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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풍요(경제)와 국민의식이 동반성장하지 않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

참의부 |2014.03.02 02:40
조회 78 |추천 0

박근혜 정권 5년 임기 다 채우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오늘날 선진국으로 세계인이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서유럽국가들!

 

그들 나라라고 오늘날 세계 최첨단 민주주의와, 전 국민이 풍요롭기까지는 못하더라도 의식주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존엄성을 누리면서 문화생활을 향유하며 살 수 있는 정치와 경제가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 진 것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들 나라의 역사를 파 헤쳐 보면 모두 다 우리의 항일투쟁과 민주화투쟁보다도 더 험난한 인고의 세월을 각고의 노력과 처절한 저항으로 민주주의를 키우고 경제를 성장시키고, 성장하는 경제에 따라 국민의식이 비례하여 함양됨으로서 오늘의 번영을 일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란 없고, 모두 다 인간노력의 결과물일 뿐이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청와대를 들어간 것도 그들 나름대로는 얼굴가죽에 철판을 깔고 거짓과 위선을 늘어놓으며 늑대나 사탄의 얼굴에 끊임없이 분가루를 처발라 입지전적인 사업가나 히로히또 개의 딸인 선녀로 교묘히 가장을 하여 어리석은 국민들을 감쪽같이 속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로 인정하는 데는 너나없이 수긍을 하지만, 가장 앞서가는 민주주의와 선진국이라고 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산유국들이 요행수로 국민소득은 세계 최상위국가군에 들어가지만 그들 나라를 “선진국”으로 부르는 사람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경제와 국민의식이 동반성장하는 국가여야만 선진국이 될 수가 있고, 세계인으로부터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면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제강점기는 건너뛰고 짧은 민주화 역사의 큰 줄기만 대강 훑어보자!

 

필자는 컴퓨터에는 소경이나 다름없다.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만 있다면 그 당시의 통계나 사진이나 경제지표자료들을 샅샅이 뒤져 오늘의 현실을 보는 것 같이 글을 쓸 수가 있겠지만, 그러지를 못 하여 필자의 인생기억을 더듬어 쓰다 보니 다소간의 오류나 착오와 뒤엉킴이 있을 것이니 그 점은 감안하시기를 바란다.


1. 1960년 3.15부정선거와 4.19혁명

 

당시 필자는 명색만 서울이었지 오늘날 산간오지 촌구석보다도 열악한 왕십리 무허가판잣집에서 어린 시절을 살 때였다. 일제부역자와 그 자식들만 빼놓고, 3천만이 헐벗고 굶주리며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이다.

 

당선이 거의 확실시되던 조병옥이 의문의 급서를 하매 대선후보로 나선 이승만은 상대가 없는 땅 짚고 헤엄치기의 대선을 치르고, 이승만이후의 다음번 자유당대선후보로 나서야 하는 이승만의 러닝메이트 부통령후보로 나선 이기붕이 문제였다.

 

뒤에야 알았지만 조병옥은 자유당 것들이나 마찬가지인 친일부역자였고 제주 4.3사건을 유혈 진압한 민주주의를 압살한 장본인이었으나, 필자도 어렸고 국민들도 당장 자유당독재를 몰아내는 것이 발등의 불이어서 조병옥의 전력이나 됨됨이를 따지고 묻고 할 겨를이 없어 조병옥을 민주주의를 지켜낼 화신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1875년생으로 이미 90을 바라보는 치매늙은이 이승만은 당선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이기붕을 무슨 수를 쓰던 부통령으로 당선시켜야 자유당정권을 이어 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자유당이 이기붕이 민주당 부통령후보로 나선 장면을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자 기어이 무리수를 들고 나온 것이다.

 

명색이 서울이다 보니 왕십리에서도 없었지만, 대도시를 제외한 농어촌에서는 광범위하고 공공연하게 이기붕을 찍은 투표용지를 1/3쯤 투표함에 미리 집어넣은 사전투표와 3인조, 5인조, 7인조의 공개투표를 자행하여 이기붕을 어거지로  부통령에 당선시켰다.

 

분노한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났다.

 

마산에서 김주열열사로 대표되는 최초의 봉기가 있었고, 그 봉홧불은 추풍령을 넘어 전국으로 퍼지며 서울로 치달아 마침내 세계민주화 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4.19혁명을 일구어 낸 것이다.

3.15부정선거가 치러지고 1개월 4일 만에 자유당정권을 끝장냈다. 이게 4.19혁명이다. 세계가 다 놀랬다.

 

6.25전쟁의 뒷설거지도 다 끝나지 않았고, 전 국민이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다시피 하는 나라에서 독재정권을 국민의 각성으로 몰아냈으니 세계가 고개를 흔들며 경이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4.19혁명은 1년 뒤 출세와 권력욕에 눈이 먼 친일매국노 박정희에 의해 무참한 죽임을 당했다.

박근혜는 역사적 평가가 매듭지어진 “5.16쿠데타”를 지금도 “5.16혁명”으로 부르는 것을 주저치 않고 있다.

 

그렇다면 4.19는 무엇인가?

 

혁명이 혁명을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박근혜의 5.16은 “혁명”이라는 궤변의 알리바이를 성립시키자면, 4.19는 “민중반란”이거나 “민중폭동”이 되어야 5.16이 “혁명”이 되는 것이다.

 

아-! 슬픈 4.19여!


2. 1979. 10. 26의거

 

4.19를 죽이고 정권을 찬탈한 종신독재자이자 가장 악질적인 친일매국노 박정희가 김재규장군에 의해 즉결 처형된 의거이자 혁명이다.

 

모든 혁명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유신이 마지막 발악을 하며 한 여름에도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하며 극악을 떨다 YH여공 신민당사 옥상 농성과 김경숙 열사의 투신이라는 제2전태일의 강력한 저항이 일어났고, 뒤이어 야당당수인 김영삼을 국회에서 축출하는 폭거가 이루어지자 더는 못 참겠다고 부산 마산에서 들고 일어났다.

 

부산-마산에서 올린 봉홧불이 추풍령을 넘어 한 갈래는 호남으로 한 갈래는 서울로 치닫기 직전의 일촉즉발 상황이었다.

 

차지철이 몰아대는 탱크 앞에 전국이 피바다가 될 아슬아슬한 순간에 보다 못한 김재규장군의 의거로 치가 떨리는 박정희 18년 유신독재를 총알 두 방으로 한 순간에 끝장을 낼 수 있었다.

 

박정희, 차지철, 청와대경호원 몇 명과 김재규장군 동지들 몇 분의 목숨으로 전국의 수천~수만의 목숨을 살려낸 것이다.

 

박정희가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경제를 성장시켰다고 떠벌이고 있으나, 박정희가 뒈지기 직전인 1978년도에야 비로서 국민소득이 북한을 추월하는 절대빈곤에서 겨우 벗어나던 시점이었다.

 

부의 균형분배만 이루어졌다면 굶어죽는 국민은 없을 만한 소득수준이었지만 국부(國富)가 영남과 재벌들에게 편중되다보니 당시까지도 굶어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오늘날 복지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료보험(현재는 건강보험)이 박정희가 도입한 단 하나의 복지실적이다. 그것도 헐벗고 굶주리는 빈곤층은 놔두고 비교적 안정된 직장이 있는 가진 자부터 실시했다. 박정희의 모든 경제정책이 이랬다.

 

절대빈곤을 갓 벗어나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상황에서도 18년 철권통치를 몰아내는 의거를 일구어 냈던 것이다.

 

세계가 다시 한 번 놀랬다.

 

박정희가 가는 것을 보고 놀란 세계의 독재자들로 하여금 독재의 강도를 낮추게 했고, 그 뒤 필리핀을 필두로 지구촌여기저기에서 군사 독재를 몰아내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더럽고 서러운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인가? 4.19와 마찬가지로 제2의 박정희인 전두환과 노태우에 의해 10.26의거는 무참히 살해되었다.

 

아-! 슬픈 10.26이여! 슬픈 김재규장군과 동지들이여! 하지만 슬퍼하지만 마시라! 뒷날 역사는 당신들의 의거를 다시 평가할 것이다.

 

삼별초와 동학이 “난(亂)”에서 “항쟁(抗爭)”과 “혁명(革命)”으로 재평가 되었듯이!


3. 1980. 5. 18광주항쟁

 

미완의 혁명이다. 광주만의 슬픔이다.

 

하지만 역사는 “폭동”을 “항쟁”으로 1차 재평가를 하였고, 이 땅에 견고한 민주주의가 들어서면 광주만의 슬픔이 아닌 전 국민이 기억하고 기려야 할 “미완의 혁명”으로 재재평가가 이루어 질 것이다.

아-!

 

슬픈 광주와 망월동이여!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시라!


4. 1987. 6. 10항쟁

 

숨 막힐 것 같은 독재와 광주가 피바다가 되는 것을 똑똑하게 목격했지만 김영삼 김대중으로 상징되는 야당의 눈에 보이지 않는 끈질긴 저항이 있었고, 비록 산발적이기는 했지만 대학생들의 강력한 저항이 잇따라 기나긴 군부독재가 마지막 종착역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즉,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그 지하에서 숨죽인 혁명의 기운을 수면위로 얼굴을 내밀고 살아 숨 쉬는 혁명으로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살기(殺氣)의 장풍(腸風)을 갖고 있는 경찰관들이었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잡혀온 가냘픈 대학생 박종철을 책상을 “탁-!” 쳐서 “억-!”하고 죽게 만드는 신기의 장풍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록 박종철은 외모는 심약해 보였지만, 그 의지는 죽음 앞에도 굴하지 않은 백절불굴의 의지를 타고난 젊은이였다.

 

뒤이어 수많은 대학생들이 분신이나 빌딩옥상에서 아스팔트로 몸을 던지는 순국이 뒤따랐고, 강경대학생에 이어 경찰의 체루탄 조준사격으로 이한열학생의 순국함에 끝내는 6.10항쟁을 일구어내는 마침표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 혁명군이 너무 서둘렀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항복을 받아낸 것에 대만족을 하고 어설픈 개헌을 해서 그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혼란을 자초했고, 그게 우리역사에 있어서는 안 될 이명박과 박근혜정권이 생겨나게 하는 단초가 되었다.

 

그때 5년 단임의 대통령중심제가 아니라 4년 중임의 정부통령제나 내각제, 또는 5년 단임의 대통령제를 채택하더라도 최고 득표자가 50%의 지지를 못 받았을 때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야 했었다.

그랬더라면 노태우정권은 태어날 수가 없었고, 평생을 민주화투쟁에 몸 바쳤던 김영삼이 타도대상인 노태우 김종필과 손잡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명박과 박근혜 같은 게 감히 대통령 꿈도 꿀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6.10항쟁은 죽 쒀서 개에게 준, 결과론적으로 말해 실패한 혁명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6.10항쟁의 위대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그 뒤에 대처가 아쉬웠던 것이다.


5. 이명박 정권의 출현

 

우리역사에 절대로 태어나서는 안 될 최악의 정권이었다.

 

그것도 총칼도 아닌 국민이 붓 뚜껑을 눌러주어 절대적인 지지로 그런 정권을 불러들였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5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오나 단 하루도 그치지 않고 끈질기고 줄기찬 저항이 이어졌지만, 말 그대로 저항뿐이었다.

 

혁명이나 항쟁은 없었다. 단지 일부의 저항만 있었을 뿐이다.

 

이명박은 보란 듯이 5년 임기 다 채우고 논현동인지 도둑놈 촌인지에서 어리석은 국민들을 비웃으며 더러운 여생을 줄여가고 있다.


6. 박근혜 정권의 출현

 

억장이 막혀서 글을 쓸 수가 없다.

 

그래도 이명박은 국민들이 붓 뚜껑을 눌러서 스스로 불러들인 자업자득이지만, 도대체 박근혜는 뭐란 말인가?

 

그 책임을 붓 뚜껑 누른 손가락이 아닌 개표기에 물어야 한단 말인가?

 

조-중-동에 책임을 물어야 하나?

 

나라가 망하려니 야당과 후보였던 자가 박근혜를 두려워하고, 국민들은 현실에 안주하며 길거리로 나서기를 꺼린다.

 

오죽했으면 희대의 기회주의자 안철순지 철부지인지가 “새정치”를 하겠다고 헌 깃발을 휘날리며 젊은이들을 현혹하고 나오겠나?


<정리>

 

4.19혁명이후 경제는 일시적으로는 부침이 있었지만 꾸준히 성장하여 1980년대에 들어 비로소 후진국을 벗어났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 집권을 함으로서 민주주의도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릴 수가 있었고 조금만 더 땀을 흘리면 선진국에 진입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4.19혁명 → 10.26의거 → 5.18항쟁 → 6.10항쟁 → “촛불”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권을 향한 저항 → 박근혜의 불법당선과 유신회귀에의 저항을 살펴보면 저항의 강도와 국민들의 참여열기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현저하게 떨어져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민들이 절대가난에서 허덕이던 4.19때는 굶어 죽으나 저항을 하다 죽으나 매한가지이니 전 국민이 죽음을 각오하고 떨쳐 일어났고, 어느 정도 경제가 성장하여 일부국민들은 삶의 걱정이 없을 때 10.26의거와 5.18항쟁이 일어났지만 군사독재의 시혜로 삶의 걱정이 없는 지역과 국민들이 저항의 대열에서 빠져 나갔고, 그 열기가 6.10항쟁 때 잠간 되 살아 났으나 그 때 뿐이었고, 이명박-박근혜에게 저항하는 한 편에서는 오히려 독재정권이 눈에 안 보이게 쥐어주는 푼 돈 몇 푼에 영혼을 팔아먹은 것들이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맞불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반면에 저항의 대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열기도 세월이 감에 따라 서서히 저하되어 가고 있다.

4.19나 5.18때와 같은 맹렬함은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저항의 시위를 이끄는 뭔 시민단체 대표라는 것들도 대중 앞에 마이크 잡고 흰 소리 쏟아 내며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것으로 대만족이고, 일부 젊은 층들은 감히 길거리로 나서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골방에 쑤셔 박혀 컴퓨터나 뒤져서 판에 박은 뉴스를 따다 제목 바꾸고 문장 앞뒤 몇 개 바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특종의 희소식을 처음 접한 냥 컴퓨터에 버젓이 올리고, 더 게으른 층은 그것도 귀찮아 이명박이네 집주소인지 최태민이의 무덤 주소인지 하는 주소만 한 줄 달랑 따라 인터넷에 올리는 것으로 위대한 민주화 투사를 자처하고 있다.

 

남녀노소 지역을 가릴 것 없이 경제가 성장하는 것에 반비례하여 현실안주나 타협으로 적당히 국민의식수준이 타락하여 가고 있다.

 

돈만 많이 벌면 민주주의도 나중에 수입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나라가 여럿이다.

 

그 나라들은 우리가 4.19나 10.26혁명을 일으켜 잠시나마 민주주의를 살려놨을 때는 캄캄한 암흑천지나 다름없는 독재국가들이었다.

 

모두다 우리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며 우리로부터 민주혁명을 수입하여 갔던 나라들이 지금 민주혁명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민주주의가 목 졸라 죽여가도 강 건너 불 바라보듯 하며 변변한 저항 한 번 못 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집회현장에 나가봐도 맨 날 그 사람이 그 사람뿐이다. 나라가 요 모양 요 꼴로 계속 나가면 경제도 언젠가는 다시 뒷걸음을 칠 것이다.

 

제자리걸음도 한 두 시간이지, 계속하다보면 발바닥이 부르트고 언젠가는 주저앉기 마련이다.

박근혜의 후안무치한 복수극의 한 단면을 보라!

 

민주화 투쟁으로 자기 아비를 괴롭혔던 민주화사업기념단체를 모욕하고 모독하기 위해 자신을 지지했던 85세의 박상증인지 뭔지 하는 민주화운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묘 자리나 찾아 다녀야 할 치매 늙은이를 회장에 쑤셔 박는 만행을 보라!

 

임명절차의 합법성이나 정당성을 떠나 민주화영령들과 단체에 똥물을 뒤집어씌우는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최상의 모독이다.

 

그러다가는 5.18기념사업회장에 전두환의 아들을 앉히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벌린 입이 다물어 지지를 않는다.

 

단언한다.

 

치매 늙은이가 그냥 회장에 눌러 앉도록 하고, 이명박 정권과 마찬가지로 박근혜정권 5년 임기 다 채우도록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다시는 민주주의를 회복할 힘도 없고,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는 백성들이다.

 

아니꼬우면 돈 많은 사람은 민주주의 하는 나라로 이민을 가면 된다.

 

그게 민주정치는 수입을 할 수 없으니 아니꼬운 사람이 자진 수출품이 되어 민주국가로 팔려 가면 되는 것이다.

 

안현수의 뒤를 따르면 된다.

아-!

 

대한민국 어찌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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