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법, 땅의 법.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에는 법이 존재합니다.
그 법의 제정 취지는 이렇습니다. 법 앞에서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며 국민 개개인이 지위의 상하, 성별의 차이, 빈부의 차이 등에 관계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대한민국의 법이 존재하는 한 그 법에 위배되지 않으면 어떠한 일이나 행동을 해도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는 것도 됩니다.
육법
[ 六法 ]
법의 기본이 되는 ① 헌법(1948년 7월 12일 제정. 1948년 7월 17일 공평. 총 130조) ② 형법(1953년 9월 18일. 법률 제293호. 총 372조) ③ 민법(1958년 2월 22일. 법률 제471호. 총 1118조) ④ 상법(1962년 1월 20일 법률 제1000호. 총 874조) ⑤ 형사소송법(1954년 9월 23일 법률 제341호. 총 493조) ⑥ 민사소송법(1960년 4월 4일 법률 제547호. 총 735조) 등의 6개의 법을 육법이라고 한다.
출처 회계·세무 용어사전, 고성삼, 2006.8.25
대한민국의 법 체계는 위와 같은 육법에서 비롯되는데.. 이 대한민국에 과연 “법”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모든 국민에게 “법”이 공평하지 못하게 적용 되는 것을 느끼는건.. 단지 나 하나만의 생각일까요?
땅(대한민국)의법-육법
최근에 어떤 건설회사의 회장이란 사람이 불법을 행해 벌금 약 250억여원을 납부하지 않으려
갖은 변명과 회피를 일삼다가, 판사의 재량으로 노역에 처해졌는데... 노역일당이 5억원 이란
사실이 알려지고, 세간의 비판은 그야말로 펄펄 끓는 물과 같았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가난한 노숙자가 15,600원을 훔친 죄에 대해서는 3년이라는 징역을 선고한
사실이 있는바.. 물론 누구나 남의 것을 훔치면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너무나도 “법의 저울”이 공평치 못하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연유일까요?
극과 극을 달리는 듯한 “대한민국의 법” 적용은.. 정말이지 우리를 처연하게 하고 씁쓸하게 합니다. 과연.. 이 “법” 자체가 잘 못 만들어진 까닭일까요.. 아니면 그 “법”을 다루고 적용하는 사람들이 잘 못된 것일까요? 두 말할 것도 없이 그 “법”을 다루고 적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일 겁니다.
누구보다 엄정하고, 공평하게 법을 다루고 적용해야할 법조인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법”이 가진 공평이나 자신의 양심에는 전혀 부끄러움이 없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이 세상이 주는 달콤한 유혹, 즉 권력과 금력 앞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법”의 공정함이나 자신의 양심을 내팽겨친 것이 원인일 겁니다.
눈금없는 저울(잠 11:1)
잠 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우리나라 어떤 공항에는 저울추가 없는 저울이 있었는데, 시설물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자칫 점검을 못하고 방치했었는지는 모르나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항 시설물 관리자나 “법”을 다루는 법조인들이 “법”에 명시된 엄정한 기준으로 법 적용을 하고 만민에게 평등한 잣대로 척량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인데 저울추 없는 저울로 무게를 척량하는 일이나, 자신의 임의대로 법 적용을 한 판사나.. 모두 하나님의 저울은 아닐 것입니다.
하늘의 저울(욥 31:6)
욥 31:6 그리하였으면 내가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하나님이 나의 정직함을 아시게 되기를 원하노라
요한 계시록이 이루어지는 오늘날, 과연 하나님의 저울이 성경 그대로 말씀하시는 곳은 어디일까요?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하신 말씀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인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은 믿지 않는 저.. 세상 교회에서 이루어질까요.. 아니면 성경과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를 가감없이 증거하는 “신천지”에서 이루어 질까요.
세상과 하나된 세상교회의 말은.. 성경에 비추어 보건대 거짓 저울이 틀림 없습니다.
자신들의 이권과 금권에만 혈안이 되어 목사직도 사고 파는 저 세상 목자들이.. 어찌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으리요.
수십 수백개의 교단으로 이리 갈리고 저리 갈라진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 처참한 종말을 맞고 있는데, 정작 자신들은 그러한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너무도 큽니다.
호 12:7 저는 상고여늘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사취하기를 좋아 하는도다.
이 말씀에서 상고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商賈-상업(商業)을 영위하는 자. 곧 상인(商人). 원래 행매(行賣)를 상(商)이라 하고, 좌판(坐販)을 고(賈)라고 했음. 또 상은 밝힌다는 뜻의 장(章)과 같아서 원근을 밝게 보고 그 유무를 헤아려 사방의 재물을 통하게 하는 것이고, 고는 머문다는 고(固)와 같아서 유용한 재화를 모아두고 사람이 오는 것을 기다려 이(利)를 취하는 것이라고 함. 출처-한국고전용어사전
즉, 상고란 장사꾼을 지칭하는 말인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의 장사꾼들을 심판하려 하셨을까요? 저는 상고여늘... 에서의 저란, 에브라임을 말합니다. 에브라임은 당시 이스라엘의 목자였지요. 목자를 장사꾼이라 하심은 말씀을 팔고(설교하고) 사는(설교 말씀을 듣는 성도들) 영적 목자라는 뜻입니다. 즉 말씀을 매매하는 목자라는 말이지요. 이는 육적인 특성을 가지고 영적 말씀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비유로 감추어진 말씀이 많고,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않았다”고까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을 하는 최종적인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구원에 이르는 것인데,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같이 하지 못하시고 그렇다면 구원은 없는 것인데.. 단지 교회만 나가서.. 주여! 주여! 한다고 구원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죄 사함 받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 하셨지요.
마 26:28
이 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막 4: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 13: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렇게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후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하늘 영계로 가게 되셨는바, 언제까지나 그 비유의 말씀이 봉해진채로 닫혀 있을까요?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을 보시면 묵시는 정한 때가 있고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다 하십니다.
(합 2:3)
요한 복음 16:25의 말씀을 본바, 예수님이 비사로 당시에는 말씀하셨지만 때가 이르면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고 하셨으니.. 구원과 천국을 소망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수같이 흐르는 “새 하늘 새 땅-신천지”에 오셔서 값도 없이 말씀을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비유 말씀이 성경대로 증거되는 곳, 그 곳이 바로 “새 하늘 새 땅-신천지”인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십시오.
새 하늘 새 땅 - 신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