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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춘향전

검객 |2014.04.03 17:15
조회 40,936 |추천 14




향숙(香淑)의 삶 속에는 8년이라는 시간을 차지한 한 남자가 있었다.

향숙이 그 남자, 몽운(夢雲)을 처음 만났던 것은

고시촌이 빽빽하게 들어 찬 신림동에서였다.

향숙이 실수로 떨어뜨린 지갑을 몽운이 주워주었던 것이다.

  

 

몽운은 고시 준비생이었다. 

간단히 풀어보자면 아무런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남자, 

여자 친구에게 선물 하나 해 줄 수 없는 남자, 

게다가 옷차림은 형편없고, 

몸에는 고시생 특유의 찌든 냄새가 배어 있는 남자였다. 

  

 

그러나 향숙은 왠지 이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그의 명민한 눈과 상쾌한 웃음에 반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향숙은 고시생 남자 친구를 둔 직장인 여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고시생 남자 친구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삶은, 

몹시 고달프고 유혹이 많은 삶이었다. 

게다가 20대 중반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지나고 있던 당시의 향숙은,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당연히 주변 남자들로부터의 대시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향숙의 마음은

오로지 몽운 한 남자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선물 하나 못 해 주는 남자였지만, 

좋은 레스토랑 한 번 못 데려가는 남자였지만, 

그래도 향숙은 그가 좋았다. 

  

 

청량하게 들려오는 몽운의 목소리, 

상쾌함이 느껴지는 몽운의 미소, 

영리하게 빛나는 몽운의 눈동자...

그 정도면 향숙은 그 어떤 다른 여자도 부럽지 않았다. 

그렇게 향숙은 내조 아닌 내조를 하면서 몽운의 옆에 있었다. 

자신의 돈까지 써 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금방 합격될 것처럼 보이던 몽운이

시험 합격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향숙을 만난 이후로 8년이었다. 

그 긴 기간 동안 향숙과 몽운은 인내심의 한계를 맛보아야 했다.

  

 

매력적이던 25살의 향숙은 어느덧 33살의 노처녀가 되었고, 

그 기간 동안 부모님의 결혼하라는 채근을 끊임없이 견뎌야 했다. 

몽운의 명민한 눈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눈으로 변했고, 

그 기간 동안 향숙은...몽운의 아이를 두 번이나 지워야 했다.

  

 

다행인 것은 그 긴 기다림과 고생을 견디고 몽운이 합격했다는 사실이었다. 

향숙은 이제 긴 기다림과 고생의 열매를 맛볼 생각에 온 마음이 다 설레었다. 

그러나 그 8년이라는 시간은 순수하던 몽운을

타산적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향숙과 함께 그 고생을 하고 마침내 인내의 열매를 먹게 되었는데, 

그 열매를 따는 순간 몽운은 향숙과 함께 그걸 나누기를 거부한 것이다.

 

 

물론 몽운에게는 합격 후로 상상도 못 한 여러 일들이 일어났었다. 

대외적으로 미혼남인 몽운은, 순식간에 주가가 높아졌고

좋은 선 자리도 많이 들어왔다.

8년간 만나서 이제는 타성에 젖어버린 애인보다

훨씬 예쁘고, 훨씬 매력적이고, 훨씬 부유하고, 

훨씬 집안도 좋은 그런 여자들 말이다. 

  

 

결국 몽운은 자신의 바뀐 환경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 피해와 희생은 고스란히 향숙의 몫이 되었다.

마지막 만난 자리에서 몽운은 향숙을 향해 흰 봉투를 내밀었다. 

그동안의 고생의 댓가라고, 섭섭지 않게 넣었으니 그만 나를 잊어달라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던 향숙은, 

곧 뜨겁게 울면서 몽운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몽운의 반응은 차갑고 냉정했다. 

"구질구질하게 우리 이러지 말자. 

이쯤에서 마침표를 찍는 게 서로 깨끗하고 현명한 거야."

 

전체 내용 보기:

http://novel.naver.com/challenge/detail.nhn?novelId=175742&volume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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