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봄비가 왔네요. 다들 비 안맞으셨는지요? 날씨도 조금 쌀쌀해져 감기 걸리기 딱인 것 같아요. 조심들 하세요! 저번에 태몽 관련 이야기를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셔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이런 즐거움 때문에 자꾸만 변변찮은 글들이라도 들고 오게 되네요.
오늘은 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역시 제 글의 특성상 무서운 귀신 이야기는 아니예요~ ㅎㅡㅎ 재밌게 봐주시길 바래요!
제 친구는 봉사활동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봉사를 자주 다녀요. 특히 노인분들에게 관심이 많아서 요양원 같은 곳을 자주 다니다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독거노인분들을 돕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곳은 외진 동네였습니다. (약간 달동네 같은 이미지예요.) 친구는 그곳에 연탄을 나르거나 도시락 배달하는 일 등을 했다고 합니다. 워낙에 할머니, 할아버지께 잘해서 예쁨도 많이 받던 친구였어요. 어느 날 봉사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데, 계단 중간에 무언가가 눈에 띄더랍니다. 색깔이 아주 선명한 빨간 구두 한 짝이 뒹굴고 있었대요.
약간 낡은 것 같긴 한데 흙 묻은 것 하나 없이 깨끗한지라, 왠지 아까운 마음에 나머지 한 쪽도 찾아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계단 곳곳을 쑤시고 다녔답니다. 결국 계단 밑 쪽에서 나머지 한 짝을 발견한 친구는 그것을 가지런히 계단 가장자리에 놓아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굽이 높은 신발은 아니었고, 다만 선명한 빨간 색이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하네요. 할머니들중에 그런 색이 진한 것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으셔서 아마 그분들중에 주인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날부터 (친구는 보통 봉사를 일요일날 갔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월요일이기도 하고 피곤해서 그랬겠거니 하고 넘어갔지만 화요일에도, 수요일에도 비슷한 꿈을 꾸는 바람에 아주 짜증이 났다고 했습니다.
꿈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쫓아오는 기분이 드는데 (장소는 계속 바뀌었다고 합니다)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그래서 다시 걸어가면 다시 발소리가 따라오는 꿈이었답니다. 또각또각하는 하이힐 소리는 아니었고 운동화 소리도 아닌 것이 구두소리 같았다고 하길래 저는 "만약 그 꿈을 한 번 더 꾸면, 발 밑을 확인해봐"라고 했습니다.
친구는 그 날밤에도 꿈을 꾸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제가 말한대로 발 밑을 확인해봤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그 때 보았던, 색이 선명한 빨간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말했지만, 구두가 혼자서 따라온다는 것도 나름 무서운 일인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깜짝 놀라 마구 도망을 쳤고 어느 순간 구두소리가 들리지 않아 고개를 들어보니 자기가 봉사를 다니는 그 동네 계단 앞에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잠에서 깼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는 아무래도 그 동네를 한 번 가봐야겠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좋은 일 했는데 (죄라면 주인 찾아주려고 신발 한 짝 마저 찾아 주워놓은 죄밖에 없다며) 왜 나를 귀찮게 구느냐고 짜증을 부렸는데, 그것도 그럴만 했습니다. 과제다 뭐다 바쁜 일도 많은 와중에 주말마다 짬을 내 봉사를 갔다가 기분나쁜 꿈을 얻어와 약 4일간을 시달렸으니까요.
약 일주일 후 다시 그 친구를 만났고 저는 그 꿈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제 다 해결됐어"라고 하더군요.
토요일이 되자 친구는 그 동네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 구두를 놓아두었던 장소를 찾아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몇 몇 할머니들이 계단을 내려오시고 있다가, 친구를 알아보셨답니다. "어떻게 알고 왔느냐" 면서 기특하다고, 정말 복받을 거라고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셨대요.친구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서있는데, 할머니들이 빨리 같이 가자고 해서 일단 그냥 따라갔다고 해요.
친구가 도착한 곳은 장례식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평소 그녀가 자주 도와드리던 할머니의 장례식이 행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혼자 외롭게 사시던 분이라 제 친구를 친손녀같이 아껴주셨던 분이었대요. 그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주신 다른 할머니들이 제 친구에게 "저 분이 돌아가실 때 네 얘기를 하더라. 너한테 많이 고맙다고 하시더라" 라고 하셨답니다.
진심으로 할머니의 명복을 오래오래 빌어드린 후 친구는 그 괴상한 꿈에 대한 것은 까맣게 잊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그리고 그 날 밤에도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꿈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정말 화사하게 웃고 계셨답니다. 그리고 "미안했어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한 마디만 하시고 멀리 멀리 가시는데, 그 모습이 너무 소녀처럼 곱고, 왠지 슬퍼서 한참동안 꿈 속에서 머물고 있었다고 하네요. 오랫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빨간 구두가 눈에 띄더랍니다. 익숙한 구두소리가 멀어져 가고,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괴상한 꿈은 꾸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나 할머니에게 짜증부려서 어쩌지?"친구는 멋쩍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할머니가 참 좋으신 분이었네, 그 정돈 용서해 주실거야"라고 맞장구를 치자, "이래서 내가 교회는 안나가도 봉사는 계속 나가는거야." 라고 하더라구요.
그 이후로 저도 가끔 그 친구를 따라 봉사를 나가곤 합니다.저에게는 아직 '주말마다 봉사'는 너무나 먼 얘기지만.... ㅎㅡㅎ이번 생일에는 빨간 구두를 한켤레 선물해줘야겠어요.
이 이야기는 어쩐지 결말 부분이 조금 식상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사실 올릴까말까 고민을 조금 했는데, 얘기를 전해들은 또 다른 친구가 재미있는 의견을 내더라구요.
"그 빨간 구두가 저승사자는 아니었을까? 저승사자가 꼭 인간같은 형태라는 법은 없잖아. (물론 그럼 저승'사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 걔가 그걸 만지는 바람에 엉뚱하게 휘말린 걸지도 모른다고. 사실 그 구두는 걔를 쫓아가고 있던게 아니라, 할머니에게 가고 있었던거지! 종착역이 결국엔 그 마을이었던 거잖아?"
사물의 형태를 한 저승사자라니! 정말 재미있는 생각이죠? ㅎㅡㅎ이 이야기를 듣고 판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겐 그냥 '왠지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이야기' 일 뿐인데, 다른 누군가에겐 또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주말까지 얼마 안남았네요. 조금 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