충격을 받음.
간암 4기. 6개월.
내 진짜 감수성 풍부하긴 한데 웬만하면 울지 않음.진짜 나올락말락 하다가 안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날은 미친듯이 울었음
"우리 OO이 손주 낳는 거 보고 죽어야되는데" 이게 아빠 말버릇이었음. 간경화 이전부터근데 이 말이 "우리 OO이 취직하는 거 보고 죽어야되는데" 이렇게 말씀하심거기에 대고 내가 "왜, 나 결혼하고 애 낳는 거 보고 죽는다며"라고 끝나자마자울컥해서 아빠도 울고 나도 울고... 너무 울어서 목부터 가슴까지 너무 아팠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같이 산책도 가고, 산도 가고, 그랬었는데이젠 그마저도 못 할 정도로 체력이 없으셨고,부대가 경기도라 외박 때 부대에 허락받고 집에 왔는데 아빠가 머리를 미셨음.항암치료 때문에 빠지는 것도 있고 해서 밀어버리심.아무렇지 않다고, 시원하고 좋다고 하는데 내가 먹먹해서 미칠 뻔했음
그렇게 내 전역날이 다가오면서 내가 휴가 나가려고 미친듯 이것 저것 해서 포상이 좀 쌓임그래서 거의 매 달 나갔는데, 나갈 때마다 아들 왔다고 반겨주는 게 아빠였음다른 집은 엄마가 더 반겨주는 것 같은데 우리 집은 아빠가 반겨줌누워서 반겨주는 게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 있었지만, 곧 나을 거라고 믿었음.병원에서 말한 6개월이 이미 3달이나 지났을 때였으니까.그리고 암 크기도 9cm에서 3cm로 줄었었고 하니...
내가 12월 중순에 말차를 나왔음. 14일짜리 길고 긴 휴가인데.월요일에 출발해서 그 날만 집에서 쉬었고, 그 다음날부터 13일은 병원에 있었음.아빠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셨기 때문임...응급실에 3일, 2인실에 3일, 5인실에서 약 40일......말차 때부터 전역하고 한 달 내내를 병원에 있었음.전역하고 아빠랑 같이 여행도 가고 싶었는데 그게 안됐음.
패혈증으로 입원했던 건데, 항생제 투약하고 패혈증은 거의 나았음그런데 원래도 다리 근육도 거의 없어서 지팡이 같은거 짚고 걷다 쉬다 하면서 걸었는데이젠 그것도 안되고 서있는 것 조차도 안 됨.그래서 소변 대변 다 누워서 봄. 소변줄 할 때도 있고, 소변통 할 때도 있고.대변은 기저귀로 처리하고.
솔직하게 있잖아. 군대에서 더 힘든 것도 해보고, 더 더러운 것도 해봤는데아빠 소변 보고, 대변 보고 하는 거 해주는 거 하나도 힘든 거 없었음내가 자원봉사 나와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아빠니까근데 아빠가 나한테 매번 그랬음."우리 OO이한테 못 볼 꼴을 보인다.", "니가 아빠 때문에 괜히 힘들다."
............ 아 미안 쓰다가 울 뻔했네그런 말 하지 말라그랬음. 이걸 아들이 해주지 그럼 누가 해주냐고.
패혈증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눈에도 조금 문제가 생겨서 시력이 저하됨.그래서 안과 치료도 받으면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음.아빠가 그 때도 "나가면 니 뒷바라지 다 해준다."고 달고 사셨음하... 못난 아들 때문에 몸 생각 안하고 고생 많이 하셨는데 또 그러심
이쯤 되면 이 글 읽은 사람들 대충 눈치 챘을 거라고 생각함.그 우리나라 최고인 아빠가 2월 1일에 돌아가셨음.
솔직하게 아직도 나갔다가 집에 오면 아빠가 있을 것 같고."OO이 이제 오냐"해줄 것 같고, 같이 놀러도 다닐 것 같고.같이 월드컵도 보고 싶고, 같이 하고 싶은 거 많았는데
난 받기만 하고 아무 것도 보답해준 게 없는데그 가는 날까지 아들..............................................못난 아들 위할 생각만 하다가 돌아가심
인정하기 싫은 것 같음. 원래도 중국 출장 가면 오래 못 봤으니까.그렇게 생각하고 싶은데. 이젠 아빠 목소리도 못 듣고아빠 그 까칠하고 큰 손도 못 잡고, 배도 못 만지고같이 침대에 누워서 TV도 못 보고 축구 보면서 소리도 못 지르고
내가 24살에 상주가 됐을리는 없다고, 다 꿈이라고깨면 군대일 거라고 별 생각 다 해봤는데
현실은 현실이더라......
미안, 혼자 속으로 삭히면서 멀쩡한 척 하려니까 너무 힘들어서 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